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사는 곳은 작년 슬로우 시티로 지정된 예산군 대흥면 교촌리다. 집 앞으로는 전국 제일의 저
수지인 예당호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바로 옆에는 대흥 향교. 그리고 뒤에는 백제 부흥 운동의 마
지막 본산인 임존성이 위치한 봉수산을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양지바른 곳에 위치해 있다. 그녀의
공간에서 행복을 조금 담아 가지고 온다.
그녀를 알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4월, 함께 살고 있는 그녀의 어머님이 중풍으로 거동이 어려워 노인장기요양보험 신청조사를 하면서였다. 쇼파에 누워 거동을 거의 못하시던 그녀의 어머니를 조사하면서도 그녀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몇 개월 후 그녀가 서울 신문사에 근무했고, 글도 지으시는 작가분이며, 온양민속박물관장을 지냈다는 것을 이웃분들을 통해 자연스레 알게 되었는데, 동네에선 지금도 관장님으로 불리며 유명하시다.
그 후 국민건강보험 예산지사 직원과 지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봉사단 “푸른하늘”에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항상 꾸밈없고 행복한 얼굴의 그녀가 말하는 '행복하게 사는 법'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픈 마음에 인터뷰를 부탁하고, 올 3월 그녀를 다시 한 번 찾았다.
자연을 닮은 그녀
그녀의 집앞에 도착하면 그녀가 직접 만들었다는 우체통이 문짝이 없어진 대문기둥 옆에 몸을 꼿꼿이하며 마중 온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뷰를 하던 날에는 근처 다양한 나무들, 고즈넉한 정원 등 주변 여기저기서 봄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부르자,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하시면서 화장기 없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 오라신다. 인터뷰는 소박하고 조용한 서재에서 이루어졌는데 "시골에 사는 할머니한테 무슨 얘기를 들을게 있다고 , 나야 고맙지, 물어 볼 것 있으면 물어봐"라고 하시면서 편하게 대해 주셨다. 그녀의 행복을 들어보자.
Q. 서울에서 성공한 직장인으로 알고 있는데, 대흥으로 귀향하게 된 이유가 뭐예요?
A. 이곳은 부모님 고향이에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도, 50이 넘으면 부모님과 함께 이곳에서 흙과 함께 생활하려 준비 중에 있었지요. 아버님이 2001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병 수발하던 어머니마저 건강이 악화되어 그 시기가 좀 빨라졌는데 마침, 우리나라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가까운 곳에 민속박물관장 제의가 들어와 흔쾌히 수락하면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이곳에서 온양까지 출,퇴근을 했죠
그 후 2005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져 중풍으로 쓰러져 모든 것을 정리하고 어머님과 함께 이곳에서 생활하기 시작한거예요.
“글쎄, 먹기 싫다는데 왜 그래. 제발 귀찮게 좀 하지 마!” 눈치 없이 자꾸 음식 디민다고 제발 이러지 마세요. 주어도 주어도 덜 준 것만 같아 속 끓이는 것이 엄마랍니다.
“아버지는 원래 그러니까 엄마가 좀 참아.” 엄마가 져야 큰소리 안 나고 편안하다고 제발 이러지 마세요. '걱정 마 걱정 마'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참는 것만 입력된 인조인간이 아니랍니다.
그리고 제발 이러지 마세요. “엄마 괜찮지?” 힘없어 주저앉으면서도 ‘괜찮아 괜찮아’ 하는 것이 엄마랍니다.
나이 들어 걸음 둔해진 엄마는 당신 나이 든 것까지도 자식에게 미안해 많은 걸 숨긴답니다. 온 힘 다해 쥐고 있던 끈, 너무 힘겨워 한순간 놓쳐버리면 그만 스르르 무너지고 마는 것을. 지금, 중환자실, 저 문 안에서 혼자 힘겹게 싸우고 있는 엄마, 딸은 또 한번 바보같이 이런답니다. '엄마 괜찮지? 우리 엄마는 강하니까 이겨낼 거야'
박효신/『바람이 흙이 가르쳐 주네』'엄마한테 이러지 마세요' 中
Q. 귀향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어려움이 있으셨으면 말씀 좀 부탁드려요.
A. 육체적 노동에 따른 체력적인 어려움이 가장 컸어요. 첫해에는 요령도 없고, 무작정 일을 해 허리 치료를 오래 동안 받았는데, 어느정도 적응이 된 지금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서울에서의 생활도 즐겁고 행복했지만 자연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행복해요.
Q. 그럼 행복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혹시 행복하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지요?
A. 보통 사람들은 너 지금 행복하니! 하고 물으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생각을 하죠. 행복하고 싶기는 하니! 라고 다시 물어도 여전히 고개를 가우뚱 거리구요.
저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즐겁게 일하고, 성취하는 모든 것에 행복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 노력을 했구요. 자신의 행복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행복에게 대접을 해주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꼭 행복해 지려 일부러 한 것은 아니지만, 즐거운 생활을 위해 나를 사랑하며 살아왔지요.
'나'가 아닌 '누구나'라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사랑하고 싶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했고, 사물에 대한 호기심, 고정 관념 깨기, 재미 찾기, 긍정적 사고, 인생 설계, 비우며 살기, 내탓이오, 마음에 남을 위한 공간 만들기, 지금에 최선을 다하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나누고 봉사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생각해요. 지금도 저는 나는 행복하다 라고 주문을 걸고 있고, 미워하지 말고, 욕심을 버리고, 인연을 만들지 말자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조그만 시골이지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예산지사에서도 지금 청소년들에게 행복을 만들어 주는 함께 나누는 푸른하늘 봉사단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Q. 현재 나눔을 통한 행복한 삶에 대해 말씀 해주세요.
A. 지금요!. 자연과 나누고 있죠..시골 사람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자신을 맡기고 사는 것 같아요. 도시에서는 시간에 쫓기고, 안달하고, 성공을 위해, 경제적 효용가치를 위해 계산하며 살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마음이라는 운동장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아요. 생각도 넓고, 마음도 오픈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할까요. 무엇이든 한방에, 일확천금을 바라는 사고 없이 자신의 노력만큼, 자연이 주는 만큼만 얻으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지금도 저는 배우고 닮아가려 노력하고 있거든요.
2006년에 농사일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시작한 블로그 “풀각시 뜨락”도 지금 저의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연령대 관계없이 일상을 나누고 있고, 함께하는 이웃들과도 나에게 필요한 것 외에는 나누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 내가 심어 키운 꽃의 씨를 나누고, 받아 키운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이들에게 나누는 것을 보며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거창한거 같은데 자연과 나누려 노력하고 있어요. 지구를 지켜야죠, 작은 일이지만 나부터 열심히 지키려 재활용 한다든지, 필요한 만큼 먹고, 버리지 않고, 무엇이든 아끼면서 말이에요.
저는 양말이 발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이렇게 뀌메고, 깁고, 짝이 없어도 그냥 신고 있어요.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물 절약을 위해 설거지는 모아 두었다 하루에 한번, 수세미는 제가 직접 키운 천연 수세미를 이용하고 있죠 (웃음~)
그리고 대흥 슬로시티 주변에 있는 임존성, 대흥 동헌, 의좋은 형제 등의 문화 해설을 맡고 있어요. 공부도 열심히 하구 있구요, 물론 무보수입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문화를 나누기 위해, 청소년들에게 제대로된 문화 해설을 해주고 싶어서 하는 일이에요
Q. 마지막으로 건강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것이 있을까요?
A. 건강해야죠, 어머니 수발을 위해, 농사일을 위해서는 더욱요. 특별히 하는 것은 없고, 봉수산 주변을 자주 걷습니다. 그리고 시골에서는 자연스럽게 채식위주의 제철에 나는 것 들을 먹고 사니 건강해 지는 거 같아요.
제가 직접 키우는 제철 과일과 음식들, 사시사철 이것들로 인해 건강은 자연스럽게 관리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화장품은 거의 쓰지 않아도 피부가 매끄러워요, 나이보다 젊어 보이지 않나요.(웃음~) 가끔 쌀뜨물로 세안하고, 매실주를 직접 담가 스킨 대용으로 이용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경제인연합회 참사 시절, 건강보험 탄생에 참여 했고, 마포로 독립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아버지의 병원 생활과, 어머님의 중풍 등을 수발하게 된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관여 했던 일이었지만 건강보험은 참 잘 만들어졌다 하는 얘기를 하면서, 지금은 어머니가 노인요양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으니, 사람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같단다.
그녀를 만나고, 뒤돌아 예당저수지를 바라보면서 내려오는데 치매로 어린아이가 되었던 아버지의 딱딱해진 변을 손가락으로 파내면서도 즐겁더라고, 자기에게 이런 기회를 준 아버지에게 고마웠다는 얘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눔과 행복이 바로 내 앞에 있다는 사실과 어머니를 위해 본인이 건강해야 된다는 말과 함께 떠돈다.
짧은 인터뷰이지만 그녀의 나눔의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였으면 좋겠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사내기자단 / 박현영
그녀에 대해 더 알고싶다면
박 효 신
약력 - 1948년 서울 출생 -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 - 한국일보 기자, 전국경제인 연합회 참사, 여성신문
편집 부장,한국광고주협회 상무, 온양민속박물관장 역임.
저서 - 여자,아름다운 성공을 위하여 - 바람이 흙이 가르쳐 주네 - 네이버 파워 블로그 “풀각시 뜨락”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