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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맞춤형

자살이 유혹하는 나라...그 불편한 진실들..

 

 

        ‘불편한 진실’은 삶의 한 부분이다. 개인에게든 조직·국가에든 숨기고 싶은 진실은 있게 마련이다. 경제적 풍요, 

        개화된 민주주의, 막강해진 글로벌 파워는 대한민국의 ‘자랑하고 싶은 진실’이지만 인식의 세대격차, 빈부확대, 

        보수와 진보의 극한 대립은 ‘숨기고 싶은 진실’이다. 어느 나라이든 국가의 과제는 그 나라의 ‘숨기고 싶은 진실’을 

        ‘자랑하고 싶은 진실’로 바꾸는 것이다. 그 것이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불명예스런 기록 OECD 자살률 1위

 

대한민국은 자살이 유혹하는 나라다. 선진국들의 모임으로 통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8년째 자살률 1위라는 기록은 불편해도 한참 ‘불편한 진실’이다. 구체적 숫자를 보면 자살의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이 난다. 지난 2010년 한국에서 자살한 사람은 1만5,566명으로 10년만에 2배 이상 급증했다. 인구 10만명당 31.2명, 하루 평균 4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OCD 회원국 평균(12.8명)의 2.6배에 달하는 수치다. 헝가리(23.3명), 일본(21.2명) 등의 순으로 자살률이 높지만 한국과는 여전히 격차가 크다. OECD 회원국의 평균 자살률이 감소하고 있는데도 유독 우리나라만 이 수치가 급등하는 것 역시 진실을 더 불편하게 만든다.

 

청소년과 노인의 자살도 심각한 수준이다. 2010년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자살(13%)이다. 청소년 10만명당 1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노인은 10만명당 81.9명으로 일본(17.9명), 미국(14.5명)과 비교가 안될 정도다.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을 뽐내는 한국에서 노인들이 얼마나 삶의 구석으로 방치되는 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보건복지부 자료 등에 따르면 자살의 주요 이유는 정신적 문제(29.5%), 질병(23.3%), 경제적 어려움(15.7%), 인간관계(15.0%) 등이다.

 

 

 

나란히 가지 못하는 물질과 행복

 

왜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유난히 높을까. 물론 해석은 분분하다. 먼저 외국인의 시각을 좀 빌려보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 한국 특파원으로 서울에서 10여년을 살아온 다니엘 튜터는 최근 펴낸 ‘한국 : 불가능한 나라’(KOREA: THE IMPOSSIBLE COUNTRY)라는 역설적 제목의 저서에서 “한국이 경제적으로 놀라운 성장을 했지만 한국민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한국은 이륙하는 비행기와 같아서 순항고도에 올라야만 비로소 국민이 긴장을 풀고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한국인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신적 안락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안과 초초감은 극단적 선택(자살)으로 몰고가는 인자를 자극하기 쉬운 법이다.

 

지나친 경쟁사회가 자살을 부른다는 지적도 많다. 과열된 경쟁은 ‘성적(업적)=인격’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확산시키고, 결과적으로 경쟁의 줄서기에서 탈락한 자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간다. 나눔의 온기가 사회에 퍼져야하는 이유다. 한국이 물질적 풍요속에 정신이 메말라 간다면 ‘다투면 모자라고 나누면 넘친다’는 중국 송대 송고승전(宋高僧傳)에 나오는 구절을 한번쯤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노인의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우리사회에서 ‘방치되는 노인’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질병으로, 소외로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노인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20-50(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인구 5,000만명)클럽 가입이라는 화려한 외형과 달리 대한민국이 속으로 얼마나 중병을 앓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자살을 너무 쉽게 말하는 나라

 

한국은 자살을 너무 쉽게 말하는 나라다. 연예인들은 방송에서 어려운 시절을 말하면서 ‘자살’이란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자살을 생각했었다’는 말이 살아온 고난을 강조하는 다른 표현일 정도다. 연예인들의 자살이 청소년들에게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모방자살)를 불러온다는 분석도 있다.

 

희망을 얘기해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일반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난이 감당키 어려울때 ‘죽으면 되지’라는 말이 너무 쉽게 나오는 나라다. “아빠가 보고싶다”며 보채는 아이를 죽여 저수지에 버린 비정한 엄마, 성적이 좀 떨어졌다고 아파트에서 투신하는 학생들, 외로움을, 때론 부부간 성격차이를 견디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어른들의 모습은 ‘생명 경시’라는 오염물질이 얼마나 빠르게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말은 행동의 씨앗이다. 한번 뱉은 말이 곧 행동이 되는 건 아니지만 절망이란 말이 넘치는 나라는 더 절망의 늪에 빠진다. 그 것이 바로 말의 힘이고, 자살보다 희망을 말해야 하는 이유다. 80년대 중반 세계 최고수준의 자살률로 고민하던 핀란드가 자살을 ‘금기어’로 하는 정책을 펴면서 자살률이 떨어진 것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이다.

 

 

 

나눔의 바이러스 확산이 답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국가 회원국에서 8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이유를 꼭 집어내기는 어렵다. 경제적 빈곤, 정치적 불안, 종교적 박해, 만연된 질병…. 그 어느 걸로도 합당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런 항목을 조목조목 따져보면 자살률이 낮아져야 하는 이유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수치화하기 곤란한 그 무언가에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외로움, 소외, 좌절감, 극단적 논리사회…등등. 

 

세상사엔 빛과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은 것 또한 세상의 이치다. 우리사회의 자살은 하루 빨리 걷어내야할 그림자다. 무엇보다 더불어 사는 미덕이 사회에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한다. 1등이나 꼴찌나 인격엔 차이가 없다는 인격평등의 생각도 사회 구석구석으로 확산돼야한다. 이웃의 아픔을 보듬는 성자의 마음이 아니더라도 ‘교양시민’으로서 나의 이웃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은 가져야 한다. 고귀한 생명을 놓고 절규하는 ‘고뇌하는 영혼’이 없도록 정책적으로 살피고 보듬는 정부의 역할 또한 중요함은 물론이다. 올 연말엔 따스한 마음과 시선으로 주위를 한번 살펴보는 건 어떨까.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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