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어릴적 도둑질로 평생 계란을 못먹는 사연

 

 

종미네 집으로 넘어가는 밭둑에 새로 꽃피운 조팝나무가 가득하다.

꽃 더미를 헤집으며 혼자 놀던 나는 기겁하여 놀라 뒤로 움찔 물러섰다.  갑자기 암탉 한 마리가 날개를 치며 튀어 달아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놀란 건 그 다음이다. 덤불 밑의 우묵한 바닥에 여섯개의 알이 하얗게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종미네 닭이 낳은 게 틀림없었다. 제 둥우리를 두고 왜 여기다 낳았을까?'


 '종미네 집에 가서 알려줄까. 아냐, 이런 데다 낳은 걸 꼭 종미네 알이라고 할 순 없지.

 매일 하나씩 나을 테니 다음에 가져가?'

 

절반인 셋만 가져가기로 작정한 나는 살그머니 집어 들어왔다. 온기가 가득했고, 옷 앞자락에 주섬주섬 담았다. 갑자기 나타난 종미 아버지의 우악스런 손아귀에 뒷덜미를 움켜잡히는 섬뜩한 긴장 속에서 몇 걸음 옮기던 나는 끝내 발길을 돌려 알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말았다.

집으로 오긴 했으나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로지 아까 본 여섯 개의 달걀뿐이었다. 어두워지길 기다려 다시 갔다. 조심하며 알이 있을 곳을 더듬었다. 밤인데도 암탉은 알을 꼭 품고 있었던 것이다. 억센 부리로 손등을 콕콕 찍으며 버티는 어미를 밀쳐내고 알 여섯개를 몽땅 뺏어 와버렸다. 조심스레 가져온 알을 헛간의 빈 항아리 안에 숨겨놓았다.


이튿날, 평소보다 일찍 서두른 나는 남들보다 앞서 학교로 향했다. 학교 앞 가게에서 돈 대신 달걀도 받아주는 걸 알고 있었다. 가게엔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것들이 항상 쌓여있다.

  어제부터 맨 앞에 보이는 풍선에서 눈이 떠나질 않았다. 풍선 뽑기.


남들이 못 뽑고 남은 커다란 풍선 몇 개가 대롱대롱 매달려 나를 꼬드긴다. 종이판에 동그란 표시가 있고 그걸 뜯으면 뒤에 적힌 번호가 씌어 있는데 그 해당번호 풍선을 갖는 것이다.

 

달걀 값 대신 받은 돈을 다시 건네준 나는 당당하게 숫자판을 떼어냈다. 하지만 가게 아주머니는 한쪽 귀퉁이에 보일 듯, 말 듯 붙은 초라한 풍선을 내주는 게 아닌가. 순간 난 멍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난 무엇에 단단히 홀린 것처럼 하루 내내 공부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야 난 알게 되었다. 주인이 미리 뒤의 번호를 들춰본 다음, 좋은 것의 번호는 미리 다 뜯어내 버렸다는 것을….


풍선이 아쉽긴 해도, 넉넉한 돈으로 모처럼 군것질까지 즐겼으나 턱없는 행복은 단 하루도 못 채우고서 깨졌다. 집에 돌아와 책 보따리를 풀어놓자마자 종미 엄마가 쫓아온 것이다.


" 너 종미네 달걀 훔쳤어? "


엄만  '아니오.' 란 당당한 대답이 나오리라고 철석같이 믿었을 거다. 확신에 찬 그 눈빛에 눌린 내가 죽어가는 소리로 부인을 했지만 이미 증거를 잡고 찾아온 종미 엄마의 다그침을 견뎌내기엔 너무 어리숙했다. 엄마한테 손목을 틀어 잡힌 나는 정신 못 차릴 만큼 두들겨 맞았다.

이튿날 엄마는 이웃동네까지 다니며 수탉 있는 집들을 찾아 알을 모아다 종미네를 주었고 세이레, 이십일을 지나 종미네 암탉은 검정, 노랑, 갈색 등 여러 색깔이 섞인 병아리 열다섯 마리를 깠다.

흔한 씨암탉 한 마리 못 키우는 형편 때문만 아니어도 그 뒤로 난 계란을 입에 대지 않는다. 먹는 그대로 되올라 오니 어쩔 수 없었다. 그 후 40여 년이 흘렀고 또 다시 조팝꽃 피는 계절이다. 지금도 내 동심의 흉터에 새살이 돋기는커녕 천형처럼 깊이 남아 지워지질 않고, 모르긴 해도 생명 다하는 날까지 난 달걀을 입에 넣지 못할 것 같다.

 

진상용/ 인천광역시 부평구     


로그인없이 가능한 손가락추천은 글쓴이의 또다른 힘이 됩니다


 

 

 건강천사 블로그는 네티즌 여러분의 참여로 만들어 집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소중한 글과 사진을 보내주세요. 

    채택되신 분께 "월간 건강보험 소식지""건강천사 블로그"에 게재해 드리며 소정의 고료를 드립니다.

    [보낼곳]

    우편접수 : 121-749 서울 마포구 염리동 168-9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실 간행물 담당자 앞

    이메일 접수 : jemi0945@naver.com 

    필자의 성명, 전화번호, 주소, 주민등록번호, 계좌번호를 반드시 기재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