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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스타인터뷰] 영원한 코트위의 황태자 '우지원'

 

  스타보다 스타였던 이를 만났을 때 인터뷰는 재밌다. 스타가 되는 것도 힘들지만, 스타로서 품위를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다

 는 것을 어렴풋이 알기에.  외형적 성공을 내적인 성공으로 다지는 것은 애정과 시간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스타보다 스타였던 그들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낸다. 우지원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닐까?

  30년 농구 선수 생활을 마치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농구 스타, 우지원을 지난 4월 초 분당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농구 코트를 떠난 지 2년 

 

 우지원은 유소년 농구교실과 농구 해설위원, 그리고 ‘불멸의 국가대표’ 등 각종 방송 출연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선수 시절, 농구 시즌을 마치고 떠났던 가족여행도 은퇴 후에는 가지 못하고, 생일날도 밤 12시 넘어 퇴근하여 가족과 생일잔치도 못할 정도라고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방송 일정을 맞추느라 인터뷰 일정 또한 시시각각 변했다. 그런데 ‘행복하다.’고 한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한다. 농구 때문에 행복했고 또 다른 농구 인생을 걸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코트 위의 황태자’로 불렀던 우지원을 혹자는 90년대 반짝스타로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시절 농구를 시작하여, 38살에 프로농구 선수생활을 은퇴했고, 2012년 현재도 농구교실을 운영하며 SBS-ESPN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과거도 농구 선수였고 현재도 농구 인생을 걷고 있다.

 

 191cm의 훤칠한 우지원이 카페에 들어섰다.

 큰 키에 작고 잘생긴 얼굴은 변함없는 농구스타 ‘우지원’이었고, 딸과 아내 이야기를 할 때는 평범한 아빠와 남편이었다. 표지 촬영할 때 ‘뚫어져라 얼굴 쳐다보는 취재진’에게 쑥스럽다고 할 때는 친근함마저 느껴졌다.

 

 

 

 

 꽃미남 선수의 철저한 자기관리 30년..

 

 아직도 건재한 우지원의 건강 비결이 가장 궁금했다.

 

“체력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은퇴하고 3개월 만에 다시 운동을 시작했어요. 밤샘 방송 촬영을 하고 나서, 혹은 농구 경기를 할 때 근육통이 느껴질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헬스를 시작했고 ‘불멸의 국가대표’ 방송 프로그램 덕분에 수영, 배드민턴, 씨름, 핸드볼, 탁구 등 각종 운동에 도전하고 있어요.”

 

지독한 훈련이 가장 힘들었을 선수이기에 운동만큼은 쉬고 싶었을 텐데, 우지원은 은퇴 후에도 또 다른 우지원으로 자기관리를 멈추지 않는다. 선수 시절 건강관리 비결을 묻자 간단명료했다.  ‘11시 30분 이전에는 꼭 자고 8시간 숙면’, ‘금연 금주’란다.

 

 초등학교 때 농구를 시작한 우지원은 프로농구 원년인 1997년 프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은퇴할 때까지 우지원선수는 총 573경기에 출전, 7,348점(역대 4위), 한 경기 평균 12.82점, 3점슛 1,116개(역대 2위)를 기록할 만큼 프로농구사에 흔하지 않은 기록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우지원 선수는 1990년대 농구대잔치 세대의 주역이자 꽃미남 스타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 13시즌 동안 결장한 경기가 20게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성실한 선수였다.  성실한 우지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초등학생 시절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다쳤어요. 의사는 농구를 그만두라고 했지요. 포기할 수 없어서 슈팅을 해보았지만, 공이 자꾸 왼쪽으로 빠지는 거에요. 그때, 하루에 천 번씩 슈팅연습을 했어요. 아마 그때 자신감이 생긴 거 같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시작한 합숙생활에서 성실함을 배우고 교통사고 부상을 극복하며 자신감을 충전했다. 키 크고 잘 생긴 우지원이었기에 한 번쯤은 우쭐할 수도 있고 한 눈도 팔았을 것이라는 괜한 상상은 이 대목에서 깔끔하게 접었다. 물론 우지원에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존감과 조직생활로 단련된 사람은 쉬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우지원의 행복은 가족과 농구로부터

  

 농구 때문에 매우 행복하다는 우지원. 농구는 그에게 무엇일까?

 우지원은 “농구는 제 인생의 아내와 같습니다.”라고 답한다.

 

 너무 일찍 합숙생활을 해온 그는 평범한 가정생활이 그리웠다고 한다. 외로운 합숙생활에 그를 끌어주고 위로했던 농구처럼 아내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올해로 결혼 10주년을 맞는 우지원에게 아내는 의지하고 사랑하며 행복을 주는 존재라고 한다.
 

 “큰딸 서윤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고요, 나윤이는 다섯 살이에요. 큰딸은 운동을 좋아해서 태권도를 하고 농구도 배웁니다. 큰딸은 큰딸답게 의젓하고 둘째 딸은 질투하고 욕심내는게 무척 귀엽습니다.”

 

 딸 이야기를 할 때 그는 또 다른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 딸들과 함께 출연해 딸 바보임을 알렸던 ‘황태자’ 우지원은 화목한 가정의 아빠와 남편으로 또 다른 삶을 엮어가고 있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인터뷰 요청이 많은 것을 보면 확실한 것 같다.

 

 

 

 

 키 커지는 농구, 건강해지는 농구로 사랑을 나누고 싶다

  

 우지원은 유소년 농구단에 남다른 애정을 쏟는다.

 

 “90년대에 비하면 요즘은 농구 인기가 많이 식었잖아요. 농구선수로 큰 사랑을 받은 만큼 우리나라 농구 발전에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에 농구교실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농구를 하면 키가 크고 협동심을 키울 수 있어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도 있고요. 농구교실에서 훌륭한 농구선수를 배출한다면 정말 보람 있을것 같습니다.”

 

 농구 경기를 할 수 있는 체육관을 빌리는 것이 마땅치 않아 그는 분당에 농구체육관을 직접 지었다. 2010년에 첫발을 내딛어 지금은 청주, 광주, 제주도에서 농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름만 빌려주는 농구교실이 아니라 월 1회 정도는 직접 수업하고 지방에 다닌다.

 

 우지원은 농구가 성장판을 자극하기 때문에 키가 크는데 효과적인 운동이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157cm였고 부모님도 176, 162cm 정도인데 자신이 키가 큰 이유는 농구를 했기 때문이라고.

 

“농구가 국민에게 인기 있는 스포츠로 다시 떠올랐으면 좋겠고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무대에서 한국 농구가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농구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앞으로도 꾸준히 하고 싶습니다.”

 

우지원은 농구 인생을 걸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한국 농구를 위해 슈팅을 할 것이라고 했다.

 

 

 

 

글 / 김성숙 기자 • 사진 / 김성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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