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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드라마 '싸인'속 안타까운 이별, 결핵이 원인?

 

  SBS 수목드라마 `싸인' 이 갈수록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드라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법의자학들을
  주요 인물로 하고 있다. 법의학자는 국내 드라마에서 보기 드물었던 직업으로 시체의 부검을 통해 사인
  을 밝혀낸다. 그 주검이 연루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임무로 한다.
  

 

 

 

드라마 '싸인'은 두 법의학자 사이에 벌어지는 공방을 박진감 있게 그리고 있다. 진실을 파헤치려는 젊은 법의학자 윤지훈과 그것을 은폐하려는 법의학계 일인자 이명한. 두 사람 역할을 맡은 배우 박신양과 전광렬의 경연은, 불꽃이 튀긴다는 전형적 표현에 잘 어울린다. 두 배우는 시나리오의 장점을 최대한 이끌어내며 시청률도 끌어올려왔다.

박신양, 전광렬이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대선배가 이 드라마에 카메오로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올해 만 75세의 배우 김성원. 1957년 성우로 데뷔한 이후 중후한 목소리에 잘 어울리는 얼굴로 안방극장에서 신뢰를 받았던 이다.

 

젊은 시청자들은 김성원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개콘(개그콘서트)의 개그맨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배우 김성원이 근년에 드라마에 잘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싸인’에 단역으로 출연한 것은 박신양과의 인연 덕분이라고 한다. 김성원은 2004년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한기주(박신양)의 외할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그는 ‘싸인’ 촬영을 마친 후 박신양의 진지한 연기 자세를 칭찬했다. 그러면서  “ 최근에 몇몇 신인 연기자들 중에 연기 자체보다도 인기를 얻은 다음 CF로 돈을 벌려는 친구들이 보인다 ”  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노배우의 쓴 소리에 낯을 붉힌 이는 과연 그 ‘친구들’뿐이었을까.

 

박신양은 어땠을까. 그는 출연료 문제로 갈등을 빚어 몇 년 간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노배우는 박신양에게 그런 전력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후배들의 돈 욕심을 나무랐을 것이다. 어찌됐든 많은 연기자들이 노배우의 고언에 고개를 끄덕거렸을 것이다. 동시에 돈이 최고인 세태를 인정하지 않는 고색창연한 말씀이라고 여겼을 게 틀림없다.

 

드라마 ‘싸인’에서 김성원이 과거의 아끼짱을 상상 속에서 지켜보는 장면.
ⓒ SBS드라마  '싸인'

김성원이 ‘싸인’에서 맡은 역할은 고전적 캐릭터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만났던 일본인 여학생 ‘아키짱’의 옛 모습을 아스라이 더듬는 노인 역이다. 극중 윤지훈의 요청으로 일본인 ‘백골 사체’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회상 장면에 의하면, 그는 학생 시절 결핵을 앓았던 아끼짱이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지 않도록 도운 적이 있다. 그가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대동아전쟁에 끌려갈 때, 아키짱은  " 꼭 살아 돌아와 " 라며 울먹였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그는 아끼짱이 자신이 돌아오기를 매일 기다려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쟁에 나갔다 돌아오는 귀환병들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낭떠러지 바위에서 매일 그 남학생을 기다렸던 아키짱. 그렇게 기다리다가 결국 그 사람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게 돼 백골이 된 것이다.


그는 일생동안 단 한 번도 일본인 여학생이 자신을 좋아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키짱은 결핵환자였던 그녀를 남들과 똑같이 대접해 준 조선인 남학생을 죽는 순간까지 그리워했다. 그것을 뒤늦게 알게 된 노년의 그는 뭐라 형언할 수 없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아키짱이 자신을 기다리던 바위에서 바다를 망연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울림의 여운이 그윽하다. 삶의 희로애락을 두루 경험해본 배우여서 그런 연기가 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서 새삼 알 수 있는 것은 과거에 결핵 환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천재 시인이자 작가인 이상을 만 27세의 나이로 요절케 한 것은 폐결핵이었다. 이상 소설에 등장하는 신여성 변동림이 이상과 결혼한 것을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칭찬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상이 결핵환자인 것을 알면서도 결혼했으니 대단한 여성이라는 것이다.


변동림은 이상과 곧 이혼한 후 화가 김환기와 결혼해 해로했다. 김향안이란 이름으로 개명한 그녀의 정체성은 평생 `환기의 아내'였다. 그럼에도 한국현대문학사는 ‘폐병쟁이’ 이상의 곁을 잠시나마 지킨 것만으로도 그녀를 굵은 글씨로 기록한다.

 

결핵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폐결핵 환자를 예전에는 ‘폐병쟁이’로 낮춰 불렀다. 20세기 한국 예술사에는 수많은 폐병쟁이가 있었다. 가난한데다가 예민한 성정의 예술인들이 면역력 결핍으로 결핵균에 쉽게 감염됐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인들 뿐 만 아니라 일반인들 중에도 폐병쟁이가 넘쳐났다.

 

 

폐결핵 촌이라 불렸던 서울 은평구 구산동의 산비탈 마을이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10여 년 전에 그 마을을 취재차 찾아갔다가 그 참상에 놀란 적이 있는 나로서는 감회가 새로웠다. 결핵환자들이 순화병원(현재 서울시립서북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다른 곳에 가지 못하고 병원근처에 몰려 살다가 생긴 마을이었다. 그 마을의 모습이 얼마나 옹색하고 비참했던지, 폐결핵환자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예전에 폐결핵 환자들은 격리돼야 한다고 믿었다. 완치되기가 쉽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킬 수 있었던 탓이다. 그래서 한 번 걸리면 영원히 인생을 망치는 질환이었다. 그런 두려움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결핵퇴치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어린 시절에 결핵퇴치기금 모금을 위해 발행되는 크리스마스 실을 열심히 샀던 추억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 정부 당국과 관계기관들은 결핵을 퇴치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로 이제는 결핵환자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결핵 발생-사망률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고수하고 있다.  대한결핵협회(www.knta.or.kr) 자료에 의하면, 결핵으로 인한 사회ㆍ경제적 손실이 연간 8000억원에 달한다.

 

통계 자료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결핵환자로 새롭게 신고 된 환자 숫자가 2005년 이후에 크게 줄지 않았다. 최종 기록으로 잡힌 2009년에는 3만 5845명(인구 10만명당 73.5명)으로 오히려 1688명이 늘었다. 폐결핵환자 2만 8922명의 39%인 1만 1285명(인구 10만명당 23.2명)이 타인에게 전염성이 있는 도말양성 폐결핵환자다.

 


의학 기록에 의하면, 결핵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전염병이다. 기원전 7000년경 석기 시대의 화석에서 결핵의 흔적이 발견됐을 정도로 오래된 질환이다. 1882년 독일의 세균학자 로버트 코호(Robert Koch)가 결핵의 병원체인 결핵균을 발견하여 그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결핵은 결핵균에 의한 만성감염증으로 폐결핵 환자로부터 나온 미세한 침방울에 의해 직접 감염된다. 결핵은 발병하는 부위(폐, 흉막, 림프절, 뇌, 척추, 신장)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신결핵이면 혈뇨(피오줌)와 경우에 따라 방광염의 증상(배뇨 곤란, 빈번한 요의, 통증)이 나타난다. 척추결핵이면 허리에 통증을 느끼고, 결핵성 뇌막염이면 두통과 구토 등을 느끼게 된다.


폐결핵 발병 후 초기에 나타나는 증상은 잦은 기침이다. 기침은 가장 흔한 호흡기 질환의 증상이기 때문에 다른 질환으로 오인하기 쉽다. 2주 이상 기침을 지속하면 결핵을 의심한 후 병원 진료를 받아보는 게 바람직하다. 


병이 진행되면 폐에서 피가 나는 객혈이 나타난다. 약간의 움직임에도 호흡이 곤란해지는 증상도 생긴다. 무력감이나 쉽게 피로를 느끼고 기운이 없거나 식욕이 떨어지는 것도 일반적인 증상이다. 체중이 감소하고 미열이 있거나 잠잘 때 식은땀을 흘리기도 한다.
 

 

 

과거 별다른 치료법이 없을 때는 소위 3대 요법이라 하여 영양, 안정, 대기요법(신선한 공기와 일광)이 권장됐다. 일정한 장소에 격리돼 요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일부 증상이 아주 심한 환자를 제외하고는 요양소나 병원에 입원할 필요가 없다. 결핵약제가 치료에 도입이 되면서 완치가 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전염성 환자라도 일단 화학치료를 시작하면 급격히 전염성이 사라진다. 전염성을 차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격리 입원시키거나 휴직시키는 것은 실제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기화학요법인 경우는 치료기간이 6개월까지 줄어들었다. 치료기간을 좀 더 단축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약제개발도 연구 중이다.

 
결핵이 완치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첫째로 약제의 처방이 적절해야 한다는 것. 결핵치료약은 반드시 전문 의사에 의해 처방돼야 한다. 둘째로 규칙적으로 복용돼야 하며, 셋째로 충분한 용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넷째로 반드시 일정한 소요기간 동안 투약이 이뤄져야 한다. 증세가 일시적으로 호전되었다고 해서 약복용을 조기 중단하면 치료에 실패하거나 재발의 확률이 높아진다.


모든 병이 그렇지만 결핵도 예방이 중요하다. 신생아가 태어난 후 1개월 이내에 꼭 비씨지(BCG) 접종을 해야 한다. 비씨지는 우형 결핵균의 독성을 약하게 하여 만든 것으로 사람에게는 병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결핵에 대한 면역을 갖게 하는 백신이다. 결핵균에 감염되기 전 비씨지 접종을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발병률이 5분이 1로 줄어든다. 이 효과는 10년 이상 지속된다.

 

자신의 주변을 늘 청결히 하고 실내 환기를 자주 시키는 것도 필수적이다. 건강 관리에 신경을 써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과연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질환 중의 하나인 결핵이 세상에서 완전히 추방되는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오면 드라마 ‘싸인’에서 그린 폐결핵 환자와 그를 애틋하게 여기는 사람의 로맨스도 사라질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고귀한 생명의 기운을 앗아가는 결핵균이 활개를 치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장재선/ 문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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