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사는 삶이다. 건강하게, 행복하게, 우아하게, 품격있게, 웃으며 살자. 부정보다는 긍정으로, 비관보다는 낙관으로 세상을 보자. 세상은 보는 대로 보인다. 밝아온 2017년에는 책을 가까이 해보자. 삶의 격을 높이고, 정신을 풍요롭게 하자. 앎을 채워가는 삶은 언제 어디서나 늘 아름답다. 그런 삶에 책이 딱 제격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내가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됐으니, 그건 책에 의해서 였다”고 했다. 동양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치는 “상인의 재능도 논어를 통해 충분히 배양할 수 있다”고 했다. 책은 ‘고귀한 씨앗’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씨앗을 당신에게 옮겨심는 일이다. 앎에 갈증을 느끼고, 방향이 헷갈리고, 마음이 어수선하면 책을 읽어라. 책은 횃불이다. 당신의 지식을 밝혀주는 불빛, 당신의 방향을 밝혀주는 등대다. 책은 지식을 쌓고, 비즈니스 노하우를 터득하고, 필력을 키우고, 마음을 다스리고, 관계를 맺는 데 두루두루 쓰이는 만능키다.





책은 ‘거인의 어깨’다. 그 위에 올라서면 예전에 보지 못한 세상, 더 넓은 세상, 다른 세상이 보인다. 당신 자신이 거인이 아니라면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라. 거기에서 지금까지 못 본 세상을 봐라. 두뇌를 창의적으로 바꾸고 지식을 두텁게 쌓아라. 삶은, 품격은 저절로 높아지지 않는다. 책을 벗해라. 그럼 삶이 달라진다. 우아하고, 품격 있고, 지적으로 바뀐다.




"돈이 조금 생기면 책을 산다. 그리고 남는 것이 있으면 음식과 옷을 산다.(에라스무스)"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은 사둘만 하다.”(존 러스킨)
“낡고 오래된 코트를 입을지언정 새 책을 사는 데 게으르지 마라.”(오스틴 펠프스)
“책을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까지 살 수 있다면 말이다.”(쇼펜하우어)





세상에 큰 흔적을 남긴 사람들은 하나같이 “책을 사서 읽으라”고 한다. 이구동성에는 다 그만한 이유 가 있다. 양서는 가슴에 새길 대목이 많다. 문장이 수려하고, 함의도 깊다. 밑줄 그어가며 읽고, 나중에 그곳만 훑어봐도 양식이 된다. 세월을 좀 익혀 읽으면 또 다른 맛이 난다. 그게 양서의 묘미다. 책꽂이에 하나둘 책을 꽂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막스 베버는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고 했다.





커피 서너잔 값이면 책 한권을 산다. 한데 책은 책값의 열 배, 백 배, 천배로 가치를 불려준다. 만오천 원 아끼자고 책을 사지 않는다면 정말 좀스런 인생을 사는 거다. 지혜로운 사람은 가치 있는 일에 돈을 쓰고 어리석은 사람은 재미에 돈을 쓴다. 전자는 투자, 후자는 낭비다. 무턱대고 삶을 건조하게 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재미에만 치중해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전과 다른 이후의 삶을 원한다면 이전과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읽지 않았다면 읽어야 하고, 게을렀다면 부지런해야 하고, 뒤졌다면 앞서야 한다.




첫 만남은 누구나 어색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통하면 둘도 없는 벗이 된다. 책과의 만남도 처음에는 조금 서먹하고 버거울지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의 물꼬만 터도 책이 얼마나 유익한 벗인지를 금세 알게 된다. 문지방을 건너야 세상으로 나가고, 8부능선을 넘어야 정상에 오른다. 세상에 쉬우면서도 가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어렵다고 멈추면 당신은 늘 그자리다. 어려우면 거듭 다시 읽어라. 그럼 쉬워진다.





‘내일 읽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개 그다음 날도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순간을 미루면 영원히 미룬다. 그래서 습관이 무섭다. 시간이 없다고 둘러대지 말고 지금 바로 실천하라. 책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저자 파스칼 메르시어는 “우리는 자기 결정을 위한 운명의 순간을 종종 뒤돌아보고서야 깨닫는다”고 했다. 세상은 ‘지금’을 잡는 자가 앞서간다. 안 보이면 바로 안경을 써라. 책은 당신 인생 최고의 명품 안경이다.




글 /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신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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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 그의 첫 마디는 "유통기한이 지났으니 그냥 드릴게요" 였다. 지금 살고있는 오피스텔로 이사온 첫날 새벽, 1층 편의점 알바생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삼각김밥의 뒷면을 봤다. 유통기한이 고작 3분 지났는데 연신 미안해하던 그는 기어코 김밥을 무료로 줬다. 다음날 한 라면을 집어들자 그는 "그거 별로 맛없어서 별로 안나간다"고 했고, 언젠가 술을 마시고 비틀대며 집으로 들어가는데 오피스텔 입구서 담배를 피던 그가 황급히 여명808을 들고 뛰어와 손에 쥐어줬다. 자기도 동생이 있는데 매일 힘들게 일하는 모습이 비슷해서 주는 거라고 했다.





그는 모든 이에게 친절했다. 근처 타임스퀘어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찾아오면 "서 계시느라 힘드시죠?"라고 먼저 묻고, 술먹고 매장안에서 토하는 이를 다독여 집으로 올려보낸뒤 토사물을 묵묵히 걸레로 닦았다. 그는 30대 중반으로, 오피스텔 1층 편의점서 일한지 벌써 3년 반이 넘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여기저기 직장을 전전했지만 잘 되지 않아 아는 형님이 차린 편의점일을 돕고 있단다.





신기한 건 오피스텔에 사는 모든 이가 그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사납게 생긴 15층 아저씨도 10~20분씩 그와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걸 여러번 봤다. 도도하게 생긴 6층 처녀는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생긴 고민을 묻기도 했다. 신기한 건 그에게 무언가를 주는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19층 신혼부부는 꼭 아이스크림을 6개 사서 1개를 그에게 줬다. 우리 옆옆집 아저씨는 라이터를 빌린 뒤 사과 2개를 건네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그는 오피스텔에 사는 손님들의 직업 등을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한번 내 목에 걸린 네임택을 본 뒤부터는 나에게도 "김영란법 시행되면 더 자주 오시겠네요"하고 웃었다. 그래서 그런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한두마디씩 얘기를 나누는 게 그렇게 힐링이 됐다.





손님이 계산대로 다가오면 손을 뻗어 받아들고, 항상 웃고, 안색이 안 좋다며 걱정해주는 그에게서 이 삭막한 오피스텔 사람들이 별거 아니지만 별거 아니라서 더 따뜻한 사람 냄새를 맡는가 보다, 했다. 잇속을 챙기고, 주판알을 굴리고, 상대방이 내게 도움이 되는지 안되는지 따지는 실날같은 인간관계가 판치는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그에게서 조금씩 배우는 거 같다.



글 / 박세환 국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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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더 멋진 10년 후를 꿈꾼다. 물질이 더 풍족해지기를, 가정이 더 화목해지기를, 지식이 더 두터워지기를, 인품이 더 바로 서기를, 명예가 더 빛나기를 소망한다. 10년 후는 언젠가 모두에게 똑같은 ‘오늘’이 된다. 그러나 다가오는 모습은 사뭇 다를 것이다. 10년 후의 인생 스케치는 당신이 직접 해야 한다. 당신의 꿈은 누구도 대신 꾸지 못한다. 당신의 10년 후는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못한다. 그건 온전히 당신 것이다. 시작보다는 끝이 창대한, 갈수록 아우라 빛나는 삶을 꿈꾸자.






현재는 미래의 씨앗이다. 오늘 뿌린 씨앗이 내일의 열매가 된다. 풍성하게 뿌려야 풍성하게 거둔다. 정성을 기울여야 열매가 영근다. 10년 후 반도체로 살지, 그냥 쇠붙이로 살지는 당신이 오늘 뿌린 씨앗이 결정한다. 꿈이 없으면 사소한 일상을 사소하게 살고, 목표가 분명하면 사소한 일상이 충실히 채워진다. 꿈이 있는 인생은 자기 ‘답게’ 살고, 꿈이 없는 인생은 그저 되는 대로 산다. “목적이 있는 사람은 험난한 길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아무런 목적이 없는 사람은 순탄한 길에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의 말이다. 꿈의 로드맵을 그려라. 그러면 당신 삶이 달라진다.






이미지도 콘텐츠다. 속이 알차도 겉이 허술하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세상이다. 당신은 약속을 잘 지키는가? 정직한가? 어떤 사실을 습관적으로 부풀리는가? 옷차림은 단정한가? 월급을 받는 만큼만 일하는가? 자신의 단점을 애써 숨기는가? 자기합리화를 자주 하는가? 수시로 이중잣대를 쓰는가? 험담을 자주 하는가? 남의 얘기를 경청하는가, 아니면 의견이 다르면 바로 목소리를 높이는가? 사실 이 정도 질문이면 당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체크하는데 충분하다. “허물이 있으면 고치는 것을 주저하지 마라.” 공자의 말이다.






누구에게나 허물이 있다. 인격에 흠이 있는 자, 습관에 흠이 있는 자, 성격에 흠이 있는 자, 지식에 흠이 있는 자…. 세상은 흠집투성이다. 뱀은 허물을 벗어야 산다. 제때 허물을 벗지 못한 뱀은 그 허물에 갇혀 죽는다. 뱀에게 허물은 생사의 갈림이다. 허물은 스스로 벗어야 한다. 누구도 대신 허물을 벗겨주지 못한다. 허물 벗는 것을 주저하지 마라. 허물을 벗는다는 건  삶의 다음 단계로 내딛는 도전이고 새로운 세상을 보는 개안이다. 더 높이 날려는 몸부림이다. 허물을 벗고 높이 날아라.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넓고 근사하다.






지식은 언제 어디서나 유효하다. 상식 역시 늘 유용하다. 앎은 주체적 삶의 토대다. 스스로 판단하고, 멀리 내다보고, 깊이 들여다보는 힘이다. 지식이 바로 생존력인 사회, 그게 바로 지식사회다. 앎의 중심에 책이 있다. 읽는 자가 세상을 앞서간다. 커피 서너 잔 값이면 책 한 권을 산다. 한데 책은 책 값을 열 배, 백 배로 불려준다. 엄청 수지맞는 장사다. 책 값을 아끼는 건 정말 좀스런 인생을 사는 거다. 지혜로운 사람은 가치 있는 일에 돈을 쓰고, 어리석은 사람은 재미에 돈을 쓴다. 전자는 투자, 후자는 낭비다. 좋은 책은 저평가된 가치주다. 오래 품으면 큰돈이 된다.






지식은 지성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지성인은 지식과 품성을 겸비한 사람이다. 지식만을 쌓은 지성(知成)이 아닌, 지식과 품성이 짝을 이룬 지성(知性)이다. 영국 작가 새뮤얼 존슨은 “지식 없는 성실은 허약하고, 성실 없는 지식은 위험하다”고 했다. 아우라 빛나는 삶을 원한다면 앎으로 채우고 품성으로 바로 서라. 진정한 지성인은 배움으로 진보하는 자, 인품으로 모범이 되는 자다. 인품을 바로 세워라. 절름발이 지식인보다는 근사한 지성인이 돼라. 날마다 앎을 더하고 인품을 닦아라. 그럼 당신의 10년 후는 저절로 빛나고 근사해진다.






영국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은 “우리 시대의 근본적 착오는 물질의 지나친 숭배”라고 꼬집었다. 공자는 “군자는 덕을 먼저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먼저 생각한다”고 했다. 인생을 살면서 돈은 분명 필요하다. 누구나 부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성공과 실패도 부(富)의 크기로 가름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인생 자체가 송두리째 돈에 저당 잡혀서는 곤란하다. 돈을 향한 맹신은 때로 삶의 소중한 것을 가린다. 삶은 ‘저글링’이다. 가족, 건강, 친구, 지식, 일, 취미, 명예의 조화로운 핸들링이다. 이익만을 지나치게 좇으면 품격이 얕아진다. 명품을 걸쳐도 내면이 초라하면 촌티가 난다.






“분주한 자들은 하나같이 처지가 딱하다. 그중에서도 자기 일에 분주한 것이 아니라 남의 잠에 맞춰 자기 잠을 조절하고, 남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는 자들의 처지가 가장 딱하다. 인생에서 당신의 것이 얼마나 적은지 생각해보라.” 로마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말이다. 혹여 남의 장단만 맞추고 타인의 평판에만 신경 쓰다 정작 ‘당신만의 것’은 텅 비지 않았는지 한번 되돌아봐라. 비교의 습관을 버리고, 당신 이름으로 살아봐라. 존재에는 다 이유가 있다. 당신의 존재에는 더 큰 이유가 있다. 당신의 발로 당당히 서고 당당히 걸어라. 남의 외침만 되받아주는 메아리로 살지 마라.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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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에 사는 한 젊은이가 조나라 수도 한단에 가서 대도시 걸음걸이를 배웠답니다. 그런데 그 나라 걸음걸이를 채 배우기도 전에 옛 걸음마저 잊었다네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엉금엉금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 갈 수밖에요.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삶이란 게 그렇습니다. 남의 길이 멋져 보이고,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남의 키가 높아 보입니다. 그래서 내 길을 주춤거리고, 남의 떡을 넘보고, 발끝으로 서려고 합니다.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 그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동물들은 늘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장자는 우리에게 ‘발끝으로 걷지 말라’고 합니다. 발끝으로 걸으면 키는 좀 커보이겠죠. 한데 그런 부자연스런 걸음으로 몇 보나 걷겠습니까. 이치에 어긋나는 건 대개 그 끝이 흉합니다. 누군가 ‘삶은 주막’이라고 했습니다. 비유가 참으로 맛깔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정거장입니다. 정거장은 출발점이자 도착지이고, 길이 갈리는 교차로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갈림길에서 서성댑니다. 확신이 부족해서 머뭇거리고, 못가는 길이 아쉬워 되돌아보고, 남의 길이 좋아보여 곁눈질을 합니다. 당신만 그런 건 아닙니다. 저도 그렇고, 그도 그렇습니다. 루소는 ≪에밀≫에서 “항상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은 결코 인간이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비뚤어 풀어보면 인간은 모두 ‘방황하는 동물’이라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가 뭐래도 당신의 걸음걸이가 최고입니다. 당신의 스타일, 당신의 꿈이 제격입니다. 그게 바로 당신 삶이기 때문입니다. “밝음을 가리고 가려서 나의 갈 길을 그르치지 마라. 내 가는 길 물러났다 돌아갔다 하며 나의 발을 다치지 않게 하라.” ≪장자≫ 인간세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길을 간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아마 그건 거짓을 걷어내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자문해봅니다. 어둠이 밝아지고, 좁음이 넓어지고, 작은 앎이 큰 앎이 되는 게 참된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길에는 자연의 길(天道)이 있고, 사람의 길(人道)이 있다. 억지 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의 길이고, 억지로 번거로워지는 것이 사람의 길이다. 자연의 길이 군주이고, 사람의 길이 신하다. 그런데 자연의 길과 사람의 길이 서로 멀어지고 있다. 살펴봐야 할 일이다.” ≪장자≫ 재유편에서 인용한 구절입니다. 장자는 “천도는 남는 데서 덜어 부족한 곳을 채워주고, 인도는 부족한 곳에서 빼앗아 넘치는 곳을 더 넘치게 한다”고 꼬집습니다. 저에겐 이익만 좇아가는 소인배들을 겨냥해 내리치는 죽비소리로 들립니다. 속세와 너무 뒤섞으면 길이 흐려집니다. 흐려지면 불안해지고, 불안해지면 길이 더 흐려집니다. 장자는 “세상은 길을 잃고, 길은 세상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돈에 얽매인 자, 명예를 좇는 자, 권세에 매달리는 자가 세상에 넘쳐난다는 한탄으로 들립니다.





속세를 사는 인간이 속세를 등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삶이 반드시 고상한 것도 아닙니다. 장자는 백이숙제의 정절을 높이 사지 않습니다. 그 어느 것도 목숨과 바꿀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속세에 매인 삶에도 따끔한 경계의 시선을 보냅니다. 장자는 세상사의 부침에 일희일비하지 마라고 합니다. 의연히 가고, 의연히 오라고 합니다. 삶을 받아도 기뻐하고, 삶을 잃어도 그러라고 합니다. 어려운 주문입니다.


세속에 너무 밝으면 삶이 고달픕니다. 눈이 너무 밝으면 시야가 흐려지고, 귀가 너무 밝으면 소리가 흐려지고, 탐심이 너무 밝으면 마음이 흐려집니다. 흐려지면 길을 잃습니다. 세속에서 조금 거리를 둬보십시오. 그럼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이지도, 남의 키가 높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내 떡이 맛있고, 내 걸음으로 편히 걷습니다.





삶의 소소한 선택의 결과가 바로 오늘입니다. 삶의 자잘한 선택의 결과가 바로 지금의 당신입니다. 그 선택들이 쌓여 내일이 되고, 내일의 당신이 됩니다. 선택은 늘 당신의 몫입니다. 당신 삶에 조언가는 많습니다. 그래도 최종 결정권자는 여전히 당신입니다. 누구도 당신 삶을 대신 살아주지 못합니다. 당신이 살아가는 길입니다. 이왕이면 이웃과 더불어가는 길, 당신의 자아가 빛나는 길, 더 풍요로워지는 길을 걸어보십시오. 누구나 잠시 빌려 걷는 길입니다. 답답하고 좁은 길에서 헤매지 말고, 당신만의 큰 길을 걸어보십시오. 당신 삶에 응원자는 참으로 많습니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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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휴가 당시 한류를 직접 목격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내가 쓰던 오사카 호텔 거의 전부를 배우 장근석의 콘서트 참가자(주로 할머니)가 점령했다. 우연히 내 옆방에 자리를 잡은 할머니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자신이 홋카이도 지역의 부부지부장쯤 된다고 했다. 하루 전 홋카이도에서 오사카로 넘어왔단다.





짧은 영어로 들어본 그녀의 사연은 기구했다. 교사로 정년한 뒤 자식과 남편을 먼저 하늘로 떠나보내고 우연히 장근석을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그의 한손에는 쇼핑백이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장근석의 사진을 스크랩하고 자신의 소감을 정리한 노트가 무려 7권이다. 직접 줄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근쨩(장근석의 일본발음)의 웃음을 볼때마다 젊어지는 것 같다 하며 웃었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죠? 당신도 근쨩을 좋아하나요? 라는 말에 예스 혹은 하잇하잇, 하며 웃어보였다. 참 어찌보면 절망과 외로움의 나락에 빠져 허우적 댔을지 모르는 사람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던져주고, 나아가 삶을 다시 시작케 하는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런일도 있었다. 우리집 바로 옆에는 사창가가 있다. 오후 7시쯤 되면 진분홍색의 문을 열고 새벽 3~4시쯤 닫는다. ‘지금이 어느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많은 이들이 드나든다. 영등포경찰서 출입할 때는 경찰에게, 한번은 영등포구청 쪽에도 왜 안없어지냐고 문의했는데 토지 문제 등으로 사안이 복잡하다는 말만 돌아왔다.


주로 사람들은 영등포역으로 가는 지름길인 사창가 언저리를 걸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밝은 불빛의 그쪽을 최대한 쳐다보지 않으려 한다. 주로 새벽 1시쯤 나타나는, 태닝을 마친 고급차량이 아주 천천히 가게와 여성들을 시선으로 훑고 지나가는 것과는 딴판이다. 누구는 의지만 있다면 다른 일을 한다고 지적하고 누구는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다며 성적상품화가 만연한 작금을 개탄하지만 그곳에 여전히 사창가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얼마전 야근을 마치고 집에 오는데 한 외국인노동자로 보이는 남자가 뭔가를 물었다. 어수룩한 한국말로 섹시녀 어디있어요 라고 했다. 나는 말없이 건너편을 가리켰다. 그는 댕큐를 연발하며 헐레벌떡 뛰어갔다. 안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꿈과 성공, 혹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역만리로 건너왔을 그의 인생과 사창가를 향하는 그의 뜀박질이 겹쳐져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마음둘 곳은 과연 어디있을까. 가족을 잃은 일본의 할머니와 타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을 보며 몸보다 마음이 건강한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 박세환 국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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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道家)의 대가 노자는 자연의 이치를 가슴에 오롯이 담으라 했다.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면 영혼이 맑아지고, 천하도 거느릴 수 있다고 했다. 도가의 도(道)는 마음을 다스리는 수양의 길, 천하를 다스리는 치세(治世)의 길이다.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고, 어려운 듯하면서도 쉬운 게 도라는 길이다. 도가의 무위(無爲)는 한가하게 산천만 거니는 유유자적한 삶이 아니다. 그건 영혼의 티끌을 비우는 수양의 과정이다. 채우기도 어렵지만 비우기는 더 어렵다. 비움에 ‘도(道)’가 붙어다니는 이유다. 완전한 비움의 경지, 그게 바로 도의 경지다.




“도(道)에 가장 가까운 건 물이다(上善若水).”
노자는 만물 중 물이 도에 가장 가깝다고 했다. 그는 누구도 싫어하는 ‘낮고 더러운 곳’으로 흐르는 물에서 대도(大道)를 봤다. 고정된 자기 형상이 없으면서도, 억지로 길을 내지 않으면서도 만물을 풍요롭고 번성케 하는 물에서 스스로 낮춰서 높아지는 오묘한 자연의 이치를 봤다. 자신을 먼저 채운뒤 흐르는 겸허함을, 친소(親疎)를 가리지 않는 포용성을, 유약한 듯하면서 때론 거대한 바위도 밀쳐내는 엄청난 내공을 봤다.





물은 만물을 두루 적신다. 하지만 먼저 자신부터 채운 뒤 흐른다. 그 겸허함이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은 자기 형상을 고집하지 않는다. 처마의 낙숫물이 스스로가 작고 초라하다고 한탄하지 않고, 대해(大海)가 크고 넓다고 목에 힘을 주지 않는다. 시냇물로, 샘물로, 때론 강물로 대지를 넉넉히 적실 뿐이다. ‘나를 닮으라’고 강요하지도, 앞물을 앞서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낮은 곳으로 흐르기에 모든 물을 받아 바다가 된다. 물은 스스로 낮춰 바다가 되는 이치를 안다. 태산은 곧은 나무 굽은 나무를 가리지 않고, 바위와 티끌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 아우름으로 산은 절로 태산이 된다. 다 받아주니 태산(太山)이다. 산은 크게 품어 높아지는 이치를 안다.




물은 만물을 이루고도 공(功)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를 좀 봐달라’고 아우성치지 않는다. 적시면 그뿐,  다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왼손이 시작하기도 전에 오른 손이 먼저 아는 ‘인간의 손’을 부끄럽게 만든다. 봄에 만물을 싹틔운 물은 그 싹에 걸터 앉아 ‘내 공이요’라며 으스대지 않는다. 다만 여름으로 슬며시 옮겨갈 뿐이다. 노자는 “자연은 만물을 낳고도 소유하려 하지 않고, 만물을 위하되 ‘나만 믿으라’ 하지 않고, 만물을 길러주되 ‘내 뜻’대로 주재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루고도 드러내지 않아야 제대로 이룬 것이다. 드러냄은 인정 받고자 함이다. 그 조급함이 상처를 부른다.





세상엔 공(功)으로 되레 해를 입는 어리석음이 의외로 많다. 옛말에도 ‘곧은 나무가 먼저 베이고, 맛좋은 샘이 일찍 마른다’고 했다. 경솔하면 근본을 잃기 쉽다. 작은 공을 부풀리지 마라. 그럼 그 작은 공적이 더 작아진다. 노자는 “성과를 이루고도 뽐내지 말고, 성과를 이루고도 으스대지 말며, 성과를 이루고도 교만하게 굴지 마라”고 했다. 세상의 평판에 목을 빼지 마라. 이루면 이미 그것으로 족하다. 작든, 크든 그게 당신이다.




삶은 맑고 좀 투박한 게 좋다. 그런 삶은 스스로에게 은혜가 되고, 타인에게도 덕이 된다. 빛이 너무 강하면 눈이 부시게 마련이다. 그래서 노자는 “곧아도 방자하지 말고, 빛나도 눈부시지 마라(直而不肆 光而不耀)”고 했다. 이익에만 집착하고, 명성에만 매달리면 영혼은 늘 요동을 친다. 외물(外物)은 언제나 마음을 휘젓는다. 인간은 ‘외물적 동물’이다. 보이는 것에 울고 웃는다. 현대인에게 최대 건강의 적이라는 스트레스도 대부분 외물에서 온다. 남보다 낮아서 스트레스고, 남보다 작아서 스트레스고, 남보다 덜 빛나서 스트레스다. 당신의 무게를 늘 ‘남의 저울’로 잰다.





물은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는다. 한데 스스로 고요함에 머물러 탁함을 청아함으로 정화한다. 고요함에서 멀어질수록 탁함이, 스트레스가 그 틈새에 끼어든다. 고요함은 스트레스의 천적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시절 누구보다 방탕했다. 그런 그가 ‘발가벗은 속죄’ 위에 하느님을 향한 반석 같은 믿음을 세웠다. 그의 <고백론>은 애절한 죄의 고백이자, 주님을 향한 간절한 다가섬이다. 믿음을 채운 자에게나, 믿음을 비운 자에게나 그의 고백은 애잔한 울림을 준다. 특히 이 고백이 그렇다. “밖으로 나가지 마라. 그대 안으로 들어가라.”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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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슈퍼 탤런트 1기로 데뷔한 이후 20여 년. 탤런트 최재원은 감초 연기자로, 대한민국의 양심을 지키는 ‘양심맨’으로, 기업의 홍보 이사와 대학의 교수로 끊임 없이 변신해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낭독봉사, 연탄배달 등 주기적인 봉사활동까지,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 중심에는 탤런트 최재원 스스로 “Everything”이라 말하는 가족이 있다.




지난 5월, KBS2 ‘출발드림팀2’에 탤런트 최재원과 딸 유빈이가 출연했다. 장애물 5종 경기에 참여한 후 아빠는 “유빈아, 살 좀 빼자. 너무 무겁더라”고 했고, 아빠가 제일 자랑스러울 때가 언제냐는 MC의 질문에 유빈이는 “자장면 사주실 때요”라고 답했다. 코믹한 듯 다정한 부녀의 모습은 <건강보험> 촬영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랑 뽀뽀 한번 해볼까?”라는 주문에 유빈이는 아빠를 향해 사랑스럽게 입술을 내밀었다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다음 아빠가 유빈이의 표정을 차례로 흉내 내자, 순식간에 촬영장은 웃음바다로 변한다.





“집에서 가족끼리 스킨십을 많이 하는 덕분일까요? 딸들이 커가면서 아빠를 멀리(?) 한다던데, 유빈이랑 저는 여전히 허물 없이 지내요. 제가 술도 안 마시고 모임도 크게 좋아하지 않아서 저녁시간은 대부분 가족과 함께 보내거든요. 저희 부부는 물론이고 막내 유진이까지 모두 O형이라 그런지, 살 비비고 장난치는 걸 좋아하고요.”


아빠와 딸이 벤치에 앉아 나란히 포즈를 취하는 사이, 어디선가 “온니야~ 온니!”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얼마 전, 만 두 돌을 맞았다는 둘째 유진이. 놀이터에 나왔다가 아빠와 언니를 발견한 유진이가 정신 없이 달려오자 유빈이는 동생을 번쩍 들어 품에 안는다. 조마조마하게 뛰어다니며 “온니!”를 외치는 동생이 아무리 귀여워도 9년이라는 터울이 만만치는 않을 터. 유빈이에게 유진이 때문에 불편한 점은 없느냐 묻자, 유빈이는 거침없이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동생이랑 같이 노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서 제가 3년 동안 기도했어요. 동생이 태어나고 처음에는 밤마다 울어서 시끄러웠는데 금방 또 괜찮아지더라고요. 요즘은 대신 소리를 좀 지르는데, 그것도 귀여워요. 물론, 잘 때랑 웃을 때가 제일 귀엽지만요!” 때로는 숙제를 방해하고 언니를 꼬집고 때리며 장난을 쳐도, 유빈이는 유진이가 예쁘기만 하다. 아빠와 엄마 역시, 유빈이가 공부를 소홀히 할까 걱정이 되다가도 둘의 다정한 모습을 보면 흐뭇하고 든든해진다고.


“마냥 행복했다가 걱정이 되었다가…. 둘째를 보면 만감이 교차해요. 짧게 잡아 25년 후에 유진이가 결혼을 한다고 해도, 그때 저는 이미 70대가 되어있을 테니까요. 너무 늦게 낳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후회는 안 해요. 그저 가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울 따름이죠.”




탤런트 최재원은 지난 연말, KBS1의 ‘당신의 100세는 안녕하십니까’라는 다큐멘터리의 나레이션을 맡으며 경제 상황과 노후 대비에 대해 진단을 받기도 했다. 늦둥이 아빠로서의 책임과 노력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이다.


“물론 본업은 연기에요. 하지만 가정을 안정적으로 꾸리려면 고정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경제활동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외식업체와 학원업체의 홍보이사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죠. 대학에서 연기를 가르치는 일은 자아실현과 수입, 둘 다에 걸쳐 있는 것이고요.”





‘연기자는 꿈을 좇는 사람’이라 여겨왔던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리는 대답이었다. 자신이 꿈꾸던 것을 포기하지 않는 대신 현실에 단단히 발 디디고 서서 가정을 지키는 사람, 그런 의미에서 탤런트 최재원은 지독한(?) 현실주의자다. 하지만 그가 지향하는 ‘현실’은 가족만이 아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존하는 것 또한 그가 원하는 현실이다. 그래서 탤런트 최재원의 삶을 이루는 또 다른 한 축은 봉사활동이다.


그는 교통안전 홍보대사, 범국민금연운동본부 금연홍보대사, 카톨릭조혈모세포은행 홍보대사 등 데뷔 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홍보대사로 활동해왔고, 낭독봉사, 연탄배달, 노숙자 쉼터 찬거리 배식 등 다방면으로 행동 반경을 넓혔다.





“모태신앙으로 성당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찾아 나서게 되었어요. 고향인 순천의 한 병원에서 20년 넘게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 어머니의 영향도 분명 있겠죠. 데뷔 후 KBS공채탤런트 모임 한울타리에 들어가면서 활동영역이 좀더 다양해진 것은 분명해요. 워낙 열심히들 활동하시거든요.” 한두 번은 참여할 수 있어도 자신의 의지가 있어야 지속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봉사활동일 텐데, 그는 그저 “자연스럽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대신 딸인 유빈이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라는 흔한 말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아빠처럼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그런데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아요. 아빠 봉사하실 때 같이 가서 볼 때가 많거든요. 지난 번에는 엄마랑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면서 아이들을 돕는 캠페인도 직접 해봤는데, 많이 뿌듯했어요.” 유빈이의 이야기를 듣던 중 아빠 최재원은 쑥스러운 듯 “꿈이 바뀌었어? 미식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라고 했지만, 얼굴에 번지던 미소만은 감추지 못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이어가던 중, 건강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잠시 어색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빠는 작년 여름, 건강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대사증후군’ 진단을 받았고 딸 유빈이는 체중조절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뜻대로 안 된다는 것. 특히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해 음식에 대한 지적을 많이 받는 유빈이는 나름으로 할 말이 있다.


“어렸을 때 어른들도 살이 다 키로 가니까 많이 먹으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시고, 저랑 몸무게로 라이벌이었던 친구가 점점 날씬해지고 있으니 저도 열심히 운동하고 음식도 조절할 거에요.” 행여 성조숙증이 올까 봐 딸에게 잔소리를 할 수 밖에 없다면서도 아빠는 살짝 유빈이 눈치를 본다. 여러 차례 방송을 통해 한식보다는 인스턴트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 게다가 단 것까지 즐겨먹는 그의 식습관이 공개된 탓이다.





“방송에 나간 것만큼 심각하지는 않아요. 대사증후군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위험수치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식습관만 놓고 보면 건강이 나빠져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어요. 타고난 체질 덕분에 그나마 버티는 거죠. 하지만 저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도 입맛이 바뀌는 것 같아서 요즘은 조심하고 있어요.” 그는 요즘 식습관 개선에 신경 쓰는 한편, 되도록 많이 걷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간이 날 때면 네 식구가 나란히 한강변을 걷고, 강의를 위해 학교에 갈 때면 되도록 지하철을 이용하고, 프로 골퍼인 아내와 함께 한 달에 한두 번씩 필드에 나가 5시간 이상씩 걸으면서 확실히 건강이 좋아지고 있음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양가 부모님들을 뵐 때마다 잘 먹고, 많이 걷고, 가족끼리 충분히 사랑하는 것이 건강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껴요. 앞으로 두 딸이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된 후에도 ‘잘 통하는 멋진 아빠’가 되려면 더 건강해지고 더 많이 사랑해야죠. 두 딸과 아내, 양가 부모님까지, 가족은 저의 모든 것, 그야말로 Everything이니까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흔들림 없이 지키기 위해 무한히 변신하는 가장, 자연스럽게 시작한 ‘봉사활동’이 어느새 생활의 일부가 된 공인, 자신에게 맡겨진 배역이라면 그 무엇에든 최선을 다하는 연기자. 탤런트 최재원에게 ‘트랜스포머’라는 수식을 붙이고 싶은 이유다.



글 / 최영숙 기자
사진 / 유승현(Mage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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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고 대단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답은 "그렇지 않음"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내 나이 57세다. 적지 않은 나이다. 그러나 하고자 하는 의욕과 의지는 충만하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꼭 필요하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해" 그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 한 번 해보자"고 달려들어야 한다.





내 입에서 '노'는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예스 맨'이 되라는 뜻이다. 사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힘들다. 나도 처음부터 일찍 일어난 것은 아니다. 더러 일어나기 싫은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몇 시에 자든 네 시간만 자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이제는 습관으로 굳어졌다. 뭐든지 몸에 배야 한다. 그래야만 자기 것이 된다. 그 첫 번째는 실천이다. 작심삼일은 안 된다. 실천이 곧 성공의 지름길이다.


지난 5월 31일 미인대회에 초청받아 간 적이 있다. 나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TV로만 보았던 현장을 지켜본 것. 여성을 상품화 한다고 해 반대도 만만치 않다. 여성 단체는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단다. 그럼에도 미인대회는 없어지지 않는다. 수요와 공급이 있기 때문이다. 마냥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라는 느낌도 들었다. 분명 참가자들에게는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흙수저의 변신이라고 할까.





내가 참석한 행사는 미스인터콘티넨탈 서울대회였다. 앞으로 5개 권역별로 더 대회를 치른다고 했다. 서울대회 수상자와 함께 전국서 입상한 사람들이 중국 전지훈련을 하고, 8월 23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최종 본선을 치른다. 서울대회가 스타트를 끊었던 셈이다. 서류 심사 및 1차 예선 등을 통해 17명이 본선에 올라왔다. 미인대회인만큼 미는 기본.


모두 발랄하고, 끼가 넘쳤다. 요즘 미인은 얼굴만 보지 않는 것 같았다. 팔방미인을 뽑는다고 할까. 17명 중 6명만 최종 본선에 나간다고 했다. 나머지 11명은 다음 기회를 보아야 하는 것. 내가 점찍었던 후보가 1등의 영예를 안았다. 모든 면에서 다른 후보들을 압도했다. 162cm짜리 후보도 6명 안에 들었다. 그녀의 도전이 더 아름다웠다. 그 정도 신장이면 아예 꿈조차 꿀 수 없었을 터. 그런데 도전을 했고, 그리고 수상의 영예. 이처럼 노력하면 길도 보이는 법이다.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나에게 불가능은 없다. 내 생활신조이기도 하다. 내 입에서 노가 거의 나오지 않는 이유다. 인간의 능력은 거의 무한대다. 못하는, 안되는 일이 없을 정도다. 노력하면 목표점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러려면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면 발전이 없다. 안된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초긍정주의자라는 말을 듣는 편이다. 안된다는 생각을 가져보지 않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자신감과 도전정신이다. 자신감이 없으면 지고 들어간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장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도 한 학기 내내 이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은 없다. 다시 말해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안되는 이유는 100가지도 더 댈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이유를 대는 사람이 싫다.





학기 중에는 매주 목요일 대구에 강의하러 내려간다. 새벽 4시 30분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씻은 뒤 5시 15분 집을 나선다. 서울역에서 5시 45분 출발하는 경산행 KTX를 탄다. 경산역에는 7시 52분 내린다. 학교 직원이 경산역에 기다렸다가 나를 태워 대경대까지 간다. 학교엔 8시 30분쯤 도착한다. 이번 학기 강의 제목은 글쓰기. 기자인 내 전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글쓰기만 가르치지 않는다. 지난 학기처럼 자신감과 도전정신에 대해서도 강의한다. 글쓰기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자신감이 없다. 학교를 졸업해도 취직이 안 되니 그럴 수도 있다. 자신감이 있으면 다르다. 뭐든지 도전할 수 있는 까닭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래야 어떤 벽이든지 넘을 수 있다. 처음부터 겁을 먹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겁 없이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더 도전적이어야 한다.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도전을 즐길 줄 알아야 작은 성취라도 맛본다. '도전하라, 거기에 길이 있다'. 내가 자주 쓰는 슬로건이다.



글 / 오풍연 파인낸셜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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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민연금 가입내역 안내서를 받았다. 내가 국민연금에 가입한 것은 1988년 1월 1일. 최초 가입자다. 지금까지 335개월을 부은 것으로 나와 있다. 만 60세까지 385개월을 납부한 뒤 받을 수 있는 연금은 1496000원(현재 가치). 150만원이 채 안되는 셈이다. 앞으로 50개월을 더 부어야 한다.


그리고 만 62세(2022년 4월) 다음 달부터 연금을 지급받는다. 향후 소득과 물가 상승에 따른 미래가치 예상연금월액은 1850000원 이었다. 연금을 받는 시점의 예상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수입은 이것이 전부인데 생활비에도 부족할 터. 수입을 보충해야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아내에게 하는 말이 있다. "내가 70까지는 현역 생활을 할 테니까 큰 걱정을 하지 말라." 물론 내 생각이다. 경제활동 나이를 70으로 잡은 것이다.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모든 여건이 맞아야 가능하다. 무엇보다 건강해야 현역을 유지할 수 있다. 새벽마다 열심히 걷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자생활도 그때까지 했으면 좋겠다. 글쓰기와 취재는 나의 천직이다. 대학 강의도 마찬가지. 영원한 현역을 꿈꾼다고 할까.


얼마 전 기사다. 뉴욕타임스가 식자재 배달사업도 한단다. 생뚱 맞은 소식 같지만 사실이다. 신문사가 유통업에 뛰어든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세계 최고의 권위지다. 왜 그럴까. 돈 되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다. 신문이 사양산업이 된지 오래다. 광고수입도 줄고, 판매수입도 형편 없다. 오히려 버티는게 신기할 정도다.


신문을 보지 않는 것은 전 세계가 비슷한 현상. 우리나라 신문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수익원을 발굴하기가 쉽지 않다. 신문사는 대기업에 비하면 하꼬방 수준. 경영이라고 할 것도 없다. 구멍가게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니 직원 대우도 대기업에 훨씬 못 미친다. 내가 1986년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신문사 월급이 일반 대기업의 2배 정도 됐다. 그래서 친구들의 부러움도 샀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역전됐다. 지금은 대기업과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신문사가 돈을 잘 벌지 못하니 대우를 잘해 줄 수 없다. 그래도 천직이려니 하고 다닌다. 오늘의 나와, 우리 가족을 있게 해준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난 솔직히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벌어놓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장 내일 죽음이 닥친다 해도 무섭지 않다. 마음을 비운 뒤로 생긴 변화다. 그러다보니 아쉬운 것도, 두려운 것도 없다. 다만 건강은 챙긴다. 죽는 날까지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행복한 삶의 첫 번째 요소도 건강이다. 아무리 돈이 많은들 몸이 아프면 소용 없다. 건강해야 돈도 쓸 수 있는 것. 몸이 성하면 무슨 일인들 못하랴.


70까지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내 목표도 70까지 현역으로 뛰는 것. 물론 내 마음대로 되진 않는다. 오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 사람 못지 않은 열정과 건강을 유지한다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나이 먹었다고 뒤로 물러서면 안 된다. 그럼 뒷방 노인네 취급을 받는다. 나이 들수록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몇 달 전의 일이다. 뜻밖의 비보를 들었다. 파이낸셜뉴스에서 모셨던 김성호 전 주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 원래 TBC, 중앙일보 출신. 중앙일보에서 정년퇴직한 뒤 문화일보를 거쳐 파이낸셜뉴스에 오셨었다. 영원한 현역으로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 기자생활만 50년 가까이 하셨다.


우리 논설위원들이 돌아가시기 두 달 전쯤 광화문에 나가 저녁을 함께 했었다. 당시도 굉장히 건강해 보이셨다. 적어도 백수를 누리리라 생각했다. 아들은 없고, 딸만 셋을 두셨다. 가정도 다복했다. 그리고 독실한 크리스찬. 성가대 활동도 열심히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별히 편찮으신 데도 없었다.


왜 돌아가셨는지 궁금하다. 내가 어떻게 될 지는 세상 누구도 모른다.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 을지로 골뱅이 골목에서 만난 '나눔모임' 회원들과도 같은 얘기를 했다. 인생 80이라도 해도 길지 않다. 금세 시간이 지나간다. 살아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늘 할 일을 뒤로 미루면 안 된다. 나의 생활신조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을 중시한다. 내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최선을 다하면 내일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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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로(季路)가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감히 죽음을 묻습니다.” 공자가 답했다. “아직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未知生 焉知死).”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죽음에 ‘훈수’를 뒀다. “사람이 죽음을 지나치게 공포스러워하는 건 삶이 바르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누구나 마주하기 두려운 죽음은 하루하루 삶으로 다가온다. 그건 순리, 만물의 이치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난다. 순리는 마음으로 오롯이 받는 게 지혜다. 순리에 맞서는 자는 발걸음이 무겁다. 가벼워야 멀리 걷는다. 가벼워야 지치지 않는다. 그것 또한 세상의 이치다.




불경은 일종의 철학이다. 단순히 왕생극락(往生極樂)의 종교적 내세관을 넘어선다. 윤회(輪廻)·색(色)·공(空)·연기(緣起)는 생(生)과 사(死), 만남과 이별의 이치를 담는다. 불교에서 시작과 끝은 대척점이 아니다. 그건 하나의 커다란 고리다. 만물은 흐른다. 어느 형상, 어느 본질도 제자리에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인간이 집착하는 색(色)은 결국 모두 공(空)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우주는 공으로만 가득하진 않다. 공은 다시 색으로 형상을 바꾼다. 공과 색은 둘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둘이다. 인간은 부모를 보내고, 자식을 맞는다. 나는 부모의 자식, 자식의 부모다. 만물은 돌고돈다. 대지는 공평하다. 장자(莊子)는 “천도(天道)는 넘침에서 덜어내 부족한 곳을 채운다”고 했다.





불교의 사성제(四聖諦)는 윤회의 고리다. 세상은 고(苦)다.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집(集)은 고(苦)의 뿌리, 색(色)은 잠시 곁에 머무는 형상이다. 돈·명예·권력·인기는 잠깐 유(留)하는 객(客)이다. 오는 객은 반갑게 맞고, 때가 되면 아쉬워도 떠나보내는 게 예(禮)다. 집착을 떨치면 고통도 멸(滅)한다. 큰 깨달음, 즉 도(道)를 걸으면 고통은 가벼워진다. 불교는 도에 이르는 수양법으로  팔정도(八正道)를 제시한다. 석가는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하고(正思惟),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하고(正業), 바르게 천명을 다하고(正命), 바르게 노력하고(正精進), 바른 신념을 갖고(正念), 바르게 마음을 다스리면(正定) 도에 이른다고 했다. 도는 결국 ‘바르게 걷는 길’이다. 고(苦)의 진리→집(集)의 진리→멸(滅)의 진리→도(道)의 진리는 커다란 고리다. 시작과 끝이 맞닿은 윤회다.



 
흐르는 건 강물만이 아니다. 시간도 흐르고, 생각도 흐른다. 흐름을 ‘허무’로 받아들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순리에 마음을 실어 세상을 가볍게 걷고자 함이다. 이마의 주름을 보고 마음에 주름을 만들기보다 더 큰 덕을 베풀 경륜의 지혜를 찾고자 함이다. 인도의 승려 나가르주나는 “욕망은 괴로움의 근본이며 모든 재앙의 뿌리다. 덕이 상처를 입고 몸이 위태로워지는 것은 모두 여기에서 생긴다”고 했다. 포용은 커지고, 아집은 작아지는 게 진짜 연륜이다. 과거에 발목 잡혀 앞길을 제대로 내딛지 못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나이 들었다고 한숨짓는 건 연륜이 세월을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만물은 변하고, 삶은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은 살아갈 날 중 가장 젊은 순간이다. 살아온 날의 후회가 살아갈 날의 꿈을 덮게 하지 말자. 지난 일을 되돌이킬 순 없어도 이 순간 새로 시작해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수는 있다. 그 일이 얼마나 크고 높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바로 서는 일, 넓게 보는 일, 답게 사는 일, 건강한 습관을 들이는 일, 지식을 채우는 일, 관용을 키우는 일…. 둘러보면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은’ 일들이 여기저기서 나를 봐달라고 손짓한다. 퇴계 이황은 죽는 날 아침에도 “매화에 물을 주라”고 했다. 그는 죽음에 초연했고, 삶도 초연했다.




두려움은 짙은 안개다. 시야를 가리고, 길을 잃게 한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적이 된다”고 했다. 삶은 희망과 절망, 두려움과 믿음의 싸움이다. 게리 켈러, 제이 파파산의 ≪원씽≫(The One Thing)에는 두려움과 믿음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어느 저녁, 한 체로키 인디언 장로가 손자에게 사람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다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말했다. “아이야, 그 싸움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두 마리 늑대 사이에서 벌어진단다. 하나는 두려움이지. 놈은 불안과 걱정, 불확실성, 머뭇거림, 주저함, 그리고 무대책을 가지고 다니지. 다른 늑대는 믿음이지. 그 늑대는 차분함과 확신, 자신감, 열정, 단호함, 행동을 데리고 다닌단다.”
그 말을 듣던 손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럼 둘 중 어느 늑대가 이겨요?”
할아버지가 답했다.


“그거야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기지.”


순리는 마음으로 받아라. 지는 게 두려워 피지 않는 꽃은 없다. 두려움보다는 희망에 먹이를 줘라. 세상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언젠가 떠나야 할 삶의 무대다. 무대는 수시로 주연이 바뀐다. 그래서 새롭고, 그래서 설렌다. 인생이 무대에 비유되는 건 아마 그런 이유에서 일 듯싶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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