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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선생님은 천사, 그런데 엄마는 '악마'라는 어린왕자

  어린 왕자라는 별명을 가진 깜찍하고 똘똘한 이수종 어린이. 새해에 아홉 살이 되는 수종이는 꿈이 많
  다. 마법사도 되고 싶고
대통령도 되고 싶다. 마법사와 대통령이 되어 수종이가 이루고 싶은 꿈은 뭘
  까? 수종이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과 사랑이 절실하다
.

 

 

3,500명 중에 한 명, 수.종.이

수종이의 병이 발견된 건 만 세 살 때다. 아빠, 엄마, 수종이 세 식구가 모처럼 외출을 했는데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수종이가 갑자기 절룩절룩했다. 순간 수종엄마 박미순씨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동네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이 꼬마 애 종아리가 근력 운동 하는 사람처럼 툭 튀어나온 모양이 심상치않다고 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피검사, 심전도검사 등 여러 검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근전도검사를 했다. 적막한 복도를 지나 검사실로 가는 동안 지친 아이는 예쁜 잠에 빠져 있었다.

 


“  근이영양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그중에서도 하필 진행 속도가 제일 빠른 듀센형이라고 하더라고요. 한창 뛰어놀 10대에 내 아이는 주저앉아야 한데요. 치료법도 없데요.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사흘 밤 낮을 울었어요. 오죽하면 같은 입원실에 있는 소아암환자 부모들이 부럽더라고요. 암은 치료를 잘 하면 완쾌된다는 희망이 있잖아요. 저희 근이영양증 환우 부모들의 소원은 하나예요. 제발 이 상태에서 병이 멈춰주길….”

 

또래들보다 키가 작고 귀여운 외모로 ‘어린 왕자’라는 별명을 가진 수종이는 동생들이 자신에게 반말하는 게 너무 싫다. ‘ 형’이라고 불러주는 게 좋다. 형답게 씩씩한 수종이.

 

 

한번은 감기 끝에 중이염으로 3개월 넘게 고생하다가 귀에 튜브를 삽입하는 수술을 하게 되었다. 의사선생님이 수종이가 근육병이니 참을 수만 있으면 마취 없이 수술을 하는 게 좋다고 해서 결국 마취 없이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걱정하는 엄마 손을 잡으며 수종이가 이렇게 말했다.

 

“  엄마, 전 형이잖아요. 전 잘 참을 수 있어요.  ”

그러나 마취 없는 수술이 어린 수종이를 얼마나 아프게 했을까. 잘 견디던 수종이가 수술 도중에  ‘ 엄마, 제 손을 잡아주세요. ’ 라고 말했을 때, 튜브 삽입이 무사히 끝나 의자에서 내려와 너무나도 아팠다고 울며 말했을 때, 엄마도 의사선생님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  그런데 제가 울면 우리 수종이가 그래요. 엄마! 울지 말고 하나님한테 기도해. 하나님이 기도하면 들어주셔.  ”

 

근이영양증은 골격근이 점점 퇴화하고 변형되어 가는 진행성, 불치성, 유전성 질환이다. 현재 근본적인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로 걸을 수 있는 기간을 조금이라도 늘리는 근육 재활 치료가 고작이다. 발병률도 대단히 높은데 남자 아이 3,500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한다.

 

크게 듀센, 베커형으로 나뉘고 수종이와 같은 듀센형은 4~5세 경 자주 넘어지거나 까치발로 걷거나 계단을 올라가기 힘든 등의 증상을 보이며 병이 발견된다. 근섬유가 괴사한 자리에 지방이 차올라 종아리가 비대해지고 평균 10세 경 휠체어에 의존하게 된다. 잦은 골절, 욕창, 폐렴, 심부전증 등 합병증이 겹치다 호흡곤란이나 심장마비로 빠르면 15세 경, 대개 스무 살 무렵이면 부모의 손을 놓고 만다.

 


큰 힘이 되어 주는 따.뜻.한 사.람.들


높은 발병률에 비해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근이영양증은 유전성으로 부모가 근이영양증이면 자식도 같은 병에 걸린다. 그런데 수종이는 가족력이 일절 없는 특이한 케이스로 의사 선생님도  ‘ 인도로 가다가 차에 치인 경우 ’ 라고 무척 안타까워 하셨다. 강북삼성병원소아과 김덕수 교수는 수종이를 여러모로 챙겨주시고 수종엄마에게 힘을 많이 주신 고마운 분이다.


“  김 교수님을 뵈면서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는 걸 느꼈어요. 세심하게 마음 써주시고 더 큰 병원으로 옮긴다 했을 때에도 많이 도와주셨어요. 수종이가 인복이 있나 봅니다. 학교 담임 선생님도 너무 잘해주시거든요. 정기현 선생님이신데 허리를 굽혀 아이 실내화를 손수 신겨주시고 ‘ 휠체어에 앉게 되면 언제 손을 또 잡아보겠느냐 ’ 시며 항상 수종이 손을 꼬옥 잡고 같이 걸으세요. 수종이도 천사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엄마는 악마래요. 위험할까 봐 뭘 못 하게 하고 그러니까요. 

 

 

수종엄마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수종이가 넘어지면 속이 더 상한다. 붙잡을 게 없으면 혼자 힘으로 일어서질 못해 넘어져도 멀뚱멀뚱 앉아 있는 모습에 억장이 무너진다. ‘ 나중에 엄마 없이 혼자 다니다가 횡단보도에서 넘어지면 어쩌나’, ‘ 일으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넘어지면 어쩌나’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가슴이 찢어진다. 그래서 때로는 괜히 아이에게 짜증도 내고 부부싸움도 많이 했다.


“  주변을 보면 아이 때문에 이혼하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위장이혼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민간보험혜택도 못 받는 데다 한 가정의 생활비가 모두 아이 치료비로 들어가다 보니 경제적으로도 너무 어려워요. 아이가 떠난 후엔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에 걸려서 몇 년씩 약을 먹어야 하는 부모들도 많아요. 그래도 같은 처지의 ‘근보회(근이영양증 환우 보호자회)’ 가족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힘이 된답니다. ”

 

 

수종이의 꿈, 수.종.엄.마.의 소.원


수종이는 꿈이 많다. 옛날에는 마법사가 되고 싶었는데 요즘엔 대통령이 되고 싶다. 대통령이 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통일을 시키고 국민들 앞에서 재활용의 중요성과 환경보호에 대해 연설을 할 것이다. 천사가 만약 소원을 들어준다면 친구들과 마구 뛰어놀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계단도 올라갈 수 있게 해주고. 책도 하루 종일 볼 수 있게 해주고 좋아하는 떡볶이랑 김밥, 김치도 더 많이 먹고 싶다. 수종엄마도 간절한 소원이 있다. 이 병원 가는 데 한 시간, 저 병원 가는 데 한 시간, 이렇게 일주일에도 몇 번씩 치료센터를 다니는데 다른 아이들은 공부하고 있을 시간에 내 아이는 병원 다니다가 하루해가 다 간다.


날로 늘어만 가는 근이영양증 환우들, 병이 있지만 머리 좋고 창의적인 아이들, 서울대도 다니고 연고대도 다니는 이 인재들이 원스톱으로 모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 어린이 재활기관 등이 곳곳에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  아이들이 근이영양증으로 진단을 받고 점점 병이 진행되면서 장애등급을 올리기 위해 처음에 받은 근전도 검사를 또 해요. 이 검사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수면제 같은 걸 먹이고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검사로 근육에 손상이 와도 단백질이 아니라 지방으로 메워지거든요. 그렇게 되면 병 진행이 더 빨라져요. 검사 후에 깨어날 때 발작을 일으켜서 정신 질환으로 넘어가는 애들도 있어요.  ”

중간 중간 눈물을 보이던 수조종엄마가 애원하듯 말을 잇는다.

 


“  한 가지만 더 말해도 될까요? 얼마 못 살고 가는 우리 아이들인 만큼 생활의 질이라도 높일 수 있도록 나라에서 보살펴 주셨으면 좋겠어요. 집에서 병원까지 갈 때 휠체어만 타고 목적지까지 갈 수도 없고 어디를 가더라도 리프트 차가 필수거든요. 이동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 있잖아요. 수천만 원씩 하는 리프트 차가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에요. 휠체어를 탄 사람들도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리프트 차량 설치비도 보조금이 지원되면 너무 좋겠어요.  ”

 

성인 남자 다섯 명이 들어도 힘들다는 전동 휠체어다. 수종엄마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수종이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을 업고 산을 오르던 엄마가 지쳐 보이자  “  엄마, 저에게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고마워요.  ” 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랑스러운 수종이의 얼굴에 항상 웃음꽃이 가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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