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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나눔&봉사

친구들과 녹여 먹던 '십리과자'의 옛 추억

 

 

 

 

40여 년 전 초등학교 시절 때의 일이다.

그 당시는 보릿고개라 하여 하루에 밥 세끼를 먹는 집은 부자였고 하루 중 한 끼는 고구마나 감자 아니면 죽 등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밥이래야 쌀은 조금만 들어가고 보리가 70~80%나 되어 꽁보리밥 그대로였다.

반찬이래야 양념도 별로 들어가지 않은 소금만 많이 넣어 만든 김치와 겨우 메주를 띄워 만든 된장이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에 학교가 멀고 가방도 없어서 책을 가득 넣어 둘러 싼 책보를 들고 걸어 다닌 시간이 많아 하교할 때면 힘이 빠져 비실거릴 정도였다.

비가 내릴 때는 책을 비에 젖지 않게 하기 위해 책보를 허리춤에 차고 달음박질까지 했었다.
그런데 학교 앞 문방구에서 일명 ‘십리과자’ 라는 것을 팔았는데 동그랗고 견고하게 만든 사탕으로 굉장히 단단해 깨어먹을 수가 없었다.

 

문방구에서 이 과자를 한 알 사서 입에 넣으면 거의 집에 다 도착할 때쯤 단물이 빠지고 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요즘 사탕류들은 이만 좋으면 바로 깨물어 부술 수 있지만 당시의 그 십리과자는 너무나 단단해 도저히 입으로 깰 수 없었으며 만약 깨다간 이가 부러져 그냥 입에 넣어 천천히 녹여 먹어야만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약 4km이었으니 그 짧은 보폭에 한 시간 이상을 걸어야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여겨지며 요즘 아이들은 학교까지 가까워도 자가용으로 가거나 버스를 타기도 한다.

지만 먹을 것이 없거나 부족해 체격이 왜소했지만 그 먼 거리를 달음질하거나 빠른 걸음으로 걸어 다녔으니 격세지감이 든다.

 

정말 당시에는 돈도 없어 무엇 하나 사 먹기도 힘든 시절이었으므로 유일한 군것질이라고는 실리적인 그 과자였다. 그것도 매일 사 먹기는 힘들어 친구들과 반씩 씹기도 했다. 먼저 입에 넣은 친구가 한참 단물을 빨아먹고 다음에 친구의 것을 받아 입에 넣어 녹여 먹었다.


요즘 같으면 더럽고 비위생적이라 하여 아무도 남이 먹던 것을 받아 먹지 않을 것이다.

위생상 좋지 않고 에이즈니 무슨 질병에 걸릴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남이 먹은 것을 받아먹어도 병 하나 걸리지 않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랐던 것이 아닌가.

 

최근에는 자기가 먹고 싶은 것 무엇이든지 간식이나 군것질을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가정환경도 어렵고 밥 세끼도 먹기 어렵던 시절이었기에

군것질마저 함부로 할 수 없던 시절이었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은 이것저것 너무 잘 먹어 비만이나 당뇨병에 걸리지만 당시에는 이런 질병에 걸릴 염려는 아예 없었다.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서서히 다 녹아내려 한 시간 이상이나 걸었던 다리에 그나마 피로회복제가 되었던 것이다.
과자 하나 제대로 사 먹기 힘든 시절을 머릿속에 떠 올리며 요즘 어린이들은 너무나 집에서 잘 해 먹이고 간식이나 군것질 비용도 자주 주어 제멋대로 사 먹고 있지 아니한가.

 

 그런데 체격은 좋지만 체력은 요즘 학생들이 형편없이 낮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들며 요즘 아이들을 적게 낳다보니 지나치게 과보호하고 정신적으로도 강하지 못하고 부모께 의존해 버리는 경향이 많아 자주적이고 독립된 개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지 걱정스럽다.


 

우리의 아이들이 더 건강하고 밝게 자라기 위해서는 학교와 학원 안에만 가두어둘 것이 아니라 틈나는 대로 바깥에서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고 많이 노는 모습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을 누리길 기대해 본다.

 

우정렬(부산시 중구 보수동 1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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