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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유전병 '색맹'

 

 “색맹은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최근 열린 아시아태평양안과학술대회(APAO)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은 브루스 스파이비 국제안과협의회(ICO)회장은 “유전자의 이상으로 인한 유전병인 색맹의 완치는 현재 의료 수준에선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치료방법이 딱히 없는 유전병 색맹


 색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당사자에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잘못과는 무관한 유전병인데다 적당한 치료법마저 없어 어떻게 해보고 싶어도 속수무책이다. 이들이 더 힘들어 하는 것은 사회생활 하다가 흔히 경험하는 차별과 편견이다.

 한 색맹 환자는 친구가 “너는 컬러TV를 흑백으로 보지 않느냐”고 물어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완전색맹 환자처럼 컬러TV를 흑백으로만 보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 수는 극히 적다. 국내에는 한두 명 있을까 말까다.

 

 스페인의 투우장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투우사는 붉은 색 천을 휘날리고, 화가 잔뜩 난 소는 맹렬하게 돌진한다. 소는 붉은 색만 보면 흥분해 공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소를 자극하는 것은 펄럭이는 천이다. 색맹인 소가 붉은 색에 예민한 반응을 보일 까닭이 없다.

 

 자연의 색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와 일부 벌ㆍ나비ㆍ생선ㆍ양서류ㆍ파충류ㆍ조류만 갖고 있다. 영장류 이외의 포유류들은 색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이들에게 색을 식별할 능력이 애초부터 없었는지, 색을 구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고양이는 분명히 색맹이지만 특수 훈련을 시키면 청색과 녹색을 식별한다. 반면새들은 놀랄 만큼 뛰어난 색 식별 능력을 갖고 있다. 짝을 찾거나 먹이를 구할 때 이런 능력을 활용한다. 꿀벌도 인간과 비슷한 색 인식능력을 지녔다.

 

 

 

 

  색맹의 원인은..


 세상은 컬러풀(colorful) 월드다. 색이 만개(滿開)한 현대를 살아가는데 있어 더없이 중요한 색 감각이 결여된 사람이 있다.

 이들은 선천적으로 색 식별 능력이 없거나 후천적으로 특정 질병이나 눈의 상처 등 때문에 색을 분간하지 못한다.

 이들이 색각이상자 또는 색맹(色盲)이라고 불리는 색에 관한한 ‘마이너리티’들이다. 상태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람을 색약(色弱)이라고 부른다. 가벼운 색맹은 황반변성이나 약 부작용으로 생기기도 한다.

 

 우리 망막엔 약 6백만 개의 시(視)세포가 있다. 정상인은 시세포의 빨강ㆍ파랑ㆍ초록 등 세 종류의 추체를 적절히 섞어 색을 인식한다.

 

 반면 색맹인 사람은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색의 혼합만으로 색을 식별한다. 따라서 적ㆍ녹ㆍ청(赤綠靑) 삼색 가운데 하나 이상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를테면 색명은 추체가 한개 이상 부족하거나 추체 안의 시각색소가 결핍된 사람이다.

 

 적색 색맹자는 대개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들에겐 붉은색을 보는 추체가 없다. 청색 색맹자에겐(매우 드물다) 청색과 황색이 동일한 색으로 보인다. 증상이 비교적 가벼운 녹색 색맹자는 녹색만 보지 못하므로 생활에 큰 불편은 없다.

 

 우리 국민의 3% 가량이 색맹이다. 녹색 색맹이 가장 많고 다음은 적색 색맹이다. 청색 색맹이나 완전 색맹은 거의 없다. 완전 색맹은 모든 색을 식별하지 못한다. 이들에게 자연의 현란한 색들은 같은 밝기를 가진 회색으로 보일 뿐이다.

 

 

 

 

  남성의 색맹발생 빈도가 여성보다 20배 더 높아..


 색맹의 발생률은 남녀차가 심하다. 남성의 색맹 발생 빈도는 여성보다 20배가량 더 높다.  남성에게 빈발하는 것은 색맹의 원인인 유전자가 X염색체 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두 X염색체(XX)중 하나라도 정상이면 색맹이 되지 않지만 X염색체가 하나 뿐인 남성(XY)은 하나(X염색체)가 비정상이면 바로 색맹이 된다. 여성이 색맹이 되는 경우는 부모 모두로부터 색맹이 되는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때 뿐이다.

 

 색맹인 남자와 정상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잠재인자(색맹유전자)를 갖고 있다. 이 딸이 결혼해 자식을 낳으면 아들은 색맹이 되고, 딸은 다시 잠재인자를 다음 대(代)에 전한다.

 

 색맹인 남자와 정상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정상이다. 아들은 색맹유전자를 자식에게 전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정상인 남자와 색맹유전자를 가진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색맹이기 쉽다. 딸은 색맹유전자를 갖는다.

 

 

 

 

 

  색맹여부는 간단히 판정할수 있어...

 

색맹을 판정하는 여러 검사도구가 있지만 가장 친숙한 것은 그림책 같은 가성동색표이다.

 일본의 이시하라가 개발한 가성동색표는 오랫동안 색맹 판별에 사용돼 왔다. 이사하라의 가성동색표는 색맹 여부를 바로 알 수 있지만 어떤 종류의 색맹인지, 상태는 얼마나 심한지는 판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이를 보완한 것이 미국의 하디 등이 만든 HRR표다. 이 표는 색맹 상태를 강ㆍ중ㆍ약 등 3단계로 나누어 진단할 수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를 지냈던 한천석박사가 펴낸 가성동색표(한천석표)도 색맹 상태를 3등급으로 판정 가능하다.

 

 색맹인 사람은 대학 진학이나 직업 선택을 할 때 일부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색맹이 업무나 학업에서 차별을 받아야 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현대 원자론을 고안한 영국의 화학자 달톤도 색맹이었다. 달톤은 색을 거의 식별할 수 없었으나 다양한 색을 써야 하는 화학실험을 누구보다 잘 해냈다. 색맹을 달톤이즘(daltonism)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래서다.
 

색맹 치료법이나 치료약이 개발된다면 전 세계적인 대형 뉴스가 될 것이다. 개발자에게 노벨상과 엄청난 부(富)를 안겨줄 것으로 여겨진다.  간혹 색맹 치료의 비술(秘術)을 찾아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때마다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글 /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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