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강

생명을 살리는 심폐소생술의 역사와 변화

 

 

기적을 부르는 심폐소생술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구약성경 열왕기하 4장을 보면 인공호흡을 암시하는 듯한 구절이 나온다.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의학에서 입과 입을 통한 인공호흡 1732년 스코틀랜드 출신 의사 타사크(William Tassach)가 연기를 흡입한 광부에게 처음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생술이 체계적인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767년 암스테르담 구조학회(Amsterdam Rescue Society)부터다.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선 매년 400명 이상 익사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이 학회가 활동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익사자를 150명 이상 구조하게 된다. 익사자를 소생시킬 목적의 술기였기에,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낸 후 인공호흡을 시행하고 폐로 들어간 물을 빼내는 과정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유럽의 여러 국가와 미국의 주요 도시에 인명구조를 위한 조직이 생겨났다. 가슴을 눌러 처음 소생에 성공한 사람은 1892년 독일 의사 마스(Friedrich Maass)이다. 그는 입천장이 갈라진 구개열 수술을 받기 위해 클로르 포름으로 마취된 9세 남아에게 심정지(심장 마비)가 생기자 가슴 중앙의 흉골(가슴뼈) 부위를 분당 30~40회 압박해 소생시켰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심폐소생술이 본격 도입된 것은 1950년대부터. 1950년대 말부터 각 술기의 유용성이 입증되어 1957년 미군과 1958년 미국 의사협회에서 입과 입을 통한 인공호흡을 구조호흡으로 인정하였다.

 

1957년 오스트리아 의사 사파(Peter Safar)를 중심으로 기도유지, 인공호흡 순으로 소생술을 강조하던 것이 1960 9월 미국 메릴랜드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인공호흡과 가슴압박 동시 시행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일반인들에게도 심폐소생술을 교육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획기적인 방법을 제시한 사람은 고든(Archer Gordon) 박사였다. 그는 이 영상에서 누구나 기억하기 쉽게 심폐소생술의 순서를 A-B-C로 각인시켰다.

 

기도유지(airway), 호흡(breathing), 순환(circulation)의 영어 첫 글자를 딴 것이다. 지금은 쉬운 일 같지만, 당시만 해도 인공환기(artificial ventilation), 인공 순환(artificial circulation)이라는 용어가 대세였다.

 

 

50년 가까이 기억해 온 A-B-C 순서가 2010년 지침 개정을 기점으로 C-A-B로 바뀌어 강조되기 시작했다. 여러 연구를 통해 심정지 환자의 소생에 있어 순환을 돕는 가슴압박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다른 사람의 입에 대고 하는 인공호흡을 주저하다 가슴압박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은 점도 크게 작용했다. 생각해보면 그전까지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소생술에서 시작해 인공호흡이 우선시 된 측면도 있다. 뇌 손상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은 4~5분이다. 즉 의식을 잃은 사람에게 이 짧은 시간 내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해야 후유증 없이 소생을 기대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