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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우리 딸 물텀벙이처럼 태어날 뻔한 사연

   나는 결혼을 늦게 한 데다 2년이 지나서 임신을 했는데 입덧은 다른 사람보다 유별났다.

  온종일, 아니 잠을 자도 눈앞에 먹는 것만 보였다. 입의 변덕이 죽 끓듯해서 금방 먹고 싶다가도 
  얼마 뒤면 그 음식 떠올리기가 싫고 그러다가 한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못 견딜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나른한 상태로 TV를 보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비몽사몽간인데 언제 퇴근했는지 남편이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손질하고 있는 재료는 해물이었다. ‘물텀벙'이라고 부르는, 워낙 봐줄 것 없이 생겨먹은 꼴에다가 살도 붙질 않아서 생선 축에도 못 끼던 고기다. 평소엔 징그럽게 느껴지더니만 오늘은 아직 날 것인 채 손질을 하는 중인데도 내 입에 군침이 도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워낙 못 생긴데다가 맛도 형편 없어서 그물에 걸리는 대로 서해안 어부들이 텀범텀벙 던져버렸다고 한다.

“어머, 자기야, 언제 그런 걸 다 사왔어. 내가 할깡?”  콧소리를 내자 남편이 말했다.

“그냥 누워있어. 내가 아주아주 맛있게 끓여줄게.”

“고마웡. 내가 손댄 음식은 먹는 대로 도로 올라와서 큰일이야. 빨리 해 줄 거지~잉?”


남편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는 적이 없다. 오늘 따라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잠든 사이에 저렇게 음식을 만들고 있어 울컥해졌다. 난 우리 남편이 저토록 음식의 달인인줄 몰랐다. 섭섭할 만큼, 나한테는 거들어달라는 부탁도 하질 않고서도 손은 막힘없이 빠르고, 야채며 양념이며 척척 들어간 냄비에선 벌써 보글보글 김이 뿜어지고 뚜껑이 들썩거린다.


이윽고 수저의 달각이는 소리가 식욕을 최고조로 돋구어놓더니 주방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다. 나를 놀라게 하려고 장난하는구나. 난 기대 반, 야속함 반으로 문을 열고 주방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럴 수가…

 

물텀벙이탕은 커녕 주방은 깨끗하고 싱크대엔 내가 점심 때 설거지해 놓은 대로 물 한 방울 튀지 않은 상태였다. 귀신에 씌인 것이 아닌가 생각 될 정도였다. 난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때 보이는 TV화면에서는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진 아귀탕 국물을 남자 요리사가 숟가락에 넘치게 떠주자 리포터 아가씨는 뜨겁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호호 불어가며 받아먹는다.


난 졸도하는 줄 알았다. 이제까지의 상황은 텔레비전 속에서 일어난 실제 모습에다가 속으로 상상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TV속에서 전개되는 화면과 현실이 혼동될 만큼 난 먹는 것에 반은 미쳐있었단 말인가.

 

  맞은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주르르 흐른 군침이 말라붙어 내가 생각해도 가관이어서 눈뜨고
  봐줄 수가 없었다
. 허탈과 실망감에 난 신랑이 들어올 때까지 저녁밥을 하지 않았고 일에 지쳐
  들어온 남편에게 물텀벙이탕을 좀 만들어 달라고 애교 섞어 부탁했다.


“자기야, 나 물텀벙이탕 먹고 싶은데 좀 해주라. 응?”

뭘 잘못 먹었나, 멍하니 바라보던 남편이 말했다.


“아니, 지금 제 정신이야. 왜 하필 물텀벙이냐고. 나중에 그렇게 생긴 아이 태어나면 책임질텨?”


TV에서 나온 요리사도 아닌 남편이 무슨 재주로 그런 음식을 할까마는, 낮에 이미 리포터의 유혹에 빠져버린 뒤라 보이는 게 없었다.


“먹고 싶은 걸 참고 못 먹으면 오히려 그렇게 되는 거야. 오늘 저녁은 없어, 못해! 어디 굶어봐!!


발랑 누워버리자 단식투쟁이 겁났는지 남편이 나를 일으켰고 그날 우린 외식을 하게 됐다. 남편은 나를  ‘물텀벙이집’으로 데려갔다. 여기 인천에선 꽤 유명하다는데 난 처음이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남편 앞에서 난 국물 하나 안 남기고 싹싹 먹어치웠다.

다 먹고 나니 사실 걱정은 되었다. 정말 물텀벙이처럼 생긴 2세가 태어나면 안 되니까. 물텀벙이가 차라리 아기 인물보다 더 낫다는 우스개를 들을 정도의 아이가 태어난다면 아무리 성형기술이 뛰어나다 해도 견적이 천문학적으로 나올 것 아닌가. 근심 속에서 출산을 하고 보니 다행히 이목구비 모두 사람을 닮았다.

그 아이가 벌써 올해 대학 3학년이다. 옆에 앉은 딸 모습을 고슴도치 엄마 아니랄까봐 다시 바라보아도 물텀벙이보다는 낫다. 영문도 모르고 나를 따라 웃는 딸에게 언젠가는 내가 혼자 실실 웃은 사실을 말해줘야 되겠지.



 박정순/ 인천광역시 동구 

 
 물텀벙이?  아귀?  어떤게 맞는말일까? 

 

 물텀벙이는 '아귀'라는 물고기를 인천지방에서 주로 부르는 통칭이라네요. 예전 어부들은 아귀가 그물에 잡히면 못생겨 재수없다고 물에 '텀벙' 버렸다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인천 용현동 지역은 '물텀벙이거리'로 지정될만큼 전문점들이 많이 모여있기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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