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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TV&영화 속 건강

‘굿닥터’ 주원의 서번트 신드롬

 

 

 

 

 

 

 

 

“요즘 성균관대 출신 연기자들이 크게 주목을 받더군요. 문근영이야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알려져 있던 배우지만, 송중기와 이민정 등의 연기자는 대학 생활이 자신의 연기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몇 년 전 성대에서 방송 연기를 가르치던 원종배 교수(전 아나운서)를 만났을 때 그런 덕담을 했다. 원 교수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가 직접 가르쳤던 학생 중에 주원이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성실하고 열정적인데다가 표현력이 뛰어나서 앞으로 대성할 겁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인기를 끌던 시점이었다. 당시 신인 연기자였던 주원은 그 드라마에서 주인공에 맞서는 안티 히어로 캐릭터를 뛰어나게 표현해 주목을 받았다. 그 후에 ‘오작교 형제들’ ‘각시탈’ ‘7급 공무원’ 등에서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주며 인기몰이를 했다. 최근에는 예능 쇼 프로그램인 ‘1박 2일’에까지 나와서 시청자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심었다. 

 

 

 

 

KBS가 현재 방영하고 있는 20부작 미니 시리즈 ‘굿 닥터’는 주원이 지적 장애인 연기를 한다고 해서 방송 초기부터 화제가 됐다. 역시 예능 쇼 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에 나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배우 주상욱과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여배우 문채원이 함께 나오는 드라마다. 

 

주원은 한 대학병원 소아외과 레지턴트(전공의) 1년차인 박시온, 주상욱은 소아외과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부교수인 김도한, 문채원은 같은 과 펠로우(임상 강사) 2년차 차윤서 역할이다. 여담으로 언급하면, 주연배우인 주원과 주상욱이 같은 성씨인 것처럼 보이지만, 주원의 본명이 문주원이니 실제론 다르다. 본명으로 따지면 주원은 문채원과 같은 성씨인 것이다.  

 

젊은 남녀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가 항용 그렇듯이 작품도 연애담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제목이 분명하게 드러낸 ‘굿닥터’를 찾기 위한 여정이 주된 테마임에 분명하다.  

 

‘굿 닥터’는 우리 일상에서 보기 힘든 극적 설정을 해 놨다. 지적 장애가 있어서 말을 더듬고 사회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청년(주원)을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대학병원의 레지던트로 설정한 것이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지만 극중에서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판타지를 충족하는 것이라면, 이 드라마는 그것을 위해서 과감한 시도를 한 셈이다. 그게 성공할지, 실패할지 여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시청률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보면 전자 쪽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적 장애가 있는 박시온은 서번트 증후군을 갖고 있다. 서번트 증후군은 영화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명연기로 선보여 널리 알려진 바 있다. 뇌 기능 장애로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인물이 기억, 암산, 퍼즐이나 예술 등 특정 분야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이는 것을 이른다. 시온은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의사로서 천재적인 실력과 함께 환자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어서 자신의 몸을 던지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는 굿 닥터인가. 드라마는 이 질문을 시청자들에게 던진다. 

 

시온은 자신의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려 들지만, 그것이 강박 증세 때문인지, 의사 본연의 신념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그는 어린 나이의 환자들과 잘 어울리지만,  협업을 해야 하는 동료 의사들과 의사소통을 잘 하지 못해서 실수를 연발하고 미움을 받게 된다. 그가 과연 의사로서 제대로 성장해갈 수 있을까. 

 

 

 

 

의대 수석 졸업자인 김도한은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는 의사다. 그는 무능력한 과장 대신에 소와외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처리하는 위치에 있다. 그는 지적 장애가 있는 시온이 의사로서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보고 냉정하게 대한다. 그러면서도 시온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그를 구제함으로써 기회를 주는 역할을 한다. 그는 시온을 볼 때마다 지적 장애를 겪다가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동생이 떠올라 괴로워한다. 

 

도한은 병원 내에서 주목받는 유망주이지만, 의료 행위를 돈벌이나 출세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세력과는 결탁하지 않는 정의감을 보여준다. 펠로우인 차윤서는 이 드라마에서 고뇌하는 의사 역할이다. 어린 아이 같은 시온을 곁에서 보살피고 도와주는 멘토 역할을 하면서도 스스로는 의사로서 한계에 부딪치며 늘 무력감과 싸우는 인물이다. 윤서는 과연 스스로 소망하는 대로 굿 닥터가 될 수 있을까.

 

이 드라마는 굿 닥터는 과연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하는 지를 성찰하고 있다. 인간적 온기와 실력을 갖췄으나 지적 장애가 있는 시온이 갖은 시련을 이겨내고 의사로서 성장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적 장애는 그 자체로 질병이 아니지만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고 다른 합병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대개 언어 지체와 인지, 학습 능력의 문제가 조기에 나타난다. 부분의 정신 지체에서 지적 기능 자체는 호전되지 어렵지만 좋은 환경을 제공할 경우에 적응 수준은 향상될 수 있다. 가족과 지인들이 환자에 대한 기대를 유지시키면서 환자의 능력과 자존감을 향상시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굿 닥터’의 시온은 어린 시절에 자신을 끝없이 사랑해 준 형이 있었기에 세상에 대한 온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서번트 신드롬에 의한 그의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애쓴 멘토 의사 최우석(천호진 분)이 있기에 의학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과연 시온은 도한, 윤서와 함께 의사의 참 모습을 구현해 갈 수 있을까. 그 결과는 아직 모르지만, 이들 세 사람이 굿 닥터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아파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아래에 소개하는 것은 의사 시인들이 쓴 시 작품들이다. 김춘추 전 가톨릭 의대 조혈모세포 이식센터 소장의 ‘요셉 병동’은 의사로서의 고뇌를 담고 있다. 백혈병 치료의 권위자인 그는 희귀질환에 시달리는 어린 환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절절히 표현하고 있다. 얼핏 무력감을 토로하는 듯한 그의 작품에서 측은지심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아가야, 온 몸에

흰 피만 불어나는 아가야

 

나는 여윈 너의 엉덩뼈에

쇠못을 박고

밤새 영안실 모퉁이에 기대 우는

귀뚜라미이거나 어둠을

보듬고 눈 뜨는 올빼미가 된다

 

수천 년도 더 묵은 전생에

이차돈의 업 같은 걸 혼자 쓰고

하얀 피만 도는 하얀 비둘기야

아무래도 나는 한 조각 꿈도

못 푸는 요셉이거나 황혼에

쐬주나 까는 애비일 뿐이구나

 

아가야, 뵈지 않는 쇠못을

보이는 가슴마다 꽁꽁

박고 간 아가야

 

 

박언휘 시인은 내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다. 그의 ‘동굴 탐사’는 모든 어려움에도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은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달 표면에서 시료를 채취하던 ‘닐 암스트롱’이 되어

내기경 집게로 검사조직을 잘라 담으며

어두운 거리에 촛불을 밝히는 마음으로

희망의 동굴에 조용히 사랑과 생명의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 ‘동굴탐사’ 일부

 

                                                                                                                              글 / 문화일보 장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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