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도 여전히 몸가짐이 흐트러지지 않는 랍비의 인품에 감동을 받은 간수장이 물었다. “랍비님,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아담아, 너는 지금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셨다는데 그걸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랍비가 답했다.


“하느님은 사람 하나하나에게 ‘너는 지금 어디 있느냐, 네게 주어진 삶의 몇 해 몇 날을 보냈는데, 그래 너는 지금 네 삶의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독일 사상가 마르틴 부버의 <하시딤의 가르침에 따른 인간의 길>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어도 특별한 변화는 없지만, 우리는 새해를 맞으면 새 소망을 품는다. 이전의 소망이 더 커지기를 바라고, 새로운 꿈이 싹트기를 원한다. 2019년에도 작은 소망들을 품어보자. 그리고 그 소망들이 꽃을 피우도록 마음을 쏟아보자.


가볍게 먹고

많이 걷자


과잉의 시대다. 인맥이 과해 내 시간이 없어지고, 음식이 과해 몸이 무거워진다. 물질이 과해 영혼이 흐려지고, 욕심이 과해 마음이 늘 가난하다. 자기 몸을 건강히 관리하는 것은 행복한 삶의 출발이자 끝이다. 자존도, 행복도, 사람과의 관계도 건강이 그 바탕이다. 결국 세상에 몸을 해쳐가면서 이뤄야할 것은 없다. 



새해에는 좀 가볍게 먹어보자. 굶주린 시대는 옛말이고, 이제는 과잉섭취가 만병의 근원인 시대다. 비만, 당뇨, 고혈압, 심장병, 순환 장애, 각종 암도 전부는 아니어도 과잉섭취가 상당한 원인이다. 좋은 음식을 적당히 먹는 게 요령이다.


나쁜 음식을 과하게 먹는 건 최악이다. 아침은 부드럽게, 점심은 충분히, 저녁은 가볍게 먹는 습관을 들이자. 지불한 돈이 아까워 배불러도 음식을 싹 비우는 습관은 버리자.



많이 걷자. 최고의 운동은 걷기다. 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효과는 만점이다. 걷기는 정신 건강에도 더없는 보약이다. 걷기로 육체가 건강해지고, 걸으면서 마음에 담는 생각으로 영혼이 맑아진다. 막연히 걷겠다고 생각만 하지 말고 하루 일정 거리를 정하든, 걸음 수를 정하든 수치로 구체화시켜서 실천해보자.


작은 꿈

하나를 심어보자


이마의 주름은 나이로 깊어간다. 삶에서 나이 한 살을 떨궈내면 육체도 한 살 늙어간다. 육체의 노화는 자연의 순리니 나름 순응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용기를 내고, 이 둘을 현명하게 구별하는 게 바로 지혜다.



영혼의 나이는 육체의 나이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꿈을 꾸는 영혼은 언제나 파릇한 새싹이다. 세상에 노년의 청춘, 청춘의 노년이 섞여 있는 이유다.


새해에는 작은 꿈들을 심어보자. 태산을 오르고, 태평양을 건너는 거창한 꿈 말고 스스로의 삶을 조금 낫게 변화시키는 작은 소망들을 담아보자.



스마트폰을 덜 들여다보는 대신 책을 읽는 습관, 신문을 들춰보는 습관, 미뤄둔 어떤 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해보는 습관, 입에 험담보다 덕담을 담는 습관, 가끔씩 나를 들여다보는 습관 등등 어제보다, 지난해보다 조금 나은 나를 만들어보자.


참으로 귀중한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고 2019년 끝자락의 어느 날 ‘한해가 참 덧없다’고 읊조리지 말자. 귀한 삶, 귀한 해, 귀한 하루를 귀히 여기자.


타인의 존중하고

스스로 귀해지자


스스로가 귀해지는 한해가 되자. 내가 나를 높이려 애쓰기보다 남이 나를 높여주는 한해가 되자. 다름을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품자. 우겨서 이기려는 소인이 되기보다 품어서 이해하는 대인이 되자.


톨스토이는 “혀끝까지 나온 나쁜 말을 뱉지 않고 삼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음료”라고 했다. 혀를 독으로 쓰지 말고 약으로 쓰자. 돌고 도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내게서 나간 향기는 결국 나에게도 향기가 되고, 내가 뱉은 독은 결국 몇 바퀴 돌아 내게 독으로 돌아온다. 입은 닫고 귀를 더 열자. 경청은 최고의 공감이다.



타인을 존중하자.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타인에 대한 존경이다. 주위를 한 번 둘러봐라. 남을 비하하는 자가 스스로를 귀히 여기는가. 타인을 존중해 스스로 귀해지자.


모두가 귀한 존재로 태어났으니, 남도 자신도 귀히 여기자. 대접하고 대접받는 한 해가 되자. 날로, 달로, 해마다 새로워지자. 어제보다 조금은 나은 오늘을 만들자. 지난해보다는 오는 해를 더 아름답게 만들자.


노랫말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세상에 오늘, 이 순간만큼 큰 의미는 없다. 미루지 말고 실천하자. 그게 뭐든 스스로를 조금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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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루시드 드림’은 한국영화 최초로 자각몽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루시드 드림(lucid dreaming)이란 수면 중에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현상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자각몽이라고 부른다. 영화는 주인공이 자각몽을 통해 납치된 아들을 되찾는 내용을 그린다.



<이미지 출처: NAVER영화 '루시드 드림' 스틸컷>



대호(고수)는 대기업 비리 고발 전문기자다. 그래서 사방에 적이 많다. 어느 날 놀이공원에 놀러갔다가 아들을 유괴 당한다. 대호는 계획적인 범행임을 직감한다. 하지만 3년이란 시간이 흐르고도 단서조차 찾지 못한다. 그러다 우연히 루시드 드림을 통해 범인을 잡았다는 인터넷 글을 접한다. 대호는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인 소현(강혜정)에게 루시드 드림을 부탁한다.


꿈속에서 유괴 당시 모습을 들여다본 대호는 오른팔에 문신을 한 남자, 사진을 찍던 수상한 남자, 그리고 꿈을 꿀 때마다 등장하는 의문의 인물에 주목한다. 꿈속에서 얻은 단서로 아들의 유괴 사건을 맡은 베테랑 형사 방섭(설경구)과 함께 범인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손에 잡힐 듯 빠져나가는 범인으로 인해 아들 찾기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이미지 출처: NAVER영화 '루시드 드림' 스틸컷>



자각몽을 소재로 한 영화는 2010년 개봉한 ‘인셉션’이 대표적이다. 인셉션은 자각몽의 수준을 넘어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거나 꿈속에서 다시 꿈을 꾸는 방식으로 차원의 경계를 허물었다. 영화 ‘루시드 드림’에서도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거나 여러 명이 함께 꿈을 꾸는 집단몽이 펼쳐진다. 차이가 있다면 다른 사람의 꿈속에서 또 다른 자신을 만난다는 새로운 접근이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한 부성애도 진하게 펼쳐진다. 영화 ‘루시드 드림’을 통해 다시금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자각몽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는 보통 수면 중 꿈을 꿀 때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또한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저 관찰하거나 경험할 뿐 자신의 의지대로 바꿀 수 없다. 게다가 잠에서 깨면 꿈속 내용을 대부분 잊어버린다.


자각몽은 정반대다. 꿈을 꾸는 중에 갑자기 이것이 현실이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깨어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대로 물건을 이동시키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또한 잠에서 깬 후에도 꿈의 내용을 모두 기억한다. 만약 이 세 가지를 모두 겪었다면 자각몽을 경험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거짓 각성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거짓 각성은 자각몽처럼 생생한 꿈을 꾸지만 그것을 꿈이 아닌 현실로 착각한다는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3년부터 자각몽 열풍이 일었다. 자각몽 경험담이나 방법을 공유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가 유행하는가 하면, 자각몽을 돕는 휴대폰 애플리케이션도 다수 이용되고 있다.




루시드 드림이란 용어는 네덜란드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였던 프레데릭 반 에덴이 1913년 펴낸 ‘꿈의 연구’라는 책에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1970년 미국의 심리학자 키스 히언과 앨런 워슬리의 실험으로 다시금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의 생리학자인 스티븐 라버지에 의해 본격적으로 연구가 진행됐다. 그는 자각몽과 관련해 여러 권의 책을 펴냈으며, 1987년에는 루시드 드림 연구소(Lucidity Institute)를 설립해 현재까지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자각몽의 가장 큰 특징은 현실에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꿈속에서 자기 의지대로 시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티븐 라버지는 이런 특징 때문에 자각몽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억눌린 자아를 되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정신과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등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데 자각몽을 제한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자각몽은 꿈을 꾸는 도중에 이것이 꿈임을 자각하는 ‘딜드’(DILD, dream-initiated lucid dream)와 깨어있는 상태에서 자기 의지로 자각몽을 꾸는 ‘와일드’(WILD, wake-initiated lucid dream)로 나뉜다.


이와 함께 RC(Reality Check)라는 개념도 있다. 간단한 행동으로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방법을 말한다. 딜드에선 꿈을 꾸는 도중 자각몽으로 진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와일드에선 영화 ‘인셉션’의 팽이처럼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자각몽을 꾸는 사람들의 경우 꿈속인 줄 알고 현실에서 과격한 행동을 하다가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RC 습관을 갖는 경우가 많다.





자각몽의 가장 큰 장점은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마치 현실에서처럼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만들거나 경험해볼 수 있기 때문에 예술적 영감을 얻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자각몽은 몸은 잠들어 있지만 뇌는 깨어있는 상태다. 지나치게 반복하면 뇌가 휴식을 취하지 못해 피로가 누적될 수 있다. 또한 자각몽에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오히려 정서불안에 빠질 위험도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글 / 권지희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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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날씨만큼 변덕스런 것도 없다. 갠 듯 하면 흐리고, 흐린 듯 하면 어느새 햇볕이 든다. 청명한 하늘에서 뜬굼없이 소나기도 쏟아진다. 그러니 아무리 우산을 챙겨도 이따금 옷이 젖는 게 삶이다. 하지만 삶이란 날씨도 자연의 이치를 크게 벗어나진 못한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여름의 끝 자락엔 가을이 매달린다. 가끔은 심술도 부리지만, 그건 어린 아이의 어리광쯤이다. 삶의 날씨는 자연의 계절만큼이나 우주의 많은 이치를 담는다. 차가움이 가시면 따스함이 오고, 먹구름이 걷히면 햇볕이 든다. 

 

 

색깔도 형상도 다양한 삶

 

삶은 색깔도, 모양새도 형상이 너무 다양하다.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음은 얼굴이 서로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나의 잣대로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스스로 큰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이다. ‘삶이란 00다’라고 단정짓는 것 또한 성급함의 오류다. 무지개가 고운 것은 빨·주·노·초·파·남·보가 조화로움을 만들기 때문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무지개처럼 고운 빛을 내는 것들이 참으로 많다.

 

꿈. 삶은 꿈을 품어야 한다. 눈뜨고 꾸는 꿈이 삶을 바꾼다. 꿈은 가고자 하는 방향이자, 쏟고자 하는 에너지다. 삶의 곳곳에 깃발을 꽂는 것이다. 내비게이션에 나를 맡기지 않고 스스로 좌표를 찍고, 스스로 그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꿈은 삶의 방황에 찍는 마침표다. 세상은 꿈꾸는 자에게 무심하지 않고, 운명은 꿈꾸는 자를 비켜가지 않는다. 꿈의 색깔은 무궁하다. 그러니 청년도, 중년도, 노년도 꿔볼만한 꿈은 도처에 널려있다.

 

 

땀을 흘려야 빛나는 삶

 

땀. 삶은 땀을 흘려야 가치가 빛난다. 거저 얻은 것만큼 쉽게 흘러가는 것도 없다. 거액의 로또 당첨으로 행복해진 삶은 그리 흔치 않다. 땀에 녹아난 감사가 오래가고 고귀하다. 땀을 아끼는 사람에게 세상은 그 문을 활짝 열어주지 않는다. 머리는 꿈을 꾸고, 몸에선 땀이 흘러야 한다. 땀을 흘리는 사람이 건강하다. 뛰든 걷든 몸을 움직여야 한다. 땀 흘리는 습관이 바로 건강의 습관이다. 

 

격(格). 격은 외면과 내면의 키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허세로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고, 말과 행동의 간극이 좁은 것이다. 격은 ‘다운’ 것이다. 부모는 부모답고, 스승은 스승답고, 정치인은 정치인 다운 것이다. 답다는 것은 과시하지 않고, 자신의 책무에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높이지 않고, 이익에 지나치게 비굴해지지 않는 것이다. 낮다고 무시하지 않고 없다고 깔보지 않는 것, 그게 바로 격이다.

 

 

끈을 이어주는 건 '역지사지'

 

끈. 삶은 관계다. 관계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다. 끈은 선이다. 점으로 홀로서지 않고, 이어짐으로 세상을 그리는 것이다. 끈을 이어 주는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칭찬으로 춤이 춰지면 남을 먼저 칭찬하고, 인정받기에 목이 마르면 남을 먼저 인정하라. 그대의 삶에 박수쳐주는 자가 없는가. 그럼 세상을 탓하기 앞서 그대가 마음을 다해 타인에게 쳐준 박수소리를 스스로 들어보라. 그 소리가 작다면 역지사지의 의미를 다시 꼽씹어 봐야 한다. 

 

정(情). 삶엔 온기가 배어있는게 좋다. 슬며시 몸을 기대고, 마음을 나누고 싶어지는 그런 포근한 사람 말이다. 때로는 차가운 이성보다 따스한 감성이 삶에 해답을 준다. 미국 시인 아치볼드 머클리시는 이성의 언어는 죽음이든, 운명이든 그 무엇에도 해답을 주지 못한다고 했다. 성경 속 ‘돌아온 탕아’처럼 세상엔 훈계보다 끌어안음으로 삶의 방향을 바꾼 일화가 훨씬 많다. 정이 따받치면 인생 고난의 무게는 훨씬 가벼워진다. 

 

삶. 참으로 정의가 난해한 단어다. 삶의 판세를 바꿀 ‘신의 한수’는 영화 속 얘기다. 삶이란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그 모습이 어떻든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 것 또한 살아있는 자의 길이다. 삶은 주인공은 나다. 그러니 그 빛깔도 내가 내는 것이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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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쉬움의 연속이다. 삶은 항상 뭔가 부족하다. 누구는 돈에 결핍을 느끼고, 누구는 명예에, 누구는 권력에, 누구는 지식에 허기를 느낀다. 떡은 남의 것이 커보이고, 고기는 놓친 놈이 커보이는 법이다. 그러니 삶은 채움의 충만감보다 부족의 결핍감이 더 큰 공간을 차지한다. 물론 생각을 좀 돌려보면 그 ‘아쉬움’이란 갈증이 물질과 정신을 키운 촉매인지도 모른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

 

비교하지 않고 산다는 건 말만큼 쉽지 않다. 삶은 수시로 저울질을 한다. 그 저울은 때로는 머리이고, 때로는 마음이다. 1억은 분명 1000만원의 열배다. 하지만 마음이란 저울은 그 열배를 백배 천배로 부풀리고, 때로는 팽팽한 무게로도 맞춘다. 결국 마음이란 저울의 사용법이 삶의 모습을 결정한다. 흔히 ‘부러우면 진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스스로를 패자(敗者)라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남의 것을 지나치게 부러워한다는 반증이다. 부러움보다는 당당함이 삶에 에너지를 주고, 비관보다는 낙관이 성공으로 끄는 힘이 강하다. 그러니 세상은 당당한 자가 이끌고, 낙관적인 사람이 세상을 주도한다.       

 

≪한서≫ 동중서전에는 ‘이빨을 준 자에게는 뿔을 주지 않는다(豫之齒者, 去其角)’는 말이 나온다. 날개를 단 새는 두 발만 있듯 하늘은 두 가지를 다 주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날개와 네 다리를 포기한 대신 머리를 얻은 셈이다. 누구에게나 값진 달란트는 있다. 하지만 남의 것이 너무 커보이면 자신의 달란트가 보이지 않는다. 남의 삶이 부럽고, 나의 삶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부러운 삶은 지는 삶이다.

 

 

누구도 완벽하진 못하다

 

얼굴이 다르듯 재능도, 생각도 다르다. 남과 비교만 한다면 평생 나의 삶이 아닌, 남의 삶을 살다 가는 셈이다. 원숭이를 헤엄치는 실력으로 평가하고, 물고기를 나무타는 재능으로 저울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신을 아는 것은 겸손에의 굴종이 아니라 스스로의

귀중함을 아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자존을 세우는 일이다. 세상에 당당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사는 삶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고개를 숙이면 땅밖에 보이지 않지만 고개를 들면 창대한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곳에 꿈이 있고, 그 곳에 도전이 있다. 삶은 꿈꾸는 것이고, 도전하는 것이다. 꿈꾸고 도전하는 삶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건강하다.

 

공자는 ‘한 사람에게서 완전하기를 구하지 말라(無求備於一人)’고 했다. 공자 말씀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삶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누구나 뻥뚫린 공간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그게 삶이고, 인생이다. 에디슨, 베토벤, 셰익스피어, 알렉산더대왕, 존 밀턴, 헤밍웨이, 헬렌 켈러…. 대다수 역사 속 인물들도 뚫린 구멍이 컸다. 누구는 세상을 보지 못했고, 누구는 세상을 듣지 못했고, 누구는 지독한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세상, 들리는 않는 세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콤플렉스에 무릎꿇지 않고 ‘자신의 삶으로 세상에 승부를 걸었다. 세상의 박수는 그 당당함에 보내는 찬사다.

 

 

당당한 삶이 아름답다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하늘이 내게 재능을 주었으니 반드시 쓰일 곳이 있으리라’고 노래했고, 스티브 잡스는 ‘당신이 한 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당당히 받아들이라’고 외쳤다. 옳은 얘기다. 명심보감의 말처럼 스스로를 믿는 사람은 남 또한 믿어주는 법이다. 강에서 물고기를 탐하는 것보다 집에서 그물을 짜는 것이 현명하고, 들에서 이웃의 곡식을 탐하는 것보다 집에서 씨앗을 준비하는 것이 지혜롭다. 탓하기보다는 자신을 키우고, 부러워하기보다는 스스로 당당히 서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기가 꺾이면 세상도 나를 우습게 본다. 회피하는 삶은 언제나 도망만 친다. 세상에는 타고난 천재가 있고, 타고난 갑부도 있다. 몇 안되는 그런 사람들은 대범하게 세상의 예외쯤으로 받아주자. 그리고 내게 주어진 달란트로, 당당히 고개를 들고 세상을 살아가자.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한숨 짓고, 넋두리만 늘어놓기에는 살아갈 날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다. 누가 뭐래도 당당한 삶이 아름답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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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차이는 영원한 화두다. 소크라테스도, 공자도 젊은이의 버릇없음을 한탄했다. 반면 젊은이에게 기성세대는 언제나 구닥다리다. 세대차이는 앞으로 더 벌어질 것이다. 자고나면 달라지는 IT(정보기술)가 세상을 무서운 속도로 바꿔놓는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면 세대 간 격차는 더 벌어지는 법이다.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이 아주 이기적이라고 꼬집는다. 물론 이건 기성세대의 ‘전통적 편견’일 수 있다. 젊은이가 노년을 구닥다리로 여기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다니는 신문사에 2년차 직원이 있다. 한참 후배지만 아주 성실하고, 부지런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든 일에 ‘할 일 그 이상’을 한다. 회사를 아끼는 마음도 거의 ‘임원급’이다. 그는 ‘젊은층=나태’이라는 기성세대의 편견을 깬다.

 

 

 

 베푸는 사람이 행복하다

 

얼마전, 그가 뭔가에 크게 감동을 받은 모양새다. 나이 들면 궁금증을 못 참는 법. 이유를 물었더니, 종이 한장을 살짝 건내준다. 그가 몇 년째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하고 있는, 한 보스니아 꼬마가 보내온 감사편지다. 아직 7살이니 편지 내용이야 별다를 게 있겠는가. ‘너무 고맙고,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고, 나에게 도움을 주는 분이 누군지 정말 궁금하고, 그곳의 날씨가 어떤지도 알고 싶고….’ 순간 코끝이 찡하다. 수시로 고상한척 고개를 드는 속물근성이 그 순간 움찔한다. 

 

꼬마의 감사편지에 ‘희망’이라는 두 글자가 겹쳐온다. 낯선 땅, 척박한 삶의 꼬마 가슴에 심어준 한알의 희망, 나 또한 이기적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젊은세대가 툭 던져준 또 하나의 희망….그런 희망이 내 마음에 따스히 전해진다. 감사란 것이 묘하다. 나의 따스한 마음을 상대가 감사히 받아주면  그 마음에 내가 다시 감사한다. 그게 바로 베품과 감사의 힘이다. 7살 짜리 소년의 감사가 후배에겐 큰 감동이 된 것이다. 그러니 살면서 남에게 베푸는 것은 스스로 감사함을 키우는 것이다. 베푸는 사람이 행복한 이유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세상엔 희망의 찬가가 넘친다. 키케로는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고 했다. 말을 바꾸면 희망이 없으면 진정한 의미의 삶도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토머스 풀러는 ‘큰 희망이 큰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젊음이여 야망을 품어라’(Boys, Be Ambitious!)를 뒷받침하는 명언이다. 리처드 브리크너는 ‘희망은 절대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 당신이 희망을 버릴 뿐’이라고 했다. 셰익스피어는 ‘궁핍한 사람에게 필요한 약은 오직 희망이며 부유한 사람에게 필요한 약은 오직 근면’이라고 했다. 힐링의 시대에 물(?) 만난 멘토들 역시 ‘다 놓쳐도 희망만은 잡고 있으라’고 목청을 높인다.

 

희망은 삶의 좌표이자 에너지다. 희망은 태양 같은 것이다. 때때로 먹구름이 얼굴을 가리고 비가 심술을 부려도 굴하지 않고 세상을 비추고, 세상에 에너지를 준다. 태양이 우주존재의 근원인 이유다. 희망이란 것이 때로는 태산만큼 크고, 때로는 먼지만큼이나 작다. 습기 한점 없는 바위 위에 덜렁 던져진 씨앗에겐 물방울 하나, 흙부스러기 몇 점이 희망이다. 세상은 큰 꿈을 꾸라고 외친다. 하지만 삶이란 게 그리 녹록지 않다. 태산만한 희망도 척박한 현실 앞에 서면 몸집이 한없이 작아진다.

 

 

 

 종이는 접어도 꿈은 접지마라

 

그래도 삶은 꿈을 꿔야하고, 희망을 품어야 한다. 그 사이즈가 얼마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각자의 삶에 맞으면, 그게 바로 ‘제격’이다. 부처는 ‘인간은 천인(天人)을 부러워하지만 천인은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열망한다’고 했다. 인간은 신들도 질투할 만큼 대단한 존재다. 당신이란 가치도 항상 당신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다. 삶은 수시로 삐걱댄다. 좌절이 인생의 발목을 잡아댕기고, 실패가 삶을 벼랑으로도 몰아간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인생의 몇 챕터는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꿈도, 희망도 인생처럼 나이를 먹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덩치가 작아진다. 세상을 더 살아본 사람들이 젊은 시절에 큰 꿈을 꾸라고 충고하는 이유다. 그건 어쩌면 삶의 순리다. 하지만 나이에 비해 꿈이 훨씬 겉늙어버리는 건 곤란하다. 그러니 가끔 꿈과 희망의 주름살을 체크해봐야 한다. 필요하면 보톡스 두어방 쯤 못 놓아줄 이유도 없다. 원래 희망은 씨앗만 뿌린다고 자라지 않는다. 물도 주고, 영양분도 공급해야 한다. 무엇보다 실천이라는 액션이 중요하다. 실천이 희망의 덩치를 더 키운다. 살면서 종이는 접어도 꿈은 접지 말아야 한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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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잠자는 동안에 마치 깨어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현상입니다.

 

리는 생생한 꿈을 꾸기도 하고, 때로는 꿈 없는 잠을 자기도 합니다. 하지만 ‘꿈꾸지 않고 잘 잤다’고 할 때도 실은 꿈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겠지요.

 

이처럼 한여름의 짧은 밤에 꿈으로 인해 잠을 설치기도 하고 숙면을 취하기도 하는데, 꿈과 잠은 다음날 컨디션에 영향을 주어 힘든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꿈과 건강관리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어느 날 장자가 근심 없는 나비가 되어 즐겁게 날아다니는 꿈을 꿨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장자가 자신이 나비가 된 꿈을 꿨는지 나비가 장자가 된 꿈을 이제 꾸기 시작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는 장자의 호접몽처럼, 

 

 

 

 

꿈을 소재로 한 영화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인셉션에서도 꿈과 현실의 구분이 어려워집니다.

 

꿈속에서는 모든 상상이 실현되고 마음 속 생각을 체험할 수 있기에 상상하는 세계가 꿈으로 구현되도록 만드는 팀이 있고, 그걸 이용해 누군가 말을 하면 의식에 반영되어 꿈으로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꿈속의 대화는 서로의 경험과 의식에 영향을 주게 되고 그를 통해 인간의 생각과 꿈이 확장될 수 있기에, 인셉션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인간 속에 잠재된 생각과 꿈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꿈을 통해 현몽을 보기도 하고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불길하고 불쾌한 꿈들이 현실의 행운을 예지하는 꿈으로 해석되기도 하지요. 현실과 반대되는 꿈의 세계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반대로 꿈에 영향을 주는 현실의 환경과 생각에 변화를 줌으로써 행복하고 즐거운 꿈을 꾸는 지혜도 중요해 집니다. 

 

 

  꿈에 영향을 주는 것 

 

 

 

 

여름이면 특수를 누리는 공포영화는 음침한 분위기에 끔찍하고 소름 돋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영상의 잔상들이 꿈속까지도 연관되는 경우가 많아 영화를 보고나서 악몽을 꾸거나 가위에 눌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평소 몸과 마음이 특히 연약한 분들은 밝고 즐거운 내용의 영화를 보는 것이 건강한 수면과 활기찬 컨디션 유지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소음과 괴음은 깊은 잠을 방해하고 불안함을 주어, 무언가에 쫓기거나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이처럼 ‘소리’가 꿈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요즘 여러 경로에서 바닷가 파도소리, 산속의 소리 등 편안한 자연의 소리를 녹음한 자료를 찾아 숙면에 활용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들이 아침부터 얼굴이 어둡고 다크서클이 있는 경우, 전날 밤늦게까지 컴퓨터 게임이나 음란동영상을 접하느라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때로 몽정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잠들기 전 보았던 선정적인 장면들의 영향으로 꿈속에서까지 성적충동이 일고, 이는 다시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어 불건전한 사고로 이성적인 생각을 망각하여, 성장 후에도 성범죄에 노출되기까지 합니다. 따라서 부모님과 교사님들은 학생과의 충분한 대화와 상담을 통하여 바른 성교육이 필요합니다.

 

 

 

 

아름답고 편안한 꿈을 꾸도록 도와주는 드림워커(타인의 꿈을 드나들 수 있는 자)는 과연 존재할까요? 아직 과학적으로 확인된 근거는 없습니다.

 

엄마 옆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웃음을 띠며 자고 있는 아이는, 아마도 엄마와 함께 있는 꿈을 꾸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때 아이는 꿈속에서까지 엄마의 젖을 먹고 있는지, 아이의 잠든 모습을 보면 자신의 손가락이나 공갈 젖꼭지를 행복한 미소로 빨고 있습니다.

 

인이나 신혼부부사이에서도, 꿈속에서마저 행복한 만남이 이뤄지는 것은 서로 애틋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여름 밤의 짧지만 행복한 꿈은 무더위에 지치고 힘든 와중에도 현실을 더욱 활기차고 즐겁게 해주는 활력소가 되어줄 것입니다. 건강한 꿈을 꾸고, 꿈으로부터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받기 위해서는 평소의 긍정적인 마음과 건강한 생활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결국 여름철 꿈과 건강관리는 모두 건강한 마음가짐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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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동굴 속에 손발이 묶인 채 벽만을 쳐다보는 사람들. 그들은 동굴 벽에 비친 어른거리는 자신들의 그림자가

         세상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한번도 동굴 밖 세상을 본적이 없기에 허상인 그림자를 실상인 본 모습으로 착각한다.

         누군가 과감히 쇠사슬을 끊고 동굴 밖으로 나간다. 강렬한 태양에 눈을 뜰 수 없지만 점차 그의 눈에 본질의 세계가

         들어온다….

 

 

         

         

 

 

 

 

글로벌로 무대를 넓혀라

 

플라톤의 동굴 비유는 ‘관념의 감옥’에 갇힌 현대인에게 일침을 가한다. 본질과 소통하지 못하는 폐쇄된 공간을 벗어나 광활한 세상이 보이는 탁트인 광장으로 나오라는 메시지다. 뒷산에 오르면 동네가 보이지만 태산에 오르면 세상이 보인다는 말과 맥이 통한다. 무대는 영향력이 미치는 공간이다. 한국의 축구선수들이 국내에서만 뛰던 시절, 그들의 무대는 한국이었다. 하지만 유럽으로, 중동으로 무대를 넓히면서 그들의 그라운드는 전 세계로 확대됐다. 국제무대에서 한국 축구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물론 개인의 기량이 좋아지고 ‘축구 한국’의 이미지도 업그레이드됐다.

 

21세기의 화두는 글로벌이다. 글로벌은 한마디로 활동무대가 전 세계로 넓어진다는 의미다. 하루가 다르게 국제 간 교역속도가 빨라지고 통상범위는 무한히 확장된다. ‘글로벌’은 개인에게든 국가에든 기회이자 도전이다. 개인은 글로벌 무대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국가는 글로벌 시장으로 ‘부(富)의 원천’을 확대한다. 글로벌 무대를 외면하고 로컬 무대에 안주하는 국가는 국제경쟁에서 낙오하기 십상이다.

 

 

 

국제기구 '빅3중' 2곳 수장에

 

지난해 재미(在美) 한국인 김용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이 세계은행 총재에 오른 것은 한국인의 글로벌 활동무대가 급속히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는 한인 1.5세대(한국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이민 온 세대)로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이 총재가 된 것은 세계은행 67년 역사상 처음이다. 앞서 2003년엔 이종욱 박사가 세계보건기구(WHO) 제6대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국제사회에서 활약이 두드러진 것은 한인 1.5세대뿐만이 아니다. 학자, 운동선수, 연예인 등 지구촌에서 ‘코리안’의 성가를 높이는 한국인들은 무수히 많다. 무엇보다 개인의 피땀어린 노력의 결과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도 든든한 원군이다.

 

2006년 초 당시 반기문 외교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만 해도 세계인들은 그저 무모한 도전쯤으로 여겼다.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대한민국이 아시아를 대표하기엔 영토의 크기나 국력에서 게임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그해 10월 지구촌은 한국인의 저력에 깜짝 놀랐다. 한국이 유엔에 가입한 지 불과 15년 만에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된 것이다. 이로써 세계 국제기구 ‘빅3’(유엔, 세계은행, IMF) 중 두 곳을 한국인이 차지하게 됐다. 유엔은 글로벌 정치지형을 좌지우지하는 실질적이면서도 상징적인 기구다. IMF는 경제위기 국가들에 구세주이자 때론 저승사자 같은 존재다.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에 경제개발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자금을 장기 저리로 제공하는 것이 주업무다.

 

 

 

글로벌 지식+열정의 합작품

 

한국인이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열정과 글로벌지식이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인의 활약은 국제기구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지식을 전파하는 학자, 병원에서 의술을 펼치는 의사, 정치인, 예술인, 운동선수 등 분야도 다양하다. 특히 부모님을 따라 어릴 적에 미국으로 이민 온 한인 1.5세대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한국인 최초로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한 성 김, 미국 벨연구소 역대 최연소 및 최초 외부인 출신 소장인 김종훈, 석지영 하버드 로스쿨 종신교수, 세계적 패션디자이너 두리 정 등은 세계에서 주목 받는 한인 1.5세대다.

 

한인 성공 스토리의 키워드는 목표의식, 열정, 다문화, 글로벌 지식 등이다. 김용 총재는 자신의 성공을 실용과 거대담론이라는 두 줄기로 설명한다. 그가 브라운대에 다닐 때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철학이나 정치학을 공부하겠다”는 그의 대답에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해도 좋지만 (의대)인턴은 끝마쳐라. 한국계로서 미국에서 살려면 기술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어머니는 “위대한 것에 도전하라”고 강조했다. 그의 글로벌 무대 성공 키워드는 실용과 이상의 조화다.

 

 

 

대한민국 브랜드도 원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도 막강한 원군이다. 김용 총장이 미국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수전 라이스 유엔주재 대사, 존 케리 미 상원의원(현 미 국무장관),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세계은행 총재에 오른 것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을 의미한다. 국제사회에서 한 국가의 위상을 좌우하는 것은 경제력이 핵심이다. 물론 정치·문화도 국가 브랜드의 주요 요소다. 국제사회에서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도 한국인의 국제무대 진출에 기회가 된다는 분석이다.

 

한국인의 국제기구 진출은 국제사회에서 ‘코리안’의 위상을 높이고 이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을 더 넓혀주는 선순환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기문 총장 등 국제무대 ‘선구자'들의 리더십이 호평을 받는 것도 한국인에게 국제문호의 무대가 넓어지는 이유다.

 

 

 

꿈꾸고 준비하고 도전하라

  

세계를 무대로 뛰는 한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제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글로벌 기업에서 꿈을 펼치려는 젊은이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인생의 커리어로도 제격이고, 보수도 후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전 세계로 꿈의 무대를 넓히려는 청소년들에게 글로벌 지식은 필수다. 이론과 실무경험의 조화로운 스펙 관리도 필요하다. 어학실력, 풍부한 경험, 전문성은 세계로 무대로 넓히려는 청년들이 갖춰야 할 3박자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과 의지다. 모든 걸 갖춰도 열정이 없으면 동굴을 뛰쳐나오려는 용기를 내지못한다.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가 언제나 명언인 이유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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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이 된 내게 요즘 새로운 꿈이 생겼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친구였던 피터 팬을 그리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지만 예쁜 꿈을 간직한 아이들을 늙지 않는 나라로 데리고 가는 동화 속 친구의 그 순수함을
  지니고 싶다.


얼마 전, 나는 그토록 그리던 피터 팬을 만나게 되었다. 내 아이가 바로 피터팬이었다. 아이를 보며 참 많은 것을 얻는다. 내가 아이에게 무한정 주고 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정장 아이로 인해 받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출처 : 애니메이션 영화 '피터팬')

 

며칠 전의 일이었다. 출근하기 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아이의 내복이 덜 말라서 드라이기로 아이의 내복을 말리고 있었다. 드라이기가 내뿜는 뜨거운 바람으로 인해 내복 바지가 꼭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모습을 보며 아이는 즐거워하며 웃어댔다. 아이의 웃음소리는 언제나 마음을 즐겁게 한다.


"  찬아! 옛날에 할머니들은 아이들 옷을 아랫목 따뜻한 곳에 두었다가 밖에 나갈 때 따뜻하게 입혀 주셨대, 할머니들 진짜 착하시지?  " 했더니 갑작스레 아이가 나의 목을 끌어안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  우리 엄마도 정말 착해!  "  뜻밖의 말과 함께 한동안 꼭 껴안아 주는 아이 때문에 너무 감동하여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고맙다. 우리 찬이도 너무 너무 착하고 엄마가 아주 많이 사랑해! 자, 옷입자!  "

 

 아이는 내복을 입는 내내 따뜻해서 좋다며 연신 싱글벙글한다. 이런 작은 일로도 감동 받고 기뻐하며  행복해하는 아이에게서 새로운 세상을 본다.


모든 아이들의 친구인 피터 팬처럼 나도 내 아이의 피터 팬이 되고 싶다. 아이와 함께 나이가 들지 않는 피터 팬의 나라에서 영원히 순수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


김선란/ 서울 강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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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늘 양면이 있는 것처럼 상담실 풍경도 예외가 아니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 오는 사람도 있
 지만 스트레스가 너무 없어서 오는 사람도 있다. 너무 쉽게 포기하는 문제 때문에 오는 사람도 있지만 너
 무 포기를 할 줄 몰라서 오는 이들도 있다. K 씨도 그런 경우다.  집안에 고시를 합격한 사람이 많다니 그
 길 외에 다른 무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합격선 근처까지는 갔지만 한번도 넘어서지를 못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
 은 아쉬움에 계속 고시에 매달리다보니 서른이 훌쩍 넘어 버렸다. 이제 와서 다른 길을 가려고 해도 지금
 까지 쏟아 부은 시간과 노력이 억울해서 그만 둘 수도 없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허비
 하고 있다가 상담실을 찾게 되었다.
 



손에 쥔 것을 놓아야 다른 것을 쥘 수 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개코 원숭이를 사냥하는 방법은 아주 쉽다. 우선 막힌 상자 속에 먹이를 넣어둔다. 그 상자에는 원숭이의 앞발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있다. 냄새를 맡고 찾아 온 원숭이는 앞발을 넣어 먹이를 움켜쥔다. 하지만 들어갈 때는 어렵지 않게 들어갔지만 먹이를 움켜쥔 발을 빼기란 어렵게 되어 있다.

결국 원주민이 다가오는데도 원숭이는 움켜 쥔 먹이를 놓지 못해서 잡혀버리고 만다. 이 얼마나 답답하고 어리석은 동물인가! 그러나 과연 우리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해보자. ‘ 나는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포기를 부정적인 것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제때 포기할 줄 몰라서 삶의 고통을 자처하거나 막다른 길에 다다라서야 후회하는 사람들 또한 부지기수이다. 손에 쥔 것을 놓을 줄 알아야 다른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인생임을 우리는 종종 잊고산다.



포기가 이끌어 낸 성공들


우리는 흔히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자신의 꿈과 목표를 중도 포기했기 때문에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있었던 사람 또한 부지기수이다. ‘ 아큐정전’ 의 작가인 중국의 문호 루쉰은 원래 의사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중도에 이를 포기하고 문학가가 되어 글을 통해 중국 국민의 의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고등학교 때 프로복서가 되어 챔피언을 꿈꾸었지만 실력의 차이를 절감하고 나서 2년 만에 포기하고, 세계 각국을 돌며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하여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다. 이렇듯 자신이 가장 빛나는 곳에 서기 위해서는 집념만큼이나 포기가 중요하다. 인생이란 본질적으로 뜻대로 흘러가지도 않고 시행착오의 연속이며 살아가면서 좀 더 자신에게 맞는 방향을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반더루님, 아원건축사무소님, 풀향지기님 블로그>

긍정적 포기와 부정적 포기

우리는 이제 포기는 나쁜 것이라는 일면적인 평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오히려 포기의 지혜를 배우지 못했기에 겪어야 했던 불필요한 갈등과 고통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포기하지 못해서 얼마나 현실을 왜곡시키고 삶을 지치게 만들었던가.

포기는 단순히 나쁜 것이 아니다. 어떤 마음과 어떤 과정에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좋은 포기가 될 수도 있고 나쁜 포기가 될 수도 있다. 흔히 나쁜 포기란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목표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에 담긴 삶의 가치까지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즉, 다른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는 단절적 포기야말로 부정적 포기이다.

또한, 조금이라도 어려운 것 같으면 습관적으로 포기하고 마는 것 역시 나쁜 포기이다. 그에 비해 좋은 포기도 있다. 자신이 잘 할 수 없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을 포기하고 잘 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은 좋은 포기이다. 기한을 정해 최선을 다 했는데도 잘 안 되었다면 깨끗이 포기하는 것은 좋은 포기이다. 슈바이처 박사처럼 교수직과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아프리카 밀림으로 떠나는 것이라면 즉, 대의를 위해 소의를 포기하는 것 역시 좋은 포기이다.



어떻게 포기할 것인가

포기가 필요하다고 해서 포기를 남용해서는 곤란하다. 제대로 노력하지도 않고 때 이르게 포기하는 것을 미화시켜서도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언제 포기해야 하고, 어떻게 포기할지에 대한 지혜이다.

첫째, 포기의 기준을 세워라. 좋은 포기란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하거나 잘 할 수 있는 것을 위해 잘 안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강점을 우선 순위별로 정리해 보는 것이 좋다.

둘째, 무언가를 시작할 때 포기를 계획하라. 무작정 될 때까지 도전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목표의식과 집중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기능을 초래할 수 있다. 기한과 기준이 서 있어야 한다. 기한이 있어야 최선을 다할 수 있고, 최선을 다 해야 깨끗하게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일시적 포기도 고려하라. 드라마 작가인 노희경은 소설가가 되려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좀처럼 등단할 수 없어 이를 포기하고 방송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방송작가로서 입지가 굳혀지자 이제 소설도 쓰고 있다. 상황이나 여건이 무르익을 때까지 원하는 바를 일시적으로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포기의 지혜이다.

넷째, 포기가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게 하라. 목표는 포기하더라도 목표에 담긴 가치는 유지해야 하며, 포기를 통해 새로운 선택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혜로운 포기는 삶을 끊어놓는 것이 아니라 삶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느 인디언 부족에게 전해져 오는 이야기로 끝을 맺고자 한다. “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판단이 서면
  최선을 다하라. 하지만 네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과감하게 포기하라. 그 대신 너는 대지의 신에게 할 수 있는
  일과 포기해야 할 일을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라.”
 

 
문요한/ 더 나은 삶 정신과 원장, 정신경영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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