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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심혈관 질환 이경규가 언제까지 방송을 할 수 있을까?

 

 

 

 

TV 예능 프로그램은 정글을 연상시킨다. ‘웃겨야 산다’는 표어를 내건 어느 프로그램처럼 출연자들은 시청자를 웃기는 일에 사활을 건다. 이 정글에서 살아남는 이들은 정말 대단한 예능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 사회자로 각광을 받는 이는 김성주, 김구라, 전현무, 정형돈 등이다. ‘유느님’ 유재석, ‘예능의 신’ 신동엽은 기존 강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강호동도 부활을 꿈꾸며 열심히 뛰고 있다.

 

 

 

 

55세의 방송인 이경규가 이런 후배들 틈에서 저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경이롭다. 현재 그는 부녀 관찰예능 SBS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하고 있다. 로드 버라이어티 KBS2 '나를 돌아봐'에도 나온다. 독특한 삶을 살고 있는 일반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TV조선의 ‘진짜 카메라’는 단독으로 진행을 한다.

 

이경규는 30여년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해왔다. 예능 세계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는 오직 변화 뿐’이라고 한다. 1960년생인 이경규가 여기서 살아남은 것은 자신의 ‘예능감’을 부단히 진화시켜온 덕분일 것이다. 그는 일찍부터 공중파와 케이블을 넘나들며 방송을 해왔다. 인기 예능인들이 공중파를 벗어나는 것을 망설일 때 그는 과감히 발을 옮겨 케이블, 종합편성채널까지 영역을 넓혔다. 34세 이후로 나이를 먹지 않기 위해 생일 파티를 하지 않았다는 그는 언제나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왔다.

 

 

 

 

그런 그가 ‘진짜 카메라’를 홍보하는 간담회에서 기자들에게 던진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제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요?”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자리에서 오히려 질문을 던진 것. 어느 기자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겠는가. 이경규도 답을 얻으려고 한 질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본 것일 뿐. 이경규의 자문(自問)은 변화무쌍한 예능 세계에 자신이 언제까지 발맞출 수 있을 지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건강이 과연 허락할 지에 대한 걱정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가 공황 장애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인기 연예인 중 상당수가 이 질환을 겪고 있다고 한다. 방송에 대한 강박 관념이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기자로서 인기 연예인들을 직접 만나보니, 대부분 스타 의식으로 인한 ‘자뻑 증세’를 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도 극소수 있지만.) 자기 방어벽도 유난히 강하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중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한 강박이 자리하고 있다. 대화를 나누다가 그 부분을 건드렸을 때 눈물을 흘리는 연예인도 있었다.

 

예능계 대부인 이경규는 내공이 단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내공을 닦는 동안 그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경규는 최근 공황 장애 뿐 만 아니라 심혈관 질환을 앓고 있음을 밝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자신의 딸(이예림)과 함께 출연한 ‘아빠를 부탁해’를 통해서였다. 그는 "예전에 관상동맥 질환으로 식당에서 졸도한 적이 있다. 구급차가 안 왔으면 죽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관상동맥에 스텐트(stent) 삽입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스텐트는 일상에서는 전혀 듣지 못하는 단어다. 막힌 혈관을 뚫어 혈액이 잘 통하도록 설계된 장치라고 한다. 의학 기사에서 가끔 접하는 관상동맥은 심장근육에 혈액을 공급해주는 혈관이다. 여기에 이물질이 쌓이면 혈관이 좁아진다. 심장에 혈액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게 될 것은 뻔하다. 그로 인해 협심증, 심근경색증이 발병한다.

 

협심증은 관상동맥이 좁아졌지만 완전히 막히지 않은 상태다. 평소에는 증상이 없지만  힘든 일을 하거나 피로가 심하면 가슴 통증 혹은 호흡 곤란이 나타난다. 심근경색은 좁아진 혈관이 완전히 막히는 경우다. 사망률이 30%나 된다. 이경규가 “죽을 뻔 했다”고 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이경규는 혈관 상태를 점검하는 추가시술을 받기 위해 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그는 시술 전 사전검사를 받으며 긴장된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일명 ‘버럭 개그’로 남을 웃기던 그가 겁을 내는 장면은 우습고도 슬펐다. 그의 딸은 아직 철없는 20대임에도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애잔하게 여겼다.

 

 

 

 

시술을 끝내고 나온 이경규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 너도 내 체질을 물려받았다. 운동 많이 하고 야채 많이 먹어라. 헬렐레하고 살아. 고민 많이 하면 안 돼. ” 농담처럼 한 이야기에 진심이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딸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살았으면 하는. 이경규의 질환이 방송에 대한 압박감 때문이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저 대신에 누가 녹화해 준 적이 없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어찌 그와 같은 방송인뿐이겠는가. 이 세상의 수많은 장삼이사도 다른 이가 대신해줄 수 없는 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이경규가 딸에게 당부한 말은,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우리 국민에게 권고한 내용과 똑같다. 질본은 최근 ‘심뇌혈관질환 예방과 관리를 위한 9대 생활 수칙'을 공개했다. 그 중 하나가 ’스트레스를 줄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한다’는 것.

 

 

 

 

나머지 생활 수칙은 다음과 같다. ▲ 담배는 반드시 끊는다. ▲ 술은 하루에 한 두잔 이하로 줄인다. ▲ 음식은 싱겁게 골고루 먹고, 채소와 생선을 충분히 섭취한다. ▲ 가능한 한 매일 30분 이상 적절한 운동을 한다. ▲ 적정 체중과 허리둘레를 유지한다 . ▲정기적으로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을 측정한다. ▲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을 꾸준히 치료한다. ▲ 뇌졸중, 심근경색증의 응급증상을 숙지하고 발생즉시 병원에 간다.

 

 

 

 

이 모든 것을 지킬 수는 없을 것이다. 다 지키면 아마 욕망에 시달리는 사람의 경지를 넘어서 우화등선(羽化登仙)할지 모른다. 다만 이 수칙을 지키려고 애쓰며 그에 가깝게 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전망하건대, 한국 예능사에서 이경규는 유재석처럼 독보적 1인자는 아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귀한 존재로 기록될 것이다. 그가 앞으로 언제까지 방송을 할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다만 추정은 할 수 있다.  그가 방송 압박감 속에서도 얼마나 ‘헬렐레’ 하며 살지, 또 질본이 제시한 9대 수칙에 어느 정도 가깝게 다가갈 지에 달려있다고.

 

 

글 / 장재선 문화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