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수기부문 최우수작
어르신, 부디 제가 없을 때 가세요!
이수자 / 대구 수성 온정노인복지센터
“어르신, 부디 제가 없을 때 가세요!” 숨 쉬기조차 힘들어 하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며 어르신께 생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런 어르신을 뒤로하고 퇴근하는 저는 하늘을 쳐다보며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마지막이 다가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만 해도 감당하기 두렵고 이별이 무서웠습니다.
자원봉사로 시작,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다
공무원인 남편을 따라 낯선 대구에서 생활하던 중 같은 아파트 이웃분과 함께 난생 처음 복지관에서 봉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제 나이 사십 중반이 되어서야 자원봉사라는 것을 시작했고, 복지관에서 밑반찬 조리 및 배달을 하면서 어렵게 사는 독거 어르신들을 뵈었습니다.(중략) 그 때쯤 복지관에서 함께 봉사하시던 분이 요양보호사라는 자격증이 있는데 함께 공부해보자고 권유를 하였습니다. ‘그래 자원봉사를 하더라도 자격증을 가지고 하면 낫겠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2008년 10월 노인복지센터의 사회복지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어르신의 상태를 설명 듣고 어르신 댁에 가자는 말에 비로소 누군가를 위해 제대로 된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와 설렘으로 잠을 살짝 설쳤습니다.
어르신과의 첫 만남,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르신 댁마당 옆에는 노란 국화가 한가득 꽃봉오리를 맺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참 편안하였습니다. 마당을 지나 허름한 가건물에 문을 열고 거실에 올라서는 순간 어르신에 대한 기대와 설렘은 간 곳 없고, 윽~하고 밀려오는 지린내, 퀴퀴하고 견딜 수 없는 냄새와 먼지 잔뜩 앉은 거실에 나도 모르게 까치발을 하고 서 있는데, 쇠잔한 모습의 할아버지께서 맞아주었습니다.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야했습니다.
사회복지사를 따라 들어간 어슴푸레한 골방에는 찌든 이불 위에 엎질러진 정체도 알 수 없는 음식물을 겨우 집어 먹고 있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이미 팔과 다리는 굳어져 앉지도 못하고 제가 누군지, 왜 왔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냥 이불 위에 엎드려 고개만 든 채 무표정한 얼굴로 음식물을 입으로 가져가고만 있었습니다. 치매로 말문을 닫고 방치된 지 몇 년 되었다고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낯선 환경은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마주친 삶의 참혹한 모습이었습니다.
현기증과 함께 구토가 나는 것을 겨우 참고 밖으로 나와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이 자리를 얼른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함께 온 사회복지사에게 도저히 돌봐 드릴 수 없겠다고 다른 분을 찾아보라고 말해버렸습니다. 사회복지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저를 계속 설득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자려해도 때가 잔뜩 낀 손으로 음식물을 힘없이 집어 먹고 있던 무표정한 할머니 모습이 지워지지 않아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머릿속이 복잡기만 하였습니다. ‘그래 이왕하려면 내 손길이 필요한 곳에 도와드리자. 이것도 인연인데 한번 부딪혀보자.’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다음날 사무실에 전화해서 어르신을 돌봐드리겠다고 했더니 너무 좋아하였습니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91세, 92세 어르신
(중략)어르신의 비위생적인 주변 환경부터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청소부터 시작하였습니다. 몇 날 며칠을 치우고 닦고 소독해도 일은 끝이 없이 줄어드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실내 화장실도 없다보니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는 늘 세면장 바닥에 소변을 봐서 지린내가 등천을 하였고, 밤사이 기저귀를 갈 수 없는 할머니의 이불은 늘 소변에 젖어있기 일쑤여서 매일 시트를 갈아드리고, 세탁을 해야 했습니다. 또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환부를 건조시키며 자주 돌보아 드려야했습니다.
주말을 지내고 오면 기저귀 갈아 줄 사람이 없어 어머님은 찜찜하셨는지 기저귀를 잡아 찢어 놓고, 변을 온 이불과 장롱 벽에 발라 놓으시고, 손과 얼굴에 변이 범벅이 되어있기도 하였습니다. 어머님 수발은 물론 아버님 수발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한번은 아버님이 옷에 대변을 보시고 바닥에 주저 앉아계시는 겁니다. 아버님을 모셔다가 씻겨드리는데, 회의감이 밀려오면서 내가 “왜?”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처음에 부끄럽고 미안했던지 “미안합니데이, 미안합니데이.”를 연신 되뇌었습니다. 92세, 91세 두 어르신은 이렇게 저만 바라보고 있습니다.(중략)
어머니 덕분에 저도 행복했어요
했습니다. 욕창을 치료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사회복지사가 ‘어르신이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는 것이 옳은 것 같다’고 권유했으나 가족들은 집에서 돌아가시는 걸 원하신다며 저에게 끝까지 함께 해 주길 부탁하였습니다. 식사량이 점차 줄어들게 되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간호사인 딸에게 물어 보기도 하며 어르신을 돌봐드렸습니다. 죽에서 암죽으로 마지막엔 환자식인 뉴-케어로 바꾸어 식사 준비를 해드렸습니다.
욕창은 점점 해져 악취가 풍기고, 떨어지지 않는 죽은 피부를 가위로 잘라내면서 소독약과 식염수로 치료해드렸지만 하루하루가 다르게 여기저기 수포가 생기고 터지고 변비까지,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상처를 말려드리면서 따스한 가을 풍경을 보시라고 의자를 이불로 둘둘 말다시피 하여 창가에 모시고 가서 국화도 따다 드렸습니다. 책도 읽어드리며, 최선을 다했지만 점점 기력이 쇠하셔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의식이 없을 때가 더 많았습니다.
저는 임종이라고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지라 마무리하고 퇴근하여 돌아갈 때면 ‘어르신, 부디 제가 없을 때 편히 가세요.’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의식이 오락가락하시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달을 더 버티시다가 12월 10일 왠지 그 날을 못 넘기실 것 같았습니다. 가족들께 연락을 하고, 밖으로 나가시려고 하 시는 아버님을 어머님 곁에 앉혀 놓았습니다. 청소 및 빨래 집안 정리를 대충 끝내고 오전 11시 20분경 아버님이 나가신다고 하셔서 “멀리 가지 마세요.”라고 하고 가족들한테 빨리 오시라고 한 번 더 재촉하였습니다.
만약을 위해 어머님의 몸을 식염수로 닦아 드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드렸습니다. 의식이 없으시던 어머님께서 갑자기 눈을 크게 뜨시더니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제게 무어라 하시더니 조용히 눈을 감으시고 몇 날 며칠을 몰아쉬던 가쁜 숨을 멈추셨습니다. 말을 못하셔도 저의 품에서 잠드시려고 저를 기다리셨나 봅니다. ‘고마웠다고…….’ 그 모습이 너무 편안해 보이셔서 꼭 안아드리면서 ‘그 동안 고생 많이 하셨어요. 저도 어머님 덕분에 많이 행복했습니다. 좋은 곳으로 편안히 가세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어르신, 제가 없을 때 혼자 가시지 마세요.”
어머님 영정 앞에 꽃을 하나 바치면서 제가 없을 때 가시라고 기도하였던 것이 부끄럽고 죄스러웠습니다. 흐릿하게 보이는 영정사진 속의 어머님은 웃고 계셨습니다. 온 가족들이 제 손을 잡고 고생 많았다고, 고맙다고환대해주어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다음날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데 손녀가 할머니께서 매일 빨고 안고 자던 인형이랑 고무링, 블록 등을 가져가려고 하는데 할머니 생각에 차마 주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할매가 좋아 하시던 것이니까 할매 드리자, 할매도 하늘나라에서 심심하실 거다.” 하고 달래서 마당에서 태우는데 순식간에 타올라 재가 되어 허공 속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고통 없이 편안하게 지내시리라 스스로 위로하면서, ‘어머님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 마음을 어머님처럼 힘들고 어려운 분들을 위해 많이 나누겠습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사정상 함께 지낼 수 없는 보호자인 자식들에게나 홀로이 여생을 보내야하는 힘든 어르신들께는 꼭 필요한 제도인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이 제게 고맙다고 하는 것은 노인장기요양보험에게 고맙다는 것이겠지요. 회의 때마다 사회적 효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용기를 주곤 하였는데 이러한 말에 많은 공감을 가지며 저는 이제 어르신 댁에서 나올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어르신, 제가 없을 때 혼자 가시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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