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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호두, 통일되면 국산' 점심나절 오후 두 시쯤. 오늘 저녁때는 그저 손쉽게 해 먹으려고 생선을 사 가지고 나오는데, 길 저만치서 노점상 할머니 한 분이 외로이 앉아 계신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춰졌다. 할머니 노점에는 애호박, 무, 꽈리고추, 흙 묻은 더덕 같은 게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혹시나 하여 다시 쳐다봤으나 역시 값을 물어보는 사람조차 없다. 아무래도 저 할머니 물건은 좀 사 드려야 하겠다 싶어 가던 발걸음을 되돌려 다가갔다. 할머니는 이동식 부탄가스 버너 위에 냄비를 올려놓았는지 그 위에서 물이 끓는 게 보였다. 아, 할머니의 점심때인가 보다. 역시 익숙한 손놀림으로 라면 봉지를 뜯어 끓는 냄비에 퐁당 집어넣으시더니 곧바로 종이 박스에서 검은 비닐에 포장된 꾸러미 하나를 꺼낸 다. 밥이다. 할머니는 .. 더보기
오랜만의 이틀휴가, 봄나물에 엄마를 빼앗기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누이 댁에 가며 이틀동안 제게 휴가를 줄테니, 저 하고싶은 것 마음대로 하며 이틀을 보내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이게 웬 떡이냐하며 친구랑 영화를 보러갈까, 바람을 쐬러 갈까 하다가 친정에 혼자 계실 엄마를 뵈러 가기로 했습니다. 냉장고를 뒤져 멸치를 볶고 장조림도 만들고 몇 가지 마른반찬을 챙겨 친정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막내딸을 보신 우리 엄마, 과연 어떤 표정이실까 생각하니 세 시간이 그리 지루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친정집은 텅 비었더군요. 친 자매처럼 지내시는 뒷집 할머니 말씀이 시장에 가셨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께서는 돌아오시질 않습니다. 돌아오시면 드리려고 압력솥에 밥을 안쳐놓고 돼지고기 넉넉히 넣어 김치찌개도 맛나게 끓여 놓았지요. 집.. 더보기
매일, 딱딱하고 차가운 호떡만을 기다리는 이유 찬바람이 매서운 퇴근길. 집으로 가는 길에 호떡 장사를 하는 부부가 있다. 밀가루 반죽을 떼어 잘게 부순 땅콩이 든 흑설탕을 넣고 동그랗게 말아 넓은 팬에 올려놓고 뒤집으며 납작하게 누르는 아주머 니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호떡이 어느 정도 쌓이자 잠시 일손을 멈춘다. 오늘따라 손님이 없어서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에 근심이 가득하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 우리 부모님도 호떡 장사를 했다. 아이들은 많고 생활은 넉넉하지 않아 무슨 일이든 해야 했으나 겨울이라 일거리가 없자 생각한 것이 호떡장사였다. 매일 밤 큰 찜통에 이스트를 넣은 밀가루 반죽을 따뜻한 아랫목에 놓고 이불을 덮어두었다. 잠을 자다보면 찜통이 발에 걸리기도 하고 뚜껑이 열리면 일어나 다시 덮어두고 자야했지만 두 분이 애지중지 여기.. 더보기
찬 물 먹고 체하면, 사랑하는 딸들의 '약손'이 최고! 오후에 둘째 딸애가 회사 근처로 나오라는 것이다. 생일선물로 휴대전화를 바꿔주겠다고 했다. 기쁜 마음에 얼른 옷을 입고 딸애의 회사 근처로 갔더니 마침 기다리고 있다가 휴대전화를 새로이 바꿔주 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나와서 그런지 목이 말라서 딸애가 사주는 무 슨 차인지 음료수를 마시고 집에 와서 일이 터졌다. 저녁을 먹으려는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더니 구토가 나며 어찌나 아픈지 몸져눕고 말았다. 며칠 전에도 체한 것인지 아파서 병원에 갔다 오고 했었는데 다 낫지를 낳은 것인지 물만 마셔도 토하고 배가 너무 아파서 미칠 지경이었다. 갑자기 찬 것을 마셔서 장이 놀랐나보다며 아내가 바늘로 손을 따주고 소화제를 먹어도 마찬가지였는데 정말이지 물도 마실 수가 없었다. 병원 문.. 더보기
"마누라 오래 직장 다니라고~"라는 남편 속마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더니 신발장 위에 하얗고 작은 플라스틱 병이 보였다. 이게 뭐야? 하 며 집어 들어보니, 무슨 일본말이 잔뜩 써져 있고 그 밑에 한글로 써 붙여 놓은 뻘건 글씨가 눈에 들어 왔다. ‘ 초강력 순간접착제’ 이걸 왜 사왔지? 하는 궁금증에 마침 나보다 먼저 집에 들어와 설거지를 해주고 있던 남편에게 물었더니 “ 그냥, 애들 공작숙제 때 뭐 좀 만들어 줄려고 ” 라며 신경쓸 거 없다고 말했다. 그날 밤 새벽 2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갈증이 생겨 물을 먹기 위해 일어났는데... 어? 옆에 있어야 할 남편이 보이질 않았다. 어디 갔지?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물을 먹기 위해 거실로 나가보니 남편이 현관 쪽에 붙어 있는 화장실 불을 켜 놓고 앉아 뭔가를 열심히 만지며 낑낑 대고 있었다... 더보기
내 아이의 피터팬, 철 든 피터팬을 만나다 서른이 된 내게 요즘 새로운 꿈이 생겼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친구였던 피터 팬을 그리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지만 예쁜 꿈을 간직한 아이들을 늙지 않는 나라로 데리고 가는 동화 속 친구의 그 순수함을 지니고 싶다. 얼마 전, 나는 그토록 그리던 피터 팬을 만나게 되었다. 내 아이가 바로 피터팬이었다. 아이를 보며 참 많은 것을 얻는다. 내가 아이에게 무한정 주고 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정장 아이로 인해 받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출처 : 애니메이션 영화 '피터팬') 며칠 전의 일이었다. 출근하기 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아이의 내복이 덜 말라서 드라이기로 아이의 내복을 말리고 있었다. 드라이기가 내뿜는 뜨거운 바람으로 인해 내복 바지가 꼭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모습을 보.. 더보기
나죽자 할머니와 황천길 할아버지 간호사 7년차, 환자분들 앞에서는 늘 허리 숙여 모시는 걸 생명처럼 여기지만‘난이도’ 가 참으로 높은 어르신들의 성함 앞에서는 우리 간호사들도 곤혹스럽기만 하다. 하루는, 과거 결핵을 앓으셨던 할아버님이 한분 찾아오셨다. 그리곤 나지막이 말씀하신다. " 나 저기서 기다릴테니까, 이따가 내 차례가 되면 알려줘요. 내 이름 부르지 말구.” " 예. 알았습니다." 하고 혹시나 싶어 접수증을 봤더니 존함이 글쎄 '황천길' 님 이셨다. 이미 많이 겪어보신 듯 할아버지께서 미리 챙기신 것이다. 천길(天吉) 이라는 너무나 좋은 이름을 가지고 계셨지만 그게 성(姓)과 어울리지 않은 탓에 오랜 세월 불편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다행히 흉부 X레이 사진과 가래 검사 결과 결핵이 재발하지 않으셨고 상당히 건.. 더보기
남편의 ‘인격’그리고 120만 원짜리 빨래걸이 햇수로 딱 1년 전, “얘, 얘. 너 남편 신경 좀 써야겠다. 저 인격 좀 봐라 얘” 라고 하는 친구들의 비웃음에 내심 속이 상했다. 친구들이 말한 남편의 인격이란 ‘똥배’ 였다. 남편의 키는 180cm. 장난 아니게 큰 키에 시원한 이목구비. 그러나 직장생활 하면서 몸매 관리에 소홀한 나머지 지금은 완전히 망가졌다. “여보. 이젠 우리도 나잇살 관리해야 하잖우. 운동 좀 합시다.” 그러자 남편의 대답이 의외로 쉽게 나왔다. “어? 응. 그러지 뭐. 체력은 국력이지. 하하” “엥?” 쓸데없이 운동은 무슨 운동이냐며 귀찮게 굴지 말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흔쾌히 “예스” 하는 대답을 하는걸 보니 자기도 이젠 안 되겠다 싶었나보다. 다음날부터 남편은 정말 군소리 없이 아침에 조깅하고, 저녁에 식사 후 나.. 더보기
신묘년, 더욱 그리운 얼굴이 있습니다 "형 보고싶어요"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흑백 사진처럼 누런 옛일 속에 아련한 그리움이 담겨 있는 일이 자주 있다.지 금도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의 하나는 이발소집 형에 대한 기억이다. 국민학교를 갓 입학한 어느 날 학교 를 다녀와 보니 우리 집 앞에 이상하게 생긴 판잣집 하나가 들어서 있다. 그저 나무판 몇 개를 대서 허름하게 만든 그곳은 판잣집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어정쩡할 정도였다. 뭘하는 집일까 궁금했는데 그 다음날 간판이 붙었다. 국민학교 1학년인 나만큼의 글씨로“이발”이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누가 사는가 궁금했는데 하루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형이 “ 너 요앞집에 사는 애지? 너의 부모님이 집 앞에 이런거 지었다고 뭐라고 안하시니? ” 형은 조심스럽게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도리질을 했다. 그랬더니 고맙다고 .. 더보기
그 겨울, 어머니의 사랑으로 말린 나의 속옷들의 추억 가을비 한 번에 속옷 한 벌이라고 했지만 그 시절은 왜 그리도 일찍 추웠을까. 마당가 오동나무가 그 많던 잎들을 된서리 한 번에다 털어버릴 때쯤, 사람들은 겨울옷을 찾아 입어야한다. 그리곤 봄까지 벗어버리질 못했다. 벗고 나면 온몸이 썰렁하고 허전해서 견디기 힘든 것이다.  워낙 높고 깊은 골짝마을이라 바깥 날씨야 그렇다 해도 우풍 심한 방안도 바깥이나 진배없이 지독한 칼바람이 스며들었다. 방 윗목의 수수깡 동가리에 쌓아둔 고구마가 봄까지 가지 않고 얼어 썩어나간다. 걸레도 개숫물도 얼어버리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방 한가운데 놓인 질화롯가에 빙 둘러앉아 불을 파헤쳐서 우리 여섯 남매의 열두 개, 고사리 손은 서로 밀쳐내고 끌어다 대주며 곱은 손을 녹이곤 한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한테 아쉽게 자리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