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처럼 가까운 게 있다. 오히려 그것을 벗삼아 지낸다. 아내보다 더 찾기도 한다. 술, 커피, 담배가 그렇다. 한 번 맛들이면 끊기 어렵다. 각서도 많이 쓴다. “앞으론 술을 마시지 않겠다. 내가 술을 마시면 사람 자식이 아니다.” “백해무익한 담배는 일절 끊겠다. 나를 유혹하지 말아줘.” “건강에 좋지 않은 커피는 사절합니다.” 애호가들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다. 물론 자신과의 약속이지만 실천률은 지극히 낮다. 그것의 중독성 때문이다.
나도 두 가지를 즐겨했다. 술과 커피다. 대학 다닐 때부터 술을 정말 많이 마셨다. 그런만큼 에피소드도 많다. 지인들을 만나면 지금도 술을 많이 하느냐고 묻는다. 나의 트레이드 마크인 셈이다. 자랑거리가 못 되는 데도 각인되다 보니 같은 질문을 거듭해 받는다. 담배는 아예 입에 대지 않았다. 냄새가 싫은 까닭이다. 대신 커피는 사양하지 않았다. 하루에 10잔 이상 마시기도 했다. 애연가들이 담배 피우 듯 가까이 했다고 할까.
지난 2월 초부터 술은 완전히 끊었다. 커피도 예전보단 덜 마신다. 의사의 권유도 한몫 했다. 둘 다 두통에 좋지 않단다. 단주(斷酒)에는 성공했지만, 커피는 여전히 끊기가 힘들다. 한 잔 쯤이야 하고 입에 댄다. 습관이라는 게 이처럼 무섭다. 아프면 귀가 솔깃해진다. 누가 용하다고 하면 반신반의하면서 찾아간다. 믿져야 본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효과를 볼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병원에 찾아가는 것이 정답이다. 정밀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좋다. 미신은 더 이상 믿을 것이 못 된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수없이 반복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몇해 전의 일이다. 두통이 부쩍 심해져 두 군데 병원을 찾았다. 먼저 방문한 곳은 유명 대학 교수로 계시다 정년퇴직한 분이 개원한 병원. 증상을 설명했더니 세 가지 검사를 받아보잔다. 어지럼증, 뇌경동맥, 뇌혈류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이상 없음’. 안도했다. 그런데 증상이 더 심해짐을 느꼈다. 머리가 아프면 마치 어떻게 될 것 같고, 하루종일 기분이 찜찜하다.
수원에서 전문병원을 하는 지인에게도 같은 증세를 호소했다. 토요일날 내려와 보란다. 그 병원은 최신 설비가 갖춰져 있었다. MRI 기계만 3대. 조영제 주사도 맞고 1시간 가량 머리와 관련된 검사를 모두 마쳤다. 이번엔 목까지 검사를 했다. “사진상 이상이 없어 다행이네요.” 듣던 중 가장 반가운 소리였다. 두통에서 해방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두통은 나아지지 않았다.
정신이 맑지 않으면 흥미가 감소된다. 무엇을 해도 별로 흥이 나지 않는다. 머리가 개운치 않기 때문이다. 삶의 활력도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머리 쪽에 신경이 간다. 여전히 쿡쿡 쑤시고 아프다. 만성두통 환자들이 겪는 고통이다. 경험해본 사람만이 그것의 강도를 얘기할 수 있다.
한 포럼에서 유명 의사를 만났다. 대학 병원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고 있다. 물론 신경과 의사는 아니다. 그도 고통을 호소했다. 한마디로 골칫거리라고 정의했다. 의사인 자신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털어놨다. MRI와 CT 등 각종 검사를 받아보았지만 허사였다고 했다. 치유법은 없는지 물어봤다. 생활환경을 바꿔보란다. “좁을 공간을 피하고, 가급적 운동을 열심히 하세요.”
두통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수십년간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람도 본다. 그래서 두통학회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만성 두통인 경우 대부분 심각한 경우는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년간 계속 하루종일 두통이 가시질 않고 지속되는 경우는 증상이 심해서 환자는 고통스러워도 크게 걱정할 만한 두통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죽을 병은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낙담하고 상심할 까닭은 없지 않겠는가.
나 역시 두통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온갖 검사를 받아봤어도 원인은 모른다. 그러면 병원에서 하는 말이 있다. 스트레스 때문이란다. 나는 운동을 통해 두통을 치료할 수 있었다. "내 병은 내가 고친다." 내가 역으로 다짐한 말이다. 몇 년 동안 새벽마다 열심히 걸었다. 그 결과 정말 몸이 좋아졌다. 만성두통에서도 해방됐다. 뭐든지 포기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나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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