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을,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니제르의 슈바이처 김대수, 조규자
멀고 먼 그곳에서


 

 

 

 아프리카.
추위는 없고 햇볕만 내리 쬐는 곳.

이글거리는 해를 머리에 이고, 자연의 문화와 인공의 문명이 공존하고대립하는 곳.
전설을 먹고 자란 거대한 바오밥나무 아래 원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노래를 하는 곳.
한 사람이 조그맣게 선창하면 뒤따라 불려지는 유장하면서도 경쾌한 선율이 검은 땅에 나지막이 깔렸다가는 흩어지고 그쳤는가 하면 다시 귓전을 울리는 곳.
삶과 죽음을 주관하였던 태양이 넓은 대지를 보랏빛으로 감싸면, 명상의 마당으로 바뀌는 곳.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사계절이 분명한 한국에서는 아프리카를 그저 막연히 낭만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지구 육지 면적의 20%를 차지하는 광활한 대륙, 세계 인구의 15%인 10억 그리고 53개 독립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역 또는 국가별로 다양한 특성과 복잡성을 지니고 있는 곳이 아프리카입니다.

정부파견의사제도는 1968년에 감비아(Gambia)에 의료단원을 최초로 파견하면서 시작되었고, 그런 눈부신 활약은 2008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임상 경험이 풍부한 한국의 의사들은 주로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가로 파견되었습니다. 미개하였기에, 가난하였기에 아프리카에는 전체 파견 인원의 50%가 넘는 의사가 활동하였습니다.

한국과 니제르(Niger)는 1961년 정식수교를 맺었지만 주재공관을 개설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니제르에 파견된 의사들은 자연히 양국간의 교류나 친선 도모를 위한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1968년부터 1997년까지 19년간 정부파견의사 업무를 수행한 의사 부부가 있었습니다.


의사 김대수와 의사 조규자입니다.

그들은 사하라 사막 남쪽에 위치한 니제르에서 19년간 인술을 펼쳤습니다.
니제르의 수도는 니아미이며,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약 6배 정도이며, 프랑스에서 독립하였고, 공용어는 불어이지만 대부분 부족어를 사용합니다. 이슬람권의 영향으로 이슬람교도가 다수를 차지합니다. 가뭄이 심하므로, 많은 물을 섭취하여야 탈수를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11월~2월 사이 건기에는 아르마탕이라고 하는 황사가 사막으로부터 불어옵니다. 우기 때는 천지를 가를 듯 몰아치는 모래바람과 억수같은 비가 단 몇 분간에 걸쳐 쏟아 붓습니다. 불어오는 습한 찬바람, 섭씨 45도를 오르내리는 지옥의 계절이 되기도 합니다. 이곳 주민들은 이 같은 흙먼지 바람과 태양열을 방지하기 위해 늘 뚤방이라는 긴 천으로 머리와 얼굴만 내놓고 다닙니다 .

김대수는 1935년 출생하여 1961년 고려대학교 의대에서 내과를 전공하고서 국립경찰병원 건강관리과장으로 재직하다가, 1968년 의료단원으로 파견되었고, 조규자는 1936년 출생하여 1961년 고려대학교 의대에서 이비인후과를 전공하고, 국립의료원 이비인후과 과장으로 재직하다가 1978년의료단원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의대 동기였던 부부는 외교사절단이라는 이름으로 그곳에서 젊음을 보낸 것입니다.

조규자는 그 세월을 이렇게 말합니다.

아프리카 개척자로 첫 발을 디딘 남편은 니제르 대통령 디오리의 요청을 받고, 그 당시 국립의료원에 재직하고 있던 나를 그곳으로 불러들였다.  나는 조국의 영예와 체면을 세우고자 1969년 첫발을 디딘 이후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게 된 것이다. 니아미국립병원 결핵과장인 남편 곁으로 가서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그 당시 이름조차생소했던 니제르로 떠난 것이 바로 어제 같건만…….


△ 2000년 니제르 소재 국립종합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종족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백주에 살인과 약탈이 벌어지는 니제르에서 조국의 영예를 위해 일하는 그들 부부, 그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설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혹독하리만치 무더운 날씨와 무섭도록 번지는 전염병의 나라.
말라리아는 모든 지역에서 발생하고 각종 풍토병이 창궐하는 나라.
1991년부터 1994년까지의 의사 김대수의 활동보고서는 한마디로 비상사태였습니다.
분기별로 약 70명의 결핵환자가 입원하면 대략 20명이 죽어나가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현재 병원사정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결핵 입원환자들은 결핵약품에 내성이 생겨 만성화된 상태입니다. 어려운 경제적인 사정으로서 의약품의 부족, 검사실의 시약 부족 등 사망률은 상당히 높습니다.
현재 병원은 오래 전부터 의료장비 부족으로 인해 병원운영이 거의 마비된 상태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인 면에서 갈수록 악화되다 보니 보건 분야에까지 심한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의약품의 부족상태는 물론 요즘 섭씨 40도 이상의 날씨에 뇌막염, 홍역, 기타 질병이 만연, 이미 1,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여 보건 분야 종사자까지도 위협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자주 있는 노조파업으로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습니다. 거기에다 물가는 상승하고 파업으로 인하여 전기가 끊기고 수돗물이 나오지 않고 국민들은 빈곤에 허덕이고 공무원들의 근무태만 등 모두가 무관심 상태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의사 조규자의 보고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병원행정의 모순으로 마취의사가 없어 수술을 못하고, 7백만의 인구에 이비인후과 진료를 혼자서 당해내는데도(한 명의 니제르인이 있으나 출근도 잘 안함), 도와주는 인원이 없고 병원에 약품이나 기구는 완전히퇴폐함.
수개월간에 걸친 봉급지출 요망과 병원은 치료에 필요한 약품기구 등의 결핍으로 의사까지 전면파업에 들어가고 환자들을 포기하여, 이곳에 있는 저로선 환자들을 돌봐주려니 매우 힘들고, 공무원도 부분파업에 돌입했음.

입원환자에게 식사를 2개월간 못줄 정도로 병원의 경제적 사정이 매우어려움.
경제적 궁핍이 극단에 처함에 따라 강도 살인사건이 니제르 시내에서도 일어나 저녁에는 외출도 못하고, 응급환자 치료는 물론 약, 수술품 부족으로 환자치료에 막대한 지장이 있으며, 병원의 파업이 잦아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환자보호자 측과 신경전이 대단함.

 


△ 니제르 파견 당시 니아마 병원에서.


의사 김대수는 결핵퇴치에 힘써 환자수를 70% 이상 줄였고, 의사 조규자는 하루에 적어도 15건의 이물적출을 예외 없이 진행하며, 니제르 국민의 이비인후과 위생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니제르 정부의 신임을 받아 대통령가족의 주치의로도 활동하였습니다.
치료나 수술을 해주고 나면 감사하다는 표시를 하는데, 마치 약 구입비나 교통비를 달라고 손을 내미는 것과 같은 그들의 순진한 동작을 보람으로 여기며, 의대생의 임상실습과 졸업생 심사위원 및 간호학교 강의 등 바쁜 일정도 소화하였습니다.

1995년. 의사 조규자는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정주년 총재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총재님.
안녕하십니까?
한해도 다 저물어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새로 다가오는 한 해를 좀 더 보람 있게 맞이하려고 하는 지금, 마음의 착잡함을 가라앉히며 이 글을 올립니다. 의학의 발전도 첨단에 이르러 병의 초기발견으로 완치가 가능한 현대의학에 맞추어, 본인의 혈뇨(현미경적)로 현지에서 검사 못하는,때문에 불란서로 가 수종의 병원검사로 소변에서 암세포가 발견된 관계로, 이에 따라 정밀검사를 하던 중 불란서의 계속되는 파업으로 검사는 지연되고, 니제르 행 비행기가 1주일에 1회밖에 없고, 1개월간 자리가 없다고(만원)하여 원래 모든 일에 철저한 Dr. Kim(부군)이 허락받았던 병가의 날짜가 완료되어 그대로 니제르로 돌아왔습니다.

본인은 니제르로 돌아와 정상적으로 계속 병원 근무를 무리하게 하고있으나, 부군 Dr. kim은 저의 건강 걱정으로 그동안 5kg의 체중이 감소되어 오히려 제가 보기가 곤란합니다. 좀 더 불란서에 눌러앉아 검사와필요에 따라 이에 치료까지 받았으면 마음도 편안하였겠지만, 체류기간이 짧아 매우 힘이 드는군요.

부인은 소변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지만 인술을 펼치기 위해 그냥 돌아와야 했으며, 다리가 골절이 되어 프랑스로 후송을 가거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2년간 치료기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남편도 척추골절이 생겨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의사 부부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냈고,항상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오늘날까지 어렵고 힘든 이곳 니제르에서 25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은총과 사랑 때문이었다고 믿고 있다. 또한 매 주일마다 미사에 빠지지 않고 참례할 때 따뜻한 격려를 해주시던 니아미성당의 로마노주교님과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 주셨던 조국의 여러 친지 분들의 보살핌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기회를 통해 그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다.

의사 김대수는 1972년 대한민국 국가훈장 수교훈장 숙정장, 1973년,1982년,1988년 니제르 국가훈장, 1993년 제4회 상허대상, 1996년 제4회KBS해외동포상을 수상하였습니다.의사 조규자는 1975년,1983년,1988년 니제르 국가훈장, 1982년 대한민국 국가훈장 수교훈장 숙정장, 1993년 제4회 상허대상, 1998년 KOICA 공로패, 1996년 제4회 KBS해외동포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힘든 보릿고개를 넘기던 시절, 조국을 떠난 그들입니다.
이제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니제르는 아직도 그 때 그 시절을 못 벗어나며 세계 최빈국입니다. 청춘과 꿈과 야망을 모두 바친 김대수,조규자 부부의 어언 20년 세월을 되돌아봅니다.

대한민국의 영예를 떨쳤고, 니제르인의 생명을 지켰으며, 한국과 니제르 두 나라간의 상호협력 및 우의에 기여한 공로로 그들의 일생을 간추린다면 결례가 아닐까요.
멀고도 먼 그곳에서 숭고한 사랑의 인술을 펼친 그들 부부가 있어 오늘의 우리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 사택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니제르 파견 한국의료단 백용환, 김대수 의사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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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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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법루시퍼† 2011.05.13 0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2. 풀칠아비 2011.05.13 1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의 인술을 실천하고 계시는 분들이군요.
    이런 분들 덕분에 아직까지도 세상이 살만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낌없는 박수 보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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