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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포항 지진 이후, 정신적 후유증을 겪고 있지 않은지 주변을 둘러보세요




국내 관측 이래 두 번째로 큰 규모로 기록된 포항 지진이 발생한 지 어느덧 3주가 지났다. 하지만 지진을 직접 겪은 포항 시민들은 물론, 국내 곳곳에서 크고 작게 지진을 느꼈던 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지진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폭력이나 전쟁, 교통사고나 화재 등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을 겪거나 목격한 사람들은 그 상황이 끝난 뒤에도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가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상태가 만성적인 병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앞으로 보름 동안이 중요하다. 대형 재해나 사고를 직ㆍ간접적으로 경험한 다음 한 달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이후의 정신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진처럼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를 보고 들은 직후 평소보다 걱정이 많아지거나 불안감, 공포심 등이 커지는 것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심리적 반응이다. 


예를 들어 작은 일에도 긴장하거나 쉽게 놀라게 되고, 자주 화가 나거나 짜증을 내게 되기도 한다. 이유 없이 혼란스럽고 멍해지며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사람도 적지 않다. 머리가 아프거나 소화가 잘 안 되고, 어지럽거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등의 임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의학적으로는 이런 증상들을 비정상적인 상황을 경험한 사람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정상적인 스트레스 반응으로 본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울 만큼 증상이 심하다면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다. 이런 경우엔 ‘급성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재해나 사고를 겪은 이후 발생한 정상적인 스트레스 반응은 대부분 약 한 달이 지나면 회복되기 시작한다. 


초기에 경험한 큰 정신적 충격에서 차츰 벗어나 지진과 관련된 일들을 과거 기억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재해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오랫동안 방치하면 자칫 증상이 회복되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하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발전할 위험이 있다. 


이를테면 재해나 사고 당시의 기억이 계속 떠오르거나 그와 관련된 꿈을 지속해서 꾸게 되는 식이다. 이는 당사자에게 비슷한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는 효과를 줘 스트레스 증상을 악화시킨다. 


반대로 자신이 겪은 재해나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회피하거나 그 장소에 가기를 꺼리거나 아예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또는 불면증이나 짜증이 점점 심해지거나, 집중력이 크게 떨어지거나, 별 것 아닌 일에도 자주 깜짝깜짝 놀라는 증상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더 심할 때는 환청이 들리거나 우울증에 빠지거나 발작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학계에는 급성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한 달 넘게 계속되는 경우에는 그 중 약 30%만 완전히 회복되고, 약 10%는 증상이 나아지지 않거나 악화되며, 나머지는 크고 작은 증상을 계속해서 경험하게 된다는 보고도 있다. 


그래서 지진 후 약 보름이 지난 지금, 가족이나 지인 중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 같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지지 않도록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다 좋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다.



지진 후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이들을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조치는 편안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당사자와 함께 되도록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의 경험과 생각에 공감하면서 들어주는 게 좋다. 이야기할 때는 눈을 맞추면서 평소보다 천천히 말한다.


떠올리기 싫은 경험을 무리하게 말하라고 다그치기보다 당사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며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재해를 직접 겪은 사람들끼리 서로 자주 연락해 대화를 나누며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털어놓는 것도 도움이 된다. 


술이나 담배, 약은 일시적으로 괴로움을 덜어줄지 모르지만, 의존도가 높아지면 또 다른 병을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지진을 처음 겪은 아이들에게는 주변 어른들이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이를 절대로 혼자 두지 말고, 자주 안아주거나 쓰다듬어줘야 한다. 


아이가 자꾸 말을 듣지 않거나 지나치게 의지하려고 하거나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재해 후 나타나는 스트레스 반응일 수 있다. 따라서 무조건 야단치지 말고 일단 받아주거나 부드럽게 타이르는 편이 낫다.


지진처럼 큰 자연재해를 경험했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스트레스 반응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기는 건 아니다. 개인의 성격이나 건강 상태 등에 따라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구체적인 증상 역시 개인별로 천차만별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사람보다는 평소 생각과 걱정이 많고 성격이 예민한 사람들이 큰 재해를 경험한 뒤 스트레스 반응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도움: 이병철 한림대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최수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보건복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