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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TV&영화 속 건강

황정음은 뇌동맥류 앞에서 기도를 한다

 

 

          병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안방극장에 잇달아 등장,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의학드라마 전성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얼마전 종영된  TV '골든타임'(최희라 극본, 권석장 연출)은 단연

          인기를 끌었다. 한 지방도시의 병원에서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극의 흡인

          력이 매우 뛰어나다. 박진감 있는 이야기 속에 휴머니티를 담고 있어서 감동의 울림 또한 깊고 넓었다.

 

 

 

 

 

배우들에게 전성기를 맞게 한 시간 '골든타임'

 

주인공 남녀 의사 역을 맡은 이선균과 황정음의 매력도 장점이지만, 어떤 중증 환자라도 살려보고자 최선을 다하는 중견 의사 역의 이성민이 보여주는 열정이 가슴에 와 닿는다. 연극배우 출신으로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에서 조연에 머물렀던 이성민이 ‘골든타임’을 통해 주연으로 부상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의학에서 ‘골든타임’은 특정 시간 이내에 병원에서 적극적인 치료를 받으면 예후가 좋으나, 그 시간을 넘기면 예후가 급속히 악화되고 치료 효과도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즉 중증 환자가 골든타임 내에 병원 치료를 받으면 상태가 호전될 수 있으나 그 시간을 넘기면 위험에 빠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심각한 뜻의 ‘골든타임’이지만 배우 이성민에게는 전성기를 맞게 한 시간으로 여겨질 수 있을 듯싶다. 드라마 ‘골든타임’은 이성민 뿐 만 아니라 초로의 배우 장용의 열연으로 특별하게 빛이 난다. 올해 67세의 장용은 키가 작은데다가 얼굴도 미남형이 아니어서인지 젊은 시절엔 배우로서 이름을 크게 떨치지 못했다. 중년 이후에 중후한 역할을 맡으면서 내공을 발휘했고, 서서히 시청자들의 눈에 익숙해지면서 연기 잘하는 배우의 대명사가 됐다.

 

 

 

극중 강대제를 쓰러기제 한 '뇌동맥류'

 

장용은 ‘골든타임’에서 병원 이사장인 강대제 역할을 맡았다. 주인공 재인(황정음 분)의 할아버지다. 재인은 강대제의 손녀딸이라는 것을 주변 의사들에게 알리지 않는 채 병원에서 인턴의사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강대제는 겉보기에 매우 건강해보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응급 수술을 받고 의식 불명 상태가 됐다. 아내인 박금녀(선우용녀 분)와 이혼 소송 중이었던 그는 이혼을 위해 가정법원을 다녀온 날, 집에 돌아와 혼자 술을 마시다가 가슴을 움켜쥔다. 마침 강대제의 비서가 집을 방문했다가 거실에 주저앉아 있는 그를 발견했다. 대제는 “망치로 때리는 것처럼 머리가 아프다”며 극심한 두통을 호소했고, 응급실로 가던 중 의식을 잃었다.

 

병원 의료진이 강대제의 상태를 긴급하게 점검한 결과 ‘뇌동맥류’가 발견됐다. 다행히 혈관이 터지지 않아 머리를 여는 큰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였다. 신경외과 과장 김호영(김형일 분)은 다급히 코일링 시술(대퇴동맥을 통해 코일을 삽입해 동맥류를 폐쇄하여 뇌혈류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시술)을 하기 시작했다. 수술을 무사히 끝내고 마무리 하려는 순간 갑자기 강대제의 혈압이 오르기 시작했다. 우려했던 뇌혈관 출혈이 발생한 것이다. 김호영은 강대제를 긴급히 수술실로 옮겨 머리를 열고 수술을 하기 시작했다. 버지의 입원 소식을 듣고 달려온 재인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사장의 손녀라는 사실을 숨겨야 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슬퍼할 수도 없었다. 저도 모르게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할아버지의 침대에 다가갔다가 레지던트 조동미(신동미 분)에게 “이사장님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며 꾸중을 듣기도 했다. 눈이 빨개지도록 눈물을 참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강대제가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하고 의식 불명 상태로 병원 침대에 누워 있게 되자, 손녀인 재인이 이사장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대제의 아들은 일찍 죽고 손녀만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극중 강대제를 쓰러지게 한 ‘뇌동맥류’는 뇌의 동맥이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질환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뇌혈관의 내측을 이루고 있는 내탄력층과 중막이 손상되고 결손되면서 혈관벽이 부풀어 올라 새로운 혈관 내 공간을 형성하는 경우다. 의학계에서는 머릿속의 '시한폭탄'이라고 부른다. 뇌동맥류가 터지면 약 30%가 뇌출혈과 동시에 사망하기 때문이다. 

 

 

 

 '뇌동맥류' 파열, 예방이 최선

 

뇌동맥류 환자는 과거에 나이 든 사람으로 국한됐지만, 최근에 40대 이하에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하고 한다. 젊은 성인병 환자가 늘고, 사회·경제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아진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뇌동맥류가 파열되면 대부분의 환자는 극중 강대제가 호소한 것처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극심한 두통과 함께 구토 증세를 보인다. 뇌동맥을 감싼 뇌지주막 아래에서 출혈이 진행돼 순간적으로 뇌압이 상승하면서 뇌신경을 손상시키는 탓이다. 

 

통계에 의하면, 뇌동맥류 파열은 겨울과 야외활동이 늘어나는 초봄에 많다. 갑자기 혈압이 오르는 상황, 즉 크게 화를 내거나, 성관계를 할 때, 또 화장실에서 변을 보거나 사우나에서 땀을 뺄 때, 무거운 물건을 들 때 쉽게 파열이 온다. 따라서 누구나 갑자기 심한 두통이 생기면 가까운 병원을 찾아 CT촬영 등 응급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뇌동맥류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지만, 뇌혈관이 혈류에 계속 압력을 받게 되어 뇌동맥류가 후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가설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느 병이나 마찬가지로 적절한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으로 뇌혈관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극중 강대제의 경우가 암시하는 것처럼 과로와 스트레스는 역시 좋지 않다.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지만, 고혈압이나 흡연 등이 관련성이 있다는 의학계 보고가 있다. 따라서 금연·금주는 물론 정상 혈압을 유지하기 위한 식단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의들의 조언이다. 고혈압 예방을 위해 1일 염분 섭취량을 10g 이내로 제한하며, 혈압을 높이는 과음도 피해야 한다. 혈압을 낮추는 칼륨이 풍부한 야채와 과일 섭취량을 늘려야 한다. 콜레스테롤이 많은 육류 대신 두부나 생선 위주의 식사도 예방에 도움이 된다. 

 

동맥류 파열 전이나 직후에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골든타임’에서 보여준 것처럼, 요즘엔 머리를 직접 열어 수술하지 않고 꽈리내부를 백금 코일로 채워 피가 누출되지 못하게 하는 색전술이 확산되고 있다. 이 밖에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줄일 수 있는 최신 치료법이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이 뇌동맥류로 쓰러졌다고 해도 낙망에만 사로잡힐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골든타임’의 재인이 할아버지인 강대제의 병상에 자주 들러서 빨리 나으시라며 간절한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 함께 기도를 올리고 싶어진다. 재인 역할을 하는 황정음의 연기가 뛰어나서만은 아닐 것이다. 환자가 되거나, 환자의 가족이 되는 경험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글 / 문화일보 장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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