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그의 첫 마디는 "유통기한이 지났으니 그냥 드릴게요" 였다. 지금 살고있는 오피스텔로 이사온 첫날 새벽, 1층 편의점 알바생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삼각김밥의 뒷면을 봤다. 유통기한이 고작 3분 지났는데 연신 미안해하던 그는 기어코 김밥을 무료로 줬다. 다음날 한 라면을 집어들자 그는 "그거 별로 맛없어서 별로 안나간다"고 했고, 언젠가 술을 마시고 비틀대며 집으로 들어가는데 오피스텔 입구서 담배를 피던 그가 황급히 여명808을 들고 뛰어와 손에 쥐어줬다. 자기도 동생이 있는데 매일 힘들게 일하는 모습이 비슷해서 주는 거라고 했다.





그는 모든 이에게 친절했다. 근처 타임스퀘어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찾아오면 "서 계시느라 힘드시죠?"라고 먼저 묻고, 술먹고 매장안에서 토하는 이를 다독여 집으로 올려보낸뒤 토사물을 묵묵히 걸레로 닦았다. 그는 30대 중반으로, 오피스텔 1층 편의점서 일한지 벌써 3년 반이 넘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여기저기 직장을 전전했지만 잘 되지 않아 아는 형님이 차린 편의점일을 돕고 있단다.





신기한 건 오피스텔에 사는 모든 이가 그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사납게 생긴 15층 아저씨도 10~20분씩 그와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걸 여러번 봤다. 도도하게 생긴 6층 처녀는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생긴 고민을 묻기도 했다. 신기한 건 그에게 무언가를 주는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19층 신혼부부는 꼭 아이스크림을 6개 사서 1개를 그에게 줬다. 우리 옆옆집 아저씨는 라이터를 빌린 뒤 사과 2개를 건네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그는 오피스텔에 사는 손님들의 직업 등을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한번 내 목에 걸린 네임택을 본 뒤부터는 나에게도 "김영란법 시행되면 더 자주 오시겠네요"하고 웃었다. 그래서 그런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한두마디씩 얘기를 나누는 게 그렇게 힐링이 됐다.





손님이 계산대로 다가오면 손을 뻗어 받아들고, 항상 웃고, 안색이 안 좋다며 걱정해주는 그에게서 이 삭막한 오피스텔 사람들이 별거 아니지만 별거 아니라서 더 따뜻한 사람 냄새를 맡는가 보다, 했다. 잇속을 챙기고, 주판알을 굴리고, 상대방이 내게 도움이 되는지 안되는지 따지는 실날같은 인간관계가 판치는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그에게서 조금씩 배우는 거 같다.



글 / 박세환 국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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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더 멋진 10년 후를 꿈꾼다. 물질이 더 풍족해지기를, 가정이 더 화목해지기를, 지식이 더 두터워지기를, 인품이 더 바로 서기를, 명예가 더 빛나기를 소망한다. 10년 후는 언젠가 모두에게 똑같은 ‘오늘’이 된다. 그러나 다가오는 모습은 사뭇 다를 것이다. 10년 후의 인생 스케치는 당신이 직접 해야 한다. 당신의 꿈은 누구도 대신 꾸지 못한다. 당신의 10년 후는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못한다. 그건 온전히 당신 것이다. 시작보다는 끝이 창대한, 갈수록 아우라 빛나는 삶을 꿈꾸자.






현재는 미래의 씨앗이다. 오늘 뿌린 씨앗이 내일의 열매가 된다. 풍성하게 뿌려야 풍성하게 거둔다. 정성을 기울여야 열매가 영근다. 10년 후 반도체로 살지, 그냥 쇠붙이로 살지는 당신이 오늘 뿌린 씨앗이 결정한다. 꿈이 없으면 사소한 일상을 사소하게 살고, 목표가 분명하면 사소한 일상이 충실히 채워진다. 꿈이 있는 인생은 자기 ‘답게’ 살고, 꿈이 없는 인생은 그저 되는 대로 산다. “목적이 있는 사람은 험난한 길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아무런 목적이 없는 사람은 순탄한 길에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의 말이다. 꿈의 로드맵을 그려라. 그러면 당신 삶이 달라진다.






이미지도 콘텐츠다. 속이 알차도 겉이 허술하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세상이다. 당신은 약속을 잘 지키는가? 정직한가? 어떤 사실을 습관적으로 부풀리는가? 옷차림은 단정한가? 월급을 받는 만큼만 일하는가? 자신의 단점을 애써 숨기는가? 자기합리화를 자주 하는가? 수시로 이중잣대를 쓰는가? 험담을 자주 하는가? 남의 얘기를 경청하는가, 아니면 의견이 다르면 바로 목소리를 높이는가? 사실 이 정도 질문이면 당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체크하는데 충분하다. “허물이 있으면 고치는 것을 주저하지 마라.” 공자의 말이다.






누구에게나 허물이 있다. 인격에 흠이 있는 자, 습관에 흠이 있는 자, 성격에 흠이 있는 자, 지식에 흠이 있는 자…. 세상은 흠집투성이다. 뱀은 허물을 벗어야 산다. 제때 허물을 벗지 못한 뱀은 그 허물에 갇혀 죽는다. 뱀에게 허물은 생사의 갈림이다. 허물은 스스로 벗어야 한다. 누구도 대신 허물을 벗겨주지 못한다. 허물 벗는 것을 주저하지 마라. 허물을 벗는다는 건  삶의 다음 단계로 내딛는 도전이고 새로운 세상을 보는 개안이다. 더 높이 날려는 몸부림이다. 허물을 벗고 높이 날아라.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넓고 근사하다.






지식은 언제 어디서나 유효하다. 상식 역시 늘 유용하다. 앎은 주체적 삶의 토대다. 스스로 판단하고, 멀리 내다보고, 깊이 들여다보는 힘이다. 지식이 바로 생존력인 사회, 그게 바로 지식사회다. 앎의 중심에 책이 있다. 읽는 자가 세상을 앞서간다. 커피 서너 잔 값이면 책 한 권을 산다. 한데 책은 책 값을 열 배, 백 배로 불려준다. 엄청 수지맞는 장사다. 책 값을 아끼는 건 정말 좀스런 인생을 사는 거다. 지혜로운 사람은 가치 있는 일에 돈을 쓰고, 어리석은 사람은 재미에 돈을 쓴다. 전자는 투자, 후자는 낭비다. 좋은 책은 저평가된 가치주다. 오래 품으면 큰돈이 된다.






지식은 지성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지성인은 지식과 품성을 겸비한 사람이다. 지식만을 쌓은 지성(知成)이 아닌, 지식과 품성이 짝을 이룬 지성(知性)이다. 영국 작가 새뮤얼 존슨은 “지식 없는 성실은 허약하고, 성실 없는 지식은 위험하다”고 했다. 아우라 빛나는 삶을 원한다면 앎으로 채우고 품성으로 바로 서라. 진정한 지성인은 배움으로 진보하는 자, 인품으로 모범이 되는 자다. 인품을 바로 세워라. 절름발이 지식인보다는 근사한 지성인이 돼라. 날마다 앎을 더하고 인품을 닦아라. 그럼 당신의 10년 후는 저절로 빛나고 근사해진다.






영국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은 “우리 시대의 근본적 착오는 물질의 지나친 숭배”라고 꼬집었다. 공자는 “군자는 덕을 먼저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먼저 생각한다”고 했다. 인생을 살면서 돈은 분명 필요하다. 누구나 부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성공과 실패도 부(富)의 크기로 가름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인생 자체가 송두리째 돈에 저당 잡혀서는 곤란하다. 돈을 향한 맹신은 때로 삶의 소중한 것을 가린다. 삶은 ‘저글링’이다. 가족, 건강, 친구, 지식, 일, 취미, 명예의 조화로운 핸들링이다. 이익만을 지나치게 좇으면 품격이 얕아진다. 명품을 걸쳐도 내면이 초라하면 촌티가 난다.






“분주한 자들은 하나같이 처지가 딱하다. 그중에서도 자기 일에 분주한 것이 아니라 남의 잠에 맞춰 자기 잠을 조절하고, 남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는 자들의 처지가 가장 딱하다. 인생에서 당신의 것이 얼마나 적은지 생각해보라.” 로마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말이다. 혹여 남의 장단만 맞추고 타인의 평판에만 신경 쓰다 정작 ‘당신만의 것’은 텅 비지 않았는지 한번 되돌아봐라. 비교의 습관을 버리고, 당신 이름으로 살아봐라. 존재에는 다 이유가 있다. 당신의 존재에는 더 큰 이유가 있다. 당신의 발로 당당히 서고 당당히 걸어라. 남의 외침만 되받아주는 메아리로 살지 마라.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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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에 사는 한 젊은이가 조나라 수도 한단에 가서 대도시 걸음걸이를 배웠답니다. 그런데 그 나라 걸음걸이를 채 배우기도 전에 옛 걸음마저 잊었다네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엉금엉금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 갈 수밖에요.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삶이란 게 그렇습니다. 남의 길이 멋져 보이고,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남의 키가 높아 보입니다. 그래서 내 길을 주춤거리고, 남의 떡을 넘보고, 발끝으로 서려고 합니다.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 그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동물들은 늘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장자는 우리에게 ‘발끝으로 걷지 말라’고 합니다. 발끝으로 걸으면 키는 좀 커보이겠죠. 한데 그런 부자연스런 걸음으로 몇 보나 걷겠습니까. 이치에 어긋나는 건 대개 그 끝이 흉합니다. 누군가 ‘삶은 주막’이라고 했습니다. 비유가 참으로 맛깔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정거장입니다. 정거장은 출발점이자 도착지이고, 길이 갈리는 교차로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갈림길에서 서성댑니다. 확신이 부족해서 머뭇거리고, 못가는 길이 아쉬워 되돌아보고, 남의 길이 좋아보여 곁눈질을 합니다. 당신만 그런 건 아닙니다. 저도 그렇고, 그도 그렇습니다. 루소는 ≪에밀≫에서 “항상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은 결코 인간이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비뚤어 풀어보면 인간은 모두 ‘방황하는 동물’이라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가 뭐래도 당신의 걸음걸이가 최고입니다. 당신의 스타일, 당신의 꿈이 제격입니다. 그게 바로 당신 삶이기 때문입니다. “밝음을 가리고 가려서 나의 갈 길을 그르치지 마라. 내 가는 길 물러났다 돌아갔다 하며 나의 발을 다치지 않게 하라.” ≪장자≫ 인간세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길을 간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아마 그건 거짓을 걷어내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자문해봅니다. 어둠이 밝아지고, 좁음이 넓어지고, 작은 앎이 큰 앎이 되는 게 참된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길에는 자연의 길(天道)이 있고, 사람의 길(人道)이 있다. 억지 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의 길이고, 억지로 번거로워지는 것이 사람의 길이다. 자연의 길이 군주이고, 사람의 길이 신하다. 그런데 자연의 길과 사람의 길이 서로 멀어지고 있다. 살펴봐야 할 일이다.” ≪장자≫ 재유편에서 인용한 구절입니다. 장자는 “천도는 남는 데서 덜어 부족한 곳을 채워주고, 인도는 부족한 곳에서 빼앗아 넘치는 곳을 더 넘치게 한다”고 꼬집습니다. 저에겐 이익만 좇아가는 소인배들을 겨냥해 내리치는 죽비소리로 들립니다. 속세와 너무 뒤섞으면 길이 흐려집니다. 흐려지면 불안해지고, 불안해지면 길이 더 흐려집니다. 장자는 “세상은 길을 잃고, 길은 세상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돈에 얽매인 자, 명예를 좇는 자, 권세에 매달리는 자가 세상에 넘쳐난다는 한탄으로 들립니다.





속세를 사는 인간이 속세를 등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삶이 반드시 고상한 것도 아닙니다. 장자는 백이숙제의 정절을 높이 사지 않습니다. 그 어느 것도 목숨과 바꿀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속세에 매인 삶에도 따끔한 경계의 시선을 보냅니다. 장자는 세상사의 부침에 일희일비하지 마라고 합니다. 의연히 가고, 의연히 오라고 합니다. 삶을 받아도 기뻐하고, 삶을 잃어도 그러라고 합니다. 어려운 주문입니다.


세속에 너무 밝으면 삶이 고달픕니다. 눈이 너무 밝으면 시야가 흐려지고, 귀가 너무 밝으면 소리가 흐려지고, 탐심이 너무 밝으면 마음이 흐려집니다. 흐려지면 길을 잃습니다. 세속에서 조금 거리를 둬보십시오. 그럼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이지도, 남의 키가 높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내 떡이 맛있고, 내 걸음으로 편히 걷습니다.





삶의 소소한 선택의 결과가 바로 오늘입니다. 삶의 자잘한 선택의 결과가 바로 지금의 당신입니다. 그 선택들이 쌓여 내일이 되고, 내일의 당신이 됩니다. 선택은 늘 당신의 몫입니다. 당신 삶에 조언가는 많습니다. 그래도 최종 결정권자는 여전히 당신입니다. 누구도 당신 삶을 대신 살아주지 못합니다. 당신이 살아가는 길입니다. 이왕이면 이웃과 더불어가는 길, 당신의 자아가 빛나는 길, 더 풍요로워지는 길을 걸어보십시오. 누구나 잠시 빌려 걷는 길입니다. 답답하고 좁은 길에서 헤매지 말고, 당신만의 큰 길을 걸어보십시오. 당신 삶에 응원자는 참으로 많습니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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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휴가 당시 한류를 직접 목격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내가 쓰던 오사카 호텔 거의 전부를 배우 장근석의 콘서트 참가자(주로 할머니)가 점령했다. 우연히 내 옆방에 자리를 잡은 할머니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자신이 홋카이도 지역의 부부지부장쯤 된다고 했다. 하루 전 홋카이도에서 오사카로 넘어왔단다.





짧은 영어로 들어본 그녀의 사연은 기구했다. 교사로 정년한 뒤 자식과 남편을 먼저 하늘로 떠나보내고 우연히 장근석을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그의 한손에는 쇼핑백이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장근석의 사진을 스크랩하고 자신의 소감을 정리한 노트가 무려 7권이다. 직접 줄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근쨩(장근석의 일본발음)의 웃음을 볼때마다 젊어지는 것 같다 하며 웃었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죠? 당신도 근쨩을 좋아하나요? 라는 말에 예스 혹은 하잇하잇, 하며 웃어보였다. 참 어찌보면 절망과 외로움의 나락에 빠져 허우적 댔을지 모르는 사람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던져주고, 나아가 삶을 다시 시작케 하는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런일도 있었다. 우리집 바로 옆에는 사창가가 있다. 오후 7시쯤 되면 진분홍색의 문을 열고 새벽 3~4시쯤 닫는다. ‘지금이 어느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많은 이들이 드나든다. 영등포경찰서 출입할 때는 경찰에게, 한번은 영등포구청 쪽에도 왜 안없어지냐고 문의했는데 토지 문제 등으로 사안이 복잡하다는 말만 돌아왔다.


주로 사람들은 영등포역으로 가는 지름길인 사창가 언저리를 걸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밝은 불빛의 그쪽을 최대한 쳐다보지 않으려 한다. 주로 새벽 1시쯤 나타나는, 태닝을 마친 고급차량이 아주 천천히 가게와 여성들을 시선으로 훑고 지나가는 것과는 딴판이다. 누구는 의지만 있다면 다른 일을 한다고 지적하고 누구는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다며 성적상품화가 만연한 작금을 개탄하지만 그곳에 여전히 사창가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얼마전 야근을 마치고 집에 오는데 한 외국인노동자로 보이는 남자가 뭔가를 물었다. 어수룩한 한국말로 섹시녀 어디있어요 라고 했다. 나는 말없이 건너편을 가리켰다. 그는 댕큐를 연발하며 헐레벌떡 뛰어갔다. 안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꿈과 성공, 혹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역만리로 건너왔을 그의 인생과 사창가를 향하는 그의 뜀박질이 겹쳐져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마음둘 곳은 과연 어디있을까. 가족을 잃은 일본의 할머니와 타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을 보며 몸보다 마음이 건강한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 박세환 국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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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인들과 만나면 앞으로 몇 살까지 일을 할 수 있느냐를 놓고 대화를 많이 나눈다. 모두의 관심사여서 그렇다. 어제도 그랬다. 자영업자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도 마찬가지. 문제는 나와 같은 월급쟁이다. 내가 일을 계속 할 마음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우선 사업주가 자기를 써주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나이 쉰만 넘으면 거들떠보려고 하지 않는다. 박사 학위 등 자격증도 소용 없다. 나이 문턱이 가장 높다. 그럼 무슨 방법이 있을까. 남이 안 가진 그 무언가를 하나 이상 갖고 있으면 훨씬 낫다. 플러스 알파가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내가 직접 경험한 바이기도 하다. 만 30년째 기자생활을 하고 있다.


나와 같은 커리어를 가진 기자는 많다. 내가 대학 강단에 서는 것도, 방송에 더러 나가는 것도, 외부 특강을 하는 것도 기자로 초청받지 않는다. 기자에다 작가 경력이 보태져 그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 에세이집 10권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려고 책을 낸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차별화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누구든지 늦었다고 생각할 때 시작하면 된다. 지금 시작해도 된다는 얘기다. 이제는 차별화만이 살길이다. 경쟁력도 거기서 나온다.





나는 특별한 사람일까. 그렇지 않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특별한 줄 안다. 큰 착각이다. 사람마다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만큼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호흡도 같이 해야 한다. 튀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물론 차별화는 필요하다. 그것도 속으로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나에게도 다른 점은 분명 있다. '새벽형 인간'이라는 것.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보통 1~2시쯤 일어난다. 하루 4시간만 잔다. 그래서 여유가 있다. 하루를 일찍 여니까 서두를 필요도 없다. 느긋하게 하나 하나 해 나가면 된다. 이것이 쌓이면 큰 재산이 되는 법. 내가 그동안 10권의 에세이집을 낸 것과 무관치 않다. 새벽을 이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들은 나보고 언제 책을 썼느냐고 묻는다. 대답은 간단하다. "새벽을 이용했습니다." 새벽 예찬론자가 되어 보시라. 바로 당장 실천하면 금상첨화. 실천에 답이 있다.





참 습관이란 게 무섭다. 얼마 전 대전 상가에 갔다오느라 평소보다 2시간 가량 늦게 잤다. 푹 자고 싶었다. 그런데 깨어보니 새벽 2시 40분이다. 네 시간도 못 자고 일어났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 때문이다. 나쁘지 않다고 본다. 건강하지 않으면 일찍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날 수 없다. 다시말해 건강하다는 뜻이다.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일요일 근무를 하는 날이다. 금, 토 쉬고 휴일 근무를 하는 것. 일터가 있다는 것도 행복이다. 출근할 때마다 감사함을 느낀다. 내 또래에 노는 사람들이 많다. 어정쩡한 나이이기도 하다. 우리 나이로 57세. 더 일을 할 수 있는 데 오라는 곳이 없다. 이 또한 인정하면서 살아야 한다. 나만 아니라고 한들 소용 없다. 내 목표는 70까지 일하는 것. 그러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 그만큼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노력을 능가할 자산은 없다. 요즘 말로 '노오력'만이 살 길이다.





지난 3월의 일이다. 부산에서 중소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마치고 자정쯤 서울 집에 도착했다. 당초 50명쯤 된다고 했는데 75명이 참석했다. 모두 열심히 들었다. 그럴수록 더 신나게 강의할 수 있다. 새벽, 도전, 실천, SNS에 대해 강의를 했다. 서울 올라오는데 메시지를 주신 분도 있었다.


"오늘 강의 힘이 되네요. 2등에서 1등으로 변화할 계기를 만들었으니" "선배님의 삶은 따라갈 수 없겠으나 좀더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삶 살아가겠습니다(고려대 후배 CEO)" 강의에 반응이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역발상과 차별화를 강조했다. 지금보다 기업을 더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대목이다. 남과 같아서는 성공을 거둘 수 없다. 75분쯤 강의를 했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강의를 하다보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서울 올라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차별화에서 경쟁력을 찾는다. 남이 안 가진 것을 꼭 하나 이상 갖기 바란다. 그래야만 내가 설 땅이 있다. 명심하자.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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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민연금 가입내역 안내서를 받았다. 내가 국민연금에 가입한 것은 1988년 1월 1일. 최초 가입자다. 지금까지 335개월을 부은 것으로 나와 있다. 만 60세까지 385개월을 납부한 뒤 받을 수 있는 연금은 1496000원(현재 가치). 150만원이 채 안되는 셈이다. 앞으로 50개월을 더 부어야 한다.


그리고 만 62세(2022년 4월) 다음 달부터 연금을 지급받는다. 향후 소득과 물가 상승에 따른 미래가치 예상연금월액은 1850000원 이었다. 연금을 받는 시점의 예상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수입은 이것이 전부인데 생활비에도 부족할 터. 수입을 보충해야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아내에게 하는 말이 있다. "내가 70까지는 현역 생활을 할 테니까 큰 걱정을 하지 말라." 물론 내 생각이다. 경제활동 나이를 70으로 잡은 것이다.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모든 여건이 맞아야 가능하다. 무엇보다 건강해야 현역을 유지할 수 있다. 새벽마다 열심히 걷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자생활도 그때까지 했으면 좋겠다. 글쓰기와 취재는 나의 천직이다. 대학 강의도 마찬가지. 영원한 현역을 꿈꾼다고 할까.


얼마 전 기사다. 뉴욕타임스가 식자재 배달사업도 한단다. 생뚱 맞은 소식 같지만 사실이다. 신문사가 유통업에 뛰어든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세계 최고의 권위지다. 왜 그럴까. 돈 되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다. 신문이 사양산업이 된지 오래다. 광고수입도 줄고, 판매수입도 형편 없다. 오히려 버티는게 신기할 정도다.


신문을 보지 않는 것은 전 세계가 비슷한 현상. 우리나라 신문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수익원을 발굴하기가 쉽지 않다. 신문사는 대기업에 비하면 하꼬방 수준. 경영이라고 할 것도 없다. 구멍가게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니 직원 대우도 대기업에 훨씬 못 미친다. 내가 1986년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신문사 월급이 일반 대기업의 2배 정도 됐다. 그래서 친구들의 부러움도 샀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역전됐다. 지금은 대기업과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신문사가 돈을 잘 벌지 못하니 대우를 잘해 줄 수 없다. 그래도 천직이려니 하고 다닌다. 오늘의 나와, 우리 가족을 있게 해준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난 솔직히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벌어놓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장 내일 죽음이 닥친다 해도 무섭지 않다. 마음을 비운 뒤로 생긴 변화다. 그러다보니 아쉬운 것도, 두려운 것도 없다. 다만 건강은 챙긴다. 죽는 날까지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행복한 삶의 첫 번째 요소도 건강이다. 아무리 돈이 많은들 몸이 아프면 소용 없다. 건강해야 돈도 쓸 수 있는 것. 몸이 성하면 무슨 일인들 못하랴.


70까지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내 목표도 70까지 현역으로 뛰는 것. 물론 내 마음대로 되진 않는다. 오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 사람 못지 않은 열정과 건강을 유지한다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나이 먹었다고 뒤로 물러서면 안 된다. 그럼 뒷방 노인네 취급을 받는다. 나이 들수록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몇 달 전의 일이다. 뜻밖의 비보를 들었다. 파이낸셜뉴스에서 모셨던 김성호 전 주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 원래 TBC, 중앙일보 출신. 중앙일보에서 정년퇴직한 뒤 문화일보를 거쳐 파이낸셜뉴스에 오셨었다. 영원한 현역으로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 기자생활만 50년 가까이 하셨다.


우리 논설위원들이 돌아가시기 두 달 전쯤 광화문에 나가 저녁을 함께 했었다. 당시도 굉장히 건강해 보이셨다. 적어도 백수를 누리리라 생각했다. 아들은 없고, 딸만 셋을 두셨다. 가정도 다복했다. 그리고 독실한 크리스찬. 성가대 활동도 열심히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별히 편찮으신 데도 없었다.


왜 돌아가셨는지 궁금하다. 내가 어떻게 될 지는 세상 누구도 모른다.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 을지로 골뱅이 골목에서 만난 '나눔모임' 회원들과도 같은 얘기를 했다. 인생 80이라도 해도 길지 않다. 금세 시간이 지나간다. 살아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늘 할 일을 뒤로 미루면 안 된다. 나의 생활신조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을 중시한다. 내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최선을 다하면 내일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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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로(季路)가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감히 죽음을 묻습니다.” 공자가 답했다. “아직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未知生 焉知死).”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죽음에 ‘훈수’를 뒀다. “사람이 죽음을 지나치게 공포스러워하는 건 삶이 바르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누구나 마주하기 두려운 죽음은 하루하루 삶으로 다가온다. 그건 순리, 만물의 이치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난다. 순리는 마음으로 오롯이 받는 게 지혜다. 순리에 맞서는 자는 발걸음이 무겁다. 가벼워야 멀리 걷는다. 가벼워야 지치지 않는다. 그것 또한 세상의 이치다.




불경은 일종의 철학이다. 단순히 왕생극락(往生極樂)의 종교적 내세관을 넘어선다. 윤회(輪廻)·색(色)·공(空)·연기(緣起)는 생(生)과 사(死), 만남과 이별의 이치를 담는다. 불교에서 시작과 끝은 대척점이 아니다. 그건 하나의 커다란 고리다. 만물은 흐른다. 어느 형상, 어느 본질도 제자리에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인간이 집착하는 색(色)은 결국 모두 공(空)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우주는 공으로만 가득하진 않다. 공은 다시 색으로 형상을 바꾼다. 공과 색은 둘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둘이다. 인간은 부모를 보내고, 자식을 맞는다. 나는 부모의 자식, 자식의 부모다. 만물은 돌고돈다. 대지는 공평하다. 장자(莊子)는 “천도(天道)는 넘침에서 덜어내 부족한 곳을 채운다”고 했다.





불교의 사성제(四聖諦)는 윤회의 고리다. 세상은 고(苦)다.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집(集)은 고(苦)의 뿌리, 색(色)은 잠시 곁에 머무는 형상이다. 돈·명예·권력·인기는 잠깐 유(留)하는 객(客)이다. 오는 객은 반갑게 맞고, 때가 되면 아쉬워도 떠나보내는 게 예(禮)다. 집착을 떨치면 고통도 멸(滅)한다. 큰 깨달음, 즉 도(道)를 걸으면 고통은 가벼워진다. 불교는 도에 이르는 수양법으로  팔정도(八正道)를 제시한다. 석가는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하고(正思惟),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하고(正業), 바르게 천명을 다하고(正命), 바르게 노력하고(正精進), 바른 신념을 갖고(正念), 바르게 마음을 다스리면(正定) 도에 이른다고 했다. 도는 결국 ‘바르게 걷는 길’이다. 고(苦)의 진리→집(集)의 진리→멸(滅)의 진리→도(道)의 진리는 커다란 고리다. 시작과 끝이 맞닿은 윤회다.



 
흐르는 건 강물만이 아니다. 시간도 흐르고, 생각도 흐른다. 흐름을 ‘허무’로 받아들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순리에 마음을 실어 세상을 가볍게 걷고자 함이다. 이마의 주름을 보고 마음에 주름을 만들기보다 더 큰 덕을 베풀 경륜의 지혜를 찾고자 함이다. 인도의 승려 나가르주나는 “욕망은 괴로움의 근본이며 모든 재앙의 뿌리다. 덕이 상처를 입고 몸이 위태로워지는 것은 모두 여기에서 생긴다”고 했다. 포용은 커지고, 아집은 작아지는 게 진짜 연륜이다. 과거에 발목 잡혀 앞길을 제대로 내딛지 못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나이 들었다고 한숨짓는 건 연륜이 세월을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만물은 변하고, 삶은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은 살아갈 날 중 가장 젊은 순간이다. 살아온 날의 후회가 살아갈 날의 꿈을 덮게 하지 말자. 지난 일을 되돌이킬 순 없어도 이 순간 새로 시작해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수는 있다. 그 일이 얼마나 크고 높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바로 서는 일, 넓게 보는 일, 답게 사는 일, 건강한 습관을 들이는 일, 지식을 채우는 일, 관용을 키우는 일…. 둘러보면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은’ 일들이 여기저기서 나를 봐달라고 손짓한다. 퇴계 이황은 죽는 날 아침에도 “매화에 물을 주라”고 했다. 그는 죽음에 초연했고, 삶도 초연했다.




두려움은 짙은 안개다. 시야를 가리고, 길을 잃게 한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적이 된다”고 했다. 삶은 희망과 절망, 두려움과 믿음의 싸움이다. 게리 켈러, 제이 파파산의 ≪원씽≫(The One Thing)에는 두려움과 믿음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어느 저녁, 한 체로키 인디언 장로가 손자에게 사람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다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말했다. “아이야, 그 싸움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두 마리 늑대 사이에서 벌어진단다. 하나는 두려움이지. 놈은 불안과 걱정, 불확실성, 머뭇거림, 주저함, 그리고 무대책을 가지고 다니지. 다른 늑대는 믿음이지. 그 늑대는 차분함과 확신, 자신감, 열정, 단호함, 행동을 데리고 다닌단다.”
그 말을 듣던 손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럼 둘 중 어느 늑대가 이겨요?”
할아버지가 답했다.


“그거야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기지.”


순리는 마음으로 받아라. 지는 게 두려워 피지 않는 꽃은 없다. 두려움보다는 희망에 먹이를 줘라. 세상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언젠가 떠나야 할 삶의 무대다. 무대는 수시로 주연이 바뀐다. 그래서 새롭고, 그래서 설렌다. 인생이 무대에 비유되는 건 아마 그런 이유에서 일 듯싶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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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얼마나 더 살까.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내 나이 57세. 평균 수명으로 볼 때 80은 넘길 듯하다. 최소한 20여년은 남은 셈이다. 그때까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물론 잘 살아야 한다. 그 기준은 주관적이다. 남이 볼때 재미 없어 보여도 자신은 만족할 수 있다. 삶에 관한 한 그다지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자기 스타일대로 잘 살면 된다.





그럼 나는 어떤가. 내가 매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거기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오늘만 열심히 산다. 지금 할 일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하루 하루 열심히 살면 앞날을 걱정할 틈도 없다. 따라서 지루하지도 않다. 삶의 윤활유는 변화다.  나는 다양성을 추구한다. 다시 말해 변화를 즐긴다는 얘기다. 항상 새로움도 맛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 변화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왜 살어" 하는 일이 영 신통치 않을 때 하거나 듣는 말이다.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쓴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런 말을 듣지 말아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매사에 긍정적으로, 진취적으로 살아야 한다. 부정적이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기 쉽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단 의심하고 들어가기 일쑤다. 그래선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마지 못해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초긍정주의자라고 밝힌 바 있다. 내 입에서 노가 나오지 않는 이유다. 도전의식과도 무관치 않다. 해본 다음 결과를 기다린다. 해보지도 않고서 뭔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해봤어" 고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가장 많이 썼던 말이다. 그 결과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대다.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도 해낸다. 내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나에게 불가능은 없다. 내 생활신조이기도 하다. 인간의 능력은 거의 무한대다. 못하는, 안되는 일이 없을 정도다. 노력하면 목표점에 다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면 발전이 없다. 안된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어 그렇다. 나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져보지 않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자신감과 도전정신이다. 자신감이 없으면 지고 들어간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장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도 한 학기 내내 이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은 없다. 다시 말해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안되는 이유는 100가지도 더 댈 수 있다. 따라서 이유를 대는 사람이 싫다. 누구나 어려운 때가 있다. 나도 그랬다. 내색을 안 하니까 가족도, 남들도 몰랐을 뿐이다. 어려움은 혼자 해결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려면 자기가 강해져야 한다. "나 어렵소" 한다고 남이 도와주지 않는다. 책의 출간 시기를 봤다. 2012년에는 1권도 내지 못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다.





2012년 2월 서울신문 사장에 도전하기 위해 사표를 냈다. 그러나 도전은 실패했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부족했던 탓으로 본다. 그리고 7개월 동안 백수생활을 했다. 지인의 광화문 사무실에 나가 TV 등을 보면서 지냈다. 동네 아파트 주민 사이에선 내가 실직한 것 같다고 수군대는 소리도 들렸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놀고 있었으니 말이다. 2012년 9월 들어서야 대경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섰고, 한달 뒤 10월부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으로 일했다. 백수생활을 할 때도 글은 계속 썼다. 그러나 출간은 엄두도 못 냈다. 마음이 편해야 책도 낼 수 있다는 방증이다. 2013년부터 잇따라 4권을 냈고, 지난 2월 10번째 에세이집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얻은 결론이 있다.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 자신감을 갖고 끊임 없이 도전해야 한다. 현재 내가 강의하고 있는 강좌 제목이기도 하다. '자신감과 도전정신'. 나의 좌우명이다.


 작년 2월 재능기부를 한 적이 있다. 취업 카페인 '스펙업'에서 '기자/PD 스터디'를 강의하기 위해 녹화한 것. 인터넷 강의를 시작하게 된 계기다. 모두 10회 분량이다. 1회 분량 당 20분 안팎. 타이틀은 '기자/PD 스터디'이지만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강조했다. 공부는 자기가 하는 것. 누가 팁을 좀 준다고 해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신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래서 강의의 90%를 이 대목에 할애했다.





그럼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자신감을 강조하는 당신은 자신감이 있느냐"고. 그 대답은 확실하다. "있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자신감밖에 없다. 뭐든지 도전한다는 얘기다. 인터넷 강의도 그랬다. 한 번도 안 해 보았지만 강의 요청을 받고 바로 오케이를 했다. 녹화를 하면서 귀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나도 나이로 따지면 현역에서 은퇴할 때쯤 됐다. 그러나 의욕은 더 앞선다. 자신감도 충만하다. 무슨 일을 낼 것도 같다.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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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게 미친게 아니라 꿈꾸기를 포기한 것이 진짜 미친것!
-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 어떻게 제 정신으로 살 수 있겠소?

 

 

 

 

올해로 한국공연 10주년을 맞이해서 주연인 돈키호테,알론조역에 류정한 ,조승우가 더블 케스팅되었습니다.

 

 

 

 

스페인의 지하감옥, 신성모독죄로 감옥에 끌려온 세무사이자 작가인 세르반테스는 자신을 변호하기위해 심복과 그 곳의 죄수들과 함께 자신의 소설‘돈키호테’를 연기한다. 소설속 라만차의 기사라고 불리는 노인 알론조는 기사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어 본인이 라만차의 기사라고 착각한다. 그는 술집주인에게 성주라며 자신에게 기사작위를 내려달라고 하기도하고, 풍차를 보고 괴물이라 달려들기도 하며 기행을 일삼는다.

 

또 여관하녀인 알돈자에게 ‘둘시네아’(사랑스런여인 이라는 뜻)라고 부르며 고귀한 여인으로 대한다. 그런 알론조노인을 처음에는 미친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신념에 차있고 한결같은 그의 태도에 알돈자는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을 비웃던 6명 노새끌이들과 한판 싸움을 하게 된 기사. 승리를 거두지만 뒤이어 알돈자는 그들에게 처참한 복수를 당하게 된다.

 

그 후 기사 돈키호테는 절망한 알돈자의 눈물을 보게 되지만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노래한다.  그가 미쳤다고 생각한 그의 조카와 약혼자는 그의 허상을 깨려고 거울의 기사를 보내 늙고 초라한 실상을 알게 하려한다. 쓰러지는 돈키호테,,,,, 그러나 잠에서 깨어난 그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것이 미친게 아니라 꿈꾸기를 포기한 것이 진짜 미친짓!이라는 그(돈키호테)는 늙고 힘없는 노인이지만 정의를 위해 싸우고 사랑을 믿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꿈을 향해 돌진하는 라만차의 기사입니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의 노래들은 놀라울 정도로 이 작품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The Impossible dream(이룰 수 없는 꿈)은 호소력 넘치는 곡으로서 엘비스 프레슬리,프랭크 시내트라,플라시도 도밍고등 세계적인 가수들이 부르며 리메이크된 명곡입니다.

 

 

 

 

1부 끝부분에서 돈키호테가 사랑하는 여인 둘시네아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나는 시야가 뿌옇게 되었습니다. 꿈을 잃어버린 이 세상에서 힘없는 노인에 불과한 돈키호테가 웅변하는 그 꿈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늙고 약한 알론조 노인이 스스로를 정의를 구하는 돈키호테라 믿고, 그런 그로 인해 누군가 천한 하녀 알돈자가 아닌 ‘귀한 여인 둘시네아’라는 꿈이 생긴다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은 그런 미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사진출처 : 월간 더 뮤지컬)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꿈을 향해 나가는 주인공 알론조(돈키호테)를 통해 현실은 힘들지만 꿈과 이상을 향해 나아가야한다는 삶의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명작의 깊이와 무게를 또 한번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깨알같이 터지는 유머 때문에 눈물과 웃음과 감동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었답니다.

 

저는 류정한 돈키호테로 보았는데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듣는 음악(넘버)은 원작이 주는 감동를 배가시켰습니다. 또 진지함과 코믹함을 넘나드는  류정한 배우의 자연스런 연기는 긴 공연시간(170분)을 짧게 느껴지게 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좌충우돌하면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를 보면서 가슴벅찬 감동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2015.11.9.까지 신도림역에 위치한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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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도 저는 바쁜 직장업무를 끝내고 늦은 귀가를 했습니다.

 제 나이 서른이 훌쩍 넘어 시작한 객지생활도 벌써 여러 해를 거쳐서 이제는 조금씩 조금씩 이력이 날만도 했었지만, 혼자 대문을 따고 들어오는 마음은 언제나 썰렁함 그 자체였습니다.  조용히 라디오를 켜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아! 네... 전화가 잘못 걸려 왔네요.”

 피곤한 저는 얼른 수화기를 내려놓고 씻을 준비를 하는데 다시금 전화벨이 울리는 것입니다.

  

 “여보세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조금 전에 잘못 수신되었던 그 사람이었고 저는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 사람은 “저-저- 잠깐만요!” 하고 전화 끊기를 만류하였습니다.

 

“아니 왜 그러세요?”

“저 사실은 그쪽에서 괜찮으시다면 잠시 통화를 좀 하고 싶은데요~.”

 

 조금은 의아하고 이상한 생각도 들어서 지금은 안된다고 거절했지만 나직하게 끌어들이는 그 사람의 음성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 것 같은 야릇한 느낌이 드는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름 모를 사람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통화했던지 수화기마저 열이 올라서 볼이 뜨겁게 달아올랐고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까지 옛날 추억이야기며 자신들이 살아가는 삶의 지표 등을 함께 공유하였습니다.

 새벽 2시가 다 되어서도 누가 먼저 전화를 끊지 못하고 시간을 끌다가 결국에는 제가 먼저 3시까지를 단정하고 겨우 통화를 끝내고 어떻게 잠을 잤는지도 모릅니다.

 

 사랑!  어쩌면 이러한 사소한 것들이 바로 사랑의 힘이라는 것이었을까요?  지금까지는 힘들고 지루했던 업무들이 일사천리로 빠르게 흘러갔으며 하루하루가 너무 짧아서 24시간을 두 배로 나누고 싶을 정도로 제 삶이 변화해갔습니다.

 

 인연!  지금까지 저는 제가 사랑한 첫사랑은 있었지만, 저를 이토록 열정적으로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은 처음으로 알았기에 너무나 행복함을 느끼는 나날이 연속되었습니다. 

 매일 만나고 또 만나서 대화해도 시간이 부족하고 아쉬움이 따라다니기를, 1년여 세월을 서로 애틋해하며 늘 함께 했지만, 매 순간 이별을 감행하는 순간만은 너무 힘들어서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그 해 어느 가을날을 선택하여 저희는 조용한 산사를 찾아서 두 사람만의 굳은 ‘언약식’으로 결혼식을 대신하였으며, 맨 처음 그날처럼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우린 “무”에서 주윗분들의 아무런 도움 하나 없이 시작하여, 진심으로 앞만 바라보며 부지런히 열정적으로 살아왔습니다.

 

 항상 바라만 보아도 멋있는 남편의 모습은 아직 단 한 번도 초심을 잃은 적이 없기에 더욱 신뢰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답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고 그날의 그 소중한 인연을 되새겨보며 저는 이렇게 글월로서 답례하고 싶습니다.

 

 "자기야! 사랑해! 그리고 매사에 늘 고맙고 감사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당신이 제 곁에 든든한 버팀목으로 존재해주어서 우리 가정이 더욱 따뜻하고,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또, 내일도! 저는요, 늘 당신께 감사하며 당신을 위해 당신의 아내로 살겠습니다. 진심으로 당신만을 사랑하고 또 사랑해요!"

 

 

월간 건강보험 독자에세이 중

글  / 권금옥 서울시 중구 중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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