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입시 제도를 바꾼다’라는 말은 반향이 크다. 다른 학교들이 슬금슬금 서울대를 따라가서다. 서울대 교수가 성추행을 했다거나, 서울대 로스쿨 학생회가 사시 존치에 반발해 집단 사퇴했다는 뉴스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한민국 1등 대학의 일은 소소한 신변잡기라도 얘기가 된다. 학벌에 따라 달라지는 기사의 가치는 차치하고라도.





이게 학생의 자살로 옮겨오면 울림이 좀 달라진다. 지난해 말 서울대생이 몸을 던져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대중의 반응은 아마 이 즈음일 거다. 그렇게 똑똑한 애가 무엇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서 제일 좋은 학교 갔는데 왜? 앞으로 미래가 창창한 인재가 도대체 왜? 남들은 그 학교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데 인생의 1막을 성공적으로 시작한 학생이 왜?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 주일 거다.


그래서 언론은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그가 남긴 유서의 한 구절에 주목했다. ‘서로 수저 색깔을 논하는 이 세상에서 저는 독야청청 금전두엽을 가진 듯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금전두엽을 가지지도 못했으며,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전두엽 색깔이 아닌 수저 색깔이군요’라는 구절이다. 가져다 박기만 해도 얘기가 되는 두 가지가 만나는 순간이다. ‘흙수저’와 ‘서울대’. 기회는 이때다 싶어 흙수저 서울대생이 자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는 손길이 바빠졌다. 서울대생도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구나, 누구나 부러워 할 학생인데도 가난이라는 멍에를 벗을 수 없구나, 하는 것들이다.





한 사람의 죽음이 ‘수저론에 반대한 명문대생의 자살’이라는 4마디로 규정되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좀더 얘기되게 하기 위해 대통령 장학생이라는 설명도 붙여진다. 플롯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다.


그러던 중 유서에 이름이 나온 한 학생의 글을 봤다. 자살한 학생과 학보사를 같이 했다고 한다. 그는 ‘너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도 너에 대해 쉽게 이야기를 한다. 명문대생이 감사할 줄을 모른다고, 살려는 ‘노오력’을 덜 했다고 훈계를 한다. 언론에서는 이때다 싶어 네 죽음을 수저론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환원시킨다. 널리 퍼뜨리고 싶었을 너의 마지막 말이, 사람들에게는 한낱 가십거리로 소비되어 버린다’라고 적었다.





‘죽음은 전염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S가 유언을 널리 퍼뜨리려 한 것은 슬픔을 전염시키기 위함이 아니었다. S는 힘든 사람들에게 유효한 위로가 돌아가는 세상을 바랐다. 오늘도 내일도 지겹게 살아남을 나는 그의 준엄한 마지막 말을 기억하며 살 것이다’란 그의 해석이 더 맞다고 생각했다. S라는 학생이 꿈꾸던 사회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는 마지막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느 한곳 기댈 데 없는 삭막한 시대에 몸의 건강 뿐 아니라 ‘정신 건강’을 회복시킬 정부 정책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글 / 박세환 국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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