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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라이너 마리아 릴케, 황수관 쓰러트린 패혈증 이기려면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만 스물아홉에 세상을 떠난 시인 윤동주가 쓴 ‘별 헤는 밤’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시를 통해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이름을 처음 접했다. 독일의 시인 릴케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호명 덕분에 뭔가 아련한 이름으로 다가온다. 

 

릴케는 시 뿐 만 아니라 소설, 산문, 희곡, 예술론까지 썼다. 유럽 문단의 거장이었던 그는 만 51세 때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만다. 당시에 사랑하는 여인에게 장미를 꺾어주려다 죽음에 이르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떠돌았다.

 

다음과 같은 묘비병은 후세인들로 하여금 그 루머를 믿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오, 장미여! 

순수한 모순의 꽃, 

꽃잎과 꽃잎은 

여러 겹으로 겹쳐져 

눈꺼풀 같구나.

이제는 누구의 꿈도 아닌 

단단한 잠을 꼭 싸고 있구나

그 가엾음이여! ’  

 

릴케를 연구한 일부 학자들은 그가 백혈병에 걸려 죽었다고 했으나, 그가 신비롭고 특별한 시인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장미 가시에 찔려 패혈증(Sepsis)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굳게 믿었다.

 

 

 

유명인들의 죽음을 통해 새삼스레 회자되는 '패혈증'

 

릴케의 죽음 때문에 20세기 초 유럽에서 유명해진 패혈증. 이 병을 우리나라의 옛 의사들은 주황(朱黃)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주황은 각종 감염으로 인한 염증이 피를 통해 전신으로 퍼지는 질병이다. 몸의 저항력이 약해지면 각종 장기가 세균에 감염되고 이로 인해 주황이 발병하게 된다. 

 

최근 방영된 방송 사극 ‘마의’에서 주인공 광현(조승우 분)이 세자의 주황을 치료함으로써 뛰어난 의술 실력을 과시했다. 극의 시대적 배경인 조선시대 의사들은 주황을 불치병으로 여겼다. 그런 병을 치료해낸 의사가 얼마나 칭송을 받을 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주황, 즉 패혈증은 올해 들어 국내 매스컴을 통해 새삼스럽게 회자됐다.  웃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건강 전도사’라는 별칭을 얻었던 황수관 박사가 패혈증으로 급작스럽게 사망했기 때문이다. 황 박사의 죽음을 계기로 근년에 세상을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유명인들이 패혈증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조명을 받았다.

 

매스컴에서 관련 기사를 쏟아낸 덕분에 패혈증이 한자 이름(敗血症) 그대로 피가 부패해 생긴 질병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졌다. 혹자는 “패혈증을 ‘폐혈증’인 줄 알고 폐와 관련된 질환이라고만 알고 있었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패혈증은 세균, 바이러스 등의 미생물이 우리 몸으로 들어와 염증을 일으키고 혈관을 통해 온몸으로 퍼진 상황을 말한다. 썩은 피가 온몸으로 퍼진다는 것이다. 황수관 박사는 간에 있는 고름집에서 시작된 염증이 온 몸으로 퍼져 혈액이 많이 가는 폐나 신장 등 주요 장기를 손상시켜 급작스럽게 죽음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패혈증은 폐렴을 비롯한 어떤 감염증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새로 생긴 병이 아닌데도 최근에 부각된 것은 패혈증의 조기 진단 및 적절한 초동 치료가 필요하다고 여겨서 의료진이 이 진단명을 많이 사용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명인들의 죽음이 패혈증과 관련됐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 병이 어떤 것이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된 것이다.

 

 

 

패혈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드라마 ‘마의’에서 주황을 불치병으로 인식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패혈증은 심각한 병이다. 하지만 주요 장기의 기능이 나빠지기 전에 진단해서 적절하게 치료하면 치유가 가능한 병이다.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의사 중에 패혈증 전문 의료진이 많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의학계를 중심으로 일어난 것은 그 때문이다.

 

패혈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조기에 진단,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만성질환이 있거나 면역 기능이 떨어진 노약자들이 열이 나면서 호흡수가 증가하면 의료기관을 빨리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식이 떨어지거나 저혈압 증세를 보일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질환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패혈증을 방지하기 위해선 평소에 면역력이 떨어지기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맞은 음식을 통해 체내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줘야 한다. 황사가 심한 봄철에는 몸 안에 들어온 중금속 등 유해물질이 보다 잘 배출될 수 있도록 물을 자주 마시는 게 좋다. 무엇보다 수면을 알맞게 취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며,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스스로의 일상 리듬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듣는 건강 금언이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무시했다가는 면역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건강전도사 황수관 박사가 마지막까지 남기고 간 감동

 

다소 장황해지는 폐를 무릅쓰고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난 황수관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그가 타계하기 직전에 자주 출연했던 한 종합편성채널의 토크쇼 프로그램을 즐겨 봤다. 쇼 중간에 나오는 그의 강연을 듣고 싶어서였다. 들어본 사람은 알지만, 그의 강연은 유머와 휴머니티를 함께 갖추고 있다. 그의 유창하고도 유머러스한 언변에 웃음 짓다가 감동적인 대목에서는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듣는 이를 웃기고 울리는 그의 강연이 지향하는 바는 ‘늘 따뜻한 마음으로 살라’ 였다. 특히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가 살아 있을 때 효도를 다하라는 것이 그의 메시지였다. 그는 그 메시지를 유머를 섞은 이야기에 담았다. 그가 특유의 해학적인 어조로 들려준 이야기 한 토막을 되살려본다.

 

83세된 아버지가 53세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애야, 저 마당에 있는 게 뭐냐?”
 “ 네, 아버지, 까치입니다.”
 건망증이 있는 아버지는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물었습니다.
 “저게 뭐냐?”
 “네 까치입니다.”
 아버지가 세 번째 묻자 아들은 그만 역정을 내고 맙니다.
 “방금 제가 까치라고 했잖아요.”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가 일기장을 꺼내 들고 왔습니다. 아들은 그 일기장을 통해 아버지가 32세 때 쓴 일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세 살이 된 아들이 마당의 새를 가리키며 물었다.
 “조게 뭐야?”
 “아들아, 저 새는 까치란다.”
 아들은 또 물었다.
 “조게 뭐야?”

 아들은 그렇게 23번을 연달아 물었다. 나는 23번을 까치라고 답하며, 그렇게 묻는 아들이 너무 예뻐서 꼭 껴안아줬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 준 황수관 박사는 자신의 아버지가 시골의 가난한 농부였으나 자식들에게 꿈을 심어준 훌륭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그를 꼭 껴안아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수관아, 열심히 공부해라. 속옷을 팔아서라도 공부시켜 줄 게.”

 

그는 아버지의 그런 격려에 힘입어 불굴의 의지로 학업에 정진했고, 마침내 서울의 명문대 강단에 서는 교수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여기며 늘 웃으며 살자고 강조했던 황 박사는 타계하면서 패혈증이라는 병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으로 ‘건강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마쳤다. 그는 떠났지만,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던 그의 유지는 여전히 살아서 많은 이의 가슴을 울린다. 

 

그가 1991년에 작성해 지갑에 넣고 다녔다는 유언장은 죽음을 아름답게 맞는 자세를 가르쳐준다.  ‘나의 모든 장기는 기증하고, 시신은 후학들의 연구를 위해 활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 장재선 문화일보 기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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