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강/맞춤형

인생이라는 여정

   

 

 

 

 

 

 

여행을 많이 한 삶이 행복하다고 한다. 보고 듣는 것이 많으니 견문이 넓어지고, 거기에 즐거움까지 더하니 여행은 행복의 요소를 두루 갖춘 셈이다. 요즘은 럭셔리(?)한 해외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국내 여행은 왠지 드러내 놓고 자랑하기조차 민망한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흔한 국내 여행도 맘껏 못해봤으니 집식구에게도, 두 아들에게도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언젠가 언젠가’로 위안을 삼지만 미안함을 훨훨 날려줄 날이 올지는 여전히 ‘글쎄’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고속도로를 탄다. 풍경이야 국도만큼 아기자기하지는 않지만 속도를 내려면 역시 고속도로가 제격이다. 요즘은 자동차가 워낙 늘어나고, 여행자도 많아 고속도로 사정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건 국도도 마찬가지다. 속력을 내고 싶으면 보통 추월선(1차선)으로 들어선다. 아무래도 추월선은 상대적으로 차가 적으니 주행선보다 속력을 낸다. 한데 추월선을 달리다 보면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이다. 뒤차가 바짝 따라오는 것 같아 더 속력을 올리게 되고, 목덜미도 뻐근해 진다. 이쯤되면 고속도로 주위 경관은 아예 의식조차 안된다. 그럴땐 슬며시 주행선으로 차선을 바꾼다. 속도를 조금 늦췄을 뿐인데 많은 것이 달라진다. 편안함이 다가오고, 주위의 신록과 단풍도 비로소 시야로 들어온다.

 

인생은 긴 여정이다. 출발지와 목적지는 다를지언정 어딘가로 끊임없이 다가가려는 게 삶이다. 그 목적지엔 부(富)도 있고, 명예 인기 권력도 있다. 누구는 그 목적지에 빨리 가려고 성급히 속력을 내고, 누구는 쉬엄쉬엄 가려고 속도를 조절한다. 물론 속도를 낸다고, 속도를 조절한다고 누구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이 원래 그런 거다. 가까워지는 듯하면 다시 멀어지고, 멀어지는 듯하면 어느새 가까워지는 게 인생의 목적지다. 그러니 인생이 신기루다.

 

 

 

  

 

흔히 ‘여행은 과정’이라고 한다. 목적지를 어디로 하느냐보다, 거기에 어떻게 도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빨리 가기로야 비행기만한 게 없다. 하지만 비행기는 때론 여행을 너무 싱겁게 만든다. 그래서 누군가는 일부러 배를 타고, 심지어 걸어서 세계일주를 한다. 삶 또한 과정이다. 언제나 한 길로만 다니면 익숙하고 안전하기는 하겠지만 낯선 것을 알아가는 인생의 묘미는 적어진다. 그러니 가끔은 나만의 길을 걸어가야봐 한다. 삶은 수시로 빠름과 느림, 이 길과 저 길의 갈림길에 선다. 

 

노란 숲 속에 두개의 길이 갈라져 있었네.

유감스럽게도 나는 두개의 길을 갈 수 없었기에

하나의 여행자가 되어, 오랫동안 서 있었고

한개의 길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내려다 보았네.

​그 길이 덤불 속에서 구부러진 곳까지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은 ‘못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배어있다. 미지는 공포이자 동경의 대상이다. 삶은 속도 갈등, 방향 갈등의 연속이다. 어디로 갈까, 얼마나 빨리 갈까가 늘 고민이다. 삶의 모습이 각자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이유다. 

 

 

 

 

 

삶은 속도보다 방향이 먼저다. 우주선도 속도보다 좌표가 우선이다. 잘못된 좌표에 가속도가 붙으면 그건 바로 재앙이다. 인생의 여정에서 어디로 향할지는 여행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 여정의 끝에 선(善)이 있고, 중간중간에 더불음이 있는 그런 길이 더 좋지 않을까는 싶다. 내가 가는 길이 향기로워 사람들이 더불어 걷는 그런 길, 삶이 힘들고 꼬일 때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기보다 스스로의 내면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며 걷는 그런 길 말이다. 

 

바다를 가든 산에 오르든, 국도를 택하든 고속도로를 달리든 그건 여행자의 맘이다.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도 운전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긴 여정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깨달았느냐는 질문에 답할 만큼은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 인생이란 풍경을 즐기려면 적당히 속도를 낮추는 게 좋다. 물론 속도보다 가는 방향이 바른지는 수시로 돌아봐야 한다. 행복한 삶은 선한 삶이다. 행복한 삶은 바른 길을 걷는 삶이다. 그런 삶이 진정 건강한 삶이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