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사랑을 그린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감독 추창민)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 역할
  을 한 배우 이순재, 윤소정, 송재호, 김수미 씨의 연기 경력을 합치면 200년이 넘는다고 한다. 원로급
  의 배우들이 영화 주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고령화시대에 큰 의미가 있다. 이들은 영화 속에서 한국
  최고의 배우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연기력을 보여준다.

 


특히 김수미 씨의 치매 노인 연기에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치매에 걸린 아내 ‘순이’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군봉’ 역을 맡은 송재호 씨의 열연 역시 오랜 세월의 내공을 절감케 한다. 올해 72세의 배우 송재호 씨는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젊은 배우들 못지않게 활발한 연기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성우 출신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송 씨는 한국 전쟁의 여파가 남아 있던 1959년 부산 KBS 성우로 데뷔했다. 이후 라디오보다는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큰 활약을 펼쳐왔다. 그가 간첩을 잡는 대공 수사요원으로 나온 MBC드라마 ‘113 수사본부(1973~1983)’는 최불암 씨가 주연한 ‘수사반장’ (1971 ~ 1989년)과 함께 공전의 히트작이었다.


1970년대 상업 영화 시대를 활짝 꽃피운 ‘영자의 전성시대(1975)’ 는 그와 여배우 염복순 씨가 공연한 작품. 목욕탕 때밀이 창수가 창녀인 영자와 눈물겨운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를 그렸다. 에로티시즘 영화로 인식됐으나 시대의 애환을 녹여낸 수작이다.  개봉 당시 외화 흥행 1위인 ‘스팅’ 의 33만 명을 능가하는 관객 36만 여명을 기록했다. 관객 1000만 시대엔 대수롭지 않은 숫자일 수 있으나 당시엔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송씨는 ‘그대 사랑합니다’ 에 출연한 후 “ 이번 작품은 관객 1000만 명을 넘을 것 ” 이라고 호언했다. 그가 2009년에  출연한 영화 ‘해운대’ 가 대흥행을 기록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여겨진다. ‘그대 사랑합니다’ 가 개봉 후 한 달 만에 관객 100만명을 돌파해서 화제가 되긴 했지만, 흥행 추세로 보면 1000만 명 이상을 넘어서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긴 해도 이 작품이 1000만 영화 이상의 감동을 지녔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노인들의 로맨스를 가슴 아릿하게 담아낸 이 영화에서 송재호씨의 상대역인 김수미씨는 올해 60세로 주연 배우들 중 막내다. 김 씨는 젊은 시절로 미모로 날리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드라마 ‘전원일기(1980일~2002년)’에서  ‘일용 엄마’ 역할을 한 이후부터는 노역 이미지가 워낙 강하게 들러붙어 있다.


 김 씨는 치매에 걸린 노인 ‘순이’ 역을 너무 자연스럽게 해 냈다. 순이는 불치병에 시달리면서도 남편 군봉에게 천진난만한 애교를 부릴 줄 아는, 귀여운 할머니다.  군봉은 걸핏하면 “ 여보! 똥 마려워 ” 라고 말하는 아내를 언제나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애틋이 돌본다.


 어느 날 군봉이 집안의 문을 잠그는 것을 깜빡 잊고 나가자 순이는 남편 뒤를 쫒아 나왔다가 겨울 내복 차림으로 외출을 해버린다. 맨발로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순이를 우연히 발견한 만석(이순재)에 의해 집에 돌아오긴 하지만, 그 사이에 아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군봉의 노심초사는 보는 이를 가슴 아프게 한다.


순이의 실종 사건이 있은 후 군봉은 그동안 떨어져 살았던 자식들을 불러 모은다. 그 장면을 통해 관객들은 군봉이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치매에 걸린 아내를 혼자 돌봐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이가 중년 이후에 있는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 내 아내나 남편이 저렇게 치매에 걸렸다면 나는 저렇게 지극한 정성으로 돌볼 수 있을까. ”

                    “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과연 누가 나를 저렇게 간병을 해 줄 수가 있을까. 내 자식들도 영화 속

                      군봉과 순이의 자식들처럼 외면을 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

                   

 

 

치매(癡呆·dementia)는 일상 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던 사람이 뇌기능 장애로 인해 후천적으로 지적 능력이 상실되는 경우를 말한다. 치매 환자 때문에 고통 받는 가족들을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의료 기관을 찾은 치매 환자 수가 7년 새 4.5배, 치매 질환에 사용된 총 진료비는 11배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은  " 2002년 치매 환자는 4만 7747명이었지만 2009년에는 21만 5459명으로, 치매 치료에 사용된 총 진료비도 560 억원에서 6210억원으로 증가했다 " 고 밝혔다. 고령화 가속화하면서 치매 환자는 더 늘어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치매의 대표적 증상은 기억 장애다. ‘그대 사랑합니다’ 의 순이 할머니가 그런 것처럼 자신의 과거를 기억 못하거나 자신이 방금 전에 했던 일을 떠올리지 못한다. 또 언어 장애(失語症) 혹은 인지 장애(失認症), 운동과 행동 장애(失行症) 등을 보인다. 치매 증상은 꼭 노인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 등에 의해 유발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성 치매가 일반적이어서 가장 흔한 유발 요인은 알츠하이머(Alzheimer's disease)다. 미국의 전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앓는 바람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질환이 돼버린 알츠하이머는 아밀로이드라는 신경 독성물질이 뇌에 축적돼 양측 측두엽의 기능 저하가 발생함으로써 시작된다.


의학계는 아직까지 측두엽에 이미 쌓인 아밀로이드를 완벽히 제거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다국적제약사들이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고 하니 기다려볼 일이다.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추고 치매의 증세를 완화하는 치료법도 꾸준히 발전되고 있다고 한다. 병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서는 조기 검진이 필요하다는 것은 새삼 말할 나위가 없다.

 

65세 이상이 되면 무조건 치매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지방자치단체의 치매지원센터, 혹은 보건소와 연계된 병원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일반 병원에서는 소정의 경비가 들어간다. 노인들은 대부분 병원에 가지 않으려는 관성을 가진 분들이니 자녀들이 적극적으로 권해드려야 한다.


 혹시나 치매 판정을 받으면 그 원인을 정밀하게 분석하기 위한 추가 검사가 필수적이다. 치료를 받을 때는 가족이 얼마나 따뜻한 관심을 가지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치매 환자는 뇌의 일부 기능이 저하돼 있지만, 나머지 손상 받지 않은 부분은 보통 사람과 같다. 그렇기에 누군가 자신을 소홀히 대하면 뇌 기능의 변성된 부분에서 이상 행동을 지나치게 발현할 가능성이 높다.

 

 


로널드 레이건과 낸시 레이건


 “ 벽에 똥칠할 때 까지 살아라 ” 는 욕설이 있는데, 치매 환자 중엔 정말로 벽에 자신의 변을 칠하는 증세를 보이는 이들이 많다. 치매 환자는 대부분 변비 증세가 심해서 자신도 모르게 항문에 손을 대고 그 때 묻은 변을 아무 곳이나 칠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원인을 알고 전문가와 상의하면 환자의 증세에 대처하는 게 한결 편해진다.


어느 질환이나 그렇지만, 치매 환자도 집안에 갇혀 있기 보다는 산책 등을 통한 적운동 자극이 필수적이다. 적절한 영양식도 신경 써야 한다.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 활동량이 증가하면서 에너지 필요량이 늘어난다. 그럼에도 치매 환자는 음식을 씹지 않고 입에 물고만 있는 경우도 많고, 충분히 씹지 않고 삼켜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대 사랑합니다' 에서 남편 군봉이 아내와 꼭 겸상을 해서 밥 먹는 것을 일일이 챙긴 것은 그 때문이다. 대한영양사협회는  “ 치매 환자는 충분한 단백질과 열량을 섭취하는 균형식과 더불어 변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채소나 과일을 많이 먹어야 한다 ” 고 권한다. 영양사협회가 제안한 '치매 환자 실천사항' 은 “ 가능한 식사시간을 규칙적으로 하며, 식사에 대한 적절한 감독과 보호를 한다” 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역시 가족들의 따뜻한 애정을 전제로 한 것이다.

 

 미국 전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아내 낸시 레이건은 남편이 알츠하이머로 인한 치매 증상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공표하고, 의연하게 간병하는 모습을 보여 국내외의 찬사를 받았다. 가족이 치매에 걸린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어느 누군들 그 힘겨움을 이겨내기가 쉬울까. 그렇기에 낸시의 간병이나, 영화 속 군봉의 사랑이 많은 이들의 가슴에 감동의 여운을 주는 것이다.

 

장재선/ 문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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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금 3명 중 한 명은 암(癌)에 걸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성인에서 고혈압 유병률이 33%쯤 되
  니 발생 비율로 치면 암이나 고혈압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셈이 됐다. 바야흐로 암·만성질환 동거 시
  대다.
암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질병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환경의 반영물이다.
  위생 불결 시절에는 자궁경부암처럼 바이러스에 의한 암이 많았고, 빈곤의 시기에는 결핵이 흔했던
  것처럼 말이다.

 

'한국 할머니'에게 유독 무릎 퇴행성 관절염이 빈번한 것도 쭈그려 앉아 모든 집안일을 해야 했던 좌식(坐式) 생활의 슬픈 결과다.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가 되는 요즘에는 식습관이 질병 발생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뭘 먹느냐에 따라 20~30년 후 질병 발생 패턴이 확확 바뀌기 때문이다.

 

짜고 삭히고 절인 음식을 먹던 '전통 한국인'에게는 위암이 많지만, 그들이 미국에 이민 가 낳은 2세대들은 지방질 과잉 섭취로 대장암에 대거 걸린다. 이탈리아의 경우, 야채와 식물성 기름을 많이 먹는 남부 지역이 묵힌 음식을 많이 먹는 북부보다 암 발생이 적다. 민족적 체질보다 우선인 것이 음식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가족들이 어떤 질병에 노출돼 있는지는 냉장고를 보면 알 수 있다. 냉장고 안이 고기·버터·베이컨 등 고지방 음식들로 채워져 있다면 이는 '대장암·심장병 냉장고'이다. 그런 병을 유발할 수 있는 냉장고라는 뜻이다. 젓갈·장아찌·절인생선이 가득하면 '위암·고혈압 냉장고'가 된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청량음료·초콜릿·아이스크림 등이 눈에 먼저 들어오면 '소아비만 냉장고'인 셈이다. 반면 신선한 야채와 과일, 요구르트, 두부·콩 음식으로 꽉 차 있으면 '항암 냉장고'가 될 것이다. 계란·우유·살코기 등 철분과 칼슘이 많은 음식이 그득하면, '성장클리닉 냉장고'가 된다.

 

썰렁한 냉장고는 집안 분위기를 말해준다. 가정불화로 안주인이 시장 보는 일에 흥미를 잃었거나, 우울증으로 바깥출입이 줄면 냉장고는 금세 초라해지기 마련이다. 관절염을 앓는 노년 가정의 냉장고도 빈약하기 쉽다. 매일 장을 보아 신선한 음식만 먹는 집안이라면 비어 있는 냉장고가 되레 보약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휑한 냉장고는 건강 위험 신호다.

 

냉장고에서 당장 꺼내서 조리할 수 있는 음식 종류가 세 가지 이하인 집에 사는 고령자는 나중에 병원에 입원할 확률이 세 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만성적인 영양 불균형과 결핍 탓이다.


우리 속담에 동가식(東家食) 서가숙(西家宿)이라는 말이 있다. 밥은 동쪽 집에 가서 먹고, 잠은 서쪽 집에 가서 잔다는 것으로, 하릴없이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빗댄 표현이다. 기자는 이 속담을 현대판 건강 규범으로 삼고 싶다. 먹는 것은 동양식으로, 생활은 서양식으로 말이다. 냉장고에 신선한 한식(韓食)을 채우고, 침대·의자 생활로 관절 부담을 줄이면 노년이 편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나이 들어서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 치매일 터다. '본인은 천국, 가족은 지옥'이라는 치매. 이것만큼 질병의 부담을 주변에 크게 지우는 병도 없을 것이다. 치매 안 걸리도록 하는 것이 행복한 노년의 삶을 보장하는 첫 번째일 것 같다.

 

최근의 의학 연구를 보면 치매 예방에 가장 좋은 것이 걷기다. 그것도 빠르게 걷기다. 땀내가 살짝 나는 꾸준한 걷기가 뇌 혈류를 개선하고, 특히 기억 중추인 해마(海馬)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최소한 시속 6㎞ 이상 속도로 걸어야 한다. 어떤 의사는 이를 무서운 개가 길거리에서 쫓아올 때 점잖게 내빼는 속도라고 표현한다.

 

부단한 속보(速步)는 치매 발병 최대 위험 요인인 '3고(高)', 즉 고혈압·고혈당·고지혈증을 모두 낮추니, 일석이조다. 천천히 걷기는 사색에는 좋으나, 자칫 식욕을 자극해 과식의 빌미가 된다.

 

걷기 효과의 극단적인 사례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아미시(Amish) 공동체이다. 이들은 청교도적 신념으로 전기와 자동차를 거부하고 19세기 방식의 삶을 고집한다. 이들이 농장일을 하며 하루 걷는 양은 1만4000~1만8000여 보(步)이다. 미국인 성인 평균보다 6배나 많은 걷기다. 하루 5만보를 걷는 이도 있다고 한다.

 

아미시의 당뇨 발생률은 2%대이다. 미국 평균의 5분의 1도 안 된다. 치매와 심장병 예방 효과가 있는 HDL(고지단백) 콜레스테롤치가 아미시는 매우 높다. 이들의 치매 발생률은 매우 낮고, 설사 생기더라도 아주 늦은 나이에 오는데 학자들은 그 이유로 엄청난 양의 걷기를 꼽는다.

 

그런 면에서 구두를 보면 그 사람의 '치매 건강'이 보인다. 걷기에 편한 낮은 굽을 신거나 운동화 차림이라면 일단 치매와 멀어진 방향이다. 빠르게 걸으면 체중이 실리는 뒷굽 바깥쪽이 유독 많이 닳아 없어진다. 그 이유로 뒷굽을 자주 간다면 일상생활 속 걷기 합격이다(팔자걸음으로 걷는 이도 구두 바깥쪽이 쉽게 없어지긴 한다). 엄지발가락 옆 구두 실밥이 잘 터지는 사람도 속도를 내며 힘차게 걷는 경우라 볼 수 있다.

 

반면 구두 앞쪽에 작은 상처들이 많고 해져 있는 사람은 '치매 행보(行步)'다. 걸음을 질질 끌며 느리게 걷는 사람의 구두는 보도블록 튀어나온 부분이나 돌멩이 등에 구두 앞쪽이 잘 까지기 때문이다. 유행을 좇아 '큰 신발'이나 높은 굽을 신고 다니는 사람들은 속보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다. 구두 위에 잡히는 주름 양이 왼쪽과 오른쪽이 심하게 차이 나면 걸을 때 한쪽 다리를 무의식적으로 많이 쓴다고 보면 된다. 대개 천천히 걸을 때 좌·우 편차가 크게 난다.

 

수십년 전 과거엔 구두에 흙이 묻어 있으면 산에서 방금 내려온 간첩일지 모른다는 말이 있었다는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제 흙 묻은 구두는 건강의 표징이다. 치매를 막으려면, 치매가 발붙일 새 없이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이제 냉장고를 열며 어떻게 먹을 것인가 생각해보고, 구두 보며 어떻게 많이 걸을 것인가 다짐해보길 바란다.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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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우 이름이 뭐더라? 영화 '무방비도시' 에 나왔던 ….”

“누구? 김명민? ”

“아니, 여배우. 몇 년 전에 '클래식' 이란 영화도 했고, 배용준과 함께 '외출' 을 찍었지. 그 사람 영화는 다 봤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네. 최근에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손예진?”


“맞다. 얼굴은 떠오르는데, 이름이 영 생각이 안 나네. 날이 갈수록 건망증이 심해지는 느낌이야.”


최근에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자주 건망증을 언급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 감퇴 증세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쓸하면서도 재미있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건망증을 호소하면, 모두들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도 그렇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기억력 감퇴로 인한 건망증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노화의 한 현상이어서 그럴 것입니다.

건망증이 아주 심한 사람은 스스로 "이거, 나한테 치매가 온 것 아니야” 라며 덜컥 겁을 내게 됩니다. 치매는 뇌 기능 장애로 지적 능력을 상실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는 치명적 질환입니다.



건망증과 치매 모두에서 기억감퇴 증상이 나타나지만,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건망증은 식사를 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만 무엇을 먹었는지, 언제 먹었는지 등의 상세한 내용을 잊어버리는 것이고, 치매는 식사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요즘엔 치매 진단 기술이 발달해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면 쉽게 발병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치매를 유발하는 가장 흔한 질환이 알츠하이머병입니다. 1907년 이병을 처음 발견한 독일 의사의 이름을 딴 알츠하이머는 단백질 덩어리가 뇌에 비정상적으로 쌓이면서 병이 진행됩니다. 일단 발병하면 약물 치료 등으로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으나 현재 의학수준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합니다.

알츠하이머는 대개 노인들에게서 나타나는데, 아주 드물게 젊은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영화‘내 머리 속의 지우개’(이재한 감독 2004년 작)는 알츠하이머를 앓게 된 한 젊은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27세의 수진(손예진 분)은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다가 부딪친 남자 철수(정우성 분)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건설현장 소장 일을 하며 건축사 시험 준비를 하는 철수는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상처가 있어서 여성과의 사랑을 망설이지요. 그러나 수진의 적극적인 구애와 활달한 성격에 자기도 모르게 이끌리고, 결국 결혼을 하게 됩니다.


말 그대로 알콩달콩한 신혼 재미를 누리던 그들에게 검은 악마의 질투처럼 찾아온 것이 바로 알츠하이머입니다. 수진은 평소 건망증이 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자신의 집조차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증세가 심각해지자 병원에 가서 상담과 진단을 받은 후 자신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수진은 이 기막힌 사실을 철수에게 차마 알리지 못한 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일상생활을 합니다. '겉으로 웃으면서 속으로 우는' 젊은 아내의 모습이라니….


철수는 수진의 행동이 다소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 채고 병원으로 찾아가 그녀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앞으로 그녀는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는 것처럼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지요.철수는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하면서도 수진의 간호에 정성을 다 쏟습니다.

수진의 부모님들이 딸을 데려가겠다고 해도 철수는 자신이 끝까지 돌보겠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수진은 상태가 나빠져 철수와의 일을 모두 잊어버립니다. 그녀는 과거의 기억들만 조금 남은 탓에 옛 애인이었던 직장 상사 영민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임으로써 철수의 가슴을 미어지게 합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당신 맘 아프게 하고싶지 않은데.. 어떡해요.당신 지금 울고있어요?
 나 때문에 울게하기 싫었는데, 당신슬퍼하는 모습 보기 싫었는데, 행복하게만 해주고 싶었는데, 내가 결
 국 당신 맘 아프게 하네요....철수씨, 사랑하는 철수씨. 제발 오해하지 마세요. 난 당신만을 사랑해요.
 당신만을 생각해요. 당신만을 기억해요.

- 영화 '내머리속의 지우개' 대사 중-     

 

그래도 철수는 수진을 더욱 극진하게 돌봅니다. 수진은 잠시 기억이 되돌아왔을 때, 철수에게 미안함과 사랑을 절절히 담은 편지를 써 놓고 바닷가의 요양원으로 떠나갑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주연을 맡은 정우성, 손예진 두 배우의 흡인력이 컸지만, 무엇보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대한 두려움의 공감대가 넓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느닷없이 찾아와 생애를 흔드는 병마에 대한 공포감이 엄습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공포를 이기게 하는 것은 역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라는 생각도 절실해집니다.


철수는 요양원에 숨어 있는 아내를 찾아서 그녀의 기억을 되살려주기 위해 자신이할수있는모든일을합니다. 수진은 기억을 잃어버리는 질환에 시달리지만, 기억이 존재하는 범위에서 사랑하는 철수와 가족을 배려하려는 모습을 지킵니다.
그것은 철수와 아버지·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자신이 영원히 사랑스럽게 남을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역시 알츠하이머를 다룬 캐나다 영화 '어웨이 프럼 허(Away From Her)' 도 사랑에 관해서 말하고 있지요. 자신과 함께 살았던 기억을 잃은 아내가 요양원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 희생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불치병을 진정으로 이길 수 있는 사랑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혹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를 보시게 된다면, 사랑이라는 주제를 뒷받침하는 아름다운 대사들에 특별
 히 귀를 기울여볼 것을 권합니다. 예컨대, 수진은 철수에게 그를 버린 어머니를 용서하라고 부탁하면서
  "용서란 미움에게 방 한 칸만 내주면 된다" 고 말합니다.

 또 "진짜 목수는 마음의 집을 잘 짓는 사람" 이란 말도 하지요.

 

장재선/ 문화일보 기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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