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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화가 박수근의 미술작품에서 만나는 봄의 소리<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裸木)>

겨울의 끝, 봄이 오는 소리가 서서히 들리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계절을 받아들이기 힘든 오늘이다. 우리의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은 참혹한 시기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따뜻한 인간상과 희망이 담긴 미술작품으로 만나보자. 

 

박수근/고목(古木)/1961/종이에 수채, 색연필/23&times;52㎝/개인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3월 1일까지 열리는 박수근 개인전 ‘봄을 기다리는 나목(裸木)’은 유화, 드로잉, 삽화 등 총 174 작품으로 박수근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나목(裸木)’은 일제 강점기에서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가난과 사회적 혼란 등 참혹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과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찬란한 예술을 꽃피운 박수근을 상징한다.

 

 

 

 

화가 박수근이 그림에 빠지게 된 이유

 

박수근/봄이 오다/1932/수채화/제 11회 선전 입선            박수근/철쭉/1933/종이에 수채/36*45cm/개인소장

 

1914년에 태어난 박수근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여, 12세가 되던 해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작품 <만종>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박수근의 실력을 미리 알아본 담임선생님의 격려를 받으며, 그림 그리기를 계속했다. 그 당시 많은 화가들이 일본. 프랑스 등으로 유학을 갔으나,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박수근은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신문에 소개된 그림, 미술 잡지, 풍물 엽서 등 다양한 자료를 이용해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했다. 당시 유행하는 화법이 아닌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추구했던 박수근은 1932년 18세에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봄이 오다'를 출품해 입선 함으로써 큰 자신감을 갖게 되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덕분이었다. 

 

 

화가 박수근의 그림 세계

 

박수근의 그림 소재는 주변에서 매일 볼 수 있는 나무나 여인들 등이다. 절구질하는 여인,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 아기를 업은 소녀, 길가의 행상 등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단순한 형태로 나타내어 그 시대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박수근은 화면에 물감을 여러 겹 쌓아 올리면서 질감을 거칠게 표현했는데, 비평가들은 초가집 흙벽이나. 화강암 같은 토속적인 느낌의 박수근 작품을 보고 ‘서양의 유화를 한국적으로 잘 해석한 화가’라고 평가했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의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지니고 있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나 할머니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 박수근 -

 

 

 

 

화가 박수근의 ‘맷돌질하는 여인’, ‘절구질하는 여인’, ‘길가에서(아이 업은 소녀)’

 

 

맷돌질 하는 여인/1940년대/하드보드에 유채     절구질하는여인/1956/캔버스에 유채      길가에서(아기업은 소녀)/1954

 

‘맷돌질하는 여인’은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1940)한 작품으로, 모델은 박수근의 아내 김복순 여사이다. 박수근은 1950년대에 과거에 그렸던 그림들을 다시 그렸는데, 맷돌질하는 여인. 절구질하는 여인. 아이 업은 소녀 등이다. 박수근은 같은 소재를 반복하면서 대상의 형태와 구도, 색감. 질감 등을 연구하며 작품의 주제에 어울리는 형식을 찾아 나갔다. 그에게 같은 소재를 여러 번 그리는 것은 화가로서의 개성과 발전을 모색하려는 부단한 시도였다. 

그중 ‘절구질하는 여인’의 모습은 가장 자주 반복하는 소재 중 하나이다. 1936년에 그린 첫 작품은 아기를 등에 업고 절구질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했으며, 1956년 ‘절구질하는 여인’은 간결한 형태로 표현했다.

‘길가에서(아기 업은 소녀)’는 단발머리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깊은 잠에 빠진 동생을 엄마 대신 업고 있는 소녀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배경이 생략된 이 그림에서 어린 소녀의 고단함과 함께 작가가 소녀에게 느끼는 연민이 느껴진다.

 

 

화가 박수근의 ‘집’, ‘판잣집’

                                                     박수근/ 집/1953/ 종이에 유채/80.3*100cm/서울미술관 /국전 특선                                                              박수근/판잣집/1950년대 후반/캔버스에 유채/ 20.4*26.6cm/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

 

박수근은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집’이라는 작품으로 특선하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50년도 후반에 그린 ‘판잣집’은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일대의 판잣집을 그린 것이다. 피난을 온 후 미군 PX 초상화부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마련한 집이 있는 동네로, 이곳에 정착한 10년이 화가로서 가장 전성기를 누린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마주하는 서민들의 강인한 삶을 따뜻한 마음으로 그려내어 1950~60년대 시대상을 잘 엿볼 수 있게 했다. 

 

 

박완서의 ‘나목’에 등장하는 화가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 , ‘노인들의 대화’

박수근/나무와 두여인/1962/ 캔버스에유채/130*89cm/리움미술관         박완서/나목/1970/여성동아의 여류 장편소설 공모 당

 

이번 전시를 대표하는 작품인 ‘나무와 두 여인’은 화면을 좌우로 분할하는 나무 사이로 아기를 업고 서성이는 여인의 뒷모습과 머리에 짐을 이고 총총히 걸어가는 여인이 그려진 작품으로 쓸쓸한 느낌과 함께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이 그림은 소설가 박완서(1931~2911)의 첫 번째 소설 ‘나목’에도 등장하는 작품이다. 박수근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있던 미군 PX에서 1952년부터 54년까지 초상화가로 일했다. 그 당시 박완서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미군 px 초상화 가게에 취직하여 미군에게 초상화 주문을 권유하는 중개인 일을 하면서, 참혹한 시절을 묵묵히 견뎌낸 박수근을 지켜보았다. 1970년 박완서는 여성동아의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서 박수근을 모델로 한 소설<나목>이 당선되어 소설가로 데뷔했다. ‘나목’은 잎이 다 떨어진 나무를 뜻한다. 전쟁으로 인해 헐벗은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의 모습을 상징하며, 고목과는 달리 봄이 온다는 믿음이 있기에 겨울을 견딜 수 있어 화가의 그림뿐 아니라 화가 자신이 곧 나목이라는 이 소설은 박수근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박수근/노인들의 대화/1962년/ 미시간대학교미술관

 

'노인들의 대화'는 1962년 미국 미시간대학교 교수인 ‘조지프 리’(1918~2009)가 대학원생들과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구입했다. ‘조지프 리’가 세상을 떠난 후 미시간대학교 미술관에 기증하면서 전해져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화가 박수근이 한국 대표 국민화가로 인정을

받기까지

박수근/세여인/1960년대 전반/ 나무판에 유채/21*46.4cm/국립현대미술관/이건희컬렉션

 

박수근은 1962년에 제11회 국전의 심사위원이 되어 중견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1963년(49세)에는 백내장으로 한쪽 눈을 실명했지만, 그림을 계속 그렸고, 51세(1965)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박수근의 명성은 더 많이 알려졌고, 2007년에는 미술품 경매에서 ‘빨래터’(1954~56)라는 작품이 45억 2,000만 원에 낙찰되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을 구축했고 가장 한국적인 국민화가로 불리게 된 것이다.

 

 

화가 박수근: 희망이 담긴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그의 그림

박수근 /꽃피는 시절/961/ 95 x 130cm/개인 소장

 

어려움이 많았던 날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박수근의 그림에는 희망이 담겨 있다. ‘꽃 피는 시절’은 얼핏 보면 어두운 배경에 가지만 있는 나무 같아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꽃잎과 새싹들을 품고 있다. 혹독한 겨울을 밀어낸 생명력, 추위 속에서도 봄에의 믿음을 안고 있는 것이다.

 

삶은 항상 우리에게 더 큰 선물을 준비한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더 좋은 날들이 기다린다.

불우한 시대를 잘 이겨낸 박수근 화백의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하지만, 겨울을 껑충 뛰어넘어 봄을 생각하는 내 가슴은 벌써 오월의 태양이 작열합니다.“

-박수근-

 

미술인문학 강사, 시인 우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