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상담실을 찾는 분들 중에는 얼핏 보면 왜 왔을까 싶을 정도로 괜찮은 조건과 환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대학교수인 J씨의 경우가 그렇다. 원만한 가정도 있고, 신체적으로도 건강하고, 연구 성
과도 뛰어나서 원하는 목표도 거의 이룬 셈이다. 객관적인 잣대로 보면 삶에 대한 불만이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정신적인 어려움은 객관적인 잣대로 결코 가늠할 수 없는 법이다. 외부의 성과와 주변
의 인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만성적인 불만족감과 공허감이 채워지지 않아 병원을 찾아온 것이다.
만족불감증
교수의 지난 삶을 들어보니 지속적인 만족감을 느꼈던 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늘 만족하지 못했고 더 많은 것을 쏟아내라고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해 왔다. 왜 그럴까? 그의 부모는 한마디로 성취주의자라고 할 수 있었다. 백 문제에서 하나를 틀리면 하나 틀린 것을 가지고 야단을 치는 부모였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혼자 힘으로 학교재단을 세운 분이라 더욱 더 엄격하게 키웠고 동생과 경쟁을 부추기고 친구의 자녀들과 비교를 함으로써 분발을 촉구하였다. 사실 어린 아이들일수록 무조건적 사랑을 원하는 것이 본성이다. 즉, 원할 때 늘 옆에 있어주고, 잘못을 해도 믿어주고, 문제가 있어도 감싸주고 이해해주는 절대적인 사랑을 원한다.
하지만 부모가 이러한 아이의 요구에 잘 부응하지 못하면 애정결핍감은 물론 자신이 무언가 부족하기에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렇기에 이들은 이상적인 모습이 되지 못하면 결코 사랑받을 수 없을 것 같은 무의식적 압박감을 가지고 높은 자아상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영웅적 노력을 다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결국 이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자아상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서 이들은 살아가면서 결코 지속적인 만족감을 경험하지 못한다. J교수 역시 한 번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했던 것이 만족불감증의 큰 원인이었던 것이다.
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을까?
그렇다면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일부 사람들의 문제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것은 애초부터 우리의 뇌가 쉽게 만족할 수 없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족감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과 관련이 있다.
즉, 도파민 분비가 늘면 만족감이 커지고, 줄면 만족감은 사라지게 되어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도파민이 새로운 자극을 경험할 때 분비되고 자극에 익숙해지면 분비가 감소한다는 데 있다. 우리가 갈수록 더 만족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비교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화에 따른 비교범위의 급속한 확대로 인해 자꾸 자신이 가진 것은 작게 느껴지고 가지지 못한 것은 크게 여겨지기 쉽다. 즉, 과잉경쟁과 비교대상의 확대로 주관적 만족감의 기대수준이 자꾸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옛날 같으면 소년체전 나가서 수상을 하게 되면 지역의 영광이었지만 이제는 올림픽에 나가서 수상을 해야 알아주는 식이다. 이런 글로벌 체제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비교를 하지 않는 것은 가능할까?
사회적 존재인 이상 인간에게 있어 비교심리는 본성에 가깝다. 사실 우리의 자존감과 행복감은 타인과의 상대적 비교에 기인한다. 둘 이상 만나는 상황에서는 어떤 곳에서든 비교가 일어난다. 어디 다른 사람과의 비교뿐이랴. 내부적인 비교도 만만치 않다. 원하는 자신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실망한다.
그럼, 비교를 하지 말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비교는 안 할 수가 없다. 비교에도 종류가 있다. 자신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을 상향비교(upward comparison)라 하고 반대의 경우를 하향비교 (downward comparison)라 한다. 상향비교가 지나치면 삶이 불만에 가득 차고, 하향비교가 지나치면 삶에 발전이 없다. 결국은 비교에도 균형이 필요한 것이다.
삶의 만족감을 높이려면
불만은 성장의 필수조건이다. 세상과 자신에 대하여 불만이 있지 않은 사람은 결코 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불만은 척결할 대상이 아니다. 사실 모든 발명은 불만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료나 책을 옮겨 적는 번거로움으로 인한 불만이 복사기를 만들어냈고, 유선의 불편함이 블루투스 기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면 인간의 역사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삶의 만족감을 높이는 것일까?
1. 불만을 느껴라, 하지만 대안을 찾아라.
불만도 급이 있다. 불만이라고 다 같은 불만이 아니고 역기능적이지도 않다. 창조적 불만이 있는 것이다. 창조적 불만은 결국 불만에서 시작 하지만 문제 해결로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파괴적 불만은 불만에서 시작하여 결국 불평과 비난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만이 느껴지면 문제중심적인 마음에만 빠져 있지 말고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와 같은 해결중심적인 마음을 지녀라.
2. 바람직한 자아상을 리모델링하라!
당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바람직한 자아상의 상당부분은 부모나 사회적 기대나 요구가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나 요구가 자신의 본성과 강점에 부합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를 재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3. 비교의 균형을 잡아라.
상향비교와 하향비교의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에 비현실적인 간극이 있다면 이를 조정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결국 가장 좋은 비교란 남과의 비교도 이상적인 자신과의 비교도 아닌 ‘어제의 나’와의 비교이다. 어제에 비해 내가 좀 더 나아지려고 할 때 우리는 성장하기 때문이다.
4. 더 깊게 체험하라.
삶의 불만은 결코 ‘더 많이’와 ‘더 빨리’그리고 ‘더 좋은’으로 해결될 수 없다. 만족감을 위해 새로운 자극과 더 강한 자극만을 추구하게 되면 결국 중독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물질과잉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더 깊이’경험하는 것이 삶의 만족을 위해 꼭 필요하다. 오감을 열고 감각에 집중하여 대상을 경험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은 보다 다채로워질 수 있다.
5. 한계에 도전하라.
순수한 즐거움은 오래 가지 않는다. 뻔한 결과가 예상될 때 만족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불확실성과 어려움에 능동적으로 맞서서 뚫고 지나 갈 때 느끼는 만족감이 질기고 오래 간다. 하루 종일 좋아하는 게임에 시간 보내는 것과 힘들지만 10km 단축마라톤을 완주했을 때의 만족 감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오래 가겠는가!
문요한/ 더 나은 삶 정신과 원장, 정신경영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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