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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절망에서 피어난 꽃, 프리다 칼로의 행복한 외출

 

 


 “내 인생에 두 번의 대형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전차 사고이며, 다른 하나는 디에고 이다.”

 

 

 

 

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 프리다 칼로를 아시나요? 짙은 일자 눈썹, 거뭇거뭇한 수염자국 그리고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눈빛. 그림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을 보고 있으면 그녀의 인생을 바꾼 두 번의 대형사고가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제법 선선해진 가을의 시작. 프리다 칼로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전시회장을 들어가기 전에 제일 먼저 보이는 파란 집입니다. 멕시코 코요아칸에 있는 프리다 칼로의 집을 형상화 한 것입니다. 파란 집은 프리다 칼로의 부모님 집이자 1907년 프리다가 출생한 곳입니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로 이민 온 독일 출신 사진작가인 아버지와 멕시코 태생인 어머니 사이에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생애의 대부분을 이 파란 집에서 보냈고 그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는 1929-1954년에 살았습니다. 집 대문마저도 예술가의 혼이 가득해 보이는 파란 집. 형형색색 컬러풀한 멕시코에 있는 프리다의 집을 직접 방문하는 느낌입니다. 이제 파란 집 문을 열고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프리다 칼로 작품의 이해를 돕는 영화 ‘프리다’ 상영을 통해 그녀의 인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제5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본선 진출작으로 전설적인 멕시코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의 일생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녀의 청소년기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작품, 멕시코 음악과 배경이 잘 녹아 있었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여섯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방안에서만 갇혀 지내야 했고 오른쪽 다리가 불편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열여덟 살 때 프리다 칼로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전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왼쪽 다리 골절, 버스 손잡이 철제 봉이 허리에서 자궁까지 관통했고 프리다 칼로는 일생 동안 척추 수술 일곱 번을 포함해 서른두 번 수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절망 속에서 침상에 누워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나는 나를 그린다. 왜냐하면 나는 혼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잘 아는 내 그림의 주제는 바로 '나'이다“

 

그녀의 자화상은 병상에서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외로운 감정이 느껴져 마음이 아픕니다. 혼자서 이겨내야만 했던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외로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얼마나 큰 자괴감에 시달렸을지 상상조차 하기 매우 힘듭니다. 프리다 칼로가 유일하게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수차례의 수술과 전신 깁스 끝에 겨우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되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려던 그녀의 육체를 지탱해주었던 것은 강철 코르셋이었습니다.  

 

 

 

<부서진 기둥, 1944>


 

부서진 기둥은 그녀의 척추뿐만 아니라 그녀의 부서진 마음마저 느껴집니다. 그녀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반영한 작품으로 더욱이 이 무렵 프리다 칼로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눈물은 흘리고 있지만 절대 이 가혹한 운명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전사적인 눈빛이 느껴지지 않나요? 온몸에 못이 박혀 처절한 고통 속에서 서있지만 펄럭이는 천 자락을 꼭 쥔 프리다 칼로의 손은 황량한 사막에서도 굳은 생명력의 의지가 보입니다.  프리다 칼로에게 자화상이란 자기 자신을 닮은 익숙한 듯 낯선 분신을 만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 두명의 프리다, 1939>

 

 

두 명의 프리다가 있습니다. 하나는 죽은 프리다고 하나는 살아 있는 프리다 입니다. 실제로도 두 명의 프리다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디에고가 사랑하는 프리다, 또 하나는 디에고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프리다 입니다. 디에고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프리다의 동맥은 끊어져 있습니다. 눈빛은 서로 마주치지 않았지만 맞잡은 두 손과 혈관을 타고 이어진 두 심장이 두 사람의 마음을 잇는 것 같습니다. 먹구름 가득한 프리다 칼로의 인생이지만 두근거리는 심장은 새빨갛게 살아 있습니다.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던 한 남자. 두 번째 대형사고 디에고 리베라를 소개할 때인 것 같습니다.

 

 

 

 

 

1928년 프리다 칼로와 결혼한 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 최고의 화가였습니다. 그 당시 멕시코와 혁명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 리베라를 죽도록 사랑했지만 디에고는 타고난 바람둥이였습니다.
프리다 칼로가 스물한 살 연상의 디에고 리베라를 최초로 만난 것은 1923년 디에고가 멕시코 시티 국립 예비학교에서 프레스코 벽화 작업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인간의 창조'를 주제로 벽화 초안을 잡고 있던 디에고는 자신을 지켜보던 소녀 프리다와 마주쳤고 작고 어린 소녀는 '그가 일하는 모습을 좀 더 지켜보고 싶으니 작업을 계속하라'고 당당히 요구했습니다. 프리다의 부모님은 이 결혼이 코끼리와 비둘기의 결합만큼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했지만, 이 두 사람은 1929년 8월 21일 코요아칸에서 결혼했습니다. 사람의 예술적 영혼이 맞닿은 결혼이었지만 생각만큼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헨리 포드 병원, 1932>

 

 

세 번에 걸친 유산,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프리다 칼로의 고통은 캔버스 위에 고스란히 형상화 됩니다. 절망 속에서도 태아를 놓을 수 없는 빨간 끈은 실현되지 못한 프리다 칼로의 모성애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디에고와 프리다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다면 멕시코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혁명을 일으킬 예술가가 탄생했을 텐데 말입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속에서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생각하며 울부짖는 프리다 칼로를 보고 있으면 먹먹해집니다.

 

 

 

<짧은 머리의 자화상, 1940>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했던 디에고는 프리다 칼로와의 결혼 이후에도 여전했습니다. 심지어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의 부적절한 관계까지 이어갔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디에고 곁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두 사람은 이혼합니다. ‘짧은 머리의 자화상’은 프리다가 이혼한 후 처음으로 그린 자화상입니다. 디에고가 좋아했던 자신의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멕시코 전통의상 테우아나를 벗고 남성 옷을 입었습니다. 자신의 여성적 매력을 파괴한 것입니다. 샛노란 의자 위에 앉아 있는 남성적 프리다. 그녀는 참담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테우아나 차림의 자화상 (내 마음속의 디에고), 1943

 

 

하지만 결국 프리다에게 디에고는 어쩔 수 없는 사랑이었던 걸까요? 프리다는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디에고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녀는 자신의 이마에 디에고를 새긴 자화상을 그립니다. 프리다 칼로는 본인을 열대 육식 식물의 꽃처럼 탐욕스럽게 표현하였습니다. 엽맥 모양의 레이스 주름과 살아있는 촉수망은 자기의 고독과 한계에 절망하여 자기 육체 너머로 생명력을 확장하고 싶다는 에너지와 감정의 통로라고 합니다. 초상화 속에 또 하나의 디에고 미니어처 초상은 프리다 마음속의 디에고를 상징합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프리다 칼로가 남긴 마직막 명언입니다. 소아마비, 왼쪽 다리 11곳 골절, 오른발 탈골, 왼쪽 어깨 탈골, 요추, 골반, 쇄골, 갈비뼈, 치골 골절, 일생 동안 척추수술 7번을 포함하여 총 32번의 수술. 오른쪽 발가락 절단에 이어 무릎 아래 절단, 세 번의 유산.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영원히 맴돌아야 했던 정신적 고통까지. 파란만장한 삶의 끝에 남긴 한마디였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외출은 행복했을까요? 그녀의 외출이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전시회장의 많은 사람들은 기원했을겁니다.

 

 

 

 

누구에게나 고통은 존재합니다. 건강상의 육체적 고통,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 돈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 회사생활의 고단함, 취업을 준비하는 취업 준비생, 짝사랑의 아픔... 어느 것 하나 우리들의 마음대로 쉽게 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고통을 어떻게 승화할 수 있을까요?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던 프리다 칼로는 자화상을 그리며 그 고통을 모두 예술작품으로 승화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작품들은 많은 이들에게 아련함을 남깁니다.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게 무엇인지... 저는 일상생활에서 받는 나름의 고통을 건강천사 블로그 포스팅을 하며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글이 멋지고 좋은 글은 아니지만 이렇게 매번 가는 곳, 보는 것마다 건강천사 이웃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기쁨입니다. 저는 계속 글을 쓰고 싶습니다.


쌀쌀한 가을바람 때문인지 마음은 더 공허해지고 우리가 받는 고통의 무게 또한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허전해진 우리들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활동을 찾아 인생의 활기를 되찾아 보는 건 어떠신가요. 프리다 칼로의 행복한 외출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