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럽게, 엄지손가락을 실로 동여맨다. 어디서 본 가락대로, 일단 바늘을 콧김으로 소독한다고 소독 |
더부룩한 속을 부여잡고 소화제만 연거푸 먹어보지만, 소화제조차 얹히 공간 위에 더 얹혀졌는지 전혀 풀어주지도 못하고 머리조차 띵해졌다.
어린시절, 내가 체할라치면 할머니는 내 손가락을 따주셨다. 내 엄지손가락에 실을 동여매고, 바늘쌈지 안에서 제일 깨끗한 바늘 하나를 골라. 머리카락 속에 한번 쓱쓱 문지른 후 콧김을 쐬어 가차없이 손가락을 찌르셨다. 그럴라치면 그 시커먼 피와 함께 속이 뻥 뚫린 듯하던 신기한 경험.
그 경험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라 할머니 흉내를 내 보려는데 차마 내가 내 손가락을 못 따고 있는 것이다.
"아, 아, 싫어, 싫어…."
뭘 어떻게 먹었는지 단단히 체해 병원까지 다녀왔지만, 열도 좀체 내리지 않고 끙끙 앓는 보던 할머니가 바늘 쌈지를 챙기셨다.
"조금만 참아봐, 그럼 속이 시원해질 테니…."
아니, 속이 답답한데 왜 애꿎은 손가락을 따려는지, 차라리 배 어느 부분에 침을 꽂는 것이라면 이해하겠는데, 그 생뚱한 할머니의 처방에 적잖이 당황했다. 어쨌든, 어린 나는 할머니의 이 원시적인 처방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서 온갖 발버둥을 다 쳤지만 결국 사촌형들에게 붙잡혀 할머니께 손가락을 따이고 말았다.
"앙앙, 앙앙…."
몸도 아픈 데다 울고불고 하느라 정신이 없던 터라, 사실 아픈 줄도 몰랐었다. 손가락에서 나오는 시커먼 피가 무섭기도 하고 뭔가 당한 것 같은 분한 마음에 한참을 울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라? 갑자기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해지고 한참 오르던 열도 잡히는지, 머리가 개운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안 한다고 발버둥치던 방금 전의 내 모습이 생각나고, 할머니가 해주신 처방이 날 낫게 했다는 것을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아 일부러 더 아픈 척하면서 할머니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 후, 난 속이 더부룩하거나 체한 것 같으면 할머니에게 손을 따달라고 했고, 할머니는 그런 내가 신기한 듯 웃으시면서 늘 하던 대로 제일 깨끗한 바늘 하나를 꺼내 내 손을 따주셨다.
이젠, 체할 때마다 내 손을 따주시던 할머니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맞벌이하던 부모님 대신 어린 나를 돌봐주시던, 내게는 엄마 같던 할머니가 총총히 떠나시던 날, 다 큰 손자는 되바라지게도 자신의 바쁜 일상을 핑계로 제대로 찾아 뵙지도 못했다.
따려다 못 따, 피부의 표피만 긁어낸 엄지손가락의 벌겋게 부은 자리를 보니, 왠지 마음이 먹먹해지고 가슴만 더부룩해진다. 그 더부룩함은 제대로 따지 못한 엄지 손가락 탓만은 아니었다.
김동은 / 서울시 송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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