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초∙중∙고등학교 12년을 같이 다니면서 동성애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절친했던 고향의 죽마고우 녀석이 나이 40대에 이르러서야 결혼을 한 뒤 집들이를 한단다. 불알친구들이 저녁에 다 모였다. 상 다리가 휠 정도로 잘 차려진 음식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어릴 때 추억을 떠올리며 한바탕 신나게 술을 마셨다.

몇 녀석이 거하게 취할 때 쯤 바로 옆에 있던 한 친구가 정색을 하면서 내 어깨를 툭쳤다.


  “ 야 임마, 저 인간이 결혼해서 제일 기뻐할 놈이 너인데 왜 소주 한 잔 안하냐?” 며 
  농담스런 핀잔을 준다.

 


운전을 해야 한다고 설명하자 옆에 있던 다른 녀석이 “에이, 운전 안 해 본 놈 있냐? 까짓 거 한두 잔 어때. 이런 날 한 잔 해야지.”라며 부추겼다. 그러자 일제히 “야, 샌님 같은 놈아 한 잔 해라. 네가 축하 안 해 주면 어떡하냐?” 며 이구동성으로 나를 몰아세웠다. 정말 이런 날 내가 한 잔 정도는 마셔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과,‘ 음주운전을 해서는 안 되는데.’ 하는 갈등이 교차했다.

옆에선 대리 운전을 부르라는 말까지 나왔다. 결혼한 친구 녀석이 날 보며 빙긋이 웃는 걸 보니 정말 한 잔 마셔야 할 듯 했다. 결국 두 눈을 딱 감고 소주 반 잔을 마셨다. 승용차를 운전한 지 10년도 넘었지만 운전 중에는 병아리 오줌만큼도 술을 마시지 않았던 내 기록이 깨진 날이 되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친구 체면은 세워줬으니, 후훗… 일단 위기는 모면.

집들이가 끝난 후 헤어지려고 서로 인사할 무렵 술 좋아하는 몇몇이 바람을 잡았다. 맥주로 입가심을 한 잔 걸치자는 제안에 모두 다 흔쾌히 동의했다. 호프집에서 또다시 내게 맥주가 권해졌지만 난 정말 미안하다며 끝까지 사양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한 녀석이 음주운전 중 불심검문 하는 걸 발견하고 차를 휙 돌려 꽁지 빠지게 달아났던 무용담을 자랑스레 늘어놓는다. 모두 다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이어서 또 한 녀석은 지금까지 음주운전을 열 번도 더 했지만 한 번도 걸린 적 없다며 자신의 배짱을 자랑했다.


‘ 짜식들, 그건 니들 일이지. 난 소심해서 그렇게 못해.’ 라며 혼자 웃고 말았다. 두 차례의‘위기’를 무사히 모면하고 친구들과 헤어지자 새벽 1시가 좀 넘었다.

어? 그런데 집에 가는 길로 접어들었을 때 멀리서 번쩍번쩍 하는 경광등 불빛이 보였다.

‘무슨 사고가 난 걸까?’ 해서 눈여겨보니 음주운전 단속을 하는 게 아닌가?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집들이에서 마신 소주 반 잔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도둑질도 해본 놈이 한다더니…. 지금까지 음주운전이라고는 근처에도 얼씬 안해 봤는데 운전 10년 만에 기껏 소주 반 잔 가지고 음주운전에 걸릴 판이라 생각하니 너무 억울하고 눈앞이 캄캄했다.

 

심장 뛰는 소리가 ‘둥둥둥’ 하며 북치는 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순간 차를 돌려 냅다 도주했다는 친구 놈 말이 떠오르긴 했지만 난 그럴만큼 배짱이 있는 위인도 아니었다.

“음주단속 중입니다”라며 측정기를 대는 경찰관이 저승사자만큼 무서웠다. 운명의 순간, 창문을 내리고 벌벌 떨며 음주 측정기를 ‘후’ 하고 불었다.


“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아, 소주 반 잔을 마신 지 4시간 정도가 지나서였는지 걸리지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고맙습니다, 어머님, 하느님, 부처님…. 정말 친구들의 잔소리와 핀잔을 끝까지 물리치고 술을 더 이상 마시지 않은 내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스스로 대견했다. 만약 그때 친구들의 강권을 못 이겨 몇 잔 더 마셨더라면 난 음주운전에, 면허취소에, 벌금을 내고 전과자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직장에서도 잘렸을지 모른다.

정말, 음주운전은 하지 말자. 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음주운전은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범죄이니 말이다.
 

김만석/ 부산시 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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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홍보문구를 새긴 현수막을 비롯해 아직 바람이 매서운 겨울부터 시작한 봄의 예찬은 여기저기서 넘쳐난다.

 

언제나 봄보다 먼저 봄을 알리는 그 문구가 내 눈을 사로잡는 순간부터

'나를 아는 사람들 중 저 광고를 보면서 과연 몇 명이나 나를 떠올릴까?'

'이 만큼 생기가 흐르는 이름이 또 뭐가 더 있을까?'

 

나름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한참을 아릇한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정작 아무도 나를 떠올리지 않는데, 혼자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봄마다 흩뿌려져 있는 그런 문구들은 내 기분을 늘 좋게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봄보다 상큼한 새봄은 요즘 한창 빛을 발하고 있다.

 

"새봄맞이 대축제"

"새봄 - 그 설레는 시작" 

 

그렇다고 여태껏 이름이 내게 늘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1983년부터 시작된 내 학창시절, 우리반에는 한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나 빼고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래서 학기초가 되면 선생님의 관심을 받기도 하고,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해 이 유난스러운 이름을 바꿔달라고 부모님께 떼를 쓰기도 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한 친구가 그랬다.

"새봄아, 지금은 이름이 너 다운데,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되면 그땐 어떻게 하니?"

 

'할머니와 새봄... 그 맞지 않는 조합이라니...'

그땐 그 얘기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웃자고 하는 소리로 넘겼으나 그 얘기를 실감할 날은 그로부터 머지않은 미래였다.

 

내 나이 올해로 이립을 살짝 넘긴 미혼 여성이다. 며칠 전 벼르고 별러 동네 스포츠센터에 등록을 하러 갔었다. 내 이름을 얘기하자마자 센터 직원은 제 아이를 등록하러 온 엄마로 알고 말을 건넸다.

'시집도 안간 처자에게 아이라니···.'

 

몇 년 전 동네 안과의원에서 어떤 간호사는 생년도 확인하지 않고 이름만 보고는 큰소리로 어린아이 부르듯 진료대기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새봄아~ 새봄이 진료실로 들어가요~"

 

오롯이 일어서는 나를 보고 민망해 하는 간호사의 그 표정을 보고 내가 다 무안했었다.

 

앞으로 이런 순간들이 더 닥칠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 이름이 사랑스럽고 마냥 좋기만 한 건 서른 한 해 동안 동고동락한 내 이름이기 때문일까?  새봄의 그 따뜻하고 싱그러운 기운 때문일까?

 

정새봄 / 인천시 남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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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비야 머리 깎자'

 팔순이 가까운 엄니께서 이발도구를 챙겨 놓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2월 달력 장을 떼어 냈다고는 하나 아직 바람이 찬 3월 첫날, 엄니는 예외 없이 양지쪽에 플라스틱 의자를 놓아두고 50세가 다 된 아들을 향해 소리치십니다.

 

 "애비야 머리 깎게 어여 나와."

 
 "더 있다 깎아도 되겠구만유."

 
 "아녀. 나이 들수록 머리카락이 길면 사람이 초라해 보인다니께."


매 달 초하루만 되면 엄니와 똑같은 대화가 반복된 지도 벌써 반년이 넘습니다.

5년 전 아버님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울 엄니는 아버님의 전용 이발사셨습니다. 우리 삼형제 역시 어려서부터 엄니께서 머리를 직접 깎아 주셔서 분가해 살기 전까지는 이발소에 가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작고하신 뒤부터 이발 기계는 더 이상 쓸 일이 없어졌습니다.
한동안 외국서 살다가 엄니 곁으로 와서 살다보니 다락에서 녹슬고 있는 이발기계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엄니를 향해 말했습니다.

 "엄니 지 머리 좀 깎아줘봐유."


이젠 손이 떨려서 안 될 거라면서 한사코 손 사래질을 치는 엄니를 붙들고 다시 말씀 드렸습니다.

 "옛날 그 솜씨가 어디 가남유. 그러지 말고 한번 깎아나 줘봐유. 정 아니다 싶으면 이발소에 가서 손질 좀 해 달라고 하면 되니께유."  마지못해 이발 기계를 가지고 나오신 울 엄니. 처음에는 무척 조심스럽게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더니 금세 옛 솜씨가 나왔습니다.

 "손 떨려서 못 할 줄 알았더니 그래도 모양새가 나온다야." 하시면서 나 보다 더 좋아하시던 울 엄니. 그날 이후 매달 초하루만 되면 엄니가 먼저 이발 기계를 내 놓고 큰 아들을 불러 댑니다. '애비야 머리 깎자' 하고 말입니다.

늙어서 더 이상 아들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셨던 울 엄니.

하지만 아직도 아들 머리를 깎아 줄 만큼 기력도 있으시고 눈도 밝으시니 사는 맛이 더 나는 가 봅니다. 덕분에 이제는 이발소에 가기는 다 틀려 버렸습니다.


눈 밝은 우리 엄니 초하루만 되면 이발 기계를 내 놓고 '애비야 머리 깎자' 하고 부르시니 그 말씀을 어이 거역하겠습니까.  아버지와 떨어져 외국서 사는 아들 녀석도 할머니 댁에 오게 되면 '머리카락을 잘라야 할 판국인데-'
벌써부터 아들 녀석의 표정이 궁금해집니다. 녀석은 장발 애호가거든요.

 "애비야 머리 깎자."

아까부터 엄니가 부르십니다. 오늘이 벌써 초하루거든요.

 김석현/ 충남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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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따스한 미소와 자상함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런데 사업을 하시던 중 동업자분
 이 큰 빚을 졌고, 졸지에 사기 공범으로 몰려 빚쟁이들에게 끌려가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일로 경찰서까지 갔으나 아빠는 무죄방면되셨다.



그후 아빠는 심한 정신적 충격에 시달렸다. 폭행의 악몽 때문에 잠꼬대까지 하시던 아빠는 점점 변하셨다. 말수가 확 줄며 성격도 무뚝뚝해지고 벙어리가 되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다니던 기획회사는 전시와 이벤트 대행 전문 회사였는데 그날 마침 야외 작업 중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정신없는 와중에 무슨 일인가 싶어 열어봤더니 ‘긴급대출 OOOO번’이라는 내용 아닌가.‘ 젠장’하면서 닫아버렸다.

그런데 잠시 후 5분 만에 진동. 이번에는“8282 대리운전, 언제든지 달려갈게~”였다.‘ 에고…’ 하면서 침을 꿀꺽 삼켰지만 10분 후 또다시‘드르르륵’하면서 이번엔 메세지가 아닌 광고전화였다. 드디어 네 번째 전화가 온 건 그로부터 30분 후 쯤.


이번엔 누구든지 걸리면 욕바가지 한 번 날린다는 생각으로 전화기를 열었더니 아니 이게 웬일? 아빠였다. 한 달 내내 전화 한통 안 하시던 아빠가 내게 전화를 거신 거다. 놀래 자빠질 일이었다.

“아빠, 웬일이세요?”

“아빠가 전화했는데 웬일이 뭐냐? 너 지금 별일 없냐?”


“네, 별일 없어요. 지금 일하고 있거든요! 왜요?”


“일? 정말이야? 너 나한테‘살려주세요, 제 휴대폰 위치 추적해 주세요.’라고 문자 메시지 보냈잖아”


이게 웬 뜬금없는 말씀인가 싶어 호호호 웃으며“아니에요. 딸 잘 있어요.”라고 하자 아빠는“에이, 그럼 문자가 실수로 보내진 거야? 나는 경찰서에 납치 신고하러 마산에 가는 중이란 말이야. 에이…”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아빠는 그때 거창의 시골에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가까이에 경찰서가 없자 마산까지 차를 몰고 가시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경찰서까지 안 가셔서 다행이긴 했는데 혹시나 싶어 전화기를 열어봤다.



어? 그런데 진짜였다. 내가 비상시에 대비해 아빠와 친구들에게 보내는 응급구조 요청 문자 메시지 단축키가 실수로 눌려져 아빠에게 전달된 게 사실 아닌가?

이크크크! 아빠가 오바하신 게 아니네. 순간 아빠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얼른‘아빠 쏘리. 실수로 보낸 게 맞아용’이라며 죄송하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에이, 똥이나 싸 인마”라고 답신이 왔다.


헉! 다 커서 곧 시집 갈 딸한테‘똥을 싸?’ㅋㅋㅋ 울 아빠 정말 화가 나셨나보다. 그러나 입 닫고 사시던 아빠의 메시지와 전화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내 재차 날아온 내용은“너 주말에 1시간 주물럭 안마다.”


우리 아빠는 내가 중학교 다닐 무렵부터 틈틈이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드리는 걸 가장 좋아하셨다. 최근에 사건 이후로 서로 간에 말도 잊고 사시던 아빠가 그 주물럭 안마‘벌’을 내게 내리셨다. 그런 벌은 1년 내내 받아도 행복한 것을…. 

                                                                   천강희/ 부산시 기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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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목욕탕에 갈 때마다 자신이‘백말 띠’라며 띠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 마사지사 언니가
  있다. 동네사람들이 애용하는 목욕탕인데 우리가 그냥 ‘언
니’라고 부르는 그녀는 백말 띠로 인해
  팔자가 드셀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지금 때밀이가 직업이 된 것 같다며 재미있는 수다를 떠
  는 마사지사다.

 

그녀는 그 목욕탕 4명의 마사지사 중 대장 격이었다. 나이가 가장 위이기도 했지만 곱상한 얼굴에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분위기 조성을 잘했다. 그 목욕탕에서만 7년 차라고 했다. 그런데 동네 아줌마들로부터 인기가 있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진짜 이유는 딴데 있었다. 그녀의 착한 심성 탓이었다.


우리네 젊은 아줌마들의 때를 밀 때는 당연히 돈을 받지만 혼자 오신 할머니 손
님이 계시면 반드시 모셔다가 때밀이 무료 서비스를 하곤 했다. 앙상한 손으로 이태리타월을 들고 앉아 있는 할머니들에게 다가가

“할머니, 제가 시원하게 해
드릴게요” 라며 나긋하게 말한다.
“아녀… 나 돈 없어” 라며 마다하는 할머니. 그러나 이 언니는
“할머니, 돈 안 받
아요. 제 서비스예요”라며 안심시켜 드리고는 유난히 앙상한 할머니의 어깻죽지부터 마사지해 드리고 때를 밀어 드린다.

예상하지 못한 서비스를 받은 할머니들이 그 ‘전문가’의 솜씨에 탄복하며 시원한 맛을 느낀 후부터는 아예 공짜 마사지를 받으러 목욕탕에 들르는 정도다. 자연히 손님 숫자가 많아지니 목욕탕 사장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오자마자 우리 딸 1등 했네, 우리 아들 특목고 갔네, 우리 남편 승진 했네, 등등 제 자랑 수다부터 떨기 시작해 물 실컷 퍼 쓰고 자기네들끼리만 놀다가 돌아가는 우리 젊은 아줌마들. 솔직히 그 언니를 보면 우리는 백번도 더 부끄러움을

느낀다.돈벌이 할 시간을 쪼개 무료 봉사하는 그 심성과 푸근한 인정, 타고난 낙천적 성격… 너무나 배울 점이 많은 마사지사이기 때문이다.

엇? 그런데 최근에 그녀가 안 보였다. 처음엔 잠깐 자리를 비웠으려니 하며 큰 관심을 안 뒀는데 2주일, 3주일. 목욕탕에 그녀가 계속 안보였다. 동네 목욕탕 마사지사 언니 한명이 안 보이는 것만으로 뉴스가 될 정도면 그녀의 인물 됨됨이나 유명세는 확실히 작은 게 아니었다.

목욕탕 단골들의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고 곧 풀렸다. 목욕탕 사장님이 직접 나타나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동안 번 돈으로 고향에 가서 목욕탕을 하나 차릴 거라며 낙향했다는 것이다. 고향이 경상남도 마산이라나, 심성만 착한 줄

알았더니 알뜰하게 돈도 모았구나 하는 마음에 목욕탕 단골 아줌마들은 하나같이 마음속으로 빌었다.

“새로 시작하는 고향 목욕탕에서 돈 많이 벌고, 그곳 할머니들에게도 기분 좋은 마사지 서비스 많이많이 해 주세요.”라고.

 이은숙/ 경북 경주시 동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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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결혼을 늦게 한 데다 2년이 지나서 임신을 했는데 입덧은 다른 사람보다 유별났다.

  온종일, 아니 잠을 자도 눈앞에 먹는 것만 보였다. 입의 변덕이 죽 끓듯해서 금방 먹고 싶다가도 
  얼마 뒤면 그 음식 떠올리기가 싫고 그러다가 한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못 견딜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나른한 상태로 TV를 보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비몽사몽간인데 언제 퇴근했는지 남편이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손질하고 있는 재료는 해물이었다. ‘물텀벙'이라고 부르는, 워낙 봐줄 것 없이 생겨먹은 꼴에다가 살도 붙질 않아서 생선 축에도 못 끼던 고기다. 평소엔 징그럽게 느껴지더니만 오늘은 아직 날 것인 채 손질을 하는 중인데도 내 입에 군침이 도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워낙 못 생긴데다가 맛도 형편 없어서 그물에 걸리는 대로 서해안 어부들이 텀범텀벙 던져버렸다고 한다.

“어머, 자기야, 언제 그런 걸 다 사왔어. 내가 할깡?”  콧소리를 내자 남편이 말했다.

“그냥 누워있어. 내가 아주아주 맛있게 끓여줄게.”

“고마웡. 내가 손댄 음식은 먹는 대로 도로 올라와서 큰일이야. 빨리 해 줄 거지~잉?”


남편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는 적이 없다. 오늘 따라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잠든 사이에 저렇게 음식을 만들고 있어 울컥해졌다. 난 우리 남편이 저토록 음식의 달인인줄 몰랐다. 섭섭할 만큼, 나한테는 거들어달라는 부탁도 하질 않고서도 손은 막힘없이 빠르고, 야채며 양념이며 척척 들어간 냄비에선 벌써 보글보글 김이 뿜어지고 뚜껑이 들썩거린다.


이윽고 수저의 달각이는 소리가 식욕을 최고조로 돋구어놓더니 주방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다. 나를 놀라게 하려고 장난하는구나. 난 기대 반, 야속함 반으로 문을 열고 주방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럴 수가…

 

물텀벙이탕은 커녕 주방은 깨끗하고 싱크대엔 내가 점심 때 설거지해 놓은 대로 물 한 방울 튀지 않은 상태였다. 귀신에 씌인 것이 아닌가 생각 될 정도였다. 난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때 보이는 TV화면에서는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진 아귀탕 국물을 남자 요리사가 숟가락에 넘치게 떠주자 리포터 아가씨는 뜨겁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호호 불어가며 받아먹는다.


난 졸도하는 줄 알았다. 이제까지의 상황은 텔레비전 속에서 일어난 실제 모습에다가 속으로 상상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TV속에서 전개되는 화면과 현실이 혼동될 만큼 난 먹는 것에 반은 미쳐있었단 말인가.

 

  맞은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주르르 흐른 군침이 말라붙어 내가 생각해도 가관이어서 눈뜨고
  봐줄 수가 없었다
. 허탈과 실망감에 난 신랑이 들어올 때까지 저녁밥을 하지 않았고 일에 지쳐
  들어온 남편에게 물텀벙이탕을 좀 만들어 달라고 애교 섞어 부탁했다.


“자기야, 나 물텀벙이탕 먹고 싶은데 좀 해주라. 응?”

뭘 잘못 먹었나, 멍하니 바라보던 남편이 말했다.


“아니, 지금 제 정신이야. 왜 하필 물텀벙이냐고. 나중에 그렇게 생긴 아이 태어나면 책임질텨?”


TV에서 나온 요리사도 아닌 남편이 무슨 재주로 그런 음식을 할까마는, 낮에 이미 리포터의 유혹에 빠져버린 뒤라 보이는 게 없었다.


“먹고 싶은 걸 참고 못 먹으면 오히려 그렇게 되는 거야. 오늘 저녁은 없어, 못해! 어디 굶어봐!!


발랑 누워버리자 단식투쟁이 겁났는지 남편이 나를 일으켰고 그날 우린 외식을 하게 됐다. 남편은 나를  ‘물텀벙이집’으로 데려갔다. 여기 인천에선 꽤 유명하다는데 난 처음이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남편 앞에서 난 국물 하나 안 남기고 싹싹 먹어치웠다.

다 먹고 나니 사실 걱정은 되었다. 정말 물텀벙이처럼 생긴 2세가 태어나면 안 되니까. 물텀벙이가 차라리 아기 인물보다 더 낫다는 우스개를 들을 정도의 아이가 태어난다면 아무리 성형기술이 뛰어나다 해도 견적이 천문학적으로 나올 것 아닌가. 근심 속에서 출산을 하고 보니 다행히 이목구비 모두 사람을 닮았다.

그 아이가 벌써 올해 대학 3학년이다. 옆에 앉은 딸 모습을 고슴도치 엄마 아니랄까봐 다시 바라보아도 물텀벙이보다는 낫다. 영문도 모르고 나를 따라 웃는 딸에게 언젠가는 내가 혼자 실실 웃은 사실을 말해줘야 되겠지.



 박정순/ 인천광역시 동구 

 
 물텀벙이?  아귀?  어떤게 맞는말일까? 

 

 물텀벙이는 '아귀'라는 물고기를 인천지방에서 주로 부르는 통칭이라네요. 예전 어부들은 아귀가 그물에 잡히면 못생겨 재수없다고 물에 '텀벙' 버렸다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인천 용현동 지역은 '물텀벙이거리'로 지정될만큼 전문점들이 많이 모여있기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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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과 입학의 시즌을 보내고 나니 3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우리 ‘한마음회’ 에서 성희를 만난 게 3년 전, 그때 소아마비 장애를 갖고 있던 그 아이는 나이가 19살이었는데 중학교를 중퇴한 상황이었다. 또래들이 놀리고 적응이 안 되자 아예 때려치우고 보호 시설에 들어와 다른 중증 장애인들을 보살피며 생활하고 있었다.


“공부도 잘했는데… 애들이 막 놀리잖아요.
‘ 애자’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어요. 그래서 그냥 나와 버렸어요. 집에서 놀았더니 맘도 편했어요. 에이, 학교는 가기 싫어요.”


하루아침에 배움이라는 희망의 날개가 꺾여버린 아픔이 얼마나 컸는지 성희라는 그 아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여사원 봉사활동 모임인 우리 한마음회에서 처음 갔을 때 야무지고 똑 부러진 표정으로 말하던 성희. ‘애자’라는 말은 장애인을 장애자라고 폄하하던 시절, ‘장’자를 빼고 부르던 아주 나쁜 말이었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그러던 어느 날, 회원 중 한명이 제안을 했다. “같이 공부해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자.”그러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이유가 놀라웠다. 자기가 학교에 가면 자신이 하던 다른 아이들 대소변 치우는 일, 밥 짓기에 빨래까지 누가 할 것이며,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면 나머지 아이들의 생활은 더더욱 곤궁해질 거라는 걱정이 그거였다.


성희의 말을 들으면서 우린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다. 본인의 불편함에도 아랑곳없이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챙기며 걱정하는 마음에 우리가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우린 우선 주변 봉사 단체에 부탁해 성희가 하던 일을 대신할 자원봉사자를 찾았다. 다행히 보름만에 그 일이 해결됐고 본격적으로 성희 학교보내기‘작업’에 들어갔다. 교과서와 참고서, 문제집을 사다주고 전공별로 돌아가며 주말마다 과외를 시켜줬다. 우리 회사 사장님은 컴퓨터도 2대를기증해 주셨다. 배움과는 연이 없다고 생각한 성희가 다시 공부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이듬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성희는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가볍게 통과했다. 그리고 모두의 축하 속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재작년 3월, 복지회 친구들과 공부를 가르쳐준 우리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성희는 눈물 어린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저는 제가 받은 사랑보다 백배 더 다른 사람을 위해 사랑하는데 쓸게요. 나중에 크면 반드시
   장애우들을 위해 헌신할게요. 제가 그동안 받은 도움은 제 것이 아니라 모든 장애우들에게
   돌려줘야 할 빚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희의 고등학교 입학은 그에게 인생의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워주었고, 우리는 배움의 벅찬 희망을 안고 다시 출발하는 해맑은 여학생의 아름다운 입학식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지금도 배움의 길을 가고자 하는 어려운 환경의 사람들이 많다.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빛이 찾아들기를 소망해본다.



이정하 부산시 연제구 거제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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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 헌혈을 하려고 하는데….”  


말이 떨어지자마자 활짝 웃는 얼굴로 간호사 분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저씨, 여기 좀 잘 읽어 보시고 헌혈을 하셔야 합니다.”라며 헌혈을 하면 안 되는 특정 지역에 2년 이상 거주하며 밤을 지새웠던 경험이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무조건 헌혈을 권하던 예전과는 달리 꼼꼼하게 건강상태도 체크하고 까다로운 기준까지 제시하는 것을 보고 많이 흐뭇했다. 나이는 속일 수 없어 옛날에는 거침없이 팔을 걷어붙였지만 겁도 나고 혹시나 다른 문제는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헌혈을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내가 헌혈을 시작한 연유는 참 우습기만 하다.




식성이 워낙 좋아서 무엇이나 먹을 것으로 보였던 고등학교 시절, 헌혈을 하면 빵을 준다는 유혹에 처음으로 헌혈을 시작하여 그 후로 헌혈차만 보면 맛있는 빵이 생각나서 가끔씩 헌혈을 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지인들에게도 헌혈을 하면 건강도 체크할 수 있고 혈액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며 헌혈 홍보대사가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헌혈을 주저하는 것은 나눔과 기부 문화가 정착이 잘 안되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한 헌혈을 나중에 꼭 돌려 받아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헌혈도 아름다운 나눔의 한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해서 헌혈을 주저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영양상태가 너무 좋아서 비만으로 고민을 하는 요즈음 우리들은 어찌 보면 일부러라도 헌혈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나의 피 한 방울이 소중한 생명을 살린다는 생각을 한다면 헌혈을 하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


헌혈은 진정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매우의미 있는 일이다.   앞으로 우리 국민 모두가 사랑의 헌혈운동에 적극 동참했으면 좋겠다.  

 

경기도 부천시 조원표

    헌혈이 끝난 후 음료수 및 우유와 빵을 제공하는 것은 수분 보충 의미 외에도 휴식시간을 갖게 하는
    취지가 있다네요.

    상품권 금액을 더 올려달라고요?

    현혈은 자신의 가족과 타인을 위한 일인 만큼 헌혈을 통한 정신적 만족이 가장 큰 보상이라는 것!

    잘 아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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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저녁이었다. 저녁 아홉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현관 벨이 울렸다.


문을 열고 보니 우리 위 층에 사는 아기 아빠였다. 처음 이사 왔다고 돌 전 쯤으로 보이는 아기를 안고 떡을 돌렸었다. 바쁜 아침에는 나와 아이들이 엘리베이터를 놓칠 뻔할 때 버튼을 눌러 주기도 하고 서로 인사를 건네기도 하며 그렇게 얼굴을 알고 지내는 터였다.


“놀라셨죠?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걸 전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미안하단 말로 말문을 여는데 손에 뭔가가 들려 있었다.


“저희가 쓰려고 사뒀던 음식점의 상품권이 기한 내에 쓰지 못하고 버려질 것 같아서요. 평소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던 아래층에 드리자고 아내와 상의해서 찾아왔습니다. 부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가졌으면 합니다.”라고 하면서 손에 든 봉투를 내밀었다.


받을 수 없다는 우리와 꼭 받아달라는 아기 아빠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봉투 안에 편지도 같이 넣었다며 읽고 기분이 상하면 그대로 버려도 좋다는 말과 함께 계속 권하는데 마냥 사양하기도 미안한 노릇이었다. 손 글씨로 정성스럽게 쓰인 두 장의 편지에는 아이의 별난 행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이 아래층에선 얼마나 큰 스트레스일까 생각할 때마다 항상 죄송스런 마음이면서도, 그런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미안하고 한편으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요샌 위층 아이의 쿵쾅거리는 소리가 그다지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리가 줄어들었거나 작아진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위층에서 만들어내는 소리는 점점 커져가고 있다. 돌이 지날 무렵부터는 제법 쿵쾅거리는 소리며 데굴데굴 장난감 굴러가는 소리, 이젠 거실을 운동장 삼아 달리는 것까지도 다 들린다. 아이가 자람에 따라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달라졌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소음으로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이젠 오히려 너무 조용하면 도리어 걱정이 앞선다. 아이가 어디 아픈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리고 새벽에 우는 소리가 들려오면 두 부부가 밤잠도 제대로 못자고 낮에 고생할 모습이 선해 안쓰러운 생각마저 든다.





 

젊은 위층 부부의 모습에서 지난날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았다. 결혼해서부터 쭉 아파트에서 생활 했으니 아이들도 당연히 아파트에서 자랐다. 항상 아이들에게‘뛰지 마라. 살살 걸어라. 그 장난감은 소리가 요란하니까 나중에 갖고 놀자….’


지금은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에게는 집에서 뛰거나 크게 소리 지르지 말라고 이른다. 가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래층 아저씨를 만나면 우리 아이들 때문에 너무 시끄러운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인사를 건넨다. 그럼 항상 그러신다.“괜찮아요. 별로 시끄러운지 모르겠어요.”


어찌 안 그렇겠는가, 엄마인 내가 우리 아이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위층 부부도 너무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아이도 많이 시끄러웠을 텐데 참아주고 견뎌줬던 과거의 우리 아래층처럼, 그리고 지금도 뭐라 하지 않고 지내는 지금의 아래층처럼 우리도 위 층 부부에게 그런 아래층이 되어주고 싶다. 우리가 받았던 고마움을 위층에게 갚아주고 싶어서다.


요즘 아파트에서는 층간 소음 때문에 여러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우리 위층도 아래층인 우리 집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단독 주택이 아니고 여러 세대가 한 건물에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이것도 사람 사는 정으로 알고, 조금씩만 참아주고 양보하고 배려하고, 또 서로에게 고마워하면서 지내면 안 될까? 바로 우리의 위층과 아래층처럼 말이다.


오늘도 위층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니 아프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전북 군산시 송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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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도 날이 있지마는 낫처럼 들을 까닭이 없습니다.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어머님같이 나를 사랑하실 분이 없도다.
더 말씀하지 마시오 사람들이여,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분이 없도다.
                                                                                   - 고려속요 사모곡(思母曲)


매년 추석과 설날에 어머니는 식구들에게 양말을 한 켤레씩 선물하신다. 처음 시집오던 해부터 받았으니 어언 십 년이 넘게 이어져온 선물의 역사다. 몸이 편찮으시거나 아무리 바쁜 일이 있을 때도 어머니는 어김없이 장으로 가셔서 식구들 수만큼의 양말을 사오셨다.


사실 처음엔 어머니의 양말선물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여느 어머니들 또한 명절이 되면 으레 자식들의 명절빔이나 양말 한 켤레 정도 준비하시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작년 설 때의 일이다. 당시 어머니는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 해 가을 고추를 수확하던 어머니는 부주의로 손수레와 함께 개울로 곤두박질쳤고 허리와 다리를 많이 다치셨다. 안 그래도 오랜 지병인 관절염 탓에 고생을 하시던 터였다.

명절을 앞두고 시댁에 내려가니 어머니는 그때까지 지팡이 없이는 운신조차 힘든 상태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성치 않은 몸으로 읍내까지 가셔서 양말을 사 오셨다는 것이다. 길도 미끄럽고 지팡이 없이 걷는 것도 여의치 않아 떡이랑 제수거리들은 아버님께 부탁을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그만 자식들에게 줄 양말을 사오라는 걸 깜박하신 모양이었다. 아버님은 까짓 양말 한 켤레가 대수냐고 말리셨지만 어머니는 기어이 읍내에 나가는 차를 빌려 타고 양말을 사 오신 것이다.

차례를 모신 뒤 부모님께 세배를 마치고 나자 아버님은 쌈지를 열어 세뱃돈을 건네시고 어머니는 자식들마다 고루 양말 한 켤레씩을 선물로 주셨다. 자식들은 이구동성으로 편찮으신 와중에 읍내까지 가셔서 양말을 사 오실 게 뭐냐고 지청구를 해댔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지만 늘 하던 걸 안 하려니 서운하고 맘이 허전해서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냥 이 어미 마음이려니 하고 신거라.”  고 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뵈니 옛날 생각이 났다. 어릴 때 설날이 되어도 설빔을 얻어 입은 기억이 없다. 가난한 살림에 자식들은 많으니 가래떡이나마 뽑아 조상들께 떡국 한 그릇씩 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을 살림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설날이 되면 자식들 몫으로 양말 한 켤레씩은 꼭 잊지 않고 준비하셨다. 별 무늬도 없이 밋밋한 빨간색 양말을 서로 신겠다고 다투던 세 자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명절을 앞둔 대목장 한켠에 쭈그리고 앉아 어머니는 양말을 고르셨을 것이다. 자식들이 열한 명에 배우자와 손자들 몫까지 챙기느라 몇번씩 손가락을 구부렸다 펴며 숫자를 헤아렸을 당신이다. 한 켤레에 얼마 안 하는 양말이지만 자식들 수가 만만치 않으니 양말 값도 무시 못할 액수였겠다. 또한 손자들 성별이며 연령대까지 배려하느라 양말 한 켤레 고르는 데도 그만큼 품이 들었을 터이다.

분홍색에 귀여운 토끼 캐릭터가 들어간 양말은 유일한 손녀인 딸애 몫, 파랑색에 곰돌이 캐릭터가 들어간 것은 딸애와 나이가 같은 외손자 몫, 길이가 짧고 맵시 있는 건 막 멋을 부리기 시작한 중학생 조카의 몫… 각자의 개성만큼 모양도 빛깔도 다른 양말들이다.

무릇 선물이란 값어치를 떠나 주는 이의 정성이 으뜸이 아니겠는가. 새 양말을 신고 날아갈 듯 집 안팎을 오가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이 봄 햇살만큼이나 자애롭다.

                                                                                                                           (조현미 경기 일산 서구 대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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