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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사랑은 속아주는 것?


  

 

 얼마 전 중학생 딸 아이가 기침을 줄이지 못해 병원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병원 정문 바로 옆에서 웬 아줌마가 우는 듯 보였고, 나이가 6살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는 무심코 손톱만 물어뜯고 있었다.

 

 너무나 힘겨워 보이기에 걸음을 멈추고 “아줌마, 어디 아파요? 왜 거기서?”라며 물었다.

 그러자 그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지방에서 딸을 데리고 병원에 왔다가 병원에서 지갑을 소매치기당해 아이 진료 접수조차 못한 채 집으로 그냥 돌아가려고 나오다가 자기의 신세가 너무 한심해서 그냥 쭈그려 앉아 있는 거라 말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우리 아이의 진료비 영수증을 꺼내보았다.  초진 진료비 12,000원, 엑스레이 9,100원 모두 다해봐야 2만 원 정도였다. 그리고 내 교통비 빼고 나면? 총 3만 원이면 다 해결될듯했다. 그러고 보니 남는 돈이 3만 원 정도 됐다.

 

“아줌마, 이거면 아이 진료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아니, 뭘 이런 걸, 아이고 아닙니다. 아녀요”
“괜찮아요. 얘가 빨리 병이 나아야죠”

 

 나는 받지 않는다는 아줌마에게 3만 원을 쥐여 드리고 그분의 요청으로 내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 드렸다.  그런데 그 후 3일, 1주일, 보름이 지나도록 아줌마로부터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돈 3만 원을 되돌려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연락이라도 오면 아이의 치료를 잘했는지, 건강에는 문제가 없는지 안부라도 묻고 싶어서였다.

 

 결국, 그로부터 한 달이 되던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말해줬다.  그러자 남편은 “마누라, 생각보다 순진하네!”라며 뻔한 속임수에 당했다며 웃었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속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줌마의 그 간절한 표정과 천진난만한 딸 아이의 얼굴이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돈 3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아줌마가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사람을 속인 게 아니길 바랐다.

 

 그리고 다시 1주일이 흘렀을까.  

 금요일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거실 탁자에 예쁜 꽃 편지 봉투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뭘까? 하며 봉투를 뜯어 본 순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편지는 그날 병원에 함께 갔던 중학생 딸 아이가 써 놓고 간 것이었다.

 

“엄마, 그 일로 너무 맘 아파하지 마세요.

 아마도 그 아줌마 딸이 너무 아파서 아줌마가 그 일을 까먹었을 거예요.  아니면 정말 정말, 엄마에게 돈을 부쳐주고 싶었는데 사정이 너무나 어려우셔서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 사랑은 원래 속아 주는 거라잖아요. 울 엄마 짱!!”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딸내미를 제대로 키웠구나 하는 마음, 그리고 아줌마를 그냥 이해하면 되는 것을. 정말 내가 속은 거라 해도 우리 딸처럼 생각하면 나는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을.

 지금도 우리 딸의 말이 맞고, 정말 그 아주머니 딸의 건강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글 / 김점숙 대구 광역시 동구 방촌동

일러스트 / 전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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