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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나눔&봉사

[금요특집]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제2부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을,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레소토의 슈바이처 김명호

아프리카 연가

 

 

 

 

 

아프리카의 오지 그리고 불안한 정국으로 혁명이 빈발하는 검은 땅에서 목숨 걸고 인술을 펼쳐온 한국인이 있습니다.


의사 김명호.


그는 1934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외과를 공부하였습니다. 1972년부터 1976년까지 우간다(Uganda)와 계약의사로 근무하였으며, 1978년부터 정부파견의사로써 말라위(Malawi) 좀바병원에서 근무하다가,
1982년에 레소토(Lesotho)로 전임하였습니다.


그가 레소토로 오던 무렵은 국제정세가 복잡하였습니다.
1983년. 레소토는 중국과 러시아, 북한 그리고 동구권 공산위성국가들과 교류하고 경제, 기술협정을 맺은 후 1983년 한국과 외교관계를 중단하였습니다.


군사분계선을 두고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실정에서 북한대사관 직원들과 마주치면서 생활한다는 것은 심리적 압박이었습니다. 국교단절로 대사관도 없는 상황에서 주 케냐 대사관이나 한국 우방국의 주 레소토 대사관에 신변 보호를 맡겨야 하는 상황 또한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인 외교가 단절된 상태에서 주재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부파견의사에게 의료봉사라는 인도적인 활동 외에도, 주재국의 사회적인 상황을 전달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정부의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서신으로나마 중국과 북한 등 공산권 국가들의 활동을 알리고, 또한 정부파견의사로서 성실하게 근무함으로써 주재국의 재계약 요청을 이끌어 내어 비수교국이라 할지라도 정부간 의사소통의 통로를 마련하는 등 그야말로 민간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가 KOICA(한국국제협력단)에 보낸 1992년 1/4분기 활동보고서입니다.

입원환자수 832명, 외과외래치료인원수 888명, 수술인원 609명이었다.
병명은 다양한데 두부외상, 갑상선비대증, 경부수낭, 경부임파선염, 경부농양, 기혈흉증, 농흉증, 식도암, 식도이물, 유방암, 양성유방종양, 장폐쇄증, 폐쇄성황달증, 충수염, 치핵, 치열, 치루 등 다양했다. 또한 항생제, 고가약품 부족, 응급실 X-Ray와 단층촬영기 등의 시설부족, 의사와 간호사 등의 인원이 부족하였다

 

 

▲ 지원물품 전달 기증식

 

외과의사가 전무한 상태에서 1년에 평균 600건 이상의 크고 작은 수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보람된 일은 그 자체가 기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서 약 530km 떨어진 준사막지대인 모로토는 주민들이 외부사람들을 싫어하고, 자기가 살기 위하여 사람을 죄의식 없이 쉽게 죽이는 종족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물이 부족하고 가축을 방목하는 곳이라 위생상태가 매우 열악하고 특히 흙먼지가 많아 눈 질환이 심한 오지였습니다.

 

 이 지역은 마치 귀양지같이 소문났기 때문에 근무하겠다는 의사가 없어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170km 떨어진 수술할 수 있는 병원으로 환자를 후송해야만 했는데 도중에 환자들이 사망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수많은 환자를 수술했으며, 외과 환자뿐만 아니라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 안과 질환자들까지도 치료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적은 양의 약품으로 많은 환자에게 투약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했습니다.

환자 가운데 제왕절개수술 환자가 가장 많아 매일 3~4건의 수술을 했으며, 그밖에 교통사고로 두부손상과 골절환자도 많았습니다. 특히 헌혈을 하는 사람이 적어 혈액이 부족해 수술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뿌듯했고, 그 보람은 가늠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케냐(Kenya) 남부 보이라는 조그만 시골에 있는 120개의 병상을 갖춘 정부병원에서 외과과장으로 근무하면서 나이로비와 몸바사 간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교통사고와 밀렵자 총격사고 환자 등의 응급수술을 했으며, 산부인과, 내과, 소아과 환자들도 진료했습니다. 그 지방 역시 외과전문의가 한 명도 없었기에 수많은 수술환자들로 항상 바쁜 일정을 보냈습니다.


말라위 좀바.
말라위는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하고, 좀바 남쪽으로는 모잠비크(Mozambique)를 맞대고 있습니다. 정부파견의사로 국위를 선양한다는 각오로 동부아프리카를 떠나 남부 말라위의 좀바라는 도시에 있는 350병상 규모의 정부병원에 부임하였습니다. 그 병원은 규모가 제법 큰 병원인데도 의사가 4명뿐이었으며, 그나마 전문의는 혼자뿐이어서 거의 매일 밤 응급환자를 수술하느라 밤을 꼬박 새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83년. 북한과 수교하는 바람에 레소토 정부가 일방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와 국교를 단절하여 갑자기 철수해야 하는 입장에 처했으나, 레소토 보건성은 국교 단절은 정치적 문제이니 상관 말고 계속적인 환자 진료를 원했고, 한국정부에서도 외교상의 정도를 걷는다는 뜻에서 계속 남아 진료하라는 지시에 따라 아무런 신변 보장 없는 곳에서 묵묵히 3년 동안 근무하였습니다.


 

1986년. 레소토에서 군사혁명이 일어나 친 서방정책으로 선회하며 국교가 재개되었습니다. 그동안 한국과 외교 단절된 상태에서 근무하는데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다른 나라로 가려고 하였으나 혁명군사정부 최고위원회에서 다른 나라로 전근되는 것을 알고서 보건성에 지시, 나이로비 한국대사관에 의뢰하여 계속 근무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1995년 그가 KOICA에 보낸 서한입니다.


레소토에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2세 병원(Queen Elizabeth II Hospital)은 이 나라에 하나뿐인 종합병원인데도 불구하고 외과의 120개 병상이 고작이어서 항상 만원이다. 병상이 모자랄 때는 마루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수용할 때도 자주 있으며, 일반외과전문의들이 정형외과, 신경외
과, 비뇨기과까지 진료하고 있는 형편이다.

 

1995년. 그는 23년간의 아프리카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였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1986년. 정부는 그의 참된 의사로서의 국위 선양을 치하하며 수교훈장
숙정장을 수여하였고, 1995년 대한의사협회는 그의 살신성인적인 의료 활동을 높이 평가하며 표창하였습니다.
 

▲ 흙탕물을 긷고 있는 레소토의 어린이들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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