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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오징어 한 마리와 송편 50개의 그리운 추억

며칠 후면 추석이다. 전 같으면 그렇게 기다려지던 추석도 나이가 들고 시대가 바뀌니 변하기 마련인가 보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  때면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사실만으로도 한없이 기뻤다. 서울 ·부천·시홍, 김천에서 부모님이 계신 시골로 모여들었다.

 

  어김없이 22명이다.
  어느 해인가, 부모님이 저 세상으로 가시고 제사상 차리는 일을 서울로 옮기고서는 하나 둘 참석 못하는
  가족이 늘어나서 안타까움만 더해간다.


우리들이 자랄 때만 해도 얼마나 기다리던 추석이던가? 새로 장만해주는 옷과 신발을 신어서 좋고, 알록달록하게 발뒤꿈치를 물들이던 나일론 양말도 새것이어서 좋았다. 거기다가 형제끼리 시샘하며 송편빚는 재미도 한 몫 했다.


할아버지가 계신 우리 집에는, 강 건너 본동은 물론 근동에서까지 인사 오시는 손님이 많았다. 자연히 음식준비를 많이 하는데, 아버지가 독자에다 아들만 다섯이라 일 할 사람이라곤 어머니 한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어머니께서는 우리들에게 심부름과 잔일을 많이 시키셨는데 그 중 하나가 송편 빚기였다.


어린애부터 고등학생인 나까지 끌어들이자니 당연히 당근이 필요했다. 말 잘 듣고 가장 예쁜 송편을 끝까지 빚으면 장롱 속 깊숙이 감추어 둔 오징어를 성물로 주겠다는 대단한 제안이였다.

 


우리는 마당 가운데다 평상을 놓고 둥글게 앉아서 가을 하늘을 날고 있는 고추잠자리를 보며 송편을 만들기 시작했다. 떼어낸 멥쌀 반죽을 양손으로 비벼 새알처럼 둥글게 만든 뒤, 손가락으로 구멍을 파고 그 안에 깨·콩 등의 소를 넣고 송편을 빚었다.


여기에 송편을 예쁘게 만들어야 예쁜 마누라를 얻는다는 할아버지의 잔소리가 곁들여 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트집도 부리고 소변보러 간다는 애도 있지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오징어의 짭짤하고 쫄깃한 맛에 끝까지 버틴다.

손때가 묻은 막내의 앙증스러운 것도 있고 손가락으로 누른 모양과 크기도 천차만별인 데다 보름달과 반달모양도 보인다. 모양이야 애당초 어머니가 만든 것과는 비교할 꺼리도 못 될 뿐더러 다섯이 만든 수량을 합해도 어머니보다 적었다.

 

이제는 판정차례. 어머니는 각자가 만든 것 중에서 10개씩을 골라 상위에 나란히 올려놓도록 했다. 다들 자기 것이 제일이라고 우겼지만 육안으로도 솜씨 차이는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만져보고 뒤집어 보면서 한참을 뜸들이시더니 그냥은 모르겠으니 찌고 난 후에 보자고 하신다.


커다란 솥에 향긋한 솔잎과 송편을 한 층씩 교대로 얹고 송편을 찐다. 각자의 개성이 들어있는 송편이 익어 나오기까지 시간은 왜 그리 더딘지…. 우리들은 싸리비를 들고서 고추잠자리 사냥에 나섰다. 무리 지어 머리 위를 날고 있는 잠자리를 정신 없이 따라다니다 보니 우리가 빚은 송편 50개가 예쁘장한 어머니의 것과 섞여서 나왔다.

옆구리가 벌어지고 속이 터진 것이 수두룩했다. 어머니께서는
"다들 잘 만들었지만 터진 게 가장 적은 셋째가 제일이다" 며 오징어 한 마리를 주셨다.

오징어는 셋째가 차지했지만 한가위 보름달처럼 우리 모두를 사랑해 주셨던 어머님이 명절이 돌아오면 더욱 그리워 진다.

 

이종철/ 서울시 용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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