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젊은이들의 영역이라고 인식되던 영화연출에 거침없이 뛰어든 어르신들이 있다. 그런데 단지 뛰어들었다고 하기엔 살짝 아쉬워진다.  각본, 연출, 촬영에 이르기까지 일인다역을 하는 열혈 시네마실버들이기 때문이다. 영화연출과 함께 즐거운 노년을 보내는 어르신들을 만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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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실버라 불러다오


  안국동 서울노인복지센터 3층의 동아리방. 2시 30분에 시작되는 영상미디어반의 수업이 시작되려면 조금 남은 시간이지만, 어르신들은 벌써 자리에 앉아 있다. 지난 자치활동에서 정리한 시나리오 작업 가운데 몇 가지 추가할 부분이 있어서다. 어르신들의 논의가 끝날 무렵, 오늘 수업을 이끌어줄 문정현 선생님이 동아리방에 들어선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작성한 시나리오를 갖고 콘티를 짜볼 거예요. 현장에 나가서 영화촬영을 할 때 컷을 어떻게 구성할 지 콘티에 미리 그림을 그려보는 작업이에요.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자 어르신들이 나눠준 콘티지에 머리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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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나다>라는 제목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마친 어르신들이 컴퓨터 교육중두노인이 서로를 알아보는 장면을 어떤 식으로 구성할지를 상의한다.


  “두 사람을 한 컷에 같이 넣는 게 좋을까? 아니면 한 사람씩 넣는 게 좋을까?”


  “따로 넣는 게 좋지. 그래야 60년 만에 만나는 주인공의 반가움이 절절하게 와닿을 거 아냐?”


  눈을 가리고 대화 소리만 듣는다면 흡사 영화 전공자들의 대화처럼 느껴질 만큼 어르신들의 대화는 진지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창작의 열의가 오른 어르신들, 목소리에 활기가 더해진다. 영화에 대한 어르신들의 열기에 동화된 문정현 선생님이 현장감 있는 콘티를 만들기 위한 설명을 곁들인다.


  “60년 만에 어린 시절의 친구를 만난 주인공의 반가움을 표현하려면 카메라가 여기에 있다가 점점 카메라가 주인공쪽으로  다가가는 게 좋겠죠. 카메라 워크를 통해 주인공의 심리나 극의 분위기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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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워크를 알려주는 문정현 선생님의 설명에 어르신들의 눈이 반짝인다.


  직접 만든 영화가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지금 동아리방에서 진행되는 영상미디어반의 수업은 서울노인복지센터 내 탑골 문화예술학교 영상미디어반의 수업이다. 일년 과정으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지난 학기에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출하였다.


 다큐멘터리 영화 연출을 통해 영화연출의 기초를 닦은 어르신들이 이번 학기에는 극영화를 연출해 보기로 하였다. 지금은 극영화 연출의 초반부인 기획단계. 하지만 영화연출의 재미에 푹 빠진 어르신들이라 지금 영화연출의 분위기는 한껏 물이 오른 상태다.


  “배우겠다는 열의와 한번 해보겠다는 어르신들의 열의가 대단해요. 저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니까요. 공동작업으로 진행되니까 혹시 작업을 하면서 의견충돌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합리적으로 의견조율을 하시면서 진행하고 있어요.”

영상미디어반을 담당하는 박희진 사회복지사의 설명이다.


 이처럼 영상미디어반의 수업이 활기차게 진행되는 건 다음 주에 있는 제2회 서울노인영화제의 역할도 한몫을 하였다. 한 번 영화연출을 배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만든 영화가 영화제에서 상영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어르신들의 창작열에 불을 지폈다.


  그래서 지난 학기 다큐멘터리 영화연출에서 빼어난 실력을 보였던 최금철 어르신의 <도심 속의 두 얼굴>과 장희성 어르신의 <서울>, 최규종 어르신의 <청계천을 찾는 사람들>은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작으로 결정되었다.
 
 

  최규종 어르신의 <청계천을 찾는 사람들>은 제목 그대로 청계천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이다.


  “원래 처음의 의도는 청계천을 찾는 사람들을 통해 청계천의 역사 이야기를 하려는 거였어. 그런데 청계천에 나오는 사람들이 거의 젊은 사람들이더라구. 젊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거나 나들이를 하러 나오는 거라서 청계천의 역사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청계천의 건강한 이야기는 담긴 거 같아.”


  최규종 어르신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한 반에 15명의 인원이 두 그룹으로 나뉘어 공동작업을 하는 어르신들의 영화 연출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점에서 진솔하면서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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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에 들어온 Coming Soon의 불빛


  “영화는 나의 이야기,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잖아. 내가 아는 것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게 매력적이야. 그래서 영화의  주제도 우리가 생각하는, 바라는 이야기를 담았지.”


  아직 일흔다섯 밖에 안 됐다는 최규종 어르신은 생각도, 말씀도 젊다.  웃는 얼굴이 고운 민정순 어르신은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얼굴이 더욱 고와진다.


   “예전부터 영화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 했지. 그러다가 이런 수업이 있다길래 참여하게 됐는데, 아주 꿈만 같아. 서로 상의할 것도 많고 일정도 바쁘지만 하나도 힘든 걸 모르겠어.”


  월요일 자치활동 시간에 지난 시간에 배운 것을 토대로 영화연출 작업을 진행하고, 목요일이면 수업을 통해 다시 다음 작업을 배우는 숨가쁜 일정이지만, 해보겠다는 열의 앞에‘고됨’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해보니까 영화라는 게 참 재미있더라구. 아주 재미있어. 한번 영화에 대한 이야기만 시작되면 시간 가는 걸 모르겠어. 그리고 포토샵이나 카메라 사용법 등 많은 걸 배우게 되니까 심신에 약이 되는 것 같아.”


 재미의 즐거움에 동화된 까닭일까?


 일흔네 살의 박상희 어르신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인다. 그런데 젊어 보이는 건 박상희 어르신 뿐만이 아니다. 영상미디어 반에 모여있는 어르신들 모두 나이보다 몇 살은 젊어보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할 뿐이라며 기꺼이‘시네마 실버’가 된 어르신들, 그들이 만들어가는 영화에 Coming Soon의 불빛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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