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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나눔&봉사

아련한 전통혼례의 기억과 추억

  집에 돌아가니 반가운 안내장이 기다렸다. 고향 마을 고모님댁 조카가 시집을 가는데, 고향에서 전통혼례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릴 적 코흘리개 때나 보았던 전통혼례를 한다니 너무 반갑고 기대가 됐다. 

  주말에 아이들과 아내 온가족이 고향으로 내달렸다.

 

 

 

한낮, 마당에 차일이 쳐지고, 여기저기서 모여든 구경꾼들과 혼주 친인척 들은 잔칫집 마당에서 분주하게 바지런을 떨었다.

옛날에는 흔한 일이었지만 요즘은 보기 드문 일, 즉 신랑 신부가 한 동네에서 자란 동무라고 했다.

그러니 보내는 이도 서운함도 없어보였다. 노인들은 “잘 키워 멀리 안보내는 것도 고마운 일”이라며 기뻐들 했다.

 

사모관대 신랑과 연지곤지 신부가 나서자, 마당을 채우고도 모자라 축하객들은 까맣게 주변에 진을 치고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전통혼례에서 신랑은 턱시도가 아닌 사모관대를 입고, 신부는 드레스가 아닌 황원삼을 입기 때문에 도시의 예식장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전안례, 교배례, 합근례순서로 행해졌다.


처음 하는 결혼식, 엉거주춤 서투른 신랑을 두고 신랑 친구들은 “첨엔 다 그래. 다음엔 잘하겠지.”라며 키득거렸다.

 

처음 술잔으로 마시는 술은 부부로서의 인연을 맺는 것을 의미하며, 표주박 잔으로 마시는 술은 부부의 화합을 의미한다.

성스럽고 기쁜 혼례를 하늘에 고하여 이 뜻을 만천하에 전하여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원하는 고천문 낭독, 그리고 양가부모님과 축하객 여러분들께 감사의 큰절을 올린다.

 

이윽고 다산을 기원하며 하늘 높이 장닭과 암탉을 날린다.


새내기 부부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신명나는 풍물소리에 맞춰 힘찬 성혼 행진을 하자 축하객들은 초례상 위에 있던 팥과 쌀을 한줌씩 나누어 쥐고 있다가 성혼 행진을 할 때 신랑과 신부를 향해 “행복하게 잘 살아라” 라는 덕담과 함께 던진다.

 

드디어 신부를 태운 가마가 대문을 나서자 대문을 막아서고 있던 축하객들은 약속처럼 비켜서 길을 열었다.

 

2011년에 치루는 전통혼례를 보노라니 그 옛날 코흘리개 시절에 보았던 전통혼례의 추억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옛날 혼인식은 이보다 더 왁자지껄하며 소란했고 인정미, 사람 사는 맛이 넘쳤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지들의 이야기꽃과 신랑신부 친구들의 흥분어린 웅성댐,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의 수선거림이 정겨웠다.

 

잠시 옛 추억을 떠올려 보는 사이 벌써 어디선가 “가마 앞을 막으면 징 맞고 동티 나 오래 못산다”고 외치는 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이미 몇 십 년 전에도 들었던 말 이었다.
젊은 교꾼들은 “목이 말라 못가겠다”는 너스레로 술을 청하며 잔칫날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이제는 정말 보기 힘든 전통혼례를 뒤로 하고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고향은 지금 그저 순수하게 시끄러웠던 흥분되고 북적거렸던 맛이 없어졌고, 코흘리개 어린 아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모두 다 도시로 나가서 없기 때문이다.
얼굴 들이밀기도 부담스러운 요즘 결혼식장 보다는 차라리 도떼기시장 같은 옛날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결혼식장에 갈 때마다 들어서 못내 아쉽고 서운하기만 하다.

고향의 전통 혼례를 이제 언제 또 볼 수나 있으려나?

 

 

윤현숙(서울시 동대문구 전농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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