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인기 그룹‘조용팔과 혼수상태’ 를 소개합니다.”이처럼 철 |
국내 개봉 당시 폭발적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으나, 일단 한 번 본 사람들은 두고두고 이야기를 하는 수작이지요. 제 개인적으로도 21세기에 본 영화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작품입니다.
한 병원의 남자 간호사인 베니그노(하비에르 카마라 분)는 교통사고로 코마에 빠진 발레리나 알리샤(레오노르 발팅 분)를 헌신적으로 돌봅니다. 그는 의식 불명 상태인 알리샤를 간호하면서 사랑하는 연인에게 속삭이듯이 자신이 경험한 모든 일을 시시콜콜 말해줍니다.
어느 날 무용공연을 보러 갔더니 옆자리의 남자가 공연에 감동해서 울더라는 이야기까지 해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병원에 우연히도 무용공연의 객석에서 울던 남자 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 분)가 찾아옵니다. 그가 사랑하던 여성 투우사 리디아(로사리오 플로레스 분)가 투우 도중에 소에 받쳐서 코마에 빠져 식물인간이 됐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목소리로 “희망이 있느냐” 고 묻는 마르코에게 의사 역시 안타까운 목소리로 답합니다.“ 의학적으론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대뇌피질은 손상됐지만 뇌간은 정상이기 때문에 호흡과 수면, 그리고 기계적으로 눈을 뜨는 것은 가능하지만 의식이 돌아오진 않습니다.”
베니그노는 연인의 불행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마르코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두 사람은 동질감을 느끼며 친구가 됩니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당초 베니그노가 발레리나인 알리샤를 흠모했고, 알리샤에게 사고가 난 후에 간호사를 자원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저널리스트인 마르코는 취재를 위해 투우사 리디아를 만났다가 사랑에 빠졌습니다.
베니그노는 마르코에게 알리샤와 결혼하겠다고 말합니다.
“우린 보통의 부부보다 더 잘 지내고 있어요.” 마르코는 그 말을 듣고 불 같이 화를 냅니다.
“ 알리샤는 식물인간이야.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란 말이야.”
마르코가 이같이 화를 낸 것은 베니그노의 우매함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사랑의 맹목성을 향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르코는 리디아의 병상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자신에 대해 화를 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르코는 리디아가 사고 직전에 자신에게 하고 싶다던 말이 “옛사랑과 재결합하겠다”는 것임을 알게 되자, 그 옛사랑에게 리디아를 맡겨두고 떠납니다.
몇 개월 후 신문을 통해 리디아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 마르코는 병원에 연락했다가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의식불명 상태인 알리샤가 임신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베니그노가 강간 혐의로 감옥에 들어갔다는 것이었지요.
마르코는 베니그노를 감옥에서 빼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알리샤가 코마상태에서 깨어나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알리샤의 가족 등 주변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베니그노에게 숨기길 원했고, 베니그노의 변호사조차도 알리샤가 죽었다고 말합니다. 알리샤를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어 하던 베니그노는 사랑하는 이와 일체가 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Talk to her’는 주제를 잘 암시하고 있습니다. 설령 사랑하는 이가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고 할지라도 끊임없이 사랑을 속삭이는 것, 그것이 죽음과 이별의 고통을 넘어서게 하는 진정한 삶의 자세라는 것이지요.
마르코는 베니그노의 무덤에 꽃을 바치며 말합니다.
“ 알리샤는 살아있어. 자네가 살린 거야.”
이 작품은 이렇게 뚜렷한 멜로드라마의 줄거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예술영화의 품격을 과시합니다. 알모도바르 감독 특유의 유머러스한 초현실주의는 영화 속의 영화‘애인이 줄었어요’에 잘 표현돼 있습니다. 몸에 착 달라붙는 진홍빛 옷을 입은 리디아의 투우 장면과 의식 불명상태인 알리샤의 눈부신 알몸을 통해 육체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탐미적으로 풀어냈지요.
무엇보다 세계적인 무용가 피나 바우쉬가 직접 출연한 무용극이 이 영화의 앞을 열고 뒤를 닫는 것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구성입니다.브라질 출신의 가수 카에타노 벨로소가 직접 부른 노래 ‘비둘기(Cucurrucucu Paloma)’ 는 사랑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절실한 울림으로 전합니다.
이 영화에서 모든 장면을 놓쳐도 마르코가 무용극을 보다가, 혹은 ‘비둘기’ 를 듣다가 눈시울이 붉어지는 장면은 꼭 눈여겨보기 바랍니다. 사람의 생애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랑의 힘이라는 것을 그의 눈물을 통해 새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재선/ 문화일보 기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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