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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산, 꽃 그리고 전등사, 그곳에서 잠시 흐름을 멈추다

 

 

 

 

  

          자기가 믿는 종교를 떠나서 종교시설은 사람들에게 저절로 경건함을 느껴지게 하는 장소가 된다. 각 종교 시설

          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는데, 불교에게서 그 특징을 찾으라면 자연과의 조화로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절이 산 속에 자리 잡고 있어 절에 가려면 대부분 약한 하이킹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혹자는 조선의

          억불정책 때부터 절을 산 속에 짓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지은 지 무려 천 칠백여년 되는 강화도의 전등사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모양이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신라에 불교를 전하러 가던 진나라의 아도화상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그때가 381년이니 실로 엄청 오래 된 절이라 하겠다. 그러고 보면 강화도는 역사책 처음부터 자주 등장한다. 단군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마니산이 있고, 전등사 가는 길에 만나는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진다. 또 팔만대장경도 강화도에서 만들어서 해인사에 보관했다고 하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정족사고도 있다.  그리고 강화도 곳곳에는 과거 해상경계를 담당했던 진과 돈대가 여러 군데 존재해서 외세침략에 대비하여 그 중요도를 짐작케 한다.

 

전등사는 김포 신도시를 지나 초지대교를 건너 새로 생긴 길을 따라가면 금방 도착한다. 아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 올라갈 수 있는데, 조금 걸어 올라갔더니 이럴수가! 절 바로 밑에 또 주차장이 있다. 많이 걷기 힘든 분은 위쪽 주차장을 이용해도 좋을 듯하다(주차 요금은 같다).

 

 

 

 

일주문이 없는 전등사는 삼랑성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듯 길게 쌓여 위엄을 자랑한다. 곧 남문으로 올라오는 길과 만나서 수령이 오백년이 넘은 은행나무 두 그루와 만나게 되는데, 이 은행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게 된데 전해오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예전에 세금으로 이 은행나무에서 열리는 은행 스무 포대를 갖다 바쳐야 하는데, 기껏 모아봐야 열 포대 밖에 생산이 안 되었단다. 그래서 고민을 하던 중 전등사 스님 세 분이 은행이 열리게 하는 기도회를 연다고 하여 다들 모여서 구경을 하는데, 하늘에서 빛이 번쩍 하더니 스님은 보살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징수하던 관리들은 깨달음을 얻고 이후 은행나무에선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석가탄신일이 다가와서 화려한 등으로 장식해 놓은 대조루 아래를 지나서 경전 마당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대웅보전이 보인다.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된 다소 작은 건물이지만, 광해군 때 재건되었다고 하는 조선 중기 건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공포는 화려한 다포계 방식이며 멀리 뻗은 팔작지붕과 우람하고 우뚝 선 살짝 배흘림기둥이 대웅보전을 더 아름답게 보여주게 한다. 이 대웅보전의 추녀 밑에는 아주 유명한 나녀(벌거벗은 여자)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여기에 전해지는 이야기 또한 재미있다.

 

광해군 때 대웅보전을 지으면서 도편수(목수의 우두머리)가 인근 주막의 주모와 바람이 났는데, 도편수는 틈틈이 돈이 생기면 다 주모를 주고 일이 끝나면 같이 살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일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이 주모가 돈을 전부 들고 야반도주를 한 것이다. 허탈해진 도편수는 각 추녀 밑에 모두 다른 모양의 나녀를 조각해 두었다는데, 그 이유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단다. 하나는 벌거벗어 부끄럽게 하여 그 주모를 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처님을 모시는 건물의 지붕을 받치게 함으로 지은 죗값을 하게하고 자신은 용서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대웅보전 옆에는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이 위치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여러 부처가 있고, 각 부처가 관장하는 영역이 다르다. 약사여래는 이름에서 짐작하듯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 해주고 재앙으로부터 구원해준다고 한다. 약사전의 건축 양식은 대웅보전과 거의 흡사하다.

 

 

 

 

약사전 옆에 위치한 건물은 명부전이다. 명부전 입구를 들어서면 사천왕이 좌우에 눈을 부라리며 서 있다. 그리고 지장보살이 가운데 있으며, 주변으로는 죽은 이를 심판하는 여러 왕들이 모셔져있다. 명부전은 모든 사람들이 극락에 가기 전까지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복장마저 일반 수도승의 모습을 한 지장보살 이야기처럼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비는 곳이다. 그리고 흔히 죽은 이를 심판한다고 하면 염라대왕만 알기 쉬운데, 여러 왕들을 거치면서 여러 방면으로 죽은 이를 심판한다고 한다. 유명한 웹툰 “신과 함께(저승편)”을 보면 재미있게 잘 나와 있다.

 

 

 

 

 

약사전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삼성각이 나온다. 삼성각은 산신각(산신), 독성각(나반존자), 칠성각(북두칠성)을 하나로 합친 건물이다. 부처를 모신 절에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는 하다. 예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종교는 불교가 전부가 아니라 도교나 유교 등 많은 철학이 같이 들어와 있었는데, 여타의 종교가 그러하듯 조금씩은 기존 사상과의 융합을 통해 뿌리 내렸고, 삼신각도 그 중 하나이다. 얼마 전에 가 본 청평사에서도 그렇고 보통은 주된 건물들보다 조금 위에 위치하더라.

 

 

 

 

 

시선을 뒤로 돌려 올라왔던 대조전을 보면 옆에 종루가 있다. 기존에 있던 전등사 범종은 보물 제393호이기 때문에 종각에 따로 옮기고, 예불 때 실제로 치기위한 범종을 따로 종루에 두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면 종 뿐만아니라 다른 것들도 보인다. 바로 북(법고)과 나무로 만든 물고기(범어)와 청동으로 만든 구름모양의 판(운판)이 더 보인다. 불교에서는 소리를 통해서도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데 법고는 땅에 사는 중생을 범어는 물에 사는 중생을 운판은 하늘을 나는 중생을 범종은 지옥에 신음하는 중생을 구한다고 한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건물 아래쪽에는 절 건물 같지 않은 동굴(?)이 보이는데 무설전이라 하였다. 하나의 갤러리처럼 운영되는 이곳은 불교를 주제로 한 여러 미술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과거부터 불교는 미술의 발전을 낳았다. 건축으로, 조각으로, 회화의 방법으로 미술이 발전하는 가운데에는 불교의 영향이 컸다. 최근에는 이렇게 전등사에서 미술과 불교가 다시 만난 것으로 보였다.

 

 

 

 

사실 글의 처음에도 밝혔듯이 자연과 함께 위치한 전등사에서 볼거리는 건물들만이 아니었다. 입하가 코앞인 5월의 따스한 봄날, 강화도는 때늦은 벚꽃과 목련이 이제야 꽃비를 내렸고, 진달래와 앵두나무 등 알록달록 꽃들이 지천에 피어있어 봄 소풍 기분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주차장 인근에는 인삼으로 유명한 강화도답게 인삼막걸리와 도토리묵, 산채비빔밥 등 자연식 먹을거리로 했고, 주변 동막 해수욕장과 강화도 곳곳에 위치한 진과 돈대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다 구경을 하는 기분도 상쾌했다. 요즘처럼 따뜻한 봄날엔 가벼운 등산과 알록달록 꽃구경, 고대 건축물 구경이 한꺼번에 가능한 전등사로 당장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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