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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손가락은 날로 섬섬옥수가 되어가고, 얼굴은 달덩이?

 

  "너 요즘 왜 이리 얼굴이 달덩이야?"


살찌는 것에 별 무감한 사람이라도, 이런말을 연거푸 듣게 되면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긴,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기를 두드리느라 손가락은 날로 섬섬옥수가 되어가지만, 나도 내 몸이 점점 무거워짐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해서,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차를 타고 가던 거리를 걸어다니기로 했다. 역시나 처음 얼마간은 집에 도착하면 쌕쌕거리는 거친 숨소리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심장박동탓에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 점차 적응이 되었다. 그리고 참 오랜만에 걷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어느 한때 지겹도록 걸었었다는 생각과 함께 오래된 기억도 새롭게 했다. 아직 잔설이 드문드문 남아 있는 산허리를 지나 학교까지 무려 한시간 반 정도를 걸어 다녔던 오랜 기억이….

 

초등학교 시절 한 2년 정도를 난 왕복 3시간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 마을에서도 한참 떨어진 산중턱에 자리잡았던 탓에 동행해줄 친구도 없이 혼자 걷는 것이 다소 지루했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힘들거나 아주 못할 것 같단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특히 겨울이면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내복을 껴입고 양말을 몇 켤레씩 신어도 이내 발가락이 곱아드는 것 같은 통증은, 이미 얼어버린 볼 사이로 눈물까지 찔끔 흘릴 만큼 고통스러웠다. 발을 동동 구르며 걸어다니곤 했으니 봄이 오는 소리가 남들보다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양말을 여러 켤레 신는 것이 추울 때는 땀때문에 발을 더 얼게 만든다는 사실도 모른채 그렇게 껴 신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산골의 봄은 참으로 더디게 왔다.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은 아직도 겨울이었고 4월쯤 되어야 비로소 바람이 순해지고 걸어가는 발걸음에도 생기가 돌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더디게 온 산골의 봄은 또 느닷없이 절정으로 치닫곤 했다. 순식간에 파랑 멍울만 들었던 꽃들은 노랗거나 진분홍빛의 꽃으로 금새 치장을 하고, 살벌했던 차가운 겨울바람이 내뿜었던 자리에 풋풋한 여린 풀내음을 풍기곤 했었다. 바로 어제까지 심심했던 길가에 마법처럼 단 하루만에 흐드러지게 피어버린 꽃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다지 새롭거나 경이로울 것 없던 산골소년의 마음까지도 흥분시킬 만큼 장관이었다.

그런 날엔, 눈으로 꽃을 밟다보면 어느 샌가 집에 와있는 또 하나의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곤 했다. 그 시절 봄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닌, 힘들고 추운 겨울을 이겨낸 훈장처럼 어린 내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었고, 나를 함 뼘 더 키웠던 듯싶다.

 

그리고 그 시절의 자양분이 결코 녹녹치 않는 지금의 시간들을 그럭저럭 보내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그때만큼 운치있고 아름다운 거리는 아니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나느 오늘도 열심히 걷는다.

김태훈/ 경기도 성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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