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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TV&영화 속 건강

여배우 졸리의 선택과 유방암

 

 

 

 

 

         

 

 

미국 하와이대학교에서 열린 미래학 워크숍에 참가하느라 최근 한 달 간 호눌룰루에 머물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변이 있는 와이키키 지역은 비가 많이 오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가 오더라도 금방 그치기 때문에 지역민들은 대개 우산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어느 날 학교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비를 만났다. 곧 그치리라 여기고 버스 정류장에서 비를 그었는데, 왠걸, 이게 폭우로 변해서 꽤 오랜 시간 쏟아져 내렸다. 거센 빗줄기를 피하기 위해 정류장 옆의 편의점에 들어갔다.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 선 채로 먹으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신문, 잡지 가판대를 둘러보았다.

 

그 때 한 잡지의 표지에서 눈에 띈 게 할리우드 배우 커플인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사진이었다. 관련 기사는 졸리가 유방암을 예방하기 위해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으며, 피트는 그 과정에서 졸리를 극진히 돌봤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의 제목은 '성인 피트(Saint Pitt)' 였다. 피트의 헌신을 극존칭으로 칭찬하고 있었다. 

 

피트는 오랫동안 연인으로만 지내 온 졸리와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인생에서 ‘폭우’를 만난 졸리의 공식적 남편이 됨으로써 졸리와 자녀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싶어서일 것이다. 호사가들에 따르면, 졸리는 피트에게 결혼식 때 그의 친구 중 일부는 초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피트와 절친한 감독 겸 배우 쿠엔틴 타란티노, 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등을 하객 명단에 올리지 말라는 것. ‘악동’이라는 별명을 지닌 타란티노 등의 장난으로 식장이 시끄럽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피트는 절친을 부르지 말라는 이야기에 심기가 불편하지만 졸리의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기 위해 들어주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유방절제술, 졸리의 '용감한 선택'

 

졸리는 지난 5월 14일자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나의 의학적 선택(My medical choice)'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유방 절제수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나의 어머니는 거의 10년간 암과 싸우다 56세에 돌아가셨다. (MY MOTHER fought cancer for almost a decade and died at 56.)’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는 졸리의 기고문은 쉽고 분명한 언어로 자신이 왜 유방 절제술을 받는 결정을 내렸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의 글을 영어 원문으로 읽어보면 졸리가 얼마나 명징한 의식의 소유자인지 알 수 있다. 기고문에 따르면, 졸리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이 유방암과 난소암 발병 위험을 증가시키는 'BRCA1'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BRCA1' 돌연변이 탓에 유방암 발병 가능성은 87%, 난소암 가능성은 50% 수준이었다. 졸리는 이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자신처럼 어머니를 일찍 잃는 슬픔을 주지 않기 위해 과감한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진 후 졸리가 대중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은 독일 베를린에서 피트가 출연한 영화 시사회장에서였다. 졸리는 이날 가슴이 파인 흰색 드레스를 입고 모습을 드러냈다. 굳이 호사가가 아니더라도 수술을 받았다는 졸리의 가슴 부분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겉으로 보이는 졸리의 가슴은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졸리가 이미 기고문에서 자세히 설명한 대로  그녀가 받은 유방절제술은 단순 절제가 아니라 BRCA1 유전자가 발견된 조직을 절제하고 그 부분에 보형물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덕분에 유방의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졸리의 선택이 준 메시지

 

졸리의 이야기가 한국에도 퍼지면서 예방적 유방절제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졸리의 선택에 대해선 용기 있다거나 불가피했다는 쪽이었다. 다만  유전자 돌연변이도 없고 암 발생 위험도 역시 상대적으로 낮은데도 졸리처럼 예방을 위해 유방을 절제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즉 ‘졸리의 메시지에 너무 졸릴 필요는 없다’는 것. 그런 지적이 맞지만, 다음과 같은 졸리의 메시지는 기억되어야 한다. 

 

 ‘더 많은 여성들이, 그들이 무엇을 믿고 그들이 어디에 살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좋은 예방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It has got to be a priority to ensure that more women can access gene testing and lifesaving preventive treatment, whatever their means and background, wherever they  live.)'


 국내 의학자들도 유방암 예방 치료를 위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전자 변이 여부를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가족력이 있는 여성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문제는 검사 비용이다. 졸리는 유전자 검사에 3000달러(345만 여원)가 들었다고 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에겐 이 돈이 부담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많은 여성들에겐 검사 비용으로 쓰기엔 큰돈임에 틀림없다. 전세계적으로 유방암을 줄이는 운동을 하는 이들은 이 검사 비용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를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졸리의 ‘의학적 선택’을 통해서 유방암 조기 검진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된 것은 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유방암학회에 의하면, 40세 이후의 여성은 1~2년 간격으로 유방을 촬영할 필요가 있다. 35세 이후 여성은 2년 간격으로 의사에 의한 임상 진찰을 받아야 한다. 30세 이후 여성은 매달 유방 자가 검진을 하는 게 좋다. 자가검진법은 유방암학회 홈페이지 등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졸리의 선택이 준 가장 큰 메시지는 인생에서 비를 맞고 있는 사람에게 주변 사람들이 우산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 졸리는 기고문에서 배우자인 피트의 배려가 자신에게 큰 힘이 되었음을 상기하며 이렇게 적었다. 

 

‘그러기에 만약 당신의 아내 혹은 여자친구가 이러한 과정을 겪고 있다면, 당신들은 그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So to anyone who has a wife or girlfriend going through this, know that you are a very important part of transition.)'

 

                                                                                                                                         글 / 장재선 문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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