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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왜 나만 O형일까?, 집을 나왔다....

 

 

 

“너는 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외골수냐? 그렇게 말 듣기 싫으면 산에 올라가서 너 혼자 집 짓고 너 혼자 살아라!”

 

엄마한테서 듣는 이런 말도 한두 번이지, 한창 예민한 사춘기 때,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엄마의 ‘산에 올라가 혼자 살라’는 말은 겉으로는 내색을 안 했지만 속으로는 큰 충격이었다.

 

그런 어느 날, 학교에서 혈액형 검사를 했는데 내가 O형이라는 것이다. 우리 식구 중 O형은 나 혼자뿐이었다. 아빠는 A형, 엄마는 B형, 동생들은 A형이었으므로 엄마가 날마다 노래를 부르던 “너는 누굴 닮았기에….” 하는 말의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흥! 그렇군. 진작 진실을 말해 주었으면 지금까지 내가 이 집에서 살지도 않았지.  언제까지 날 속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야? 그러니까 만날 나한테 산에 올라가 혼자 살아라, 누굴 닮았냐고 하면서 난리를 쳤지.’

 

집을 나갔다.....

 

 더 이상 내 가족, 내 집이 아니었기에 미련없이 책가방만 들고 나왔는데 막상 갈 곳이 없었다.  이런 내 비극적인 현실을 친구한테 말하면 받아줄까?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뾰족한 묘수가 없었다.

 

 갈 곳이 없다는 게, 어디 한 군데 내 몸을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게 더욱 슬펐고, 세상의 모든 슬픔을 짊어진 가엾은 한 소녀의 얼굴을 하고선 인근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을 때였다.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다가오는데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기에 겁이 버럭 났다. 어디로 도망갈까? 막 걸어가면 더 이상해 보여 쫓아올 수도 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다가와서,

 

“너 집 나왔냐? 폼이 딱 그런데.” 하고 말을 붙이는데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갈 것만 같아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야, 집 나오면 개고생이야. 당장 들어가라.” 하며 좋은 말로 타일러 주자 그때야 안심하고 순진하게도 오늘 있었던 일들을 주저리 읊어댔다.

 

“으하하하하, 얘, 아직 혈액형 안 배웠나 봐. 야, 이 바보야! A형, B형 사이에서는 당연히 O형이 나올 수 있는 거야.

 네 부모님이 O형을 가진 A형 B형이기 때문에. 정말 어이없다. 당장 들어가라!” 하며 웃는 오빠들 말에, 진짜 부모라는 말에 안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아니, 너는 어디 갔다 오냐? 얼른 씻고 밥 먹어라. 네가 좋아하는 고등어조림 했으니까.” 하는 엄마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중에서야 이 모든 상황들이 내 유별난 사춘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지금 중1인 아들이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눈치만 보고 있는데 오늘 저녁에는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서 아들에게 혈액형의 법칙을 설명해 줘야겠다.

 

 

 

글 / 박남수 경기도 시흥시 매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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