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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나눔&봉사

[금요특집] 한국의 슈바이처들....제5부 박형동, 서미라 부부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을,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탄자니아의 슈바이처  박형동, 서미라 부부

신앙의 힘과 생명 존중의 외경심으로

 

 

 

 

 

 

 

선교활동을 펴기 위해 1991년 8월 초 탄자니아로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가톨릭병원 일반외과장을 그만 둔 박형동(35)씨와 성남병원 정신과장인 서미라(34)씨 부부가 두 자녀와 함께

탄자니아 킬리만자로산 밑 인구 80만 명의 아루샤 기독병원에서 무료봉사하기 위해 출국한다.

 

 

그들의 장도를 격려하는 어느 신문 기사의 일부분입니다.
박형동은 1957년에 태어나 가톨릭대학교 의대에서 일반외과를 공부하였고, 1991년부터 의료선교의 일환으로 탄자니아(Tanzania)에서 근무하다, 1993년 KOICA(한국국제협력단) 정부파견의사로 신분이 변경되었습니다.

 

서미라는 1958년에 태어나 가톨릭대학교 의대에서 정신병과를 공부하였고, 1991년부터 의료선교의 일환으로 탄자니아에서 근무하다, 1996년KOICA 정부파견의사로 신분이 변경되었습니다.

그들은 부부였습니다. 그들이 몸담았던 병원은 킬리만자로 크리스천 메디컬센터(Kilimanjaro Christian Medical Center).

 

KCMC 중환자실에서의 진료모습


의사 박형동과 의사 서미라는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대학에서 같이 공부하였으며, 평생의 동지였습니다.

그들은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떠났습니다.
부부의 어느 날 선언은 폭탄이었습니다.

 

우리는 아프리카로 간다. 의사보다는 선교사에 더 매력을 느낀다. 미련없이 떠나겠다.


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이들 부부가 독실한 신자인줄은 알았으나, 막상 선교사로 떠날 줄은 몰랐습니다.

주위의 부러움을 받던 맞벌이 의사가 안정된 직업을 박차고 오지인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떠난다는 것은 그
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 동부 인도양을 마주한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산이 있는 나라.
그들의 활동은 드넓은 아프리카 초원의 표범처럼 긍정적이며 역동적이었습니다.

 

의사 박형동은 일반외과 전문의였습니다.
탄자니아의 도로사정이 여의치 않자 세스나기를 구입하여, 직접 몰고 하늘로 날아 아픈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호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신속히 사막을 날아가 최고의 의료 서비스(Royal Flying Doctor Service)를 제공하는 것에 착안하여, 경비행기를 타고 외과의사가 없는 지역을 순회 진료하면서 환자 수송에 적극 활용하였습니다.

탄자니아의 의료 상황도 여타의 아프리카 최빈국과 유사하였습니다.
불안한 전력 공급과 부족한 의료 장비는 물론 병원의 재정난으로 인한 마취약 부족으로 응급 수술 위주의 수술만 시행하였습니다.

 

수술을 하다가 불이 나가면 랜턴을 밝혀야 했습니다.
의사들의 협조가 부족하여 항상 갈등이 발생하였고, 생명 경시 등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좌절도 맛보아야 했습니다. 약품 밀반출과 금품수수 등의 부조리가 만연하였고, 병원도 항상 원조를 바라는 구태의연한 모습이었으며, 심한 부패와 불신으로 인하여 세계가 등을 돌렸습니다.

 

 

수술중 전기가 나가 후레쉬로 비춰가며 수술하고 있는 광경

 

 

그는 묵묵히 그의 본분을 지켰습니다.
그가 KOICA에 보고한 1993년 3/4분기 활동보고서입니다.


 

치료한 환자는 약 400여 명으로 병명은 각종 외상, 화상, 위장질환, 혈관질환, 항문질환 등이다.

또한 위절제술, 소장대장절제술, 피부이식, 혈관외과수술 등 10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였다.

 

특히 그는 탄자니아 최초로 식도암 절제와 혈관 문합 그리고 흉부교감 신경절제수술 등을 시도하여 최신 의료시술을 선보였습니다.
매주 준의사 코스 수강생을 대상으로 외과학을 강의하였으며, 분기별 한차례씩 마사이족을 찾아 아픔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았으나 임박한 약품을 정가보다 싸게 구매하여 원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1994년에는 브룬디(Burundi)와 르완다(Rwanda) 두 나라에서 발발한 내전과 부족간의 전쟁으로 탄자니아 서북쪽 국경지대에 백만 명으로 추정되는 난민들이 집결해 있었습니다.

그는 UN이나 적십자기구 등에서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난민수가 워낙 많아 세계 각국의 구호가 절실하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예방 가능한 질환으로 죽어가는 환자가 많아 예방의학의 중요성도 주장하였고 보건소 건설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특히 심장센터 설립이 절실하다고 역설하였습니다.

 

 

르완다 난민 지원 프로젝트 활동 모습


 

 

의사 서미라는 신경외과 전문의였습니다.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에 의사를 파견할 때는 주로 Major과인 외과,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 위주였습니다.

실제 탄자니아에서도 Minor과 전문의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습니다. 탄자니아에서는 구순구개열인 언청이 등 성형수술이 필요한 환자수가 부지기수인데도 성형외과 전문의는한 명도 없는 상태였으며, 신경외과 전문의는 딱 한 명만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는 신경정신과 의사로서 탄자니아의 정신질병에 관심을 쏟았습니다.

1994년. 3천2백만의 탄자니아 인구 가운데 전문적 정신치료가 요구되는 환자의 수는 70~80만 이상으로 추정되었는데, 아프리카는 미개발지역으로서 문화가 덜 발달하여 환경적인 스트레스가 적으므로 정신질환자가 적을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간질환자는 잘못된 문화적 관습과 가정불화 그리고 기생충의 만연으로 선진국보다 환자수가 2배이상 많을 것으로 추정하였습니다.

 

 

서미라 의사의 근무 모습

 

 

그가 KOICA에 보내온 1996년 1/4분기 활동보고서입니다.

 

외래환자 분기당 외래환자는 450여 명. 카운슬링환자는 100여 명에 이르며 병명은 정신분열증, 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간질, 치매, 파킨슨증후군 등 다양하다.

의료 활동상의 문제점으로 정신과 약품구입의 어려움과 수입약품 대부분이 고가로 매매된다.

중증 정신질환자 수용시설 및 훈련인력이 부족하다.

정신질환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주재국과 주민의 반응이 호의적이나 정신과 의사의 태부족으로 훈련된

간호사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KOICA에서 지원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탄자니아 국민의 간질환자 실태 조사 및 진료 프로젝트를 실시하였으며, 세계적으로 치료를 요하는 간질환자의 수는 인구의 1~2%선으로 알려졌으나 탄자니아는 이보다 두 배가량 높은 3% 전후일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그 원인으로 분만 시 뇌손상 후유증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열악한 교통시설로 인한 가정에서의 출산과 미비한 의료시설 및 여성할례 등 잘못된 관습으로 인한 산도손상에 기인하며, 기생충감염도 한 원인이라 지적하였습니다.

 

탄자니아 인구 중 약 백만 명 가까이가 치료가 요구되는 간질환자로 추정되며 이중 어떤 형태이든 투약을 받고 있는 환자 수는 불과 1%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그나마 약효가 떨어지는 페노바비탈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탄자니아에 정신과 전문의가 불과 10명 내외인 것을 고려하면 그나마 나은 수준의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수
는 불과 1천 명 내외일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정신질환자 인식증대와 정신과 위상 제고에 노력하였으며, 그의 부단한 노력으로 탄자니아에서 처음으로 정신과가 개설되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탄자니아 아루샤에서 킬리만자로 영봉을 바라봅니다.

아프리카인의 성지라 일컬어지며, 적도 부근에 있으면서도 만년설로 덮여 있어 항상 번쩍거리는 산.
설산이 아프리카를 묵묵히 굽어보고 있습니다. 그들 부부는 그 산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강원도 산골에 들어와 있는 느낌 같아요.


젊음으로 버텼지만, 어찌 갈등과 좌절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신앙의 힘과 생명존중의 외경심으로 탄자니아에서의 봉사활동을 성실히 수행하였습니다.

 

 

국민일보, 1997.7.11일자 「검은대륙에 심은 복음인술」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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