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만 되면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가서 지내곤 했다. 그해 여름도 시골로 내려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제천에 사는 큰고모한테서 편지가 한 통 왔다. 조카가 보고 싶으니 삼촌과 함께 오라는 내용이었다.


할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중학교 1학년인 삼촌과 함께 버스를 몇 번인가 갈아타고 큰고모댁에서 며칠을 놀다가 돌아올 때였다. 어린 삼촌도 경험이 부족했기에 원래 내려야 하는 곳보다 한 정거장 지나쳐서 내리고 말았다. 집을 못 찾아갈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걱정하지 마라. 삼촌이 길을 모를까봐? 여기서 조금만 가면 중학교야. 조금만 걸어가면 되니까 어서 가자.”라며 내 손을 꼭 붙잡고 먼지 풀풀 날리는 흙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시각이 벌써 오후, 해가 지려고 할 즈음이었다. 정말로 한참을 걷다 보니 낯익은 풍경이 들어왔다. 덕평 장날이면 할아버지와 함께 장 구경을 했었던 눈에 익은 그 길이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길은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었고 결국 해가 지고 말았다. 지나가는 버스를 타면 되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삼촌이 돈을 잃어버려 집까지 걸어가야 했다.


해가 진 길을 걷는데 얼마나 무서운지 소름이 쫙쫙 돋았다. 시골 길을 걸어본 사람은 알리라. 농가가 모여 있는 곳이 아닌 길을 걸으려면 심장이 몇 개는 떨어졌다 붙었다 했다. 하늘의 별은 얼마나 총총한지 금방이라도 후두둑 비처럼 쏟아질 것 같고, 그 아름다움마저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여기저기서 꺼이꺽꺽 하고 우는 짐승들의 울음소리는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을 주었다.


“삼촌, 진짜 귀신 나오면 어떡해? 저기 귀신 있는 것 같아.” 하면서 희뿌연 것이 보이는 듯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삼촌 팔을 꽉 붙잡으면, “무섭기는…. 삼촌은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여태 살았는데 이까짓 게 무섭겠냐? 내일 아침에 다시 와 봐라. 다 나무고, 풀이고, 산이다.” 했다.


우여곡절 끝에 마을 근처 천하대장군이 있는 곳까지 왔더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걱정되셨는지 나와 계셨다. 어찌나 반갑던지 울면서 한걸음에 달려가 할아버지한테 매달리는데 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서워서 똑 죽는 줄 알았네. 하마터면 울 뻔했는데 삼촌 체면 때문에 꾹 참았다.” 하는 삼촌의 울먹이는 소리. 아, 삼촌도 무서웠구나. 하긴 삼촌도 겨우 중1. 불빛 하나 없는 그 먼 밤길을, 주변은 온통 산 천지고, 달빛과 별빛뿐인 그 먼 길을 어린 조카를 데리고 오려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가끔 그때 일을 말할 때면 삼촌이 “진짜 내가 오줌 안 싼 게 신기하지.” 하며 웃곤 한다. 추억 속에서 더욱 빛나는 내 유년의 여름밤이 참 그립다.

 

글 / 박순구 경기도 군포시 오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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