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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나눔&봉사

[금요특집] 한국의 슈바이처들.... 제4부(김정)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을,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보츠와나의 슈바이처 김정

그저 사람만이 중요할 뿐

 

 

 

 

 

 

이름도 생소한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와 보츠와나(Botswana)에서 인술을 펼쳤던,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의사였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도 부자였던 사람이 있습니다.

의사 김정.


김정은 1925년에 태어나서, 1950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외과 공부를 마쳤습니다.
1970년부터 정부파견의사로 서부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어퍼볼타(Upper Volta)로 불렸던 부르키나파소 가와병원(Burkinafaso Gawa Hospital)에서 4년간 근무하였습니다.
에어컨 안에서 뱀이 나오고, 자고 일어나면 신발 속에서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봉사활동을 펼치면서 한 번도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은 없었습니다.
그는 남아프리카 남부 중앙 내륙에 있는 나라 부르키나파소에서 외과 의사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곳은 평균 수명이 짧아 노동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빈곤층의 격증과 국력의 약화가 계속 진행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는 1973년부터 1990년까지는 남부 아프리카에 있는 보츠와나 프란시스타운 주빌리병원(Botswana Fransis Town Jubiley Hospital)에서 인술을 펼쳤습니다. 정년 퇴직으로 1986년 귀국하였다가 한 달여 만에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가 무료로 자원봉사를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의료 봉사활동을 벌이고 민간외교관 역할까지 담당하다가 1999년 그곳에서 고귀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김정의 아들, 사진작가 김중만은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지구촌 가족》에서 그의 아버지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아버지는 내가 알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의사였다.
평생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수술과 치료를 하면서 살았고,
와인을 즐기는 로맨티스트였다.


1971년 아버지가 정부파견의사로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이 기억난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우리 집은 양계장을 방불케 할 만큼 온통닭 천지였다.

아버지는 개인병원을 하셨는데, 가난한 환자들이 치료비 대신 닭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는 그저 ‘사람’만이 중요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로 떠났다.
가난한 외과의사 김정은 30여 년을 그렇게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와 보츠와나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는 소박하고 위대한 삶을 마쳤다.
나에게 아버지가 평생 쓰던 청진기 2대와 2,000달러의 유산을 남기고…….

 

 


 

 

의사 김정의 부인은 그의 남편과의 추억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Dr. Kim은 1970년 아프리카 어퍼볼타 지역에 외과의로 파견 갔어요.
딱 2년만 하고 돌아오려고 했지만, 현지의사 부족으로 불가피하게 계약을 연장하게 됐습니다.

이후 보츠와나로 재파견 되었고, 현지 생활에 정이 들어 계속해서 연장근무를 하게 됐습니다.
1979년에는 Dr. Kim이 보츠와나 정부로부터 대통령수교훈장을 받았지요.

 

보츠와나의 경우 에이즈는 물론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환자가 많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저희 둘째 아들은 현재 보츠와나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요.

 그곳에서 태어난 손주 김유순과 김규환도 한국에서 군복무를 마쳤어요.

보츠와나 현지 주민들이 정이 많고 정직해서 그곳에 관한 추억이 참 많네요.

당시 보츠와나에 공설운동장을 건립하는데 Dr. Kim이 한국인으로서 5,000달러의 거금을 기부했던 기억도 납니다.

Dr. Kim은 1986년 정년퇴직하고 한국으로 복귀했지만,

한 달여 만에 다시 보츠와나로 돌아가 파견 당시 근무했던 병원에서 무료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Dr. Kim은 인턴으로 온 학생들을 데리고 독립적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을 만큼 진료여건은 좋았어요.

 

특히 1970년 11월 4일 어퍼볼타로 파견됐을 당시

그곳에는 전기는커녕 수돗물조차 나오지 않는 열악한 국가였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생활하기에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요.

 

이후 파견된 보츠와나는 어퍼볼타와 달리 근무환경, 복지, 치안상태가 매우 안정적이어서 굉장히 좋았어요.

현지주민들의 의사에 대한 존경심도 대단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의 봉사활동에 대한 굉장한 자긍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국가차원으로 정부파견의사를 기리는 단체나 조직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런 단체가 존재함으로써 정부파견의사가 현지,

혹은 한국 복귀 이후 겪는 고충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의사 김정의 부인과 원주민들


 

 

아프리카를 사랑하고 그곳에서 의연하고 올곧게 일생을 보냈지만, 는 물론 자식들의 국적도 한국으로 고집하여 현지에서 태어난 손자들이 한국에서 군복무를 마쳐 언론에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거주하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기념하여 병원을 지으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의사 김정은 오랫동안 아프리카에 있었기에 국내에 연고가 없었기 때문에 작고하고서 편안히 묻힐 유택이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외국관광객을 위한 통역 안내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그의 부인은 그런 상황을 못내 아쉬워하였습니다.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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