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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행

서울 가볼 만한 곳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안녕하세요. 호미숙 여행작가입니다. 서울에는 여러 가지 종교적인 건축물이 아주 특별하고 유서가 깊은 편입니다. 서울 명동성당을 비롯해서 정동교회 등도 역사적인 곳으로 우리 선조들의 얼이 깃든 곳입니다. 그중에 오늘은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을 소개해봅니다. 위치는 서울시청 맞은편이고 성당의 외부 모습이 아주 독특해서 눈에 띌 정도입니다.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서울주교좌성당)


1978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서울 중구 정동의 대성당. 기독교의 한 교파이며, 16세기 종교개혁 때 분리된 영국성공회의 한국 교구로 1889년 9월 29일 주교 고요한에 의하여 설립되었습니다.


1922년 영국인 A.딕슨의 설계에 따라 영국성공회의 지원과 국내 신자들의 헌금으로 M.트롤 로프 주교의 지도•감독 아래 공사가 착공되어, 4,449㎡의 대지 위에 991.7㎡ 건평의 화강석과 붉은 벽돌을 쌓은 조적조(組積造)의 로마네스크양식 건물로, 1926년에 헌당되었습니다. 일제 침략기에 서양인에 의하여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설계된 본격적인 건축양식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큰 건물입니다. 



성공회


성공회는 지역적으로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서기 175년경 이미 영국에 교회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공회의 기원은 초대교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후 성공회는 6세기에 로마교회와 병합되어 발전을 거듭해 오다가 16세기에 대전환을 맞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파장이 영국에도 큰 영향을 주어 결국 루터교, 장로교의 탄생과 더불어 영국은 3대 종교개혁의 온상이 됩니다. 바로 이 개혁의 과정 속에서 성공회는 몇 가지 중요한 신앙적 특성을 형성했습니다. 첫째, 성공회는 중용의 신앙, 둘째, 성서와 함께 하는 신앙, 셋째, 초대교회의 신앙입니다. 


2009년 현재 전국에 100여 교회, 약 5만 명의 신자가 있으며, 제5대 교구장으로 김근상 주교가 선출되었습니다. 부설기구로는 성공회대학교•사회복지관•나눔의 집•수도원•출판부 등의 기구와 관구 행정을 담당하는 교무원이 있으며, 그 외에도 특수학교와 양로시설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의 미를 조화롭게 디자인한 로마네스크 형식의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을 마주한 붉은 지붕과 특별한 외관에 이끌려 점심 식사 후 일부러 찾았습니다. 한국의 전통 창인 문살을 강조한 스테인드글라스. 빛이 그린 멋스러움이 근사합니다.


성공회 성당의 천장은 마치 배의 밑바닥처럼 삼각형 상태이고 이는 노아의 방주 선박을 뜻한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의 대들보가 연상되죠. 붉은 지붕이 대부분인데 이 작은 지붕은 우리나라 전통 기와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회색 기와를 이용해 현지 우리나라의 전통과 어울림이 조화롭습니다. 십자가 아래 종탑은 줄을 당겨 치는 종이 있다고 합니다. 대성당, 성가수녀원, 주교관, 사제관, 세례요한성당, 사무실, 프란치스 홀, 성물방 등이 있습니다.



서울주교좌성당 사목실은 대한성공회 선교 초기부터 주교 집무실로 사용하였다가 현재 주교좌교회 사목단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제관과 성가 수녀원은 오래전 건축물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성가수녀원으로 향하는 대문은 전통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유월민주항쟁 진원지로 1987년 6월 10일부터 전국적으로 떨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인 6월 항쟁이 주교좌성당에서 시작한 역사를 기록한 기념석을 세워두었습니다.




모자이크 제단화


디자인은 조지 젝크(영국)가 1927년 ~38년에 걸쳐 시실리 전통에 따른 채색으로 제작해서 성당 내부의 황금색 배경이 모자이크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요. 동양에서 가장 큰 모자이크라고 설명해주셨어요. 특히 예수님의 한쪽 눈이 눈을 감은 듯 보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이 들어와도 반쯤 눈 감아 주는 듯한 사랑으로 보입니다.



대한성공회에서 본 파이프 오르간


영국 헤리슨& 헤리슨사가 2년 10개월에 제작기간에 걸쳐 1985년에 설치된 예배용 파이프 오르간으로 20개의 음전과 1,450개의 파이프가 있어 여러 가지 맑고 풍부한 음색을 표현합니다. 2006년 8월 수랑에 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