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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TV&영화 속 건강

‘기면증’ 지원은 하이킥을 날릴 수 있을까?


 

 

  “도대체 역습은 언제 하는 거야?” 

   MBC 일일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하이킥3')의 팬들은 요즘 이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120부작으로 기획된

 이 시트콤은 3회 연장해 오는 29일 종영한다.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있는데, 주요 등장인물들이 처한 환경이 여전히 지리멸렬한 상태에 있다.  주인공들이 ‘역습’을 통해

 멋지게 환골탈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시청자들로서는 조바심이 날 수 밖에 없다.

  결말에서 과연 역습이 이뤄질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끝날 것인지에 대해 궁금증이 증폭하고 있는 상황이다.

 

 

 

 

  숏다리 지원의 '기면증'

 

 이런 가운데 시청자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등장인물 중의 한 사람이 지원이다.

 극중에서 ‘숏 다리’라는 별명을 갖고 지원이 제목처럼 역습을 하는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이다. 

 

 만 스무 살의 배우 김지원이 연기하고 있는 극중 지원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사촌 언니 하선(박하선 분)과 함께 살고 있는 여고 2년생이다.

 

 아빠가 과거 자신한테 바랐던 꿈이 의사라 공부를 열심히 해 전교 2등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 공부보단 미술이나 음악에 더 흥미가 있다. 지원은 쉬는 날엔 스쿠터를 타고 미술관이나 콘서트 등에 다닌다. 

 

 지원을 끔찍하게 아끼는 사촌 언니 하선은 지원이 스쿠터를 타지 못하게 말린다.

 “위험해. 절대 타지 마. ” 하선은 지원이 몰래 스쿠터를 타는 날에는 안절부절 못한다. 말만한 처녀가 쬐그만 스쿠터를 타는 게 무에 그리 위험할까마는 하선은 불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지원이 기면증을 앓고 있는 탓이다. 

 

 지원은 평소 멀쩡한 모습으로 있다가도 갑작스럽게 수면 상태에 빠지는 병을 앓고 있다. 만일 그런 일이 스쿠터를 타고 있을 때 발생한다면…. 하선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유없이 졸립고 무기력감을 느끼는 증세, '기면증'

 

 지원이 앓고 있는 기면증(嗜眠症· Narcolepsy)은 밤에 충분히 잤다고 생각되는데도 낮에 이유 없이 졸리고 무기력감을 느끼는 증세를 말한다. 흔히 졸음과 함께 갑작스러운 무기력증을 수반하기도 한다. 선잠이 들어 착각과 환각에 빠지는 것도 특징적인 증세이다. 

 지원은 꿈속에서 늘 돌아가신 아빠를 만난다.

 꿈은 늘 같은 내용이다. 아빠가 어린 지원을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는 장면.  그게 너무 좋아서 지원은 기면증 치료를 받지 않으려 한다.  

 

 기면증 환자는 1∼15분 동안의 발작적인 수면 후에 어느 정도 정신이 맑아지고 잠이 덜 오는 것을 느끼나, 1∼2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졸린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잠이 느닷없이 엄습해 자신도 모르게 쓰러져 잠드는 수면 발작을 자주 겪는다.  잠이 들거나 깨려고 할 때 전신 근육이 마비되는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기면증이라는 말 자체가 보통 사람에게는 낯설지만, 희귀질환은 아니라고 한다.

 성인의 0.02∼0.16%가 이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연령에서 발생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청소년기 또는 초기 성년기에 시작되며, 대부분이 30세 이전에 시작된다.

 

 

 

 

  영화 '바다 쪽으로, 한 뼘 더'에서의  '기면증'

 

 ‘사랑의 기적(Awakenings, 1990)’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 1991)’ 등의 외국영화에서 볼 수 있던 기면증 환자가 우리 영화에 등장한 것은 2009년작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에서이다.   여성 감독인 최지영 씨가 연출한 이 작품 싱글맘과 그 딸의 사랑을 애틋하고 따스하게 그린 영화다.

 

 주인공인 여고생 연우(한예리)는 기면증 탓에 학교 수업 중에도, 길을 걷다가도 기절하듯 잠에 빠진다. 문화센터에서 점토 공예를 가르치는 강사인 엄마 연희(박지영)는 원우 걱정 때문에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연희는 원우 앞에선 내색을 하지 않지만, 친구들 앞에선 자기도 모르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원우 가졌을 때 깍두기 하나 잘못 먹은 것 없어. 내가 (원우에게) 바라는 것은 평범하게, 건강하게 사는 것뿐인데, 그게 왜 그렇게 힘든 거야?” 

 

 원우는 평소에 멀쩡하다. 그러나 수면 발작이 일어나면 꼼짝 못하고 그 즉시 잠에 빠져들어 버린다.  학교 수업 중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원우는 교사로부터 이런 소리를 듣는다.

 “학교는 공부하러 온 거지, 자러 온 거 아니잖아. 엄마 오시라고 해서 어서 조퇴해. 어디 그래 가지고 대학이나 가겠어?”

 

 

 

 

  치료를 권유하는 '계상', 거부하는 '지원'

  

 ‘바다 쪽으로, 한 뼘 더’에서의 교사는 기면증에 대해 이처럼 무지를 드러내지만, '하이킥3'에서 지원의 주변 사람들은 다르다. 지원의 병과 그 아픔을 잘 이해한다.

 

  옆집에 사는 한의사 계상(윤계상)은 치료를 하자고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그는 친구인 의사로부터 지원이 치료를 받지 않으면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치료를 받게 하고 싶지만, 돌아가신 아빠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지원은 강력히 거부한다.

 

 이에 계상은 길을 걸어가고 있던 지원을 불러 미술관에 가자고 한 뒤 실제로는 기면증을 치료할 병원으로 데려가 지원이 진료를 받게 했다. 진료가 끝난 후 지원의 반응은 냉담했다.
 지원은 계상의 말과 반대로 행동함으로써 어깃장을 놓기로 마음먹었다. 

 

 급기야 지원은 차도에까지 뛰어드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런 행동에 화가 난 계상은 위험한 놀이를 시도했다. 지원의 앞에서 등 뒤로 넘어지는 놀이를 시도한 것이다. 처음엔 모른 체 하던 지원은 뒤로 넘어가는 계상을 단숨에 받았다.  이후 두 사람은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 시청자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지원이 앓고 있는 기면증은 현대 의학으로 완치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약물 치료를 통해 증상을 조절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의견이다. 어느 질환이나 그렇듯이 기면증도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치료로 중추신경자극제를 주로 사용하며, 발작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항우울제를 함께 사용한다. 약물 치료 뿐 만 아니라 하루 중의 일정 시간에 낮잠을 자는 등 생활 습관을 교정하고 심리 상담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기면증' 지원은 하이킥을 날릴수 있을까?

 

 지원이 ‘하이킥3’의 결말에서 과연 어떤 역습의 하이킥을 날릴지 무척 궁금하다.

 이 드라마를 연출하는 김병욱 PD는 “원래 다리가 길어야 하이킥을 날릴 수 있지만, 나쁜 여건에 있는 짧은 다리의 사람들도 하이킥을 날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에 있는 주인공들이 역경을 이기고 희망찬 모습으로 거듭나는 결말이 예상되는 이유다.  

 그러나 김병욱 PD는 결말에서 뜻밖의 반전을 구사하는 것이 특기이므로 새드엔드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지원의 마지막 모습도 어두운 것이 될 가능성이 있다.     

 

 지원을 좋아하는 팬들은 모쪼록 지원이 환하게 웃는 장면으로 드라마를 마쳤으면 하는 바람을 밝히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기면증을 앓고 있는 지원이 질환에 굴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잘 꾸려간다면 그것 자체가 역습이 아닐까 싶다. 
 

 

장재선 / 문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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