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프랭크 워렌(Frank Warren)이 공동예술을 목적으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라'는 당부와 함께 지하철 역, 미술관, 도서관 등 공공장소에 엽서 3천 개를 뿌려 놓았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엽서를 쓰기 시작했고, 더 이상 쓸 엽서가 없자 자비로 엽서를 구입하여 보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프랭크 워렌이 받은 엽서는 5년간 무려 15만장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이렇게 시작된 포스트 시크릿은 전 세계적인 유행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포스텍을 비롯 국내 여러 대학들도 그 열풍에 빠져 있으며, 국내의 대학생들이 아예 코리아 포스트 시크릿을 운영하고 있기도
포스트 시크릿이 인기를 끄는 이유 |
자신의 비밀을 익명으로 공개하는 이 단순한 프로젝트의 인기는 무엇 때문일까?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에게 있는 고백의 욕구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사람처럼 의사소통이 아닌 고백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심리적 욕구가 있다. 고백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한다. 무엇인가를 말하지 않고 혼자만 갖고 있다는 것은 고통이다. 모든 종교에서 기도(고해성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면 고백의 힘을 알 수 있다.
고백이 단순히 심리적 이득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생각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는 일이 의학적으로 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의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그저 사람들에게 5일 정도에 걸쳐서 매일 15~20분 정도, 예를 들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정신적 충격을 크게 받았던 경험'이나 '현재 자신을 억누르는 걱정거리'에 대해 글로 고백하도록 요청했다. 물론 비밀이 보장된다는 조건이었다. 고백의 효과는 정말 놀라웠다. 면역 기능이 높아졌고, 다음 6개월 동안 진료소 방문 횟수가 의미심장할 정도록 감소했으며, 결근 일수 감소, 심지어 간 기능까지 개선됐다. 더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면역 기능에서 가장 커다란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고백은 마음 뿐 아니라 몸의 건강 측면에서도 상당한 이득이 있다.
포스트 시크릿 인기의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있는 보편성 욕구 때문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기 스스로가 정상(다수)임을 확인하기 원한다. 자신에게 있는 어두운 측면이 다른 사람들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알 때 사람들은 안심하고 내심 기뻐한다.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다수에 속하려는, 보편적이기를 원하는 심리적 욕구 때문에 연인이든 친구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과 알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니 직접 터놓고 얘기하고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게다가 도시의 발달로 사람들은 아주 가까이 살게 되었고,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언제든 어디서든 원하는 사람에게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때문에 사람들은 진짜 속마음을 말하지도 못하고 듣지 못하게 되었다. 쉽게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가볍게 여긴다. 누군가의 진지한 고민도 인터넷 상에서는 가십거리가 되어 돌아다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진짜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분위기가 바로 포스트 시크릿이 인기를 끌게 된 마지막 이유다.
진정한 힐링은 사람의 관계속에서 |
포스트 시크릿의 인기 원인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진심이 소통되지 않는 사회에서 말하고자 하는 욕구와 알고자 하는 욕구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아쉬움도 크다. 어떤 이들은 포스트 시크릿이 쓰는 사람들에게는 치유가, 읽는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된다고 하지만 이런 위로와 치유가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 포스트 시크릿에 올라오는 내용을 보면 대부분이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나 직접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대부분이다. 분명히 관계 속에서 직면하고 부딪혀야 할 내용들이다. 진짜 치유와 위로는 익명이라는 가면을 벗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출판계와 방송계를 비롯해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힐링 열풍과 비슷하다. 혼자 책을 읽는다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고 힐링이라 할 수 없다. 이창동 감독의 2007년 작품 <밀양>에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유괴범을 용서하려는 준이 엄마(전도연 분)에게 이미 신으로부터 용서받았기에 마음이 평안하다고 말하는 유괴범이 나온다. 사실 유괴범이 용서를 구할 대상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다. 신으로부터 용서를 구했다고 해도, 사람에게 진심어린 용서를 구해야 한다.
포스트 시크릿도 마찬가지다. 간편하고 손쉽고 부담이 없지만 여기에만 머무른다면 아마 평생 혼자 독방에 앉아 엽서만 쓰고, 다른 사람들의 엽서만 구경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 이제 용기를 내어 직접 말해보자. 자신의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진짜 사람에게 말이다.
글 / 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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