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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맞춤형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과 음악 치료

 처음엔 시뜻했다. 한 번 히트작이 나오면 비슷한 것을 계속 만들어대는 방송가의 관행이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 편’에 대한 이야기다.

‘남자의 자격’은 바로 그 전에 합창단이 전국 대회에 참가하는 과정을 그린 ‘하모니 편’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합창단을 이끈 뮤지컬 감독 박칼린이 일약 전 국민의 스타로 떠오를 정도였다.

 

 

 

  

 

 

 

 

   그런데 또 합창단 이야기라니….

 

시청자들이 질리도록 우려먹을 심산이로구만. 이렇게 비뚜름하게 생각했는데, 우연히 그 오디션 과정을 담은 방송을 지켜본 후에 생각이 바뀌었다. 보는 내내 눈시울을 붉히며 감동에 젖은 까닭이다.

 ‘청춘합창단’은 이름처럼 이팔청춘의 젊은이들이 참가하는 노래 모임이 아니다.

 

1960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 즉 우리 나이로 치면 52세 이상 되신 분들에게만 오디션에 응할 자격이 주어진 합창단이다.

그런데 왜 청춘합창단인가.  척하면 삼천리고, 쿵하면 담 넘어 호박 떨어지는 소리라고 했다. 추정컨대 ‘몸은 늙어도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말에서 차용한 것이 틀림없다.         


 청춘합창단 오디션 과정에서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이경규, 이윤석, 윤형빈, 전현무 등 ‘남자의 자격’ 기존 멤버들이었다. 이번 합창단을 이끄는 지휘자 역할을 한다는 기타리스트 김태원과 함께 외부 심사위원인 가수 박완규, 뮤지컬 배우 임혜영도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 심사위원들은 합창단을 함께 할 실력자들을 찾기 위해 눈을 빛냈으나, 오디션에 참여한 이들의 사연과 노래를 들으며 본연의 임무를 잊은 듯 흠뻑 빠져 들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시청자 시각에서 봐도 마찬가지였다.  

 

10월에 결혼을 하는 딸을 떠나보내기 전에 홀로서기를 준비하기 위해 지원했다는 초로의 여성, 90세의 노령이지만 소녀처럼 설레는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할머니, 중국 옌벤에서 교사를 하다가 서울에 온 후 막일을 해왔다는 중년 여성, 신장 이식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인 중년 남성 등. 모든 지원자들의 사연이 가슴을 울렸다. 

 

 서울대 성악과를 나온 후 서울시립합창단 소속으로 활동했으나 건강 등의 문제로 지방에 내려가 양봉업을 해 왔다는 ‘꿀포츠’ 김성록 씨의 모습은, 그 탁월한 노래 실력만큼이나 이채로웠다. 

 

청춘합창단 오디션 과정에서 새삼 느낀 것은 음악이 삶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훌륭한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50대의 한 여성은 “15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들을 잊으려 몸부림치다가 노사연의 ‘만남’을 들은 이후에 줄곧 이 노래를 부르며 가슴 속 상처를 달랬다”고 했다. 

 

 연전에 외아들을 잃었다는 초로의 부부도 “슬픔을 노래로 달래 왔다”고 했다. 부부는 서로를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며 함께 노래를 했다. 심사위원들은 모두 눈을 감고 부부의 노래를 들었으며, 여성 심사위원인 임혜영은 줄곧 눈물을 흘렸다.

이경규는 “두 분의 사이가 너무 좋아서 외아들을 잃어버린 사연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못했다”“노래로서 아픔을 치유한 것으로 보였다”는 소감을 털어놨다.  
  

 

 

 

 

   음악에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은 의학계도 주목하고 있는 사실이다.

 

20세기 중반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음악 치료’(Music Therapy)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한국도 1990년대 중반에 음악치료협회가 설립됐을 정도로 관심이 높아졌다.

전문가들의 정의에 따르면, 음악 치료는 정신과 신체 건강을 복원하고 유지하거나 향상시키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다.

 

장애나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증상이나 기능의 저하를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고, 그들의 고통이나 번뇌를 줄여주는 것이 음악치료의 목적이다. 

 특수 교육 기관과 장애 아동 기관들은 교육적 목적으로, 또 정신 병원 등에서는 환자들을 위한 심리 치료 영역에서 음악을 활용한다.  물리 치료와 같은 재활센터,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음악치료 요법을 쓰기도 한다.    

 

 유념할 것은, 이런 요법에는 일정한 자격을 지닌 음악치료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음악 치료사는 환자에 대한 진단 평가를 하고, 치료 목적 및 목표를 설정하는 한편 음악 활동 계획을 세우고 환자의 반응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전문적인 능력이 없으면서 섣불리 타인에게, 혹은 자신에게 음악 치료 요법을 동원할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엔 음악으로 심신을 치유하는 일은 아예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책이 신간 ‘클래식 사용 설명서’(부키 발행)다.

 

이 책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도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보다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깊은 병이 있는 환자에 대한 음악 치료는 전문인에게 맡겨야 하지만, 일상을 사는 사람의 슬픔과 아픔은 자신에게 맞는 음악을 찾아서 스스로 달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악잡지에 평론을 쓰고 있는 저자 이현모 씨는 “지난 30여년간 클래식 애호가로서 누린 행복감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클래식은 ‘가정 상비약’이다. 세계 음악사에 남는 명곡을 자신의 상태에 맞게 들어서 심신의 불균형을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몸이 피로할 때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6번 ‘전원’, 쇼팽의 야상곡 제2번이 좋다.

어떤 일로 긴장했던 마음을 풀기 위해서는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이 좋다.

우울할 때는 그리그의 모음곡 ‘페르 귄트’에 나오는 ‘솔베이지 노래’처럼 우울한 가락에서 오히려 힘을 얻을 수 있다. 라흐마니노프가 신경쇠약증을 이기고 작곡한 피아노협주곡 2번도 좋다.

어떤 일에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때는 모차르트의 작품들이 알맞다. 편안하게 두뇌를 자극하는 음악으로는 하이든의 교향곡 제101번 ‘시계’도 있다.

중, 노년에 이른 사람들은 브람스 곡을 듣는 것이 괜찮다. 브람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쉰 살에 알토 가수 슈피스를 만나 젊은 시절의 열정을 회복, 교향곡 제3번을 작곡했다. 브람스 교향곡 제4번 제4악장은 31개의 절묘한 변주곡마다 열정, 회환, 고독 명상, 통곡 등 다양한 인생살이의 맛을 표현하고 있어 노년에 위안을 준다. 
 
이렇게 클래식을 우리 일상의 상비약으로 쓰는 사례를 들었으나, 이것이 반드시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맞는 음악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곡이라도 해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소음이다. 임금님 수라에 오르는 음식도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클래식 사용 설명서’의 저자처럼 그 방면에 조예가 있는 사람들의 말을 참고하되, 결국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상관이 없다. 청춘합창단 오디션에 참가한 이들은 대부분 가요를 통해 삶의 상처를 다스렸다고 고백했다. 스스로에게 맞는 음악을 찾아 삶의 건강을 지킨 모범적 사례들이라고 할 것이다. 

 

청춘합창단은 수차례의 오디션을 거쳐 최종 합격자 40명을 선발하고 연습에 들어갔다. 단원의 평균 나이가 62.3세라고 한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모인만큼 연습 과정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겠지만, 각자 쌓아온 세월의 내공으로 마침내 아름다운 하모니를 빚어낼 것으로 기대한다. 그들의 하모니는, 각박한 세상으로부터 나날이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는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치유와 희망의 상징으로 다가갈 것임에 틀림없다.

 

 

장재선 / 문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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