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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불만 가득한 나를 변화시킨 100일의 유예기간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로 진학을 하면서 나는 세상이 싫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이 드디어 내 목을 죄는구나 싶은 마음에 부모님도 싫고, 담임을 맡은 부기 선생님도 너무 싫었다.

  가출, 입학한 지 사흘 만에 나는 혼자서 가출하기 위한 가방을 꾸렸고, 학교에 가는 척 하면서 학교
  와는 반대 방향으
로 가는 버스를 탔다. 드디어 넓은 세상으로 떠난다는 비장함으로 내 눈은 반짝였
  지만, 그 반짝임도 얼마가지 못했다.

 

집에서 40킬로 정도 떨어진 길을 버스가 달린 때쯤 나는 극심한 공포감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목적했던 도시까지 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내리고야 말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갈 일이 막막했다. 내 주머니에 든 돈이 집으로 돌아갈 차비로는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별수 없이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버스 정류장의 사장님을 바꾸라고 말씀하신 다음, 내게 학교까지 오는 버스를 타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황감한 마음에 선생님이 시키신 대로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의외로 선생님께서 나와 계신 것이 아닌가? 
나는 사지에서 신을 만난 것 같이 눈물이 먼저 나왔다.

"봐라. 이렇게 눈물이 많은 것이 험한 세상에서 어찌 산다고 집을 나서냐?"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선생님의 가슴에 안겨 엉엉 울기만 했다. 선생임께서는 나를 데리고 근처 빵집에서 빵을 사주셨고 나는 왜 실업고가 싫은지를 주절주절 말했다


"졸업하면 고작해야 사무실에서 경리를 보게 될 것이고, 그저 그런 남자와 결혼해서 그냥 살겠죠, 전 그렇게 삶의 낙오자로 살기 싫어요. 대학을 나와서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말하는 나를 바라보시더니 말씀하셨다.
 "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 네가 미래에 대한 설계를 어떻게 하면서 사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지는 건데 실업계라고 미리 그렇게 겁먹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그 말씀에도 불고하고 흑흑거리며 또 때답을 했다


"그래도 대학을 나오면 선택권이 넓어지잖아요? 그리고 대학을 가려면 인문계를 가야 하는 데요?"
고집을 피우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나를 데리고 선생님께서는 두 시간에 걸쳐 나를 설득하셨다.
 
"너! 가출하면 정학감인 거 알아몰라? 앞으로 백일 동안 널 지켜볼 거야. 백일 동안 열심히 공부해라. 그동안 주산은 4급. 부기는 3급, 한글타자도 4급을 따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넌 유기정학이야." 
선생님의 강요와 설득 덕분에 이튿날부터 나는 열심히 공부를 했다.

덕분에 학교 대표로 부기와 주산 대회 등 상업과묵 대회를 휩쓸고, 정학도 면하게 되자, 선생님께서는 내게 독서를 권하셨다. 나는 선생님 덕분에 도서부장이 되어 도서실 내의 모든 책을 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2학년 2학기 때는 취업을 위한 자격증을 모두 따놓고 느긋하게 대학입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인문계 아이들이 '대학'만을 목표로 할 때, 나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었던 셈이다.
그 결과 나는 취업을 먼저하고 늦게나마 대학을 졸업했고, 지금은 나름대로의 위치를 구축하여 열심히 삶을 살고 있다.

타자를 배울 수 있었던 실업계를 나온 덕분에 컴퓨터를 배운 속도도 빨라 컴퓨터 강사로도 일할 수 있었으며 각종 컴퓨터 관련 대회에도 자주 출전하여 수상한 경험도 있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은 것이 보탬이 되어 쾌 긴 분량의 글을 쓸 능력도 생겼다. 그것은 바로 내 삶이 풍요해지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징을 받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되어주고 있는 셈이다.


만약 그때 선생님께서 나를 야단치며 문제아로 보셨다면 나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리고 보면 선생님께서는 100일의 유예기간을 주신 것이 내게는 상당한 도움이 되었던 셈이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속으로 다집한다.

 '그래, 100일만 지내보는 거야, 그때까지는 견뎌봐야지"


박혜균/ 성남시 중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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