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해마다 봄이 되면 손님이 찾아왔다. 오라는 말도 없었고 온다는 소식도 없이 찾아왔지만 오는 이도, 맞이하는 이도 으레 당연하듯이 받아들 였다. |
손님은 인사도 없이 자기 보금자리 짓기에 바빠진다. 지푸라기에 흙을 묻혀 우리 집 처마 밑에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 작은 입으로 지푸라기를 한 올 한 올 찾아오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누가 집 짓는 걸 가르쳐줬기에 저렇게 밑그림도 그리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지을 수 있는지 대단하기도 하였다.
올해도 잊지 않고 손님이 찾아왔구나 하고 인식할 때 즈음엔 벌써 집이 완성되어 있었다. 그 때부터 우린 한 지붕 두 가족이 되었다.
솔직히 누가 주인이고 누가 세들어 사는지 모를 정도였다. 마치 처음부터 우리가 함께 살았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손님이 우리 집에 찾아오는 게 무척 반가웠다.
우리 집에 찾아올 때는 부부지만 새 보금자리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 커가는 걸 볼 수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었고 큰 행운이었기 때문이다. 새끼가 태어나면 조그마한 집에 얼굴만 빼곡히 들고서 입을 크게 벌리고 엄마 새가 먹이 가져오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 엄마가 맛있는 것을 사서 들어오는 걸 기다리는 모습과 비슷했고, 엄마 새가 먹이를 가져오면 서로 먼저 먹겠다고 먹는 모습이 우리 인간들의 어린 아이들의 모습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연두색과 청록색의 잎이 한창일 때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날이면 마루에서 할머니 팔에 누워 어린 새들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귀엽고 예쁘고 신기한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새들의 이야기 소리가 익숙해질 때 즈음엔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침부터 손님 부부가 큰 소리로 울어대며 우리 집 하늘 위를 빙글빙글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먹이를 찾으러 가지도 않고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 우리 집 식구들은 왜 저러나 모두 마당에 나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당시 우리 집은 흙집이었는데 벽을 타고 뱀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손님 부부는 자기 집 주변에 적이 온다는 것을 알고 새끼들 걱정에 저렇게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아침부터 우리 식구들은 벽을 타고 올라가는 뱀을 떼어내기 위해 연탄집게와 긴 막대기를 동원해 한바탕 뱀 수거 작전에 나섰다. 긴 막대기로 뱀을 쳐가면서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뱀이 떨어지자 연탄집게로 뱀을 집었던 것이다.
호기심 많은 남동생은 그 뱀을 들어 올려 다시 오지 말라고 집 밖으로 한참을 걸어 나가서 멀리 밭에다 풀어주고 왔었다. 다행히 새끼들은 무사했고 다 커서 돌아갈 때까지 건강했다. 손님들은 새끼가 날아다닐 만큼 되면 다시 떠나려 했다. 또 아무 말도 없이 잘 지내라는 인사도 없이 혹은 잘 가겠다는 말도 없이 그냥 훌쩍 떠난다.
언제 또 올 거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내년 이맘때가 되면 다시 오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서운했지만 잘 가기를 바랐다. 흙집이었던 우리 집은 벽돌집으로 바뀌고 할머니랑 누워있었던 마루도 없어지고 흙 마당도 없어지면서 손님들도 우리 집을 찾아오지 않았
다.
오지 못할 사정이 생겼는지 아니면 더 좋은 보금자리를 위해 떠난 것인지 행여 우리 집이 바뀌어서 찾지 못하는 건 아닌지 이제 기다려보아도 오지를 않는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우리 집 처마를 자기 집인 양 살았던 제비 가족들. 한 지붕 두 가족이 살아서 행복했던 어린시절. 청록색이 아름다운 이 계절이 되면 나는 그 가족들이 그리워진다.
정현주 / 전라남도 장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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