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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음식

입동, 김장 준비와 김치에 대한 모든 것

 

 

 

 

 

기상청은 올해 서울의 경우 11월25일이 김장일로 적당하다고 밝혔다.

겨울부터 봄까지 먹기 위한 김치무리를 입동(立冬) 전후에 한 번에 많이 담가두는 일이 김장이다. ‘입동이 지나면 김장도 해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실제로 우리 조상은 입동을 전후해 김장을 담갔다. 이 시기에 김장을 해야 김치가 제 맛이 나기 때문이다. 입동이 지난 지가 오래 되면 배추가 얼고 싱싱한 재료를 구하기도 힘들다.

 

 

 

 

김장은 겨울을 나는 데 필요한 월동(越冬) 음식을 준비하는 연중행사다. 진장(陳藏)ㆍ침장(沈藏)이라고도 불린다. 2013년 겨울 유네스코는 우리나라 김장 문화를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했다. 2012년 문화재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약 90%가 아직도 직접 가정에서 김장을 담근다.


우리 조상이 김장을 담근 것은 생채소를 구하기 힘든 겨울에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해주는 반찬으로 먹기 위해서였다. 김장김치는 선조들에게 고마운 겨울철 비타민ㆍ미네랄 공급 식품이었다.


조선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가 지은 세시풍속에 관한 책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엔 “여름의 장 담기와 겨울의 김치 담기는 인가(人家) 일년의 중요한 계획이다. 무뿌리가 비교적 작은 것으로 김치 담근 것을 동치미(冬沈)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동이(東夷) 문화권에선 김치무리를 지(漬)라 했다. 중국에선 저(菹)라고 불렀는데, 조선 시대에도 저(菹)라고 표기했다. 김치무리는 조선 숙종 때 홍만선이 저술한‘산림경제’(山林經濟, 경제생활 지침서)엔 침저(沈菹), 육당 최남선의 ‘고사천자’(故事千字)엔 침지(沈漬)라 쓰여 있다. 침채 또는 침지에서 김치(딤채)란 음식명이 유래했다. 채소를 소금물에 절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치는 김장김치와 계절별 김치로 나눌 수 있다. 김장김치는 초겨울에 준비해 이듬해 햇채소가 날 때까지 먹는다. 통배추김치ㆍ통무김치ㆍ총각김치ㆍ깍두기 등이 여기 속한다. 계절별 김치론 파김치ㆍ부추김치 등 봄김치, 열무김치ㆍ오이소박이 등 여름김치, 총각김치ㆍ가을배추겉절이 등 가을김치, 동치미 등 겨울김치가 있다.

 

 

 

 

우리가 끼니마다 거의 거르지 않고 먹는 반찬이 김치다. 그래서 그 가치를 자주 경시(輕視)하고 있지만 김치만한 웰빙 식품은 드물다. 김치의 건강 기능성은 오만가지다. 세계인이 김치를 주목하는 것은 ‘건강의 3중주’인 유산균ㆍ채소ㆍ발효식품이기 때문이다. 절인 배추의 유산균 숫자는 g당 1만 마리에 불과하지만 김치가 맛있게 익으면(발효) 그 만 배 이상, 즉 g당 1억∼10억 마리로 늘어난다. 김치 유산균은 변비ㆍ대장염 예방 등 장(腸) 건강에 이롭다.


국내 연구팀(부산대 식품영양학과 박건영 교수팀)이 국제학술지인 ‘약용식품저널’ 올 10월호에 게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장염을 고의로 유발시킨 실험동물(쥐)에 김치 유산균을 2주간 먹였더니 뚜렷한 염증 감소 효과가 나타났다. 김치 유산균을 섭취한 쥐에서 2주 뒤 염증성 사이토카인(혈액 속 염증 유발 단백질)이 30% 이상 감소한 것이다. 김치 유산균이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대장염 등에 치료 효과를 보이는 것은 유산균이 면역글로블린과 자연살해(NK) 세포의 활성화를 높이는 등 면역력을 증강시킨 덕분으로 추정된다. 김치 유산균은 피부 미용ㆍ면역력 강화에도 유익하다. 또 암ㆍ비만ㆍ아토피ㆍ알레르기의 예방ㆍ치료를 돕고 감기ㆍ독감 바이러스 등 바이러스를 없애는 데도 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치 유산균은 식물성 유산균의 일종이다. 유산균은 요구르트 등 동물성 식품인 유제품에도 많이 들어 있다. 과거엔 김치의 유산균은 대부분 살아서 장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의 위산(胃酸)에 의해 대부분 제거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부산대 김치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김치를 하루 300g 쯤 먹으면 대장에 유산균이 100배가량 증가한다(김치를 안 먹은 사람 대비). 이는 김치 유산균의 상당수가 장(腸)까지 살아서 내려간다는 의미다.


김치가 시어지기 전엔 류코노스톡이란 유산균이, 시어진 뒤엔 락토 바실러스란 유산균이 다량 들어 있다. 이 두 유산균은 장을 튼튼하게 하고 항균ㆍ항바이러스 효과를 나타낸다. 김치엔 식이섬유와 유기산도 풍부하다. 식이섬유는 장(腸) 운동을 촉진시켜 변비 예방에, 유기산은 식욕을 되살리는 데 이롭다. 또 비타민ㆍ미네랄 등 영양성분도 듬뿍 제공한다. 마늘ㆍ고춧가루ㆍ생강 등 김치를 담글 때 부재료로 사용되는 양념엔 알리신ㆍ캡사이신ㆍ진저롤 등 항산화ㆍ항균 물질이 풍부하다. 김치가 암 예방 식품으로 기대를 모으는 것은 그래서다. 김치의 항암성분으론 인돌-3-카비놀(배추)ㆍ아이소사이오사이아네이트(배추)ㆍ알릴 설파이드(마늘)ㆍ캡사이신(고춧가루) 등이 꼽힌다.

 

 

 

 

김치는 다이어트 식품이다. 김치가 체중을 줄여주는 것은 고춧가루의 매운 맛 성분(캡사이신)이 체지방의 연소를 돕기 때문이다. 또 김치에 든 식이섬유가 금세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 농촌진흥청은 최근 김치 속 고춧가루가 비만 예방에 효과적인 특정 유산균의 숫자를 크게 늘려준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고춧가루가 든 일반 김치와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은 백김치를 김치 냉장고(4도)에 12간 보관했다. 일반 김치엔 항(抗)비만 유산균(바이셀라 코리엔시스)이 백김치보다 1000배 이상 많았다. 비만 억제 효과를 지닌 유산균을 많이 섭취하려면 백김치보다는 저온에 보관된 포기김치를 먹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란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다.

 

 

 

 

김치는 노화 억제에도 유용하다. 노화의 주범인 활성산소를 없애주는 카로티노이드ㆍ플라보노이드ㆍ안토시아닌ㆍ폴리페놀ㆍ비타민 C 등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동물실험에선 피부 노화 예방 효과도 확인됐다. 김치 추출물을 쥐의 피부에 직접 바르거나 먹게 했더니 피부 노화가 지연됐다.

 

약점도 있다. 고혈압의 원인중 하나로 꼽히는 염분(나트륨)이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김장을 담근 뒤엔 김치를 4∼5도 전후의 냉장고에 보관해야 맛이 가장 좋다. 보관 온도가 높아 너무 빨리 익으면 유기산의 생성이 적고 발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맛이 떨어진다. 김장 김치는 발효나 보관 도중 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얼거나 시지 않게 보관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치 독을 짚으로 싼 뒤 땅 속 깊이 묻어 둔 것은 지열(地熱)을 이용해 김장김치가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한 생활의 지혜다. 또 김치 독에 김치를 단단히 눌러 넣고 위에 우거지를 얹는 것은 공기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차단해 김치의 산패를 막는 행위다. 그러나 최근엔 독ㆍ항아리 대신 냉장고ㆍ김치 냉장고에 김장김치를 보관하는 방법이 널리 쓰이고 있다.

 

 

 

 

김치의 웰빙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무엇보다 좋은 재료(배추ㆍ무ㆍ고춧가루ㆍ마늘 등)를 써서 김장을 담그는 것이 중요하다. 유기농 재료엔 항산화 성분 등 각종 생리활성물질이 일반 재료보다 훨씬 많이 들어 있다. 김장김치를 김치 냉장고에 넣어 저온(5도) 발효시키면 김치의 맛 뿐 아니라 건강 기능성도 좋아진다. 고혈압 예방을 위해 소금 농도는 2% 이하(종래 3∼4%)로 줄여야 한다. 군내가 나기 시작한 김치는 식용 대신 다른 용도로 돌리는 것이 좋다. 유산균보다 잡균이 훨씬 많아지기 때문이다.

 

 

글 / 박태균 식품의약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